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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76강-1 (2016. 6. 6.)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三
十廻向品 第二十五之一
四. 十廻向
2. 第一 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
(11) 金剛幢菩薩의 偈頌
가. 說偈의 義
나. 廻向할 善根 ? 四無量心
上講禮
一 心 頂 禮 盡十方三世 一切諸佛
一 心 頂 禮 盡十方三世 一切尊法
一 心 頂 禮 盡十方三世 一切賢聖僧
我弟子等 講論三藏 唯願三寶 爲作證明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隅
我今聞見得受持 願解如來眞實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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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方廣佛華嚴經 略纂偈 龍樹菩薩略纂偈
大方廣佛華嚴經 龍樹菩薩略纂偈 南無華藏世界海
毘盧遮那眞法身 現在說法盧舍那 釋迦牟尼諸如來
過去現在未來世 十方一切諸大聖 根本華嚴轉法輪
海印三昧勢力故 普賢菩薩諸大衆 執金剛神身衆神
足行神衆道場神 主城神衆主地神 主山神衆主林神
主藥神衆主稼神 主河神衆主海神 主水神衆主火神
主風神衆主空神 主方神衆主夜神 主晝神衆阿修羅
迦樓羅王緊那羅 摩喉羅伽夜叉王 諸大龍王鳩槃茶
乾達婆王月天子 日天子衆?利天 夜摩天王兜率天
化樂天王他化天 大梵天王光音天 遍淨天王廣果天
大自在王不可說 普賢文殊大菩薩 法慧功德金剛幢
金剛藏及金剛慧 光焰幢及修彌幢 大德聲聞舍利子
及與比丘海覺等 優婆塞長優婆夷 善財童子童男女
其數無量不可說 善財童子善知識 文殊舍利最第一
德雲海雲善住僧 彌伽解脫與海幢 休舍毘目瞿沙仙
勝熱婆羅慈行女 善見自在主童子 具足優婆明智士
法寶?長與普眼 無厭足王大光王 不動優婆遍行外
優婆羅華長者人 婆施羅船無上勝 師子嚬伸婆修密
?瑟?羅居士人 觀自在尊與正趣 大天安住主地神
婆珊婆演主夜神 普德淨光主夜神 喜目觀察衆生神
普救衆生妙德神 寂靜音海主夜神 守護一切主夜神
開敷樹華主夜神 大願精進力救護 妙德圓滿瞿婆女
摩耶夫人天主光 遍友童子衆藝覺 賢勝堅固解脫長
妙月長者無勝軍 最寂靜婆羅聞者 德生童子有德女
彌勒菩薩文殊等 普賢菩薩微塵衆 於此法會雲集來
常隨毘盧遮那佛 於蓮華藏世界海 造化莊嚴大法輪
十方虛空諸世界 亦復如是常說法 六六六四及與三
一十一一亦復一 世主妙嚴如來相 普賢三昧世界成
華藏世界盧舍那 如來名號四聖諦 光明覺品問明品
淨行賢首須彌頂 須彌頂上偈讚品 菩薩十住梵行品
發心功德明法品 佛昇夜摩天宮品 夜摩天宮偈讚品
十行品與無盡藏 佛昇兜率天宮品 兜率天宮偈讚品
十廻向及十地品 十定十通十忍品 阿僧祗品與壽量
菩薩住處佛不思 如來十身相海品 如來隨好功德品
普賢行及如來出 離世間品入法界 是爲十萬偈頌經
三十九品圓滿敎 諷誦此經信受持 初發心時便正覺
安坐如是國土海 是名毘盧遮那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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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湘祖師 法性偈
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 無名無相絶一切
證智所知非餘境 眞性甚深極微妙 不守自性隨緣成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九世十世互相卽 仍不雜亂隔別成 初發心時便正覺
生死涅槃相共和 理事冥然無分別 十佛普賢大人境
能仁海印三昧中 繁出如意不思意 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 是故行者還本際 ?息妄想必不得
無緣善巧捉如意 歸家隨分得資糧 以陀羅尼無盡寶
莊嚴法界實寶殿 窮坐實際中道床 舊來不動名爲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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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 강설” 제 27권이 이렇게 나왔습니다.
오늘도 본 강의에 들어가기 전에 서문을 한 번 읽는 것으로 점안 식을 대신하겠습니다.
서 문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무엇입니까?
보시하고 나누고 베풀고 회향하는 등 일체 선한일이란
하나도 남김없이 앞장서서 하는 것이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입니다.
근래에 불교 일각에서 장기를 기증하여 생명을 나누자
는 운동을 전개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의료를 지원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 가난한 나라에 우물을 파주고, 학교를 지어주는 운동도 많이 펼치고 있습니다.
실로 참다운 불교를 실천하는 일입니다.
거듭 말하건대 불교는 오로지 보시입니다.
즉 보시로 회향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보시운동과,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
들을 구제하는 보시운동과, 기본적인 의료를 지원하는
보시운동 등이 더욱 열렬히 펼쳐져야 할 것입니다.
10회향 중 제6 수순견고일체선근회향의 내용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법을 구할 적에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대가 살이 붙어있는
손톱을 나에게 보시한다면 법을 그대에게 주리라.’
하거든, 보살이 대답하되 ‘다만 나에게 법을 주면
살이 붙어있는 손톱을 마음대로 가져가라.’하나니,
이는 법을 구하기 위한 연고며, 바른 법으로 중생들
에게 열어 보이고 연설하여 이익케 하며, 일체중생
들로 하여금 다 만족함을 얻게 하려는 연고로 살이
붙어있는 손톱을 구걸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정수리의 肉?(육계)를 보시합니다.
눈을 보시합니다. 귀와 코를 보시합니다.
치아를 보시합니다. 혀를 보시합니다.
머리를 보시합니다. 수족을 보시합니다.
몸에서 피를 내어보시합니다. 골수를 보시합니다.
심장을 보시합니다.
창자와 신장과 간과 폐를 보시합니다.
팔다리를 보시합니다. 몸의 가죽을 보시합니다.
몸을 불구덩이에 던져 보시합니다.
처자 권속과 왕의 지위를 보시합니다.
살생하는 업을 금하게 하여 보시합니다.
내 마음이 허락하는 데까지라도 보시합시다.
자신이 알고 있는 법을 보시합시다.
작은 것이라도 사정이 되면 재물을 보시합시다.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사람에게 위로하여 보시합시다.
또 재물이 들지 않는 웃는 얼굴을 하고, 친절한 말을하고 자리를 양보하는 등의 일곱 가지를 보시합시다.
타 종교인에게도 집을 지어주고 교회를 지어주는 증엄
스님처럼 차별 없이 보시합시다.
보시가 참다운 見性이고, 보시가 참다운 成佛입니다.
보시가 참다운 불법입니다.
2015년 5월 1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강의 때마다 제가 가장 자주 언급하는 스님,
달마스님도 아니고 육조스님도 아니고, 지금 살아계시는 증엄스님! 구두로만 늘 하다가 드디어 문자화 돼서 여기 책에 이렇게 실렸습니다. 천번 만번 실려도 결코 남지 않는, 넘치지 않는 그런 스님이 이 시대에 진정 살아있는 관세음보살님인 증엄스님입니다.
근래 BTN에서 증엄스님의 설화를 해설한, 불교를 설화로 만들어서 해설한 것이 나오더라고요. 그때는 상당히 젊을 때 만든 영상물인데요. 그 음성을 들어도 ‘아~ 관세음보살님의 음성이 있다면 바로 저런 음성이겠구나!’하는, 선입관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들립니다. 신부ㆍ목사들도 자제공덕회에 가서 감동을 받아서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는 그런 정도의 보살행을 이 시대에 실천하는 그런 스님입니다. 진정 불법이 무엇인지 몸으로 그렇게 실천해 보이는 그런 본보기지요.
증엄스님의 행적을 떠올리면서
보시가 참다운 견성이고, 보시가 참다운 성불입니다. 까지 아주 강력한 표현을 여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스님이, 불교 단체에서 교회도 지어주고, 성당도 지어주고, 회교사원도 지어주고...
우리 한국 불자들은요? 아무리 도가 높다 하더라도 그것이 상상이 안 되는 일입니다. 아무리 도가 높아도 결코 용납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 일을 비구니 스님이 그렇게 솔선수범해서 합니다.
성지 순례 간다하면, 요즘 저는 무조건 “대만 불교를 가서 봐라. 대만의 4대 사찰을 가서 봐라. 그리고 그 자제공덕회에 가서 감동받고 사람 좀 바뀌어서 오너라.”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도 가는 것보다도, 중국 가는 것보다도, 일본가는 것보다도, 대만 불교를 자세히 돌아보고 오면 사람이 어지간히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말 제대로 펴는 그런 나라가 아닌가?’저는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10회향 품이 아직도 중간 밖에 못 갔어요.
중간 밖에 못 갔는데 끊임없이 회향이야기가 이렇게 열 권 반이나 되는 양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좋은 일을 여러 많은 곳에 나누자.’하는 것이 선근회향! 바로 회향이지요.
간단하게 善根廻向! 글자 넉자면 될 것을 이런 책으로 열 권 반이나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반복해서 입으로 읊조리고, 귀로 듣고 마
음에 새기고 하다보면 ‘그것이 젖어 들어서 틀림없이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다.’←이렇게 본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옛날에 종이도 귀하고, 먹이니 붓이니, 이것이 전부 한자ㆍ한자 그렇게 해서 탄생한 화엄경인데요. 그렇게 물자가 귀하고, ‘종이도 먹도 붓도 귀하든 시절에 善根廻向! 넉자면 될 것을 가지고, 왜 열 권 반이나 되는 방대한 책을 이렇게 만들었는가?’우리에게 반복해서 주입시켜 주고자 하는
‘그런 뜻이 아마 있지 않을까?’저는 그렇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살점이 묻은 손톱. 말만 들어도 아주 섬찟하지요?
가슴이 아파 오잖아요. 손톱 얼마나 아픕니까?
거기살점이 묻어있고, 피가 뚝뚝 흐르는 그런 손톱을 뗐다. 라고 생각 했을 때, 얼마나 가슴 저려옵니까?
그것이 바로 보살의 자비정신을 우리 가슴ㆍ가슴에 심어주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느껴서 그 부분을 인용을 했습니다.
제가 10회향 품을 공부할 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아~~! 이것 참!’그 대목을 읽을 때 못 읽겠는 겁니다.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말만해도 아픈 일입니다.
실질적으로 그것이 얼마나 참 어렵고 힘든 일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공부도 한참 10회향 품에 들어섰습니다. 이제 막 제1회향을 미처 아직 끝내지 못한 상태인데요.
오늘공부는 145쪽 金剛幢菩薩의 偈頌입니다.
(11) 金剛幢菩薩의 偈頌
가. 說偈의 義
爾時에 金剛幢菩薩이 觀察十方一切衆會와
?于法界하사 入深句義하야 以無量心으로
修習勝行하며 大悲普覆一切衆生하사
不斷三世諸如來種하며 入一切佛功德法藏하사
出生一切諸佛法身하며 善能分別諸衆生心하사
知其所種善根成熟하며 住於法身하사
而爲示現淸淨色身하고 承佛神力하사
卽說頌言하사대
金剛幢菩薩의 偈頌(금강당보살게송)
說偈의 義(설게의). 제1회향으로서의 산문이 끝나고,
게송으로 이렇게 마무리를 짓는 부분입니다.
게송을 설하게 되는 뜻을 또 몇 줄로써 밝히고 있습니다.
爾時(이시)에, 그 때에 金剛幢菩薩이
觀察十方一切衆會(관찰시방일체중회)와,
衆會를, 대중모임들을 관찰하고,
?于法界(기우법계)하사,
대중모임과 그리고 법계를 관찰하사,
入深句義(입심구의)하야, 깊고 깊은 구절의 이치.
한 구절 속에 아주 깊은 이치가 담겨있는 거기에 들어가서,
以無量心(이무량심)으로, 한량없는 마음으로
修習勝行(수습승행)하며, 勝行,
아주 수승한 행을 수습했다. 닦았다.
