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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동포 김재일씨의 즐거운 안면도 여행기
길림성 용정에서 온 중국동포 김재일씨의 안면도 기행문을 연재한다. 필자는 현재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에 소재한 <도원케미칼>에서 일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19일, 20일 1박2일간 김윤배 사장을 비롯한 직장 동료들과 함께 안면도 바다낚시 여행을 떠났다.<편집주 註>
<제1부> 안면도 가는 길
이번 일요일엔 한국생활에서 기분 나쁘던 일을 추려 적어보려 했는데 낚시에 특별한 취미를 갖고있는 사장님이 우릴 데리고 바다낚시를 떠난다기에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나는 잠시나마 번뇌와 스트레스를 저 푸른바다, 하늘 끝에 날려버리고 즐거운 안면도 여행기를 적고자 한다.
서해대교 총길이 7,310m, 도로폭 31.4m이다. 총연장 353㎞의 서해안고속도로 구간 중
경기도 평택시와 충청남도 당진군을 잇는 다리이다. 한국도로공사가 서해권 교통망과
물류기반 확충을 위하여 1993년 11월 착공, 2000년 11월 개통되었다
지난 5월 19일 토요일, 우리 일행 7명은 중형승용차에 앉아 한국땅에서 락조가 제일 가관이라는 안면도로 향해 쏜살같이 달렸다. 어제 저녁까지만해도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지더니 오늘 아침엔 언제 그랬듯이 하늘이 맑게 개였다.
40대 중반인 김윤배 사장님은 태극권 6단으로써 중국 태극권 인사들과 의좋게 보내고 있으며, 항시 곤봉, 칼, 검을 사무실에 갖추어 놓고 있는 분이다. 그리고 중국 청도에 회사 거래점 다섯 개를 두고 있어 중국 행차를 자주하는 분이다. 우리 동포에 대한 관심 또한 각별이 뜨거운 분이다. 이번 야외도 내가 바다구경을 한번도 확실하게 못했다는 말을 듣고 산으로, 유희장으로 가자는 건의를 다 제쳐놓고 바다로 정한 것이다.
고향에서 바다구경을 하자면 훈춘쪽으로 가서 국경을 넘어야 하기에 부득불 만리길을 떠나 대련 아니면 청도쪽으로 나와야 한다. 그러다보니 나처럼 바다구경을 못한 이들이 태반이 된다. 한국에 올 때에도 난 심양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청주공항에 내렸기에 바다구경을 한번도 못하다가 화성 제부도라는데 가서야 난생 처음 바다를 보았다. 갯벌, 누렇게 흐린 물, 매바위 외 별로 인상에 남는 것이 없다.
지난 3월 중순 인천으로 일하러 갔다가 휴식날에 월미도에 가본 적이 있다. 남들은 희희락거리며 유람선을 타고 영종도로 가는데 난 아픈 팔(석재일 하다가 팔목에 담이 생겼음)을 붙잡고 외롭게 6.25전쟁때 유엔군이 등륙했다는 지점에서 망원경으로 바라볼 뿐이다. 이렇게 공공 버스여행으로 바다를 대충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엔 4개 나라 베트남, 태국, 중국, 한국인으로 묶어진 단란한 직장동료팀에 끼여 이야기 꽃을 피우며 서해안고속도로로 달리니 제법 신바람이 났다.
평택항과 당진항을 이은 웅위로운 서해대교(위 사진)를 지나 500미터 되는 갈산터널을 지나니 시원한 바닷바람이 한 몸에 안겨왔다. 충청남?경내에 들어서니 비교적 넓은 벌판이 뻗어 있었다. 마치 고향의 60리 평강벌에 온 듯한 감이 들었다. 들에선 농부들이 이앙기로 모내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경운기에 싣고 가는 벼모를 보니 한 뼘도 안되는 것이 어찌 보면 모살이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그젯날, 우리들이 논판에다 하던 랭상모나 다름없이 아주 빈약한 모였다.
지금 연변에선 큼직한 비닐하우스안에서 모를 자래우는데 육모판 구멍마다 볍씨를 두 알 내지 세 알씩 넣어서 건실하게 키운다. 모를 낼 때에는 아리가 차서 마를때 같은 모를 손으로 희식재배를 한다.
휴게실에 있는 방파제 위에서 차가 멈춰섰다. 사장님이 큰 소리로 “5분간 휴식!” 하고 선포하자 깊은 잠에 밤인줄 알던 친구들은 와들짝 놀라며 안면도에 다온 줄 알고 급히 내렸다. 나는 도로란간에 나가 망망한 바다를 마음껏 흠상했다. 푸른 바다끝과 푸른 하늘끝이 맞붙은 것 같다. 그 사이에 희뿌연 안개만 아니였다면 ….
