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처인구 원삼면 죽능리에 농토가 있는 A(70)씨는 사업대행사 역할을 하는 특수목적법인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주)로부터 올 여름 토지보상을 받았다. 1200평 농지를 평당(3.3㎡) 50만 원씩 받아 6억 원이다.
평생 농업에 종사해왔던 터라 농토를 구입하려 나섰지만 주변시세가 너무 올라 막막할 따름이다. 대지 200평에 대해선 평당 200만 원씩 4억 원을 받아 10억 원을 손에 쥐고 마을을 떠나게 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미 주변토지와 택지는 너무 올라 가까운 곳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겠다는 꿈은 깨질 처지가 됐다. 비교적 가까운 원삼면 좌항리 쪽으론 농지조차 250만 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었다.
외지이긴 해도 안성 보개면 쪽을 알아보니 역시 100만~200만 원 선에서 호가가 형성됐다. 집을 바로 지을 수 있는 대지는 주변에서 알아보기조차 힘들 지경이 됐다. 원삼면 행정복지센터 소재 고당리 중심권역은 무려 대지 가격이 평당(3.3㎡) 2000만 원이 넘는 수준이라는 게 부동산 중개업계의 얘기다. 처인구 시내권 최고 요지와 맞먹는 수준이다. "참 막막할 따름이죠. 겨울은 다가오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사례2. A씨보다 더 심각한 처지가 역시 죽능리에 사는 B(75)씨 경우다. 집이 들어선 대지는 남의 땅이고 가옥은 무허가였다. 농토 300평이 전부였다. 대대로 살아온 터전이어서 그간 크게 신경쓰질 못했다. 그렇다고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 보상 과정에서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건축물 대장에 기록이 없으니 주택보상에서 제외됐다.
토지대장은 남의 앞으로 돼 있어 당연히 대상도 아니다. 농지 300평에 대한 보상 1억 5000만 원과 이주에 따른 보조 5000만 원이 전부가 됐다. 사업대행사로부터 11월 말까지 집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갈 곳이 딱히 없다. 간접 보상에 해당하는 이주자 필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업대행사 측이 준비 중인 임시이주자택지 입주조건을 확대해 세입자까지 개방한다는 것. 일단 주거시설로 간다 해도 사실상 그 이후는 대책이 없는 편이다. 연령으로 보건데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떠나 이웃들과 헤어져 살아가야 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여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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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인구 원삼면 고당리에서 바라본 반도체클러스터 부지 일대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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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 터전 잃고 떠나는 사람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이 수용절차가 마무리되면서 이주가 본격화되는 시점이다. 그러나 10월 하순 들어서도 이주한 가옥은 얼마 되지 않는다. 10월 20일 현재, 죽능6리 일명 둥지골 마을은 7가구가 대상이지만 이주를 한 세대는 한 곳도 없다.
죽능5리 능말은 5가구가 이사를 마쳤다. 철거까지 진행된 가옥은 2곳이다.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마을은 독성2리 잿말이다. 그나마 전체 34가구 중에 이주를 마친 곳은 1/3이 채 안 되는 정도다. 사업자측은 공사 핵심지역에 속하는 잿말을 중심으로 이주작업을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자 측으로부터 이주 보상비를 받으려면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주민등록증 주소지를 통해 퇴거 확인돼야 한다. 전기 단전, 수돗물 단수 등 현지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증빙서도 제출해야 한다. 찬바람이 불고 겨울이 다가오면서 이주 대책은 시급한데 이들은 어디로 가야할까.
현 단계에서 주민들로선 이주대책이 가장 시급하다. 그러나 벌어지고 있는 상황으로 수수께끼를 풀만한 숫자 열쇠로 부족한 상황이다. SK하이닉스 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자측이 법적으로 이주택지(단독주택)를 제공해야 할 의무 대상은 50여 호에 불과하다. 관련법 때문이다.