勝行이 뭐겠습니까? 보리 행. 이타 행. 간단하게 하면
利他 行. 남을 먼저 이롭게 하는 행. 그것이 보리 행이고
또 보리심입니다. 그것을 닦으며,
大悲로써 普覆一切衆生(대비보부일체중생)하사,
큰 어여삐 여기는 마음으로 일체중생들을 두루두루 널리 덮어서 不斷三世諸如來種(부단삼세제여래종)하며,
삼세의 諸여래의 종자를 끊지 않게 한다.
여래의 種性. 삼보종성. 보살종성. 그것은 결국은 大悲로써 중생을 두루두루 덮는 그 일입니다. 달리 다른 것 아닙니다.
선불교에서는 무슨 법맥을 이야기하고, 아주 고준한 어떤 선 도리를 서로 주고받고 해서 ‘계합이 되느냐? 마느냐?’가지고 법을 전했다. 또 법을 전해 받았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전법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일이지요.
그런데 이 대승보살불교에서는 그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전법이라고 하지 않고, 진정한 보살행. 진정한 보살정신. ←이것을 우리가 실천할 때,
단순하게 스승과 제자와의 전법뿐이 아니고,
삼세의 모든 여래의 종자를 끊지 않고 서로
전해주고 전해 받는 일이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영 대승불교하고 소승불교하고 선불교하고 판이하게 달
라요. 판이하게 다릅니다. 선불교에서는 그런 것을 전법이라고 아니합니다. 그런데 화엄불교, 대승보살불교에서는
그것을 전법이라고 그럽니다. 보살정신이 끊임없이 계속
되는 것. 利他行이 끊임없이 이어가는 것. 이것을
三世 =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것 우리가 분명하게 알고 넘어가야 되는 부분이지요.
入一切佛功德法藏(입일체불공덕법장)하사,
일체부처님의 공덕의 법 창고에 들어가서,
부처님의 功德法藏. 공덕의 법의 창고에 들어가서,
出生一切諸佛法身(출생일체제불법신)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의 법신을 출생하며, 그렇지요.
법의 창고에, 功德法藏에 들어가야 모든 부처님의 법신을 출생합니다. 그래서
善能分別諸衆生心(선능분별제중생심)하사,
능히 모든 중생들의 마음을 잘 분별하사,
知其所種善根成熟(지기소종선근성숙)하며,
그 심은 바 선근이 성숙함을 알며, 그렇습니다.
중생들의 마음을 잘 분별해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선근이 성숙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선근이 성숙하는 일이지,
달리 다른 어떤 것이 성숙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것이 保任(보임)이고요.
住於法身(주어법신)하사, 법신에 머무르사,
而爲示現淸淨色身(이위시현청정색신)하고,
위하여 청정한 색신을 나타내 보이고
承佛神力(승불신력)하사,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서
卽說頌言(즉설송언)하사대,
곧 게송을 설해 말씀하시니라.
나. 廻向할 善根
? 四無量心
不思議劫修行道하야 精進堅固心無碍라
爲欲饒益群生類하야 常求諸佛功德法이로다
調御世間無等人이 修治其意甚明潔하야
發心普救諸含識하니 彼能善入廻向藏이로다
勇猛精進力具足하고 ←76강 - 1
↓76강 - 2
智慧聰達意淸淨하야
普救一切諸群生호대 其心堪忍不傾動이로다
心善安住無與等하고 意常淸淨大歡悅하야
如是爲物勤修行하니 譬如大地普容受로다
不爲自身求快樂하고 但欲救護諸衆生하야
如是發起大悲心하야 疾得入於無碍地로다
十方一切諸世界에 所有衆生皆攝受하나니
爲救彼故善住心하야 如是修學諸廻向이로다
廻向할 善根(회향선근). 회향할 선근이 무엇인가?
四無量心(사무량심). 慈ㆍ悲ㆍ喜ㆍ捨가 四無量心이지요.
이것은 자무량심이고, 이것은 비무량심이고 이런 식으로
사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고, 게송을 통해서, 詩형식을 통해서 뜻으로 아름답게 전하고 있습니다.
不思議劫修行道(부사의겁수행도)하야,
불가사의한 오랜 세월동안 도를 수행하사,
精進堅固心無碍(정진견고심무애)라.
정진이 견고하여 마음이 걸림이 없음이라. 오랜 세월동안 도를 닦았기 때문에 그 정진력이 견고하고 견고해서 마음
이 걸림이 없다.
爲欲饒益群生類(위욕요익군생류)하야,
그것은 무엇을 위함인가 하니, 온갖 중생들을 饒益하게 하고자, 이익하게 한다. 이익이라는 낱말보다, 요익이라는 말이 훨씬 부드럽고 좋지요. 군생의 종류를 饒益하게 하고자 하사, 常求諸佛功德法(상구제불공덕법)이로다.
모든 부처님의 공덕의 법을 항상 구함이로다.
그렇습니다. 그저 중생 이익하게 하는 일입니다.
불법이란 오로지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것인데요.
요는 어떤 것으로써 중생을 이익하게 하느냐?
그것이 또 우리가 살펴야할 대목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급식활동을 하는 것도 좋지만 거기에 불법을 담아서 함께 급식활동을 하는 것이 불자로써 하는 급식활동이다. 그것이 바람직하다. 만약에 그것이 불법이 빠져버리면 그것은 다른 단체에서나 다른 종교, 다른 소위 복지부에서 하는 일이나 다를 바 없다. 불교단체에서 하는 것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그런 말을 제가 아주 귀에 못이 박히게 많이 했지요.
調御世間無等人(조어세간무등인)이,
세간을 調御하는,
잘 다스리는 같을 이 없는 사람 = 부처님이지요.
修治其意甚明潔(수치기의심명결)하야,
그 뜻을 잘 닦고 닦아서 매우 깨끗하게 해서
發心普救諸含識(발심보구제함식)하니,
마음을 발해서 모든 含識들,
모든 중생들을 널리 구제 하나니, ←이것이 이타심ㆍ보리심ㆍ불심. 제가 불심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요.
불심이 보리심이고, 보리심은 곧 이타심이고 그렇습니다.
諸含識을 구제하는 마음이지요.
彼能善入廻向藏(피능선입회향장)이로다.
그들을 능히 회향의 장에 잘 들어가게 하는 도다.
勇猛精進力具足(용맹정진력구족)하고,
용맹정진력을 구족하고,
智慧가 聰達意淸淨(지혜총달의청정)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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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76강-2 (2016. 6. 6.)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三
十廻向品 第二十五之一
四. 十廻向
2. 第一 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
(11) 金剛幢菩薩의 偈頌
나. 廻向할 善根
? 四無量心 끼 六波羅密
다. 廻向하는 行
? 隨相廻向 끼 離相廻向
智慧聰達意淸淨(지혜총달의청정)하야,
지혜가 아주 총명하게 통달해서 뜻이 아주 청정해요.
그래서 普救一切諸群生(보구일체제군생)호대,
일체 諸群生을 널리 구제하되,
善根廻向! 회향 품은 오로지, 화엄경 전체가 그렇지만 특히 회향 품은 그저 구절ㆍ구절이 일체 중생을 널리 구제한다. 이것이 벌써 몇 번 나왔습니까?
普救諸含識. 普救一切諸群生. 饒益群生類.
구절ㆍ구절마다 일체중생들을 이익하게 한다. 하는 말이 빠진 적이 없습니다. 불법으로써 이익하게 하는 것이 첫째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그 다음에 우물을 파준다든지 학교를 지어준다든지 무슨 식사를 제공한다든지 등등, 그것도 또한 중생들을 이익하게 하는 좋은 보살행이다. 그러나 좀 더 불교적인 보살행. 고급스러운 보살행을 하려면 거기다가 불법의 이치를 전해주는 그런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런 불법의 이치.
그 浩汗(호한)해서 태평양 바다처럼 넓은데, 뭘 가지고 불법이라고 딱 집어서 권하겠는가? 제가 늘 이야기하지요.
답은 항상 여러 수천 번 이야기합니다. 인과의 이치부터 먼저 이야기하라. 그것은 제일 쉽고 지극히 과학적이고, 그것은 부처님이 만든 것도 아니고, 다만 부처님이 연기도리를 발견 했을 뿐이지, 만드는 일도 아니고, 이미 있는 일이고 지금 있는 일이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일이거든요.
모든 존재는 인과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나가면 간단합니다.
“보살행 하자!”
무엇으로서요? 중생을 위해서 보살행 하는데 불법으로써
하자! 그 많고 많은 불법 중에 뭘 가지고하면 좋겠는가?
인과이치 가지고하자. 이 말입니다. 인과이치 가지고요.
그런 사례가 또 뭐냐? 마승비구잖아요.
항상 같은 소리 아닙니까?
사리불이 출가하기 전에 외도로 있을 때, 마승비구를 만나서 석가모니부처님한테 좋은 것을 배웠다니까, 뭘 한 마디 전해달라고 하니까, 마승비구가 빼다가 끝내 한 마디 일러주는데, 인과이치ㆍ연기의 이치. 緣生緣滅. 인연으로 생기고 인연으로 소멸한다는 이 이치를 항상 부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常作如是說. 늘 이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것이 딱 답으로 나와 있습니다.
불법의 기본은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善因善果ㆍ惡因惡果. 선한 일을 하면 선한 과보를 받고, 악한 일을 하면 악한 과보를 받는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성경에는 뿌린 대로 거두리라.
성경에도 뿌린 대로 거두리라. 그렇게...
그런데 그것을 크게 부각시키지는 않아요.
불교에서는 인과도리를 아주 크게 부각시켜서 아주 다양하게 설명을 하고, 과거 생에서부터 금생 내생까지로 그렇게 연결시켜서 까지 부연설명을 하고, 저쪽 종교에서는 그것을 그냥 살짝 지나가고 말아요. 그것을 너무 부각시키면 이것이 좀 곤란한 점들이 많아요.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까지는 아는데,
콩 심어놓고 팥 나기를 기다리는 그런 어떤 가르침이라고 할까요? 그런 권장사항들이 불교 안에도 물론 많지만 그쪽에는 더 많으니까 그래서 그것을 크게 부각시키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부각시키면 세상 달라집니다. 틀림없이 달라집니다. 좋은 일 하면 좋은 과보를 받고, 나쁜 일 하면 나쁜 과보를 받는다면, 그것이 겁이 나서도 안할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중생을 널리 구제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다. 하는 것입니다.
其心堪忍不傾動(기심감인불경동)이로다.
그 마음이 견디고 참아서 움직이지 않도다.
心善安住無與等(심선안주무여등)하고,
마음이 잘 안주해서 더불어 같을 이가 없고,
意常淸淨大歡悅(의상청정대환열)하야,
뜻은 항상 청정하여 크게 기뻐해서,
如是爲物勤修行(여시위물근수행)하니,
이와 같이 중생들을 위해서 부지런히 수행하니,
이럴 때 物은 항상 중생입니다.
譬如大地普容受(비여대지보용수)로다.
마치 大地와 같아서 널리 수용하도다.
아 하 참! 좋잖아요. 이 땅은 수용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수용합니다. 좋은 것도 수용하고 나쁜 것도 수용하고, 깨끗한 것도 수용하고 더러운 것도 수용하고, 일체 것을 다 수용 하는 것이 大地입니다.
不爲自身求快樂(불위자신구쾌락)하고,
자신을 위해서 쾌락을 구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쾌락 구하는 것을 위하지 않고,
但欲救護諸衆生(단욕구호제중생)하야,
다만 모든 중생을 구호하고자 해서,
如是發起大悲心(여시발기대비심)하야,
이와 같이 큰 자비의 마음을 발기해서, 일으켜서,
疾得入於無碍地(질득입어무애지)로다.
빨리 無碍地에 들어가도록...
이 이치를 제대로 우리가 꿰뚫어 알고 몸에 아주 익혀버리면요? 인과이치를 제대로 알아버리면 오히려 쉽습니다.
살기 쉬워요. 인과대로만 하면 되니까요.
또 나에게 부당하게 무슨 좋지 아니한 피해를 입혔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부당한 것이 아닌 줄 아니니까요.
다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그만 남을 원망하고, 사회를 원망하고 국가를 원망하고 조상을 원망하고 별별 원망할 거리가 많잖아요.