차가 다시 떠나게 되자 사장님은 운전대를 박준우 과장님께 넘겨주고는 뒤좌석에 앉았다. 사모님이 알뜰하게 갖추어 보낸 갖가지 안주와 술을 꺼내놓고는 축배의 잔을 높이 들었다. 중국 술문화에 너무나 익숙한 사장님은 나를 연장자라며 먼저 술을 부어 주고는 “건배!” “위하여!”를 연신 뽑아냈다. 반만(베트남), 씬과 그라싸(태국)는 술을 못마신다고 사양하고, 박과장은 운전 때문에 안마시다보니 우리 동포 한용춘과 셋이서 소주 3병을 굽냈다. 사장님은 소주도 25%짜리만 골라 마시는 애주가인데 특히 도수 높은 중국술을 즐겨 마신다.
“오늘부터 래일까지는 회사일을 논하지 말고 재미있게 실컷 먹고 노는거야, 알았지? … OK!”
사장님은 수줍움을 곧잘 타는 그라싸의 볼을 살짝 꼬집어 주었다. 잠깐 새에 안면도 해변가에 도착하자 사장님은 운전을 잘 못한다고 과장님을 나무란다.
“왜, 차가 이 모양인가. 굼벵이처럼 기는 거야! 차를 좀 매끄럽게 몰란 말야…, 여긴 어디야, 오른 쪽 해안 도로를 따라가야지. 잘못 들어섰어!”
그러나 차는 해안도로를 따라 곧장 정확하게 목적지인 <꽃지해수욕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중국동포타운신문 2007년6월15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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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바다낚시
안면도에 해수욕장이 십 여 개, 우리는 그중 제일 막바지에 있는 꽃지해수욕장을 찾아갔다. 꽃지 패샌마을에 들어서서 바다여행패샌에 짐을 내려놓고 회집에 들러 점심식사를 하였다. 조개와 대하를 구워놓고 파도치는 밑물을 보노라니 또다시 가슴이 부풀어 술잔을 마주쳤다. 식사가 끝난 후 다시 오던 길로 달려 낚시하기 유리한 좁은 바다 기슭으로 들어왔다. 고급 낚시대 두 개를 갖고 왔으나 사장님은 낚시마트에서 한 대 더 샀다. 두만강 기슭에서 참대(죽순)나 싸리나무가지에 줄을 달아 낚시질을 했을 뿐 이런 낚시대는 처음 만져본다.
사장님과 한씨, 그리고 씬이가 각기 낚시대를 들고 고기를 낚기 시작했다. 나는 낚시질에 별로 흥취가 없었고 물고기도 그 역겨운 비린내 때문에 싫어하는 편이다.
이들이 낚아내는 물고기를 보고는 무척 호기심이 생겼고 나중엔 사장님의 낚시대를 빼앗아 쥐기까지 하였다. 왕지네를 낚시에 꿰여 바다에 던진 후 약 1분간 되었을 때 갑자기 낚시대와 손이 동시에 후루룩 튀는 감을 느꼈다.
“아차! 놓치면 안돼!”
나는 제껏 줄을 감아올리자 우럭새끼 한 마리가 걸려나왔다. 그것을 보고 모두들 환성을 질렀다.
씬이 4마리, 한씨가 5마리, 사장님이 7마리, 내가 1마리 모두 17마리를 잡았다.
‘어떻게 먹는담. 탕을 끓이자해도 가스렌즈가 없었다. 두만강 기슭 같으면 싹달나무로 주어다 불을 지피련만…’
사장님은 어느새 저쪽 나무 그늘 밑에 앉아서 작은 칼로 슬쩍슬쩍 물고기 회를 뜨고 있었다.
“빨리들 와서 우럭회를 먹어봐요. 오늘부터 내가 도우미 노릇을 착실히 할테니…”
금방 떠낸 회를 초장에 찍어 먹어보니 별맛이라, 비린내가 전혀 없었으며, 담백하고 고소하기만 하다. 20센치가 되나마나한 우럭회를 뜨느라고 사장님은 진땀을 뺏고 우리는 뜨는 족족 먹어 치었다.
@중국동포타운신문 제106호 2007년7월 1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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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파도를 맞받아
우리는 다시 사람들로 붐비는 해수욕장으로 나와서 길다랗게 만들어놓은 3층 계단에 앉아 관객들이 물가에서 장난치는 걸 구경하였다. 씬은 아까부터 바다에 들어가 헤엄치겠다고 손시늉하던 것이 정착 해수욕장에 오니 얼언반구도 없다. 나는 워낙 두만강에서 헤염을 익혀온 지라 지난번 제부도에 갔을 때에도 바다에 떠다녔었다. 난 씬을 툭툭 치면서 가만히 헤엄치자고 부추겼다. 박준우 과장님은 회사내에서 아주 엄격한 관리자인데 여기 와서도 직원들의 안전을 책임지느라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수영복을 입지 않고는 더구나 술을 마신상태에서는 수영을 못하게 하였다.
