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서미트 D-30
온난화 방지 지원금 年175조원…"회의 성패는 탄소배출량이 아닌 '그린 머니'가 좌우할 것"
교토의정서 종료 후 적용할 온실가스 감축 확대 방안 논의
저탄소에 기반한 녹색경제 새로운 사업기회 열려
'코펜하겐을 향한 카운트다운(COUNTDOWN TO COPENHAGEN).'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첫머리에 큼지막하게 이런 문구가 빨간색 글씨로 쓰여 있다. 그 밑에 1초 단위로 긴박하게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이제 30일 남았다고 표시된 이 숫자가 '0일 0시 0분 0초'가 되는 D-데이는 바로 덴마크 코펜하겐 시간으로 12월 7일 오전 10시(한국시각 오후 6시).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5), 이른바 '코펜하겐 서미트(Copenhagen Summit)'가 12일간 일정으로 개막되는 날이다.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코펜하겐 서미트'에 이토록 강조점을 찍는 것도, 세계 각국 정부나 기후학자·환경단체뿐 아니라 세계적인 경제학자들까지 광범위하게 이 회의에 주목하는 것도, 다름 아니라 '기후변화(Climate Change)'가 21세기 최대의 글로벌 이슈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이 이슈를 새로운 부대에 담는 국제협약의 새 판을 짜는 담판장이 바로 '코펜하겐 서미트'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우리에게 친숙한 용어는 '교토 의정서'다. 지금부터 12년 전인 지난 1997년 12월 11일, 일본 교토에서 열렸던 제3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 때 채택된 것이 '교토 의정서'다. 2005년 2월 16일부터 발효된 교토 의정서는 산업화를 주도해온 선진국(37개국+EU)에 기후변화의 책임을 지우는 국제 협약이었다. 2008~2012년 기간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평균 5.2% 감축하라는 의무다.
- ▲ 그래픽=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코펜하겐 서미트'는 이 '교토 의정서'가 종료되는 2012년 말 이후, 즉 2013년부터 적용할 온실가스 감축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포스트 교토(Post Kyoto)' 또는 '포스트 2012'로 불리는 새 기후변화 협약의 필요성은 2년 전부터 본격화됐다.
유엔이 기후변화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역사는 30년도 넘는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지금처럼 글로벌 이슈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게 된 건 최근 몇 년 새 일이다. EU(유럽연합)가 앞장서서 기후변화를 글로벌 어젠다로 설정하려는 '기후변화의 정치학'이 작용했다. 화석 연료에 근간을 둔 지난 세기의 경제 성장 방식 대신 저(低)탄소에 기반한 '그린 이코노미'의 새 패러다임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기후변화의 경제학' 논의도 활발하다. 특히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기후변화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더불어 글로벌 이슈의 양대 산맥을 이루게 됐다.
지난 10월 초, 코펜하겐에서는 '언론인 포럼'이 열렸다. 이 포럼에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집행위원장 같은 인물은 물론이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같은 세계적인 경제학자들도 참석했다. 제프리 삭스 교수는 "글로벌 경제위기는 단지 1~2년이 아니라, 한 세대 동안 우리에게 머물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보다 효율적인 수자원 활용,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효율적인 에너지 시스템, 더 안전한 교통수단처럼 지구 상의 68억 인구가 공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기술을 개발하지 않는 한 경제 성장도 지속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 오는 12월 코펜하겐 서미트를 앞두고, 지난 2~6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막바지 의견을 조율하는 유엔기후회의가 열렸다. 회의 기간에 환경운동가들이 바닥에 탁상시계들을 늘어놓고‘tck tck tck’(째깍 째깍 째깍)이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벌였다. 각국 정부가 한시바삐 온실가스 감축에 합의하고 실천하라는 뜻이다. 이보 데 보에르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왼쪽)이 캠페인을 주도한 환경운동가 벤 마골리스(오른쪽)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로이터 뉴시스
북구의 나라에는 겨울이 일찍 찾아왔다. 겨울비 섞인 스산한 바람에, 덴마크 사람들은 벌써 두꺼운 겨울 코트를 꺼내입고 목도리를 칭칭 동여매고 다녔다. '코펜하겐 서미트'(12월 7~18일)가 열리는 12월의 코펜하겐은 더욱 음산한 습기 속에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들 것이다. 그곳에서 각국 대표단들은 서로의 온기를 보태 한목소리로 '기후변화'라는 21세기 과제에 새로운 답안지를 내놓을 것인가? '교토 의정서'의 바통을 이어갈 '코펜하겐 의정서' 완성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코펜하겐 서미트(12월 7~18일)를 한 달 남겨두고 지난 2~6일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는 유엔 기후회의(UN Climate talks)가 열렸다. 코펜하겐행 비행기 티켓을 손에 쥔 각국 협상 실무자들이 그전에 마지막으로 모여 각국 입장을 피력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자리였다.