그러나 그 인과이치를 제대로 알면 원망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겁니다. 원망할 것을 아무리 찾으려야 찾을 길이 없습니다. 원망한다면 자기가 잘못한 것. 자기 자신만 원망할 뿐이지요. 이치가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十方一切諸世界(시방일체제세계)에
所有衆生皆攝受(소유중생개섭수)하나니,
시방일체 모든 세계에 있는 모든 중생들을 다 攝受하나니,
爲救彼故善住心(위구피고선주심)하야,
저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까닭에 마음을 잘 안주시켜서
如是修學諸廻向(여시수학제회향)이로다.
이와 같이 學諸해서, 닦고 배워서 모두 다 회향하도다.
끼 六波羅密
修行布施大欣悅하고 護持淨戒無所犯하며
勇猛精進心不動하야 廻向如來一切智로다
其心廣大無邊際하야 忍力安住不傾動하며
禪定甚深恒照了하고 智慧微妙難思議로다
十方一切世界中에 具足修治淸淨行하고
如是功德皆廻向하야 爲欲安樂諸含識이로다
六波羅密(육바라밀)
修行布施大欣悅(수행보시대흔열)하고,
보시를 수행해서 크게 기뻐하고,
護持淨戒無所犯(호지정계무소범)하며,
淨戒, 청정한 계율을 護持해서 범하는 바가 없으며,
勇猛精進心不動(용맹정진심부동)하야,
勇猛精進으로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해서,
그렇습니다. 끊임없이 勇猛精進!
참 필요한 것이지요. 우리가 50분정진하고 10분 포행 하듯이, 그 정도 잠간씩은 쉬는 것은 가능한 일이고요.
부처님도 최후로 제자들에게 당부하기를 방일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방일하지 말라.
유교에서도 一勤天下無難事(일근천하무난사) 그런 말이 있잖아요. 방일하지 않고 부지런한 것 한 가지면 세상에 어려울 일이 없다. 그랬습니다.
勇猛精進心不動하야,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해서,
廻向如來一切智(회향여래일체지)로다.
여래의 일체지혜에 회향하도다.
궁극에는 여래가 터득한 모든 것을 꿰뚫어 아는, 평등한 이치와 차별한 이치를 다 꿰뚫어 아는 一切智.
그것에 회향한다. 그것이 내 것이 된다는 것이지요.
其心廣大無邊際(기심광대무변제)하야,
그 마음이 광대해서 邊際가 없어요.
忍力安住不傾動(인력안주불경동)하며,
忍力, 보시ㆍ지계ㆍ정진ㆍ인욕. ←이렇게 나가네요.
忍力에 安住하여 不傾動이라. 움직이지 아니하며,
禪定甚深恒照了(선정심심항조료)하고,
선정으로 깊이ㆍ깊이 항상 비춰 알고,
智慧微妙難思議(지혜미묘난사의)로다.
지혜로써 그 꿰뚫어 아는 것이 미묘하여 사의하기 어렵더라.
十方一切世界中(시방일체세계중)에,
시방 모든 세계가운데서
具足修治淸淨行(구족수치청정행)하고,
구족하게 청정한 행을 修治하고,
如是功德皆廻向(여시공덕개회향)하야,
이와 같은 공덕을 다 회향해서,
爲欲安樂諸含識(위욕안락제함식)이로다.
모든 중생들 = 含識. 모든 중생들을 안락하게 하고자 함이로다.
다. 廻向하는 行
? 隨相廻向
大士勤修諸善業이 無量無邊不可數라
如是悉以益衆生하야 令住難思無上智로다
普爲一切衆生故로 不思議劫處地獄호대
如是曾無厭退心하야 勇猛決定常廻向이로다
不求色聲香與味하며 亦不希求諸妙觸하고
但爲救度諸群生하야 常求無上最勝智로다
智慧淸淨如虛空하야 修習無邊大士行호대
如佛所行諸行法을 彼人如是常修學이로다
大士遊行諸世界하야 悉能安隱諸群生하며
普使一切皆歡喜하야 修菩薩行無厭足이로다
除滅一切諸心毒하고 思惟修習最上智하야
不爲自己求安樂이요 但願衆生得離苦로다
此人廻向得究竟하야 心常淸淨離衆毒하니
三世如來所付囑으로 住於無上大法城이로다
廻向하는 行(회향행)
隨相廻向(수상회향). 상을 따르는 회향.
大士勤修諸善業(대사근수제선업)이,
大士. 보살을 완전히 번역하면 “큰선비”그런 말입니다.
이쪽 동양에서, 불교이외에 유교에서 선비라고 하는 말이나, 보살이라고 하는 말이나 같은 뜻입니다.
그래서 이쪽 말로 번역을 해보니까 “선비”라고 하는 말이 제일 좋겠더라. 그래서 그냥 선비가 아니고, 보살은 선비이
고, 보살마하살은 대선비고, 大士이고 그렇습니다.
정확하게는 그렇게 됩니다.
大士 = 보살마하살이지요. = 큰보살.
大士勤修諸善業.
큰보살이 모든 선한 업들을 부지런히 닦은 것이
無量無邊不可數(무량무변불가수)라,
한량없고 가이없어 헤아리기 어려움이라.
如是悉以益衆生(여시실이익중생)하야,
이와 같은 것은 다 중생을 이익하게 하기 위해서
令住難思無上智(영주난사무상지)로다.
難思 = 사의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無上智.
가장 높은 지혜에 머물게 하는 도다.
普爲一切衆生故(보위일체중생고)로,
널리 일체중생을 위한 까닭으로
不思議劫處地獄(부사의겁처지옥)호대,
불가사의한 겁 동안 지옥에 처하되,
지장보살이 그렇지요. 누가 가라고해서 지옥에 가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자원해서 항상 내가 지옥을 지키지 아니하면 누가 지키겠는가?
地獄未空誓不成佛(지옥미공서불성불).
지옥이 텅 비기 전에는 나는 결코 성불하지 아니하리
라. 그야말로 그것이 성불한 마음이지요.
성불하지 않고 어찌 그런 소리할 수 있습니까?
지옥이 텅 비어서 지옥에 들어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때, 비로소 그때 가서 내가 성불할지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옛날에 요순시대에, 역사적으로 세상이 제일 평화롭고 좋은 시대에 3년 동안 감옥이 텅 빈 적이 있었답니다.
그 넓은 중국 천지에도 3년 동안 감옥이 텅 빈 적이 있었대요. 조그마한 우리나라에 중국 현재 땅의 영토를 비교하면 얼마나크냐? 우리나라의 96배. 거의 100배에 가까운 그런 넓은 땅이고, 인구도 그와 같이 많습니다.
그래요. 지장보살은 그런 원력을 세웁니다.
내가 지옥에 들어오지 아니하면 누가 지옥에 들어오겠는가? 아~~ 근사! 하잖아요. 地獄未空誓不成佛이라.
지옥이 텅 비기 전에는 나는 결코 성불 같은 것 안 한다.
我不入地獄이면 誰入地獄(아불입지옥수입지옥)이리
오? 내가 지옥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누가 지옥에 들어가
겠는가?
如是曾無厭退心(여시증무염퇴심)하야,
항상 지옥에 있으면서도 한 번도 지옥을 벗어나거나, 지옥이 싫다거나, 물러나겠다고 하는 그런 생각 아니 해요.
이와 같이 일찍이 厭退心이 없어서,
勇猛決定常廻向(용맹결정상회향)이로다.
용맹으로, 또 분명하게 결정으로 항상 회향하도다.
勇猛ㆍ決定ㆍ常廻向. 참, 결정이라는 것도 확실하게, 분명하게 항상 회향한다. 그렇게 살겠다. 이 말입니다.
不求色聲香與味(불구색성향여미)하며,
색ㆍ성ㆍ향ㆍ미를 구하지 아니하며,
亦不希求諸妙觸(역불희구제묘촉)하고,
또한 모든 미묘한, 아름다운 그런 촉감도 구하지 아니하고,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오욕락이지요.
色ㆍ聲ㆍ香ㆍ味ㆍ觸. ←이것이 眼ㆍ耳ㆍ鼻ㆍ舌ㆍ身으로 좋은 것만 자꾸 구하려고 하면, 다섯 가지 욕락이됩니다.
그런 것을 구하지 아니하고,
但爲救度諸群生(단위구도제군생)하야,
다만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고, 제도하기 위해서
常求無上最勝智(상구무상최승지)로다.
항상 가장 높고, 가장 수승한 지혜를 구하는 도다.
그렇습니다. 수행하는 것, 성불하는 것, 견성하는 것,
지혜를 터득하는 것, 전부 중생을 구제하려고 마련하는 그런 능력이고 도구지, 내 좋자고 지혜를 터득하고 성불하고 견성하는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그럼 목표는 중생구제에 있습니다.
중생구제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써 그렇게 준비하는 것이지요. 성불이라는 것도 준비하고, 견성이라는 것도 준비하고, 일체지혜라는 것도 준비하고요. 온갖 6신통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다 중생구제하기 위해서 필요한 도구로써 준비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 화엄경은 다른 경전하고 다릅니다.
智慧淸淨如虛空(지혜청정여허공)하야,
지혜가 청정해서 허공과 같아요. 텅 비었어요.
修習無邊大士行(수습무변대사행)호대,
가없는 큰보살, 보살마하살의 행을 修習하되,
如佛所行諸行法(여불소행제행법)을,
부처님이 행한바와 같은 모든 행법을,
彼人如是常修學(피인여시상수학)이로다.
저 사람도, 彼人은 보살마하살입니다. 그들도 이와 같이 항상 修學하는도다.
大士遊行諸世界(대사유행제세계)하야,
大士 = 보살마하살이 모든 세계에 遊行하여, 다녀서
悉能安隱諸群生(실능안은제군생)하며,
다 능히 모든 群生들을 편안케 하며,
普使一切皆歡喜(보사일체개환희)하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널리 다 환희케 해서,
修菩薩行無厭足(수보살행무염족)이로다.
보살행을 닦는 일에 厭足이 없다. 싫어하거나 만족함이 없다.
아무리ㆍ아무리 보살행을 닦아도 또 닦고 싶고ㆍ또 닦고 싶고, 더 훌륭한 보살이 되고 싶고ㆍ더 훌륭한 보살이 되고 싶다. 이것도 사실은 한번 길 내면요? 그 다음부터는 좀 쉬워집니다. 뭐든지 그래요. 도둑질도 처음에 도둑질하기가 어렵지, 두 번째는 가슴이 덜 떨리지요. 핗 세 번째는 아주 쉬워요. 한 너 댓 번 넘어가면 그냥 식은 죽 먹듯이 하는 겁니다.
보살행하는 것도 그래요.
처음에는 아주 힘듭니다. 뭘 보시를 한다든지 남에게 봉사를 한다든지 남을 돕는다든지 하는 일들이 처음에는 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썩 내키지 않습니다.
쭈뼛쭈뼛해서 썩 들어서지지가 않는데, 한번하고 두 번째 세 번째 이렇게 봉사하는데 따라가서 남을 돕는 일을 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익숙해져서 내일 같이, 어디 가서든지 내일 같이 하는 겁니다. 그래 여기도 신도님들 보면 낯선 부엌이지만, 자기 부엌같이 척 와서 하는 겁니다.
다른데서 많이 한 겁니다.
다른데서 많이 해놓으면 여기 낯선 부엌에 와서도 자기 부엌같이 그렇게 봉사하고 그렇습니다. 그래 뭐든지 이 공부하는 것도 그렇지요. 여기에 지금 2008부터 우리가 공부하기 시작했는데요. 상당히 오래됐네요. 중간에 오신 분도 있고, 오늘 처음오신 분들도 계시고, 이것은 계속될 것이니까요. 또 불법공부라고 하는 것이 끝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데 한번 와보면, 좀 서먹서먹하고 좀 이상하고 안 하든 일이고 해서 남의 옷을 입은 것 같은데, 남의 옷도 한번 입고 또 그 이튿날 또 입고 3일째 입으면 내 옷 같습니다.
