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더봄] 농촌살이의 여가
[김성주의 귀농귀촌 이야기]
은퇴후 일하러 농촌 가는 것 아냐
오래 가려면 여가가 훨씬 더 중요
신나게 먹고 노는 방안 마련해야
여름 휴가철이다. 해마다 7말8초는 한국의 공식 휴가철이라 대란이 일어난다. 산으로 바다로 떠난다. 아직은 코로나19로 자신감이 떨어져 해외로는 주춤한다. 그래서 많이 나간다.
필자도 휴가를 맞아 어디로 가볼까 생각해 봤다. 기왕이면 특별한 주제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예전에는 주로 음식을 주제로 여행을 갔다. 아이가 어릴 적부터 낙지를 좋아해 산낙지 투어를 간 적도 있고, 한옥만 다니는 한옥 투어, 전국의 워터파크 투어를 간 적도 있다. 한 가지 주제에 꽂혀서 다니면 숙박이나 음식에 투정을 부릴 새가 없어서 좋다. 음식을 주제로 하면 오로지 먹는 것에만 집중하기에 만족도가 높다. 맛에 대해 분석을 하느라 맛없다고 툴툴거리지는 않으니 말이다.
올해부터는 국수 투어를 가고 있다. 지방마다 특이한 국수가 발달해서 아무 소도시나 가서 특이한 국수를 맛본다. 그리고는 국숫집 옆의 좋은 공원을 찾아간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는 배가 출출해지니 또 국숫집을 간다. 아무 공원이나 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테마파크나 테마가 명확한 공원 중심으로 가고 있다. 박물관, 전시관, 구조물, 민속촌 등이 해당된다. 그래서 이름을 ‘테마파크 옆 국숫집’이라고 정했다. 놀고 먹는 여행이라 참 좋다. 원래 나의 귀농귀촌 탐색 여정도 그렇게 시작했었다.
몇 군데 코스를 소개하겠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안동을 방문했을 때 먹은 음식인 안동국시 /사진=김성주
안동에 가면 건진국시가 있다. 건진국시는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 반죽하여 얇게 밀어내고 썰어내는 칼국수이다. 원래는 은어를 잡아 육수를 내어야 건진국수이지만 은어가 귀해져서 멸치육수를 쓴다. 누름국수라 부르기도 하고 건진국수라고도 부른다.
안동 시내에는 유서 깊은 국숫집이 많다. 국수 상에는 보리밥과 쌈을 함께 준다. 한끼로 충분하다. 국수를 먹으면 동쪽으로 다리 건너 ‘안동문화관광단지’로 간다. 그곳에는 ‘유교랜드’와 동물원이 있다.
유교랜드는 유교를 주제로 만든 전시관이다. 전시물이 다소 지루할 수는 있으나 일단 냉난방이 좋다. 쉬어가기 좋다. 동물원은 지방 도시에서 점점 사라지는데 여기는 새로 개관해서 깨끗하다. 동물 행동 중심으로 전시했다. 그리고 유명한 안동 하회마을로 향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속 마을이다. 필자는 하회마을에 가면 꼭 풍산 류씨 종택의 구상나무를 찾는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식수한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한국을 방문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방한하여 안동 하회마을을 들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점심을 들고 구상나무를 심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날 점심에 엘리자베스 여왕은 우리가 준비한 식탁 위의 음식을 웬일인지 먹지 않고 있다가 오로지 국수만 먹고 갔다고 한다. 왜일까? 우리 한식이 맛이 없어서? 우리 안동 국시가 맛있어서? 아니다.
우리 밥상은 밥상 위에 밥과 국, 반찬을 그릇에 담아 내놓는다. 그리고 각자의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여 그릇에서 덜어내어 먹는다. 그것이 엘리자베스 여왕의 식사를 방해한 것이다. 오로지 국수만이 각각에게 덜어내어 주는 음식이라서 맛을 본 것이란다. 음식을 공유하면서 먹는 우리 식문화가 여왕의 한 끼를 불편하게 한 것이다. 이런 스토리를 생각하며 안동 국시를 다시 찾아 먹으면 맛이 재미있어진다. 당시에 여왕의 상을 차려 주신 분은 전통음식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북쪽으로 가 영주로 가면 쫄면이 대단하다. 영주 사람에게 쫄면은 소울 푸드이다. 출향인들은 명절이라 고향인 영주로 오면 시내의 유명 쫄면집을 찾아가 먹고, 싸와서 집에서 또 먹는다. 쫄면은 1980년대 초반에 인천에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40년만에 쫄면이 영주의 대표 면 요리로 자리 잡았다.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쫄면을 먹으면 장수면의 조이월드로 향한다. 70년대에 만들어진 어뮤즈먼트 파크이다. 아직도 바이킹을 비롯한 놀이기구가 돌고 있다. 매표소에는 나이가 든 할머니가 앉아 있다. 안주인이시다. 낡은 놀이공원이 주는 정취는 가슴 뛰게 하면서 쓸쓸하다. 여전히 아이들에게는 즐거움을 주고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되살려준다.
경북 영주 순흥면사무소 앞에 세워진 여우 조형물 /사진=김성주
그리고 순흥면의 영주 선비촌으로 향한다. 영주의 선비문화와 한옥을 체험할 수 있는 민속촌이다. 가는 길에 소백산 여우생태관찰원을 찾는다. 여우를 복원하는 동물보존센터이다. 순흥면사무소에는 커다란 여우 조형물이 있다. 멀리서 보면 더 멋지다.