나는 혼자 슬며시 50미터쯤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외국인으로 보이는 남녀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곳에서 나는 제껏 옷을 벗어 포개놓고 삼각팬티 바람으로 바다에 뛰여들었다. 파도를 맞받아 880여미터 가량 헤엄치니 천당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점점 집체같은 파도가 빌려오고 나는 몸을 솟구쳤으나 파도를 당해낼 수 없었다. 계속 나가다가는 바다 귀신이 될 것 같다. 방향을 돌려 기슭으로 헤엄쳐 나왔다. 남녀청년들이 물에서 목마 타고 모자 벗기기를 하였고, 백사장에선 축구 시합이 벌어졌다. 나는 고향에서 놀던 때가 기억나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축구는 볼 맛이 있었고 함께 뛰고 싶었다. 박과장이 물가에서 인제 가자고 소리쳐서야 나는 옷을 주어입었다.
팬션 숙소 앞마당 탁자에 둘러앉은 우리는 삼겹살과 해삼물을 구워먹으며 술도 마셨다. 태양이 어느새 바다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팬션 주인집 말로는 저기 보이는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 사이로 지는 해가 아주 볼만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을 제대로 보자면 5리는 나가야 되는데 지금 해는 바다에 잠기고 있었다.
우리는 폭죽을 터쳤다. 20대의 반남과 씬, 30대의 그리?와 한씨, 박과장, 40대의 사장님, 그리고 50대인 필자는 양손에 길다란 목죽을 쥐고 희망찬 앞날을 축복하며 안면도의 저녁 하늘가에 꽃보라를 날렸다.
@중국동포타운신문 제107호 2007년 7월 16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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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노래방
저녁 8시 지나 우리는 차에 앉아 자그마한 해변시가지로 들어섰다. 네온등이 작열하는 지하 노래방을 찾아온 것이다. 나는 선참으로 마이크를 사장님께 드렸는데 지정곡은 ‘동숙의 노래’였다. 잔잔하게 서정적으로 잘 불렀다. 다음엔 박과장님의 노래를 들어보려고 했는데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내 차례가 되자 난ㄴ 언제 어디서나 취한김에 부르는 노래 ‘사나이 눈물’이다. 나훈아가 불렀던 조향조가 불렀던 그냥 그 제목이면 다 불렀다. 한참 신나게 노는데 박과장이 아가씨 7며을 데리고 들어와 한 명씩 붙혀주었다.
나를 동반한 아가씨는 40대 초반인 요사하게 생긴 여인인데 말투가 연변말씨다. 내가 “고향이 어딘가?”고 묻자 그녀는 “중국…” 하더니 제껏 “한국입니다!”라고 돌려댔다.
고향을 묻는데 나라이름부터 대다니 한참 후에는 또 “서울에서 왔어요”라고 한다. “요”자에 악센트를 붙혀 내뱉는 것이 여간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습관적으로 눈길과 행동거리를 보아도 교포를 알아보는 사람인데 고향말투를 듣고서야 어찌 모르랴. 그런데도 극구 교포가 아니라 서울사람이라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교포든 아니든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어쩌면 교포들이 교포라는 명칭을 싫어하고 회피하는지 알고도 모를 일이다. 현장이나 소개소에 나가보아도 교포들이 한국인 티를 내면서 서로 조선족임을 감추려 하는 것이 꼴불견이라는 생각도 가져본다.
× × ×
작년 겨울, 현장 동료들과 함께 수원 세류동에 위치한 한 노래방에 들어갔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는 다섯 명이 아가씨 2명을 청했는데 그중 다정스럽고 싹싹한 한 아가씨는 자기는 연변에서 온 교포라고 자칭하는 것이었다.
반장님이 나를 가리키며 “저 아저씨가 중국교포”라고 하자 그녀는 나의 손을 덮썩 잡고 무척 반가와 하였다. 자기는 화룡동가에서 왔는데 두고온 자식과 남편, 부모형제가 보고싶다며 눈물이 글썽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인차 분위기를 바꾸어 노래도 선정해 주고 춤도 추면서 유쾌하게 놀았다.
× × ×
그런데 오늘은 이게 뭔가. 고향이 한국 또는 서울이라는 교포 여자 때문에 변질된 물고기를 삼킨 것같아 속이 메스꺼워 났다. 그녀 때문에 오히려 흥이 깨지고 말았다.
펜센마을로 돌아오자 술에 어지간히 취한 사장님은 정원 식탁에 앉아 또 술을 청해 드신다. 나는 같이 자리를 하면서 곤드레 만드레가 될까봐 슬그머니 다락방에 올라와서 누워버렸다.
× × ×
새벽녘에 축구볼이 두 손에 쥐여있어 확 당겨보았는데 웬걸 눈을 번쩍 뜨고 보니 사장님의 머리가 나의 가슴에 안겨 있는 것이다. 나는 살며시 베개를 당겨다가 베워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날 바다에서 헤엄치고는 샤워도 하지 않아 소금물에 젖었던 온몸이 껄끈했다. 나는 샤워를 하고 나와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그런데도 모두가 잠에서 깰 줄 모르고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 나는 옷을 주워입고 부랴부랴 해변가에 나갔다. 상쾌한 아침이다.
@중국동포타운신문 제108호 2007년 8월 1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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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읽었읍니다!!
잘보구 갑니다.
타국땅에 가서 마음에 맞는 직장 사장님만나기가 참 쉽지 않는데..이분은 그래도 직장분위기가 좋아보이네요..
가끔식 좋은분들이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