그와 같이 공부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공부하는 일도 처음에는 어색하고 서먹서먹해도 하다보면 ‘아~ 이것이 본업이구나! 아~ 이 승려들의 이것본업이구
나! 이것 일찍이 본업을 놔두고 내가 왜 딴 짓을 했던가?’
그런 생각이 나는 겁니다.
이것이 진짜 본업인겁니다.
여러분. 티벳스님들 불교 수행하는 것을 영상으로, 아마 많이 보셨을 줄 믿습니다. 일곱 살ㆍ여덟 살 때 들어와서 글 겨우 깨우치면 수 100명 한 자리에 앉아서 그저 끊임없이 흔들어 제끼면서, 하루에, 아침에 차 한 잔 먹고 낮에 기껏해야 보리 가루 밀가루 주먹으로 뭉쳐서 차 한 잔하고 한 끼 먹는 겁니다. 한 끼 먹고 아침에 차 한 잔 마시고, 그렇게 하고는 끊임없이 흔들면서 공부하잖아요.
야~~! 아무튼 신심은 티벳불교 정말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니까 신심으로서는 티벳불교가 제일갑니다. 그런 사람들은 죽으면 또 환생하고, 죽으면 또 환생하고 그래서 전부 머리가 천재입니다.
달마이라마 같은 이들은 열 네 번이나 환생이 확인됐습니다. 지금 환생이 확인돼서 생존해 있는 분들이 티벳불교 안에 전체에서 수 100명됩니다.
사천성에서 운남성으로 청해성으로 그 쪽으로 전부 옛날 티벳 땅이거든요. 거기가 오히려 장족자치구보다도 더 많아요. 사천성이라든지 청해성이라든지 그 쪽이 스님들도 더 많고 티벳불교가 더 왕성합니다. 거기가 옛날 티벳 땅이니까요. 그런데 스님들, 취재해서 보면 요즘 티벳불교라고 하는 것이 유튜브에 27편인가 29편으로 쫙~~~~ 나와 있습니다.
아주 정성들여서 취재하고 잘 찍은 내용이 있는데요.
저는 걸핏하면 그것 봅니다. 29편이나 되는 것이지만 몇 번 보고 그래요. 그렇게 신심이 장하고 그래서 머리가 다 총명하고, 끊임없이 공부만 하고 있으니까 머리가 돌대가리라도, 그냥 있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전부 그냥 흐물흐물해서 부드러운 흙이 돼서 물을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스르르 녹아버리는 지금 그런 두뇌로 되어있습니다.
아~~! 대단하지요? 그 사람들은 정말 공부가 업이 되어있는 그런 이들입니다.
修菩薩行無厭足이로다.
除滅一切諸心毒(제멸일체제심독)하고,
일체 모든 마음의 독을 제멸해버리고,
思惟修習最上智(사유수습최상지)하야,
最上智 = 가장 높은 지혜를 思惟하고 修習해서,
不爲自己求安樂(불위자기구안락)이요,
그것은 자기를 위해서 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但願衆生得離苦(단원중생득이고)로다.
다만 중생들에게 離苦. 고통을 떠나기를 원할 뿐이다.
모든 중생들이 고통 없이 살기를 원할 뿐이다.
티벳 사람들은 그렇게 가난하게 살아도, 마음에 불편함이 하나도 없습니다. 1년 365일 목욕한번 안하고 옷 한번 안 갈아입어도 그저 늘 평화롭고 남을 도와주고 싶고, 마음에 아무 불편한 것이 없습니다. 그 고생ㆍ고생하면서 어렵게 번 돈을, 그 몇 달 걸려서 장족자치구 라사. 포탈라궁있는데 거기 와서 자기보다 더 못한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 전부 다, 몇 년 모은 월급가지고와서 거기서 다 나눠주고 가는 그런 사람들은 빈 손 털고 가며 가슴이 흐믓한 겁니다. 그렇게 고생하며 번 돈을 거기 갔다주려고...
그런 광경들을 전부...
한 두 사람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렇게 사는 그것이 전부 但願衆生得離苦. 다만 중생들이 고통 떠나기를 원할 뿐이다.
此人廻向得究竟(차인회향득구경)하야,
이 사람의 회향이 구경을 얻어서, 완성ㆍ궁극ㆍ최고.
완성을, 성취를 얻어서, 그래도 좋아요.
心常淸淨離衆毒(심상청정이중독)하니,
마음이 항상 청정해서 離衆毒. 온갖 마음의 독들이 떠나버리니, 그런 마음에는 마음의 독들이 있을 수가 없지요.
3독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三世如來所付囑(삼세여래소부촉)으로,
三世.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부촉한 바로써
住於無上大法城(주어무상대법성)이로다.
上大法城. 가장 높고 훌륭하고 위대한 큰 법의 城에 안주하는 도다. 그랬습니다.
그런 일이 무슨 三世如來가,
어떤 특정인이 나타나서 이렇게 付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 자체가 벌써 이미 三世如來가 付囑하는 일이지요.
끼 離相廻向
未曾染着於諸色하며 受想行識亦如是하야
其心永出於三有하고 所有功德盡廻向이로다
佛所知見諸衆生을 盡皆攝取無有餘하야
誓願皆令得解脫하고 爲彼修行大歡喜로다
其心念念恒安住하야 智慧廣大無與等하고
離癡正念常寂然하니 一切諸業皆淸淨이로다
彼諸菩薩處於世호대 不着內外一切法하니
如風無碍行於空하야 大士用心亦復然이로다
↑76강 - 2
↓76강 - 3
所有身業皆淸淨하며 一切語言無過失하고
心常歸向於如來하야 能令諸佛悉歡喜로다
十方無量諸國土의 所有佛處皆往詣하야
於中睹見大悲尊하고 靡不恭敬而瞻奉이로다
心常淸淨離諸失하고 普入世間無所畏하야
已住如來無上道하고 復爲三有大法池로다
精勤觀察一切法하며 隨順思惟有非有하고
如是趣於眞實理하야 得入甚深無諍處로다
以此修成堅固道하니 一切衆生莫能壞라
善能了達諸法性하야 普於三世無所着이로다
如是廻向到彼岸하야 普使群生離衆垢하고
永離一切諸所依하야 得入究竟無依處로다
一切衆生語言道가 隨其種類各差別이어든
菩薩悉能分別說호대 而心無着無所碍로다
菩薩如是修廻向하니 功德方便不可說이라
能令十方世界中에 一切諸佛皆稱歎이로다
離相廻向(이상회향).
앞에는 隨相廻向이라. 상을 따르는 회향이었고,
여기는 상을 떠나는 회향.
未曾染着於諸色(미증염착어제색)하며,
일찍이 모든 물질에 染着하지 아니하며,
受想行識亦如是(수상행식역여시)하야,
수ㆍ상ㆍ행ㆍ식에도 또한 다시 염착하지 아니해서,
其心永出於三有(기심영출어삼유)하고,
그 마음이 영원히 욕계ㆍ색계ㆍ무색계를 벗어나고,
所有功德盡廻向(소유공덕진회향)이로다.
있는바 공덕을 모두ㆍ모두 회향하는 도다.
어렵게 번 돈을 갖다가 몇 개월 걸려서, 그것도 절을 하면서요. 한 3보1배 5보1배 그 정도하더라고요.
제가 그것 오체투지 하는 것을 낱낱이 세어봤어요.
‘몇 걸음 걷고 절 한 번할까?’ 저는 한 번도 못하면서 핗핗 남하는 것을 숫자는 세고 있어요.
如人數他寶(여인수타보)에 自無半錢分(자무반전분)이라. 자기는 단돈 10원도 없으면서 남의 보물만 자꾸 센다고 하듯이, 그것이 만의 일이 아니더라고요. 허허허허허허허허‘몇 걸음 걸어서 절 한 번 하는가?’ 그 오르막 내리막,
얼음 길ㆍ눈 길, 길도 아닌 들너덜. 그 어떤 장애물도 그 사람들 앞에서는 있을 수가 없어요. 다 타고 넘어가는 겁니다.
所有功德을 盡廻向이라. 다 회향한다.
佛所知見諸衆生(불소지견제중생)을,
부처님이 지견 한바 모든 중생들을
盡皆攝取無有餘(진개섭취무유여)하야,
다 섭취해서 남음이 없이해서,
한 중생도 빠뜨리지 않는 것이지요.
誓願皆令得解脫(서원개령득해탈)하고,
그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이 아는바, 모든 중생들이 다 해탈 얻기를 원하고,
爲彼修行大歡喜(위피수행대환희)로다.
그들을 위해서 크게 기쁘게 하도록 수행하는 도다.
修行大歡喜. 대 환희를 수행하는 도다.
이런 것들이 남의이야기 같고, 지금은 까마득한 저 멀리 그야말로 대보살들이나 하는 일같이 여겨지는데, 어느 날 뚝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요? 그 중심에 우리들이 다 서 있을 수가 있습니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고, 그 일이 바로 나의 일이 되는 날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한 사람만 그래도,
한 사람만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도 우리는 여기서 같이 공부한 공은 그 속에 다 있는 것이지요.
其心念念恒安住(기심념념항안주)하야,
그 마음이 생각 생각에 恒安住 = 항상 편안히 머물러서,
智慧廣大無與等(지혜광대무여등)하고,
지혜가 廣大하여 더불어 같을 이가 없고,
離癡正念常寂然(이치정념상적연)하니,
어리석음을 떠나서 바른 생각으로 항상 寂然하니,
一切諸業皆淸淨(일체제업개청정)이로다.
일체 모든 업이 다 청정하는 도다.
아까 인과 이야기도...
불법을 전하는데 제1조. 다른 이치 많습니다.
마음이치도 있고, 온갖 여러 가지가 49재 지내는 법도 있고, 불공하는 것도 있고, 기도하는 것도 있고,
8만4천 불법도 있는데, 그 가운데 제1조는 인과 이치다.
연기의 도리다. 그렇게 했는데요. 그것이 우리 업하고 관계되는 겁니다. 業하고요.
그런 것 생각하면 업도 함부로 짓지를 못하는 것이지
요. 지은 업이 후회스럽고, 그래서 앞으로는 ‘이제는 그런
업은 안 짓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一切諸業皆淸淨이로다.
일체 모든 업들이 다 청정하게 되었다.
彼諸菩薩處於世(피제보살처어세)호대,
저 모든 보살이 세상에 처하되,
不着內外一切法(불착내외일체법)하니,
안팎의 일체 법에 집착하지 아니하니,
如風無碍行於空(여풍무애행어공)하야,
마치 바람이 허공을 가르면서 지나가는 것과 같아서
大士用心亦復然(대사용심역부연)이로다.
하~! 좋네요. 큰 보살마하살의 마음 씀씀이도 또한 다시 바람처럼, 바람이 그냥 무심히 지나갈 뿐이지요.
如風無碍行於空하야 大士用心亦復然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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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76강-3 (2016. 6. 6.)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三
十廻向品 第二十五之一
四. 十廻向
2. 第一 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
(11) 金剛幢菩薩의 偈頌
다. 廻向行
끼 離相廻向
彼諸菩薩處於世호대,
저 모든 보살들이 세상에 사는데 = 세상에 처하되,
不着內外一切法이라,
안팎의 = 나라든지 너라든지 하는 그런 일체 법에,
주관과 객관에 대한 그런 것에 대해서 일체 집착이 없어요.
如風無碍行於空. 마치 바람이 걸림 없이 허공을 지나가듯이, 大士用도 心亦復然이라.
큰 보살살의 마음 씀씀이도 또한 이와 같도다.
그 대목에 제가별을 두 개나 쳐놨습니다. 읽다가 감동해서요.
글씨 쓰시는 분들은 이런 구절하나 만나면 한 번 써서 턱 걸어놓고 이래 쳐다보고, 저래 쳐다보고... 또 컴퓨터로도 글자 큼직하게 뽑아서 걸어놓고 며칠 동안 감상 하다가한 번 씩 바꿔놓기도 하고요. 그것이 공부하는 태도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 몸에 훈습이 되고, 마음에 훈습이 되고요. 眼耳鼻舌身意에 전부 녹아들지요.
