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늦은 아침식사를 아내와 함께 하고 있는데 아내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은행원을 자칭하는 남자가 말하기를 어떤 남자가 기업은행 당산지점에 와서 아내의 주민등록증과 통장, 도장을 가지고 와서 300만원을 찾겠다고 하는데 요즘 이런 일이 많아 확인전화를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아내는 기업은행과는 거래가 없다고 하자 돈을 찾으러 온 남자에게 전화를 바꿔주었습니다.
그 남자가 아내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이모! 하며 어제 돈 찾아오라고 통장과 도장 주었잖아. 술이 덜깼네 하며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더랍니다.
곧이어 은행원이 아내의 주민등록번호를 불러주며 확인을 요청했는데 주민번호는 맞지만, 기업은행과는 거래가 전혀 없었는지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멀리서 여직원이 계장님 운운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그 남자가 자리를 뜨고 있다는 말과 함께 신고해! 하는 소리와 함께 멀리서 여직원이 경찰에 신고했다는 말이 들렸다고 합니다.
곧이어 인근 파출소의 박머시기 경장이라고 하더니 저희 집사람이 방금 전의 황당한 사건을 설명하니 이건 파출소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서 영등포 경찰서 사이버수사대로 연결했다고 하더랍니다.
그때 저는 일본의 [쿠로사기]를 머리에 떠올렸습니다. 일본에서 벌어진 사기 실화를 만화로 꾸며 현재 30권 정도 나온 것을 모두 소장하고 있고 일본 드라마 11편과 영화까지 모두 보았고 아내도 만화를 모두 읽어 사기꾼의 사기수법이 얼마나 교묘한 줄 알기에 처음에는 이것이 어떤 자가 아내의 주민증을 위조해서 대포통장을 만들어 차명으로 돈거래를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등포 경찰서 사이버수사대의 우모 경장이라는 사람이 최머시기라는 다른 형사에게 전화를 넘기더니 K통신사에서 사용자 신상명의가 유출된 후에 이런 일이 많아졌다고 하면서 잘 마무리 되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놀라는 척 하면서 목소리가 커지더니 금융감독원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아내가 2010년 부산 경남은행 사기에 연루된 피의자로 오늘 일도 서로 짜고서 하는 일이 아니냐고 다그쳤습니다. 조용히 통화내용을 듣고 있었던 저는 화가 치밀었습니다.
아내도 쿠로사기를 상기했는지 이 상황조차 믿을 수 없으며 당신이 진짜 형사인지 어찌 아느냐고 되묻자 자신의 신원(물론 가짜)를 밝히며 자신은 아내를 보호해 주는 것이니 믿으라고 하면서 K통신사 신상유출사건이 이후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해 찾아와 울며불며하는 피해자들이 많은데 이렇게 미리 은행에서 발각되었으니 운이 좋다고까지 말했다고 합니다.
기업은행은 물론이고 지방은행인 경남은행과는 전혀 거래가 없었던 아내는 당황해서 그동안의 은행거래가 있었던 은행을 모두 말하며 부인하자 현재 어느 은행에 얼마의 돈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경남은행에서 아내의 이름으로 7천만원을 사기당한 피해자들이 계좌동결을 신청 중이라고 하면서 그 동안에 인천에 있는 집으로 여러번 출두명령서를 보냈는데 못 보았느냐 하면서 용의자 취급을 하기에 화가 나서 옆에서 듣고 있던 제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알리겠다고 소리쳤습니다. (아마 자신들의 계좌로 이체권유를 하려던 참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그 자가 깜짝 놀라며 아까 혼자 있지 않았느냐 하면서 지금까지 녹취 중이었는데 제3자가 끼어서 녹취를 중단하겠다고 말하며 변호사 이름을 물어보길래 제가 아내에게 같이 일하는 시민단체의 이사로 있는 변호사를 이름을 대자 남편이나 변호사를 대동하고 영등포 경찰서 사이버 수사대로 오라고 하며 자신의 직위, 이름과 경찰서 위치까지 자세히 알려 주었습니다.
아내가 주민등록을 옮긴 적이 없고 통화내용이 좀 수상했지만, 지금까지 받아본 보이스피싱 전화가 모두 자동녹음에 발신자가 001로 시작되는 것이 많았고 실제 주민번호를 불러주고 은행에서 진짜 일이 벌어진 것처럼 연출했기에 반신반의했습니다.
형사라고 말한 자가 너무나 태연하고 그럴 듯 해서 인터넷에서 경남은행 사기사건을 찾아보니 정말 4000억대 대출 사기가 있었고 피해자도 많았습니다. 갑자기 몸이 으스스 떨리더니 추워졌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K통신사에서 정보유출 아내의 핸드폰 명의는 내 명의로 되어있어 그곳이 출처같지 않았습니다. 문득 7~8년전 아내가 고이자의 유혹에 넘어가 부산의 저축은행에 저금했다가 그곳이 파산해 한동안 돈을 받지 못했던 일이 기억났습니다. 그럼 그때 정보가 유출된 것이었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래서 민변의 그 변호사에게 전화하고 금융사기에 연루된 것 같다고 하고 경찰서에서 오라고 한다고 한다니까 가서 당당하게 해명하라고 하고 만약 경찰이 불손하게 대하면 청문감사실에 알리겠다고 말하라고 방어전략까지 말해주어 아내와 함께 부리나케 영등포 경찰서로 향했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오고 새로 이사한 김포 한강신도시에서 영등포 경찰서까지는 꽤 먼거리였습니다만 찾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하철로 가는 길에 빙판에 한번 미끄러졌지만, 다행히 다치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죄를 짓지 않았고 제 등 뒤에 변호사라는 든든한 백이 있어 불안한 마음은 없었습니다만 앞으로 어떻게 사건이 전개될까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영등포 경찰서를 찾아가 사이버 수사대로 들어가서 아내가 이름을 밝히자 형사가 웃으면서 그 자들이 사기치려고 했던 것이라고 하면서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사이버수사대로 찾아왔었다고 말하며 앞에 앉은 형사를 가리키며 이런 보이스피싱 사기꾼들을 15명 체포했다고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먼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도 꽤 있다고 합니다.
김포에서 왔다고 하니까 근처 좋은 식당까지 알려주어 낭패한 우리들에게 위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070으로 시작되는 전화의 대부분은 사기 전화이니 무시하고 이런 일이 있으면 114에 문의해 은행과 경찰서에 먼저 전화해 확인해 보라고 친절히 알려주었습니다.
민망해진 둘은 얼른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험한 세상임을 새삼 깨달으며 치밀하게 각본을 쓰고 연출, 연기를 해서 이곳까지 오게 한 사기꾼에게 공중전화로 전화해보니 벌써 가짜 은행도, 가짜 경찰서도 전화가 사용중지라는 멘트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시간과 교통비를 잃긴 했지만 크게 손해본 것은 없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아내와 데이트도 하고 김포공항 백화점에서 아내에게 맞는 벨트도 구입했으니까요.
그래도 여러분의 집에 갑자기 이런 내용의 전화가 오면 당황하지 마시고 해당 은행이나 경찰서에 확인하시기 바라며 그들의 중지된 전화번호를 공개합니다. 혹시 이 번호로 여러분에게 전화가 올지 모르고 심심하시면 이 번호로 전화해서 사기꾼들이 아직도 체포되지 않았나 확인해 보십시오.
가짜 기업은행 당산동 지점 번호 070-7635-5305
가짜 영등포 경찰서 사이버 수사대 070-7945-9607
최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