공공사업의 경우 조성사업 공람‧공지 1년 전까지 거주하던 세대에게만 이주택지를 주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2019년 3월 27일을 기준으로 1년 전부터 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하곤 거리가 한참 멀다. 용인원삼협의자조합(조합장 한상창)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생계터전을 잃고 떠나야하는 세대가 180여 채다. 농업인은 대략 400여 명에 이른다. 농업 종사자 외에도 소상공인, 세입자 등 생계 상실자는 약 700여 명에 달한다. 무허가 또는 임대를 포함하면 보호받는 것은 50호이나 철거대상으로 떠나야 하는 대상은 180곳이란 얘기다. 더해 비닐하우스 270동, 축사 50동가 있다.
그런데 사업자측에서 SK하이닉스 단지 내 이주택지 규모는 70필지 정도로 알려져 있다. 실제 법적으로 허용하는 범위 이상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실제 이주대책 차원과는 거리가 있다. 즉 남는데 갈 곳이 없다는 얘기다. 법과 제도 허점 속에서 고통 받으며 대책없이 당장 이주를 해야 하는 많은 이들에겐 숫자놀음일 뿐 허망한 현실이다.
상생형 종합 이주대책 마련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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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연합비상대책위원회 수용 주민들이 13일 경기도청 앞에서 토지 등의 강제수용에 문제를 제기하며 집회를 가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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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반도체클러스터 산업단지 부지 조성사업까지 책임지고 있는 용인원삼일반산업단지(주)는 나름 단계적인 이주자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우선 중간 기착지로 4년간 임시거주시설을 준비 중이다.
원삼면 좌항리에 다세대생활주택을 이미 매입했다. 이곳에 15가구를 입주시킨다는 계획이다. 또 원삼면 독성리에 29세대가 들어갈 조립형주택을 지어 내년 초부터 살 수 있도록 공사 중이다. 총 44가구를 마련하는 셈이다. 이 밖에도 세입자 입주 기회를 준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아직 희망하는 이주 대상자들은 많지 않다는 게 사업자측의 설명이다. 오히려 각자도생 또는 공동체마을 조성을 선호하는 흐름이 가시화되고 있다. 죽능리 능말주민 10여 세대는 이미 안성에 거주지 및 농지를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5세대 정도는 보상협의를 거부하고 법적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독성2리 잿말 주민들은 인근 연미향 마을에 30세대 안팎으로 수용할 수 있는 주택단지를 주민 스스로 조성 중이다. 이곳엔 잿말 주민 외에도 다른 마을에서 이주를 원하는 일부 주민들이 입주의사를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죽능6리 둥지골 마을 7세대도 미정이다. 그렇다면 아직 선택을 못-하고 있거나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원주민들과 세입자들에게 적절한 대책은 없는 것인가.
현실에서 볼 때 주민들은 사업대상지가 되는 순간부터 고통의 시작이다. 각종 보상을 받는다 해도 인근에선 재산과 소득을 지키며 수평이동이 불가능하다. 더구나 삶의 환경과 문화가 바뀌는 이주는 곧 공동체 해체로 이어져 적지 않은 아픔을 동반한다.
특히 원삼면 독성리와 죽능리 일대는 집성촌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그렇다보니 22개 종중이 수천 기에 달하는 분묘를 관리하고 있다. 역시 이전 대상이다. 전통사회의 관습으로 볼 때 조상 묘를 집단 이주하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원삼·SK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지역사회의 여망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주 문제를 지혜롭게 풀기 위한 방안이 한편에서 모색되고 있어 주목된다. 즉, 사업자측과 주민 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민간사업자 그리고 공공영역이 손을 맞잡자는 구상이다.
이 같은 계획은 상생이란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주자 생활대책 근거지와 원주민 생활터전을 마련하는 동시에 지역차원 숙원사업까지 포함시키는 계획이라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란 중론이다.
이와 관련 SK하이닉스 반도체클러스터 산업단지 부지 조성사업까지 책임지고 있는 용인원삼일반산업단지 역시 긍정적인 입장으로 알려졌다. 도로망 연결 및 생활인프라 구축을 담당하고 향후 사업장 내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이용해 스마트 팜에 제공함으로써 이주민들의 연착륙을 돕겠다는 구상이다.
문화복합마을 조성과 원삼면 종합운동장 조성까지 포함된 공동체마을 조성은 대규모 개발사업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성공적인 상생계획이 기대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