所有身業皆淸淨(소유신업개청정)하며,
있는바 신업도 다 청정하며,
一切語言도 無過失(일체어언무과실)하고,
일체말도 過失이 없고, 허물이 없고
心常歸向於如來(심상귀향어여래)하야,
마음은 항상 여래에게 귀향해서,
能令諸佛悉歡喜(능령제불실환희)로다.
능히 모든 부처님으로 하여금 환희케 하는 도다.
그렇지요. 다 깨달은 사람ㆍ다 같은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다 기뻐하는 것이지요. 봉사 잘하는 사람은 딴 사람들, 봉사 잘하는 것을 보면 늘 기쁜 겁니다.
十方無量諸國土(시방무량제국토)의,
시방 한량없는 모든 국토의,
所有佛處皆往詣(소유불처개왕예)하야,
있는바 부처님계신 곳에 다 나아가서,
於中睹見大悲尊(어중도견대비존)하고,
그 가운데서 大悲尊을, 부처님을 睹見하고 = 다 친견하고, 靡不恭敬而瞻奉(미불공경이첨봉)이로다.
공경하여 우러러 받들지 아니함이 없더라.
十方無量諸國土에 부처님이 계신다.
뭐겠습니까? 일체사람과 일체생명. 지구상에 사람숫자는
70억이고, 그 외에 다른 생명은 7천억, 얼마나 많은지
7조ㆍ7천조ㆍ7백 만조, 뭐라고 말할 수 없을 불가설ㆍ불가설의 생명이 있습니다. 지구상의 생명체 중에서 사람생명체의 숫자가 제일 적어요. 사람이 제일 적습니다. 실속은 제일 많은 것 같지요? 생명체 중에서 아주 제일 적은 숫자가 사람생명체입니다. 그 모든 생명체들을 전부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그런 관점입니다.
心常淸淨離諸失(심상청정리제실)하고,
마음이 항상 청정해서 온갖 과실을, 온갖 허물을 다 떠나고, 普入世間無所畏(보입세간무소외)하야,
세간에 널리 들어가서 두려워하는바가 없어서,
已住如來無上道(이주여래무상도)하고,
이미 여래의 無上道, 가장 높은 도에 머물고,
復爲三有大法池(부위삼유대법지)로다.
다시 三有를 위해서, 욕계ㆍ색계ㆍ무색계를 위해서, 거기에 있는 중생들을 위해서 큰 법의 연못이 됐다. 그랬습니다.
精勤觀察一切法(정근관찰일체법)하며,
부지런ㆍ부지런히 일체 법을 관찰하며,
隨順思惟有非有(수순사유유비유)하고,
有와 非有 = 있음과 없음을, 있음과 있지 아니함을 따라서 사유하고,
如是趣於眞實理(여시취어진실리)하야,
이와 같이 진실한 이치에, 실상에 나아가서,
得入甚深無諍處(득입심심무쟁처)로다.
甚深 = 깊고 깊은 다툼이 없는 곳에 得入하는 도다.
以此修成堅固道(이차수성견고도)하니,
이것으로써 견고한 도를 닦아서 이루니,
一切衆生莫能壞(일체중생막능괴)라.
일체중생이 능히 그것을 무너뜨릴 사람이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증엄스님이 다른 종교의 종교시설을 다 그렇게 지어주고, 보수해주고, 가난한 사람들을 무상으로 치료해주고, 집도 지어주고, 그렇게 하는 사람에게 누가, 어떤 중생이 방해하겠으며, 어떤 중생이 거기에 훼방을 놓겠습니까?
一切衆生이 莫能壞입니다. 일체중생이 능히 무너뜨리지 못한다. 그것이야말로 견고한 도지요.
善能了達諸法性(선능요달제법성)하야,
모든 법의 성품을 잘 능히 요달해서,
普於三世無所着(보어삼세무소착)이로다.
널리 삼세에 집착하는 바가 없더라.
과거ㆍ현재ㆍ미래. 과거다. 현재다. 미래다. 하는 그런 분별심이 전혀 없어요.
如是廻向到彼岸(여시회향도피안)하야,
이와 같이 회향해서 彼岸에 이르러요. 저 언덕에 이르러서
普使群生離衆垢(보사군생이중구)하고,
널리 群生들로 하여금 온갖 허물, 온갖 번뇌,
온갖 8만4천 번뇌들을 다 떠나버리고,
永離一切諸所依(영리일체제소의)하야,
일체 모든 의지할 바까지도 영원히 떠나서,
得入究竟無依處(득입구경무의처)로다.
究竟無依處 = 끝내 의지할 바 없는 곳에 들어가도다.
진여자성 자리에 떡~~ 앉아있으면서 모든 행을 하는 것이지요. 물의 입장에서 물결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眼耳鼻舌身意나 6근이나 5온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은 이것은 불가항력입니다. 어떻게 피할 길이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냥 5온ㆍ6근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거기에 究竟에가서 無依處.
진여자성자리에 입각해서 眼耳鼻舌身意를 작용하고,
色聲香味觸法을 작용하고, 色受想行識을 작용하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법으로써 삶을 살아가는 길이지요.
一切衆生語言道(일체중생어언도)가
隨其種類各差別(수기종류각차별)이어든,
그렇지요. 중생들의 말이 얼마나 다릅니까?
조그마한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제주도말 다르고 서울말 다르고, 경상도 전라도 말 다르고 강원도 말 다르고 각양각색이지요. 일체중생은 語言道가 그 종류를 따라서 각각 차별하는데,
菩薩悉能分別說(보살실능분별설)호대,
보살은 그것을 모두 다 능히 분별해서 말해요.
거기에 맞게 다 그렇게 하는데,
而心無着無所碍(이심무착무소애)로다.
그 마음은 집착함이 없고 걸리는 바가 없더라.
그 티벳 스님들은 하도 머리가 좋고, 공부만 계속 줄기차게 몇 생을 그렇게 반복해서 해놓으니까 전부천재입니다. 그래서 머리 좋은 사람들을 영국으로 미국으로 유럽 어디 유명한 대학으로 전부 보내서 외국어를 두 개씩ㆍ세 개씩ㆍ네 개씩 다 잘하는 사람들입니다. 다 그래요. 그런 것이 아주 부럽지요. 그래서 서양 사람들이 그런 데 가서 취재하는데, 하나도 불편이 없습니다. 영어를 다 잘하니까요.
환생이 확인된 사람들을 린포체라고 그러지요?
아무리 과거에 수행하던 사람이 다시 환생한 것이라 확인돼도 타고난 어떤 성질이 또 있어요. 어떤 젊은 린포체가 한 분이 있는데요. 그 분은 전 세계적으로 후원을 많이 받습니다. 부탄에 있는 스님입니다. 그 스님은 고아원을 많이 운영을 합니다. 부탄이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는데,
신기하게도 이혼율이 또 아주 높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고아들이 많다네요.
가난한 나라인데 아이들이 이 집에 가도 그렇고, 저 집에 가도 그렇고 해서 그냥 올 데 갈 데 없는 아이들 수 10명을 그 스님이 모아놓고 집을 막 짓고, 그런데 허가조건도 별로 까다롭지 않고 하니까 필요한 대로 집을 막 짓고 그러는데, 한 번씩 장보러 부탄에서 인도까지 갑니다. 인도는 물건 값이 부탄보다 훨씬 몇 배나 싸대요. 그러니 차를 몰고,
타이탄 같은 차를 몰고 달리는데 얼마나 과속으로 질주를 하는지 그의 누나도 못 말린다고...
그의 누나가 장보는데 계속 따라다니면서 같이 거들고 그러는데요. 과속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려도 말도 안 듣는 그런 린포체가 있더라고요. 아주 씩씩하게 잘 살아요.
몇 개 국어를 하고요. 그러면서 보살로, 고아들을 그렇게 많이 키워요.
고아들을 수 10명을 절에 데려다가 가사 장삼 딱 입혀놓고, 계속 경전 외우게 하니까 그것은 그냥 그대로, 오리지날 승려가 되는 겁니다. 절 집안에서 계속 경만 외우면서 성장하고, 아침저녁 부처님 앞에서 그냥 경만 외우고, 그렇게 자랐으니까 공부가 몸에 배버리고, 아무리 공부를 안 하던 아이들도 거기서 10년 이상 그렇게 몸에 배버렸으니까 그것이 업이 되어서 저절로 공부 잘됩니다. 아주 참 씩씩하게 살고, 재미있게 사는 그런 린포체도 있더라고요.
여러 린포체를 소개를 하고 있어요.
요즘 뉴스를 보면 달라이라마께서 2018 년도쯤에는 한국에 올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고 해서 한참 불이 붙고 있지요.
달라이라마가 우리나라에 오든 안 오든, 우리가 찾아가든 뭐든 간에 그 스님이 갖고 있는 뜻은 환생이라는 것.
그것 하나가 가장 특징적인 겁니다.
“환생”하면 인과 이치가 그 속에 다 포함되고, 연기설이 그 속에 다 포함되고, 특히 인과를 중심으로 한 모든 인과 관계가 그 속에 다 포함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스님처럼 그렇게 살아야 된다 하는 것이 그 스님이 갖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그 외에는 다른 것 없습니다. 그 스님이 온다고 금방 평화로워지는 것도 아니고요.
그 스님이 열 네 번이나 환생이 확인됐다고 하는 이 사실만 모든 국민들에게 다 알려서, 다음 생에 좀 괜찮게 살려면 금생에 좀 착하게 살아야 된다. 정직하게 살고, 사기협잡 좀 덜 치고, 제발 사기 좀 덜 하고, 예를 들어서 공무원이 되어서 국민들의 세금으로 살아가면서 그저 기회만 있으면 빼돌리고ㆍ빼돌리고 그러다가 나중에 들키면 오리발 내밀고요.
우리나라가 그런 사회 아닙니까?
‘절대 그렇게 살면 안 된다.’ 하는 그런 메시지를 좀 전달해주고 가면 아주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불교가 흥하고, 불교를 믿는 사람이 많고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인과 믿는 사람이 많으면 좋은 겁니다.
그러면 ‘국가가 좀, 질서가 좀 잡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而心無着無所碍로다.
각국의 언어가 그렇게 많은데 보살은 다 능히 분별해요.
而心無着無所碍로다. 마음에 집착하는바가 없고 걸리는 바 없도다.
菩薩如是修廻向(보살여시수회향)하니,
보살이 이와 같이 회향을 닦으니,
功德方便不可說(공덕방편불가설)이라.
그 공덕과 방편을 가히 다 설명할 길이 없더라.
能令十方世界中(능령시방세계중)에,
능히 시방세계 가운데서,
一切諸佛이 皆稱歎(일체제불개칭탄)이로다.
일체 모든 부처님이, 보살을, 一切諸佛하면 모두 깨달은 사람들ㆍ눈 뜬 사람들ㆍ지혜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다 칭찬하고 찬탄하는 것이지요.
보살이 보살행을 칭찬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봉사 잘하는 사람은 봉사 잘하는 사람을 칭찬하는 겁니다.
그와 같은 이치입니다. 잠깐 쉬었다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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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76강-4 (2016. 6. 6.)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四
十廻向品 第二十五之二
四. 十廻向
3. 第二不壞廻向
(1) 廻向할 善根
(2) 廻向하는 行
(3) 善根의 果報와 菩薩行
(4) 恭敬供養과 衆生
대방광불화엄경 第二十三 권이 끝나고,
이제 第二十四 권에 들어갔습니다.
