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처음으로 진공관식 라디오를 디자인한 바 있는 박용귀는
20여 년간 금성사의 제품디자인을 주도한 최초의 직업적인 제품 디자이너이다.
1933년 도쿄에서 태어난 박용귀는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와 부산중, 부산고를 거쳐
1958년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를 수료했다. 대학 졸업 전에 락희화학(LG화학)에
채용되어 근무하다가 1959년 2월 금성사(LG전자)가 창립되면서
금성사 사내 의장실에 입사하여 제품디자이너로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이후 의장실의 책임자로 승진하여 1959년 10월 국내 최초의 진공관식 라디오인
A-501을 비롯하여 국내 최초의 선풍기, 전화기, 트랜지스터 라디오, 냉장고, TV,
오디오, 에어컨, 전자시계 등 1977년 퇴직할 때까지 약 20년간 가전제품을 디자인하였다.
퇴직 후 자신의 이름을 딴 <YK디자인>을 설립해 충무로에서 제품디자인
전문회사를 1년간 운영했으며 1년간 디자인포장센터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국내 최초의 라디오인 A-501은 박용귀와 최병태가 제품의 외장 디자인을 맡았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렌더링과 목업의 과정을 거친 라디오로서 2밴드(중파, 단파),
진공관 5개인 5구 슈퍼헤테로다인 회로방식을 갖춘 178 x 429 x 163mm 크기였다.
당시 설계주임이었던 김해수와 함께 일본의 산요스타일을 참고하여 금형설계를 직접해
내부에 맞추었다. 케이스는 다섯 가지 색깔로 만들어 소비자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게 하였다.
최초의 국산 라디오일 뿐만 아니라 부품의 국산화를 한걸음 앞당겼다는 점에서
우리 전자공업사에서 획기적인 일로 기록되었다. 라디오를 필두로 사실상
금성사에서 제작되는 모든 가전제품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박용귀는 특히 판매를 고려하여 주관이 뚜렷한 디자인을 추구하였는데,
좋은 디자인이란 디자이너가 가진 일관된 흐름에서 온다고 생각하였다.
확고한 디자인 정책을 가지고 외국 것과 차별화된 우리만의 디자인을 정착시키는데 노력했다.
1960년 초기의 공업 의장실의 모방 단계를 완전히 탈피시키면서 1960년 후반부터는 독립적인
과로 발전시켜 거의 100%에 가까운 한국의 공업 디자인이라는 이미지를 전개시켰다.
5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가전제품 디자인사의 출발은 박용귀로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으며, 그가 디자인한 6~70년대 수많은 가전 제품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첫댓글 디자인은 기술자가 아닌 디자이너가 해야지요.
아주 오래전에 S사에서 엔지니어와 간부들이 디자인에 관여하다 엉망인 제품을 보고 소비자들이 외면 했었지요. 그당시 "마누라와 자식빼고 모두 바꾸라" 지금은 고인 이시지만 그당시 일본의 디자인에 관한 후꾸다 보고서 를 읽고 많은 변화의 시작이었지요.
가전품 디자인 설계 매우 중요하죠
금성사 모델 디자인에 박용귀님의
헌신이 있었네요..~짝짝짝 !
LG, 삼성 전세계 백색가전 석권의 이유에 디자인도 한몫 하고 있다 생각됩니다.
울집 냉장고는 모듈식에 컬러 선택이 자유로운 LG를 들여 놓았습니다.
냉장고, 냉동고, 김치냉장고 자유롭게 붙일 수 있고 공간 허락되면 더 확장 가능한 것 때문에..
여자들의 욕심에 주방과 베란다에 냉장고 수가 사람수와 같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