전라북도로 넘어가 남원에 가면 광한루원과 춘향테마파크가 있다. 남원은 역시 춘향의 도시이다. 광한루원에 가면 젊은 청춘들은 모두 성춘향과 이몽룡이다. 나이 든 우리는 그저 변사또와 월매구나라고 푸념하며 광한루원과 춘향테마파크를 돌아본다. 춘향테마파크는 광한루원 맞은편 강 건너에 자리 잡았는데 작은 놀이공원과 카페촌이 있고, 향토박물관과 시립 김병종 미술관이 있다. 호텔과 콘도가 모두 이쪽에 몰려 있다. 심지어 항공우주천문대까지 있으니 하루가 부족할 정도로 콘텐츠가 풍부하다. 남원 사람이 부러운 게 바로 이 공원 단지이다. 사계절 언제 와도 판소리와 아이들 웃음소리가 있는 곳이다.
공원 단지 안에서 먹고 노는 것이 모두 해결이 된다. 그래도 국수를 먹어야 한다. 공원 안에 명품 콩국수 집이 있다. 딱 5월에서 9월까지만 한다. 여름에는 콩국수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광한루원 후문 쪽의 100년 된 중국집을 간다. 짜장면과 짬뽕이 명품이다. 전북 지역 쪽에 많이 있는 물짜장도 있다. 요리가 다 좋으니 반주를 곁들이면 더 좋다. 매우 중국스러운 인테리어를 갖고 있어 분위기가 좋다.
또 하나 추천하는 국숫집은 시장 근처 골목길의 메밀국숫집이다. 주민들이 좋아하는 곳인데 어쩌다가 젊은이들의 맛집이 된 곳이다. 냉메밀과 돈가스의 조합이 좋다.
남원 냉메밀 /사진=김성주
이렇게 다니다 보면 전국의 도시를 다 돌아다닐 수 있다. 경기도 용인의 에버랜드와 수지구 쪽의 들기름 막국수. 강원도 춘천의 레고랜드와 춘천 막국수. 춘천은 막국수 박물관도 있다. 정선군의 하이원 워터파크와 콧등치기 국수. 충남 예산군의 덕산 스플라스 워터파크와 내포보부상촌을 찍고 맛보는 예산국수. 예산국수는 국수 공장이 더 유명하다. 충북 옥천군의 정지용 생가와 물 쫄면. 물 쫄면은 우동 국물에 쫄면을 말아 준다. 경남 의령군의 설뫼충효테마파크와 국내 최고의 소바라고 자부하는 의령 메밀소바. 제주도의 고기국수와 수많은 테마파크와 박물관들.
최근에 먹었던 국수 중에 가장 신기했던 것 두 가지를 꼽으라면 통영의 우짜와 고창의 짬짜면이다. 우짜면은 우동에 짜장소스를 부었다. 뭔 맛인지 모르지만 확실히 우동과 짜장 맛이 난다. 섞으면 아무 맛도 안 난다. 이런 메뉴가 왜 있는지는 모르지만 신기해서 늘 찾는다. 짬짜면은 그릇을 반으로 갈라 짜장면과 짬뽕을 넣은 것이 아니라 큰 접시에 짜장면과 볶음 짬뽕을 같이 낸다. 따로 먹어도 맛이 있는데 섞으면 또 다른 맛이 난다. 우짜와 짬짜. 참 재미있는 국수다.
통영 우짜면(왼쪽)과 고창 짬짜면 /사진=김성주
다시 본업으로 돌아와 귀농귀촌을 이야기하련다. 귀농귀촌을 준비하며 전국을 답사하는 사람들에게 일러주고 싶은 것이 있다. 귀농귀촌은 일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놀러 가는 것이다.
놀러 가는 것이라고 하니 놀라는 분도 있겠다. 귀농귀촌은 ‘생활’이다. 일상생활을 농어촌에서 보내는 것이다. 하루 24시간 중에 일하는 시간은 8시간이면 된다. 나머지 16시간은 여가 시간이다. 일하기 위해서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하는 것은 도시 생활이다. 시골 생활은 반대로 가야 한다. 일이 아닌 노는 시간에 집중해야 한다. 일에만 몰두하면 골병든다. 농사일이라는 것이 공장과는 달라서 하늘을 봐야 하고 땅을 봐야 한다. 작물이 자라는 시기도 짧다. 실제 노동에 투입되는 시간은 많지 않다. 농사 걱정하는 시간이 더 많다.
귀농귀촌인 중에 농업을 전업으로 삼는 이는 전체의 5%에 불과하다. 나머지 95%는 농업 외의 일을 하거나 은퇴한 사람들이다. 대다수 귀촌인을 생각한다면 귀농귀촌은 여가에 집중하는 것이 많다. 귀농귀촌인 실태 조사를 보면 귀농귀촌인에게 필요한 공공서비스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1위가 문화 체육 서비스라고 나온다. 그 뒤로 취약계층 일자리 지원과 교통 서비스, 노인 돌봄 서비스, 교육 서비스, 임신 출산 양육지원이 나온다. 문화체육 서비스는 여가에 관련된 공공 서비스이다. 일자리 지원보다 앞선다. 지자체에서 귀농귀촌인을 붙잡으려면 여가와 관련된 시설과 서비스를 늘려야 한다.
귀농귀촌인에게 필요한 공공서비스 실태조사
먼저 어떻게 놀 것인지 구상하라. 여가를 알차게 보낼 공간을 탐색하라. 신나게 먹고 노는 방안을 마련하라. 그래야 오래 간다.
오늘도 덥다. 방금 단골집에 가서 시원한 평양냉면 한사발 들이키고 왔다. 기분이 좋다. 인생은 국수처럼 길게 가야 한다.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출처 여성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