十廻向品으로서는 第二十五之二라. 그 다음에 거기
4. 第二不壞廻向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3. 第二不壞廻向. 그렇게 해야 된답니다. 이것이 과목의 숫자가 잘못 되었습니다. 저 앞에(2권-24쪽) 목차에서도 그렇게 됐고, 여기서도 그렇게 됐습니다. 이것이 아마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3. 第二不壞廻向(2권-149쪽)
(1) 廻向할 善根
佛子야 云何爲菩薩摩訶薩의 不壞廻向고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於去來今諸如來所에
得不壞信이니 悉能承事一切佛故며
於諸菩薩의 乃至初發一念之心하야 求一切智에
得不壞信이니 誓修一切菩薩善根하야 無疲厭故며
於一切佛法에 得不壞信이니 發深志樂故며
於一切佛敎에 得不壞信이니 守護住持故며
於一切衆生에 得不壞信이니 慈眼等觀하야
善根廻向하야 普利益故며
於一切白淨法에 得不壞信이니 普集無邊諸善根故며
於一切菩薩廻向道에 得不壞信이니
滿足殊勝諸欲解故며
於一切菩薩法師에 得不壞信이니 於諸菩薩에
起佛想故며
於一切佛自在神通에 得不壞信이니
深信諸佛難思議故며
於一切菩薩善巧方便行에 得不壞信이니
攝取種種無量無數行境界故니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如是安住不壞信時에
於佛菩薩聲靡覺과 若諸佛敎와 若諸衆生의
如是等種種境界中에 種諸善根을 無量無邊하며
令菩提心으로 轉更增長하며 慈悲廣大하야
平等觀察하며 隨順修學諸佛所作하며
攝取一切淸淨善根하며 入眞實義하며
集福德行하며 行大惠施하며 修諸功德하며
等觀三世하나니
第二不壞廻向(제이불괴회향)
廻向할 善根(회향선근). 무엇을 회향할 것인가?
선근은 선근인데요. 그것을 쭉~~ 이렇게 열 가지로 나열합니다. 화엄경은 滿數. 원만한 이치를 가르치는 경전이기 때문에 숫자로도, 아예 처음부터 원만성을 드러내도록 그렇게 꼭 열 가지를 맞추는 그런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혹은 아홉 가지도 있고 열 한 가지도 있고 그렇기는 해도, 그것 다 열 가지로 보는 것이지요. 숫자에서도 늘 만수로
요.
‘우리인생은 본래로 완전무결하다. 이대로 원만하다.’ 그 원만한 것을 우리는 발견 해야지요. 얼굴이 원만하다는 뜻이 아니고, 원만한 진짜 얼굴이 있습니다. 本來面目!
본래면목은 다 원만합니다. 완전무결합니다. 아무런 허물이 없습니다. 부처님이라고 해서 특별히 잘나지도 않았습니다. 그 자리는 우리하고 똑 같습니다.
佛子(불자)야 云何爲菩薩摩訶薩(운하위보살마하살)의
不壞廻向(불괴회향)고?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不壞, 무너뜨릴 수 없는 회향.
무너지지 않는 회향이냐?
佛子야, 이 佛子야, 참 좋잖아요.
부처님아들, 부처님자식, 부처님제자. ←이렇게 해도 좋고, ‘아 우리는 부처님자식이야.’佛子야 하는 소리 한번 듣기만 해도 좋잖아요.
육조스님께서는 항상 “선지식들아.” 그랬고요.
또 임제스님 같은 이들은
“도 닦는 여러 벗들이여. 道流여”←이렇게 했습니다.
벗이라고 하는 流자. 도류여.
선지식들마다 그런 즐겨 쓰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 화엄경에서는 佛子야라고 하는 말을 즐겨 쓰고요.
어떤 이는 “선지식아.”어떤 이는 “도류야.” 등등.
그런 것이 있습니다.
佛子야
1. 此菩薩摩訶薩(차보살마하살)이
於去來今諸如來所(어거래금제여래소)에,
과거ㆍ미래ㆍ현재. 지금 모든 여래의 처소에서
得不壞信(득불괴신)이니, 不壞信을 얻나니,
무너지지 않는 믿음. 아~~! 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불법에 대한 신심이 무너지지 않아야 되고,
사람에 대한 信心, 사람에 대한 믿음도 무너지지 않아야 되고요. 그렇지요.
悉能承事一切佛故(실능승사일체불고)며,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부처님계신데서 무너지지 않는 믿음. 그것은 일체 모든 부처님을 다 능히 承事.
받들어 섬기기 때문이다. 그랬습니다. 그렇지요.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을 전부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긴다면, 그것이야말로 不壞信이지요.
무너지지 않는 믿음이다. 두 번째는
2. 於諸菩薩(어제보살)의
乃至初發一念之心(내지초발일념지심)하야,
나중에 마음 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맨 처음 一念의 마음을 발해서, 처음에 한 생각, 마음을 내어서
求一切智(구일체지)에, 일체지혜를 구함에
得不壞信이니,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얻음이니,
그것은 뭔가 하니
誓修一切菩薩善根(서수일체보살선근)하야,
맹세코 일체보살의 선근을 닦아서
無疲厭故(무피염고)며, 그랬습니다.
좋은 일 하려고, 말뚝신심이라고 하는데요.
문득 냈다가 얼마 아니 가서 마음이 헤이 해진다든지, 변한다든지, 시들해진다든지, 그런 사례들을 너무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그래서 無疲厭이라는 말 참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피곤해하거나 실증내지 않는 것.
그렇습니다.
스님들, 여기 수 년차 이렇게 공부하러 다니시는 스님들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고 ‘아주 대단하시다.’하는 생각을 하는데요. ‘과연 내 같으면 저 먼 거리에서 저렇게 여러 해 동안 다닐 수 있을까?’이 생각을 하면 아주 너무 그저 고마운 겁니다. 無疲厭心. 몇 년 동안만이라도 우리가 공부하는데... 또 이런 한 달에 한번 씩 공부한다고 하는 것으로써 자기 자신의 구심점이 되고, 자기를 붙들어 주는 그런 기둥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 것이 하나 있어야 됩니다.
우정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야 됩니다.
‘아! 내가 한 달에 한번 씩...’ 인천에 있는 어떤 거사 분은 한 달에 한번 씩 옵니다. 신도님들 화엄경 강의하는 시간에 한 달에 한번 씩 꼭 옵니다. 어쩌다가 빠지면 마음이 아주 허전하고 뭔가 떳떳하지 못한 것 같고 그렇대요.
그래서 인천에서 한 달에 한번 씩 여기 오는 그것이 자기를 지켜주고 붙들어주는 그런 기둥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것도 그와 같은 역할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믿어야 되고, 거기에 어떤 믿음을 가지고 든든하게 생각을 해야 되고, ‘아~ 나는!’ ←이렇게 내 자신을 확실하게 지켜주고 붙들어주는 이런 ‘공부하는 수행 처가 있다. 수행하는 일이 있다.’ ←이렇게 딱 믿어야 되는 겁니다.
誓修一切菩薩善根하야, 맹세코 일체보살의 선근.
모든 보살이 닦는 그런 선행들을 맹세코 다 닦아서
疲厭하니, 싫어하거나 피곤해함이 없는 연고다.
그랬습니다.
3. 於一切佛法에 得不壞信이니,
일체 불법에 있어서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얻음이니,
發深志樂故(발심지락고)며,
불법에 대해서 깊은 뜻과 즐거움을 낸다. 그랬습니다.
불법에 대해서 ‘아~~ 불법 정말 재미있다. 불법공부야말로 이것이 진짜 공부구나!’ 하는, 그래서 재미있어하고,
뭔가 또 깊은 이치가 있고, 또 세상의 이치가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불교에서 가르치는 이런 이치는 결코 그 어떤 과학적인 그런 상식하고도 어긋나지도 않고, 오히려 과학이 못 따라올 정도로 앞서가는 가르침이다. 하는 그런 어떤 믿음도 갖고, 또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요. 그러면 불법공부가 재미있는 것이지요. 發深志樂,
깊은 뜻과 즐거움을 내게 된다.
4. 於一切佛敎에 得不壞信이니,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에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얻나니,
守護住持故(수호주지고)며,
그렇지요. 불교에 대해서 무너지지 않으면, 지키고 보호하고 머물러 가지게 된다. 그렇습니다. 내가 거기에,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호하기도하고, 또 내가 거기에 머물러 살기도하고요.
5. 於一切衆生에 得不壞信이니,
중생에 대해서도 무너지지 않는 믿음입니다.
慈眼等觀(자안등관)하야,
자비로운 눈으로 평등하게 관찰해서 보아서,
살펴보아서,
善根으로 廻向하야 普利益故(보리익고)며,
좋은 일로, 좋은 일이란 일은 전부 중생들에게 다 회향해서
普利益故며, 널리 이익 하는 연고다.
6. 於一切白淨法(어일체백정법)에,
白淨法. ‘희고 깨끗한 법’하는 것은, 어떤 깨달음의 법,
선한 법, 가장 훌륭한 법, ←이런 뜻입니다.
白淨法이라는 말이 화엄경에는 가끔 나오지요.
得不壞信이니,
白淨法에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얻음이니,
普集無邊諸善根故(보집무변제선근고)며,
가없는 모든 선근들을 널리 다 모으는 겁니다.
그것이 白淨法이지요. 좋은 것뿐입니다.
거기는 좋은 법뿐이니까요. 나쁜 법이라는 것은 하나도 있을 수 없으니까요. 전부 선한 것이니까요.
7. 於一切菩薩廻向道(어일체보살회향)에,
보살의 회향하는 도에 있어서
得不壞信이니,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얻음이니,
滿足殊勝諸欲解故(만족수승제욕해고)며,
수승한 모든 욕망과 = 희망입니다.
희망과 이해를 만족하는 연고며,
8. 於一切菩薩法師(어일체보살법사)에
得不壞信이니,
보살법사. 참 좋은 말이지요. 화엄경에서는, 특히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이라는 말이 아주 일반화 되어 있기 때문에,
菩薩法師. 좋습니다. 이것은 승속도 관계없고, 출가재가도 관계없고 무조건 菩薩法師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얻음이니,
於諸菩薩(어제보살)에, 모든 보살에
起佛想故(기불상고)며, 보살에 대해서
부처님이라고 하는 생각을 일으키는 겁니다.
그렇지요. 일체사람, 일체생명에게도 부처님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는데, 하물며 보살에 대해서야 더 말할 나위 없지요. 또 사실은 보살이 보살행을 하는 것은 이미 부처수업은 끝낸 사람들입니다. 부처수업 다 끝내고, 관세음보살이 되고 지장보살이 되는 것이지, 부처수업 남겨놓고 지장보살하고, 관세음보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개 다른 이론에는, 어떤 수행 점차로 볼 때는 “보살다음에 부처가 있다.”←이렇게 설명하는 이론도 분명히 있습니다. 있는데, 대승불교에서는 “보살” 하면 부처위에 있습니다. 부처위에 보살이 있습니다. 부처수업 다 끝내고 다시 보살로 중생을 위해서 보살행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정상적인 코스입니다.
그렇게 알아야 됩니다.
9. 於一切佛自在神通에 得不壞信이니
深信諸佛難思議故(심신제불난사의고)며,
모든 부처님은 사의하기 어렵다. 상상이 안 된다.
불가사의한 경계다. 하는 것을 깊이 믿는 겁니다.
이것은 어떤 특정인을 두고 생각하면 아주 아리송해지고, 또 헤매게 되는데요. ‘우리 진여자성자리다.’ 라고 ←이렇게 봐버리면 제일 좋습니다.
諸佛難思議 = 진여자성의 難思議.
사의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것을 깊이 믿는다.
우리가 진여자성을 가지고 이렇게 쓰고 저렇게 쓰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 진여자성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해 내는 데는 이것은 정말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제대로 파악해 내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분명히 가지고 있다.
이것이 深信. 깊이 믿는 것입니다.
10. 於一切菩薩善巧方便行(어일체보살선교방편행)에
得不壞信이니,
不壞信을 얻는다. 모든 보살들은요?
중생을 구제하는 아주 익숙한 善巧方便行이 있습니다.
지장보살이라든지 관세음보살이라든지, 문수보현이라든지 등등 중생을 교화하는 善巧方便行입니다.
거기에 不壞信을 얻음이니
攝取種種無量無數行境界故
(섭취종종무량무수행경계고)니라.
가지가지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행의 경계를 섭취하는 연고니라. 거둬들이는 연고니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如是安住不壞信時(여시안주불괴신시)에,
이와 같이 不壞信에 안주했을 때, 무너지지 않는 믿음에 안주했을 때, 우리는 이런 정말 뛰어난 불법을 만나서 ‘정말 세세생생, 이 불법의 이치를 공부하고 믿고 선양하고, 또
그 속에서 살고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고 하는 이 집안에서 결코 물러가지 아니하리라.’ 하는 그런 결심을, 그런 맹세를 문득문득 자주 하면서 살아가야 됩니다.
