사랑이라는 근막
- 김효선
근육을 둘러싸고 연결하는 얇은 조직이에요
자몽차를 만든다
자몽의 근막을 찢는 일은 쉽지 않은 일
손톱 밑으로 발랄한 향이
주저앉아 끈질긴 고백을 이어간다
나를 키운 당신의 기원으로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계절들
최후의 나를 어디에 버려야
자신을 물어뜯은 손톱을 지우는지
몸에 근막이 없었다면
뇌는 반죽처럼 흘러내리고
몸 전체가 발 쪽으로 흘러버렸을 거라는
무시무시한 근막의 얘기
찢어지고 봉합하고
꿰맨 자리마다 가부좌를 틀어
필요할 때만 꺼내쓰는
사랑이라는 근막,
너덜거리며 간신히 붙어있는
수많은 비밀의 뒤를 봐버린 미명 아래
가끔
구름은 자신의 근막을 찢어
묵혀둔 보풀을 쏟아낸다
보푸라기로 일렁이는 숲
근막의 생채기로 나이테가 채워지면
질기디질긴 불안의 막이 완성된다
ㅡ계간 《문학청춘》(2024,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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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를 둘러 싼 가장 튼실한 근막이 '사랑'이란 이름으로 존재합니다
신체 조직의 기본단위인 세포 역시 막으로 둘러싸여 있듯이
인간 활동 모든 것에 '사랑'은 보호막으로 작동합니다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으니까 법률을 제정하여 울타리 삼기도 하지요
마지막까지 남겨두고 싶은 '사랑'이 스스로 떨어져 나갈 때도 있긴 합니다
연애와 이별, 결혼과 이혼 그리고 가입과 탈퇴에 근막이 보였다가 안 보입니다
근막이 근육이 되기도 하고 생채기로 남아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만
숨이 붙어 있는 한 그저 나이테가 되어 숨습니다
장맛비를 천명의 보풀이 쏟아지는 현상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불안감이 스며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