如是安住不壞信. 이와 같이 不壞信.
깨뜨릴 수 없는 믿음에 안주했을 때에,
於佛菩薩聲靡覺(어불보살성문독각)과,
부처님과, 보살과, 성문과, 독각과,
若諸佛敎(약제불교)와, 그리고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과,
若諸衆生(약제중생)의, 또 모든 중생의
如是等種種境界中(여시등종종경계중)에,
이와 같은 등, 가지가지 경계 가운데서
種諸善根(종제선근)을,
여러 가지, 모든 선근 심는 것을
無量無邊(무량무변)하며,
한량 없이하고 가이없이 하며,
令菩提心(영보리심)으로, 보리심으로 하여금,
轉更增長(전갱증장)하며, 더욱더욱 增長하게 하며,
慈悲廣大(자비광대)하야, 자비가 광대해가지고서
平等觀察(평등관찰)하며, 평등하게 관찰하며,
隨順修學諸佛所作(수순수학제불소작)하며,
모든 부처님이 짓는 바, 하는 바를 따라서 배우고 익히며,
攝取一切淸淨善根(섭취일체청정선근)하며,
일체 청정한 선근을 攝取하며, 모든 좋은 일이라고 하는 것은 전부 다 내가 거둬서 取하며,
入眞實義(입진실의)하며,
진실한 뜻에, 진실한 이치. 이것이 중요한 겁니다.
진실한 이치에 들어가며, 결코 진실한 이치가 아닌 것은,
우리가 배제해야 됩니다. 진실한 이치에 들어가며,
集福德行(집복덕행)하며, 복덕의 행을 모으며,
行大惠施(행대혜시)하며,
복덕의 행을 모으고, 진실한 이치를 알고, 선근을 攝取하
고, 부처님이 하시는 일들을 隨順ㆍ修學하고 해서 결국은 크게 惠施하며, 베풀고 또 베풀어야 됩니다.
大惠施, 대 시주 자가 돼야 됩니다.
공부해서 자기 혼자만 알고 있으면 그것은 소승이라고 하는 겁니다. 어떻게 하더라도 일러주고 싶고, 듣기 싫어하는 사람도 붙들어 앉혀놓고는 “한 마디 들어봐라. 내가 오늘 화엄경 배웠는데, 이런 이치가 있더라. 다른 건 다 까먹었는데, 이것하나 마음에 와 닿더라.”←이렇게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라도 이 불법을 베풀고 사랑하고 애착하고, 거기에 목을 매고, 그래서 그것을 많은 사람에게 나누고요.
말을 안 들으려고 하면,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해 가면서,
그렇게라도 大惠施, 크게 베풀어야 됩니다. 그래서
修諸功德(수제공덕)하며, 여러 가지 공덕을 닦으며,
等觀三世(등관삼세)하나니라.
그것을 어느 한곳, 한 순간에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
라, 과거ㆍ현재ㆍ미래에 다 평등하게 그렇게 보고,
그렇게 실천해야 된다. 그랬습니다.
(2) 廻向하는 行
菩薩摩訶薩이 以如是等善根功德으로
廻向一切智하야 願常見諸佛하며 親近善友하며
與諸菩薩로 同共止住하며 念一切智하야
心無暫捨하며 受持佛敎하야 勤加守護하며
敎化成熟一切衆生하며 心常廻向出世之道하며
供養瞻侍一切法師하며 解了諸法하야 憶持不忘하며
修行大願하야 悉使滿足이니라
菩薩이 如是積集善根하며 成就善根하며
增長善根하며 思惟善根하며 繫念善根하며
分別善根하며 愛樂善根하며 修習善根하며
安住善根하나니
廻向하는 行(회향행)
菩薩摩訶薩이
以如是等善根功德(이여시등선근공덕)으로,
이와 같은 등, 선근공덕으로,
廻向一切智(회향일체지)하야,
일체지혜에 회향해서, 일체지혜는 자주 나와요.
제일 많이 나오는데, 우리가 겉으로 보면 전부 차별하지요. 그러나 속으로 들어가면 전부 평등합니다.
부처님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할 것 없이 나하고 똑같이 평등한 입장이 있습니다. 그 차별한 입장과 평등한 입장을 공히 다 아는 지혜. 제가 누차 말씀드린 내용이지만 그것이 一切智입니다.
일체지혜에 회향해서
願常見諸佛(원상견제불)하며,
항상 모든 부처님 친견하기를 원하며, 그랬습니다.
있습니다. 옆의 사람 전부 부처님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으로 안 보이니, 부처님으로 보일 때까지 부처님으로 불 수 있도록 그렇게 원해야 된다.
親近善友(친근선우)하며,
좋은 벗, 선지식, 공부하는 사람, 착한사람, 정직한사람을 친히 가까이하며,
與諸菩薩(여제보살)로 同共止住(동공지주)하며,
모든 보살로 더불어 항상 같이 머물고, 같이 있는다. 이 말입니다. 참 중요한 것이지요. 우리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말들입니다. 이것을 우리 수준으로 이끌어다가 해석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해석입니다.
念一切智(염일체지)하야, 일체지혜를 생각해서,
心無暫捨(심무잠사)하며,
마음에서 잠깐도 버리지 말며,
그렇습니다. ‘아, 저렇게 참 엉망진창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러나 그 내면에 있어서는 똑같은 부처님의 어떤 진여자성을 가지고 있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 부처성품을 가지고 있다.’하는 생각을 心無暫捨라. 마음에서 잠깐도 버려서는 안 된다. 이겁니다.
受持佛敎(수지불교)하야,
부처님의 가르침을 受持해서,
勤加守護(근가수호)하며, 부지런히 수호하기를 더하며,
불법에 대한 애착이 있어야 되고, 불법을 守護해야 되고,
불법을 널리 펴려고 해야 되고, 하다못해 한사람이라도 불법을 아는 사람이 있도록 인도해야 되고 그렇습니다.
敎化成熟一切衆生(교화성숙일체중생)하며,
일체중생을 교화시키고 성숙케 하며, 자꾸자꾸 불법 속에서 성숙하게 하며,
心常廻向出世之道(심상회향출세지도)하며,
출세의 도를 마음에 항상 회향하며,
供養瞻侍一切法師(공양첨시일체법사)하며,
일체법사를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그렇습니다. 법사 안 받들면 안 됩니다.
하하하하하하하 여기에 一切法師를 다 이렇게... 또
이것을 다 다른 사람에게도 다 가르쳐야 되고요.
일체법사를 공양하고 瞻侍하며,
解了諸法(해요제법)하야,
모든 법을, 모든 가르침들을 환하게 꿰뚫어 알아서,
憶持不忘(억지불망)하며,
이것이 참 어려운 일이지요. 자꾸 까먹어 버려요.
그래서 잘 기억해서 잊어버리지 않아야 되는데,
이것도 하루 24시간 가운데 그 노력한 시간을 따져보면 잊어버리게 되어있습니다. 그것 따져보면요. 핗
그러니까 노력을 얼마나 들이느냐? 거기에 달려있는 것이지요.
티벳 스님들은 한 50ㆍ60쯤 되면 자기가 다 외우고 있는 경을 한번 쭉~~~~~~~ 우리가 천수다라니 외우듯이 그렇게 외워서 몇 개월을 외워야 다 외울 수 있는 정도로 기억하고 있대요. 몇 개월을 외워야...
여러분 한 시간 꺼리 있나요? 아마 한 시간 정도는 외울 겁니다. 천수경외우지, 반야심경외우지, 예불문외우지, 불공 유치청사 다 잘 외우지, 축원문외우지,
관음시식 다 외우지, 야~ 한 시간 넘겠네요. 핗피 허허허허허허허
또 거기다 화엄시식까지 외운다. 그러면 넉넉히 잡아서 한 세 시간짜리는 되겠다. 그렇지요? 세 시간 정도는 쉬지 않고 외울 거리가 되겠네요. 그런데 티벳 스님들은 몇 개월을 외운대요. 하루에 열 두 시간씩 외워서 몇 개월을 외워야 자기 외우고 있는 것을 다 한번 외울 수가 있대요.
참 상상도 안 되지요. 그 스님들 공부하는 것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가능 하겠습니다. 결코 그것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憶持不忘이라. 잘 기억해서 잊어버리지 않는다.
修行大願(수행대원)하야, 큰 서원을 수행해서
悉使滿足(실사만족)이니라. 다 하여금 만족케 하니라.
실천하기는 어려워도 그 내용이 너무 좋아서 별을 세 개 쳐놨습니다.
菩薩이
如是積集善根(여시적집선근)하며,
이와 같이 선근을 쌓고ㆍ쌓고 쌓아 모으며,
成就善根(성취선근)하며, 선근을 성취하며,
增長善根(증장선근)하며,
선근을 자꾸 더 나아가게 하며,
思惟善根(사유선근)하며, 선근을 자꾸 사유하며,
繫念善根(계념선근)하며,
선근을 생각에 딱~ 붙들어 매며,
分別善根(분별선근)하며, 선근을 분별하며,
愛樂善根(애락선근)하며,
선근을 사랑하고 애착해서 즐겨하며,
修習善根(수습선근)하며, 선근을 修習하며,
安住善根(안주선근)하나니라.
선근에 결국 안주하나니라. 그랬습니다.
아~~ 내용 참! 그 단락 아주 좋습니다.
(3) 善根의 果報와 菩薩行
菩薩摩訶薩이 如是積集諸善根已에
以此善根 所得依果로 修菩薩行하야 於念念中에
見無量佛하고 如其所應承事供養호대
以阿僧祗寶와 阿僧祗華와 阿僧祗?과
阿僧祗衣와 阿僧祗蓋와 阿僧祗幢과 阿僧祗?과
阿僧祗莊嚴具와 阿僧祗給侍와阿僧祗塗飾地와
阿僧祗塗香과 阿僧祗末香과 阿僧祗和香과
阿僧祗燒香과 阿僧祗深信과 阿僧祗愛樂과
阿僧祗淨心과 阿僧祗尊重과 阿僧祗讚歎과
阿僧祗禮敬과 阿僧祗寶座와 阿僧祗華座와
阿僧祗香座와 阿僧祗?座와 阿僧祗?檀座와
阿僧祗衣座와 阿僧祗金剛座와 阿僧祗摩尼座와
阿僧祗寶繒座와 阿僧祗寶色座와
阿僧祗寶經行處와 阿僧祗華經行處와
阿僧祗香經行處와 阿僧祗?經行處와
阿僧祗衣經行處와 阿僧祗寶間錯經行處와
阿僧祗一切寶繒綵經行處와
阿僧祗一切寶多羅樹經行處와
阿僧祗一切寶欄楯經行處와
阿僧祗一切寶鈴網彌覆經行處와
阿僧祗一切寶宮殿과 阿僧祗一切華宮殿과
阿僧祗一切香宮殿과 阿僧祗一切?宮殿과
阿僧祗一切?檀宮殿과
阿僧祗一切堅固妙香藏宮殿과
阿僧祗一切金剛宮殿과 阿僧祗一切摩尼宮殿이
皆悉殊妙하야 出過諸天과 阿僧祗諸雜寶樹와
阿僧祗種種香樹와 阿僧祗諸寶衣樹와
阿僧祗諸音樂樹와 阿僧祗寶莊嚴具樹와
阿僧祗妙音聲樹와 阿僧祗無厭寶樹와
阿僧祗寶繒綵樹와 阿僧祗寶?樹와
阿僧祗一切華香幢??蓋로 所嚴飾樹인
如是等樹가 扶疎蔭映하야 莊嚴宮殿과
其諸宮殿에 復有阿僧祗軒檻莊嚴과
阿僧祗窓?莊嚴과 阿僧祗門?莊嚴과
阿僧祗樓閣莊嚴과 阿僧祗半月莊嚴과
阿僧祗帳莊嚴하야 阿僧祗金網이 彌覆其上하고
阿僧祗香이 周?普熏하고 阿僧祗衣가
敷布其地하니라
善根의 果報와 菩薩行(선근과보보살행)
菩薩摩訶薩이
如是積集諸善根已(여시적집제선근이)에,
이와 같이 모든 선근들을 積集. 쌓아 모으고 난 뒤에,
以此善根所得依果(이차선근소득의과)로,
얻은바 의지하는 과보로써 = 결과로써,
修菩薩行(수보살행)하야, 보살행을 닦아서,
於念念中(어념념중)에, 생각ㆍ생각에
見無量佛(견무량불)하고, 한량없는 부처님을 친견하고,
如其所應承事供養(여기소응승사공양)호대,
그 마땅한 바와 같이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되,
그 다음에는 우리가 쭉~~~ 같이 읽습니다.
그래가지고 다음 페이지 끝까지 같이 읽어요.
이것은 별로 해석할 것도 없고, 뭐라고요?
공양하는 내용들. 무엇 무엇을 공양한다는 내용들입니다. 별로 어려운 字도 없고 하니까 천천히 다음 페이지 끝까지 쭉~~~ 같이 읽읍시다.
以阿僧祗寶(이아승지보)와 阿僧祗華(아승지화)와
阿僧祗?(아승지만)과 阿僧祗衣(아승지의)와
阿僧祗蓋(아승지개)와 阿僧祗幢(아승지당)과
阿僧祗?(아승지번)과 阿僧祗莊嚴具(아승지장엄구)와
阿僧祗給侍(아승지급시)와
阿僧祗塗飾地(아승지도포지)와
阿僧祗塗香(아승지도향)과 阿僧祗末香(아승지말향)과
阿僧祗和香(아승지화향)과 阿僧祗燒香(아승지소향)과
阿僧祗深信(아승지심신)과 阿僧祗愛樂(아승지애락)과
阿僧祗淨心(아승지정심)과 阿僧祗尊重(아승지존중)과
阿僧祗讚歎(아승지찬탄)과 阿僧祗禮敬(아승지예경)과
阿僧祗寶座(아승지보좌)와 阿僧祗華座(아승지화좌)와
阿僧祗香座(아승지향좌)와 阿僧祗?座(아승지만좌)와
阿僧祗?檀座(아승지전단좌)와
阿僧祗衣座(아승지의좌)와
阿僧祗金剛座(아승지금강좌)와
阿僧祗摩尼座(아승지마니좌)와
阿僧祗寶繒座(아승지보증좌)와
阿僧祗寶色座(아승지보색좌)와
阿僧祗寶經行處(아승지보경행처)와
阿僧祗華經行處(아승지화경행처)와
阿僧祗香經行處(아승지향경행처)와
阿僧祗?經行處(아승지만경행처)와
阿僧祗衣經行處(아승지의경행처)와
阿僧祗寶間錯經行處(아승지보간착경행처)와
阿僧祗一切寶繒綵經行處(아승지일체보증채경행처)와
阿僧祗一切寶多羅樹經行處
(아승지일체보다라수경행처)와
阿僧祗一切寶欄楯經行處(아승지일체보난순경행처)와
阿僧祗一切寶鈴網彌覆經行處
(지일체보영망미부경행처)와
阿僧祗一切寶宮殿(아승지일체보궁전)과
阿僧祗一切華宮殿(아승지일체화궁전)과
阿僧祗一切香宮殿(아승지일체향궁전)과
阿僧祗一切?宮殿(아승지일체만궁전)과
阿僧祗一切?檀宮殿(아승지일체전단궁전)과
阿僧祗一切堅固妙香藏宮殿
(아승지일체견고묘향장궁전)과
阿僧祗一切金剛宮殿(아승지일체금강궁전)과
阿僧祗一切摩尼宮殿(아승지일체마니궁전)이
皆悉殊妙(개실수묘)하야 出過諸天(출과제천)과
阿僧祗諸雜寶樹(아승지제잡보수)와
阿僧祗種種香樹(아승지종종향수)와
阿僧祗諸寶衣樹(아승지제보의수)와
阿僧祗諸音樂樹(아승지제음악수)와
阿僧祗寶莊嚴具樹(아승지보장엄구수)와
阿僧祗妙音聲樹(아승지묘음성수)와
阿僧祗無厭寶樹(아승지무염보수)와
阿僧祗寶繒綵樹(아승지보증채수)와
阿僧祗寶?樹(아승지보당수)와
阿僧祗一切華香幢??蓋(아승지일체화향당번만개)로
所嚴飾樹(소엄식수)인 如是等樹(여시등수)가
扶疎蔭映(부소음영)하야
莊嚴宮殿(장엄궁전)과 其諸宮殿(기제궁전)에
復有阿僧祗軒檻莊嚴(부유아승지헌함장엄)과
阿僧祗窓?莊嚴(아승지창유장엄)과
阿僧祗門?莊嚴(아승지문달장엄)과
阿僧祗樓閣莊嚴(아승지루각장엄)과
阿僧祗半月莊嚴(아승지반월장엄)과
阿僧祗帳莊嚴(아승지장장엄)하야
阿僧祗金網(아승지금망)이 彌覆其上(미부기상)하고
阿僧祗香(아승지향)이 周?普熏(주잡보훈)하고
阿僧祗衣(아승지의)가 敷布其地(부포기지)하니라.
에헤~ 굉장하네요.
이와 같은 것으로 공양했다. 이런 말입니다.
이와 같은 것으로 承事供養 = 받들어 섬기고 공양 올렸다. 전부가 阿僧祗ㆍ阿僧祗입니다. 아승지가 불가수입니다.
헤아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많은 숫자의 이러한 항목으로, 이러한 항목의 공양거리로 공양 올렸다. 그런 말입니다.
이 화엄경공부를 우리가 자꾸 하면요?
전부가 무량무변, 불가설ㆍ불가설, 아승지, 불찰미진수, 계속 그렇게 넉넉하고 풍족하고 넘치고 하기 때문에,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마음이 풍족해지고 그리고 따라서 생활도 그렇게 풍족해집니다. 여러분 생활, 쪼들리고 궁핍하고 이것 염려할 것 없습니다. 화엄경공부 자꾸 하다 보면, 화엄경이 나와 일체가 되고, 또 내 삶이 화엄경과 일체가 되면,
그렇게 쪼들리거나 아주 힘들거나, 그런 일이 없어집니다. 저절로 넉넉해집니다.
저도 화엄경공부하면서 부터는 아주 마음 놓고 넉넉하게 잘 삽니다.
(4) 恭敬供養과 衆生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如是等諸供養具로
於無量無數不可說不可說劫에 淨心尊重하야
恭敬供養一切諸佛호대 恒不退轉하야 無有休息하며
一一如來滅度之後에 所有舍利도
悉亦如是恭敬供養하나니 爲令一切衆生으로
生淨信故며 一切衆生으로 攝善根故며 一切衆生으로
離諸苦故며 一切衆生으로 廣大解故며 一切衆生으로
以大莊嚴而莊嚴故며 無量莊嚴으로 而莊嚴故며
諸有所作이 得究竟故며 知諸佛興이 難可値故며
滿足如來無量力故며 莊嚴供養佛塔廟故며
住持一切諸佛法故로 如是供養現在諸佛과
及滅度後所有舍利하야 其諸供養이 於阿僧祗劫에
說不可盡이니라
恭敬供養과 衆生(공경공양중생)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如是等諸供養具(이여시등제공양구)로,
이와 같은 등 모든 공양거리로,
於無量無數不可說不可說劫
(어무량무수불가설불가설겁)에
淨心尊重(정심존중)하야, 청정한 마음으로 존중해서,
恭敬供養一切諸佛(공경공양일체제)호대,
一切諸佛에게 공경하고 공양하되,
一切諸佛은 모든 사람과 모든 생명입니다.
恒不退轉(항불퇴전)하야, 항상 퇴전하지 아니해서
無有休息(무유휴식)하며, 결코 쉬지 아니하며,
一一如來滅度之後(일일여래멸도지후)에,
낱낱 여래가 멸도한 후에,
所有舍利(소유사리)도, 있는바 사리도,
悉亦如是恭敬供養(실역여시공경공양)하나니,
우리가 사리를 참 존중하지요. 사리도 아주 존중합니다.
悉亦如是恭敬하고 供養하나니,
爲令一切衆生(위령일체중생)으로,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生淨信故(생정신고)며,
청정한 믿음을 내도록 하는 연고며,
그렇지요. 부처님에게 공경공양 존중하고, 부처님의 사리에도 우리가 공경공양하고, 사리 모셔오려고 참 애를 많이 쓰잖아요. 그리고 사리를 많이 모셔오고 그러지 않습니까?
일단 우리 신심이 나지요. 그렇습니다.
一切衆生으로
攝善根故(섭선근고)며, 선근을 攝하게하는 연고며,
一切衆生으로
離諸苦故(이제고고)며,
모든 고통을 떠나게 하는 연고며,
一切衆生으로
廣大解故(광대해고)며,
광대하게 이해하게 하는 연고며,
一切衆生으로
以大莊嚴而莊嚴故(이대장엄이장엄고)며,
큰 장엄으로써 장엄하는 연고며,
無量莊嚴(무량장엄)으로 而莊嚴故며,
한량없는 장엄으로써 장엄하는 연고며,
諸有所作(제유소작)이, 모든 있는바 짓는 일들이
得究竟故(득구경고)며,
다 완전하게, 완성하게 함을 얻는 연고며,
知諸佛興(지제불흥)이, 모든 부처님의 출현이
難可値故(난가치고)며,
만나기 어려움을 알게 하는 연고며,
滿足如來無量力故(만족여래무량력고)며,
여래의 한량없는 힘을 만족하게 하는 연고며,
莊嚴供養佛塔廟故(장엄공양불탑묘고)며,
부처님의 탑ㆍ묘에 장엄하고 공양하는 연고며,
住持一切諸佛法故(주지일체제불법고)로,
일체 모든 부처님의 법에 住持. 머물러서 가지는 연고로,
如是供養現在諸佛(여시공양현재제불)과,
이와 같이 현재 모든 부처님과 그리고
及滅度後所有舍利(급멸도후소유사리)하야,
열반하신 후 있는바 사리에게도 공양해서,
其諸供養(기제공양)이, 그 모든 공양이
於阿僧祗劫(어아승지겁)에
說不可盡(설불가진)이니라.
아무리ㆍ아무리 이야기해도 그 공양한 것을 다 말할 수 없느니라. 저 앞에 우리가 같이 합독했던 공양한 이야기,
그 내용을 그렇게 많이 해놓고도 다 이야기할 수 없다.
결국은 그렇게 결론을 맺었습니다.
아주 넉넉하고 참 풍족하고 그렇습니다.
그것이 화엄경입니다. 화엄경 읽으면 부자 됩니다.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소리 들어봤는가 모르겠네요. “금강경 읽으면 가난해진다.” 그런 말이 있어요.
왜? 자꾸 “비워라ㆍ비워라.” 하니까요.
空을 자꾸 이야기하고, 그래서 그런가요?
아무튼 그런 속설이지만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하고 무슨 상관 있겠습니까만, 그렇습니다.
그런데 화엄경은 틀림없이 부자가 됩니다.
꼭 믿으십시오. 약찬게ㆍ법성게라도 자꾸 쓰고, 자꾸 읽고요. 기도할 때 천수경, 그것 이제는 재미없잖아요.
약찬게만 계속 외워도 천수경 읽는 대신을 충분히 합니다. 신도들에게 그렇게 습관들이면 되거든요.
약찬게 한 서너 번 외우고 그대로 축원하면 최고 좋은 불공이지요. 약찬게 세 번 쭉~~~ 같이 외우고, 신나게 외우고...
약찬게 외우면요? 약찬게를 외우면서 도량석을 하면,
도량신들이 전부 나와서 그 목탁소리에 맞춰서 너울너울 춤을 춘답니다. 우리어릴 때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화엄경약찬게는 화엄경을 요약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위력도 있고, 영험도 있고, 내용도 풍부하고 그렇습니다.
그런 것을 한 서너 번 쫙~~~ 이렇게 같이 합송하고 그만 축원 쫙~~~ 하면 불공 깨끗하지요.
아주 깨끗하지요. 얼마나 근사합니까? 오늘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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