바르셀로나 회의에 참석한 환경부의 김찬우 국제협력관은 국제전화를 통해 "코펜하겐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관심이 워낙 크다 보니, 협상 실무자 차원의 논의와는 별개로, 정치적 차원에서 각국 지도자들끼리 '뭔가 이뤄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바르셀로나 회의가 열리는 동안,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 등 유럽 지도자들은 워싱턴으로 날아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 3일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기념해 미국 의회에서 연설한 메르켈 총리는 "기후변화라는 21세기 장벽도 극복하자"고 거듭 강조했다. 유럽 지도자들을 만난 뒤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 달 코펜하겐 서미트의 성공을 위해 미국과 EU가 배전(倍前)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코펜하겐을 향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그린 리더십을 잡아라-기후변화의 정치학
지구 온난화의 피해를 막기 위한 국제 논의의 역사는 30년도 넘는다. 1972년 유엔 환경회의가 처음 열렸다. 1988년 유엔총회 결의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위원회'(IPCC)가 설치됐다.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이 분수령을 이뤘다. 그 노정에서 채택된 것이 1997년의 '교토의정서'이다.
하지만 산적한 국제 쟁점들 중에서도 유독 기후변화를 최우선에 띄워 올리면서 이슈를 주도해온 주인공은 EU 국가들이었다.
지난 2005년 G8(선진 7개국+러시아) 정상회담 당시, 의장국이었던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아프리카 빈곤문제와 더불어 '기후 변화'를 "우리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협"이라고 주장하면서 G8의 주요 의제로 처음 상정했다.
2007년 G8 정상회담에서도 당시 의장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회의 모토를 '성장과 책임'으로 내걸고 "오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1990년 대비 50% 감축하자"는 목표를 제안했다.
이런 정치적 정지 작업과 더불어, 2007년 IPCC가 낸 제4차 보고서를 바탕으로 그해 말 인도네시아 발리의 제13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3)에서 이른바 '발리 로드맵'이 그려졌다. 2009년 12월까지 '포스트 교토 체제'를 도출해내자고 약속한 것이다.
이에 비하면 미국은 부시 행정부 당시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하는 등 오랫동안 기후변화 문제에 수동적이었다. 오바마 행정부 들어 태도가 전향적으로 바뀌었다. 최근 미 하원에서 오는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17% 감축하고, 2050년까지 83%를 감축하는 이른바 '왁스만-마키 법안'이 통과됐다.
EU 지도자들은 이번 코펜하겐 회의에 미국이 더 적극 나서라고 요구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이 워싱턴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만난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이번 코펜하겐 회의에서 선진국들은 중국·인도 등 개발도상국도 감축에 적극 참여하라고 요구하고 있고, 개도국들은 선진국에 더 적극적인 감축과 지원 방안을 내놓으라고 팽팽하게 대립, 코펜하겐 해법은 갈수록 복잡한 고차방정식이 되어가고 있다.
- ▲ 2005년 11월 28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막된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유엔 기후변화협약(CCC)회의. /로이터연합
■그린 이코노미가 대안이 될까-기후변화의 경제학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기구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위원회'(IPCC)이다. IPCC는 1990·1995·2001· 2007년에 걸쳐 총 4차례 보고서를 냈다. 제5차 보고서는 2014년에 낼 예정이다.
이 가운데 '포스트 교토 체제'의 시급성을 국제사회에 부각시킨 것이 바로 2007년 나온 제4차 IPCC 보고서다. 과학자들로 구성된 3개의 실무그룹이 3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보고서를 펴내 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07년 IPCC 보고서에서 과학자들은 "지난 50년간의 기온 상승은 외부 요인 없이는 설명하기 힘든 것"이라면서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인간 활동에 의한 것임이 90% 이상 확실하다"고 못박았다. 2001년 보고서에서는 인간 책임의 가능성을 66%로 추정했는데, 이보다 훨씬 강도 높게 인간 책임을 물은 것이다.
IPCC 보고서는 현재 같은 속도로 지구 온난화가 계속 진행돼 평균 온도가 1.5~2.5도 상승하면 지구상의 동물과 식물 20~30%가 멸종 위기에 처하고, 아프리카는 오는 2020년까지 7500만~2억5000명이 물 부족으로 고통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특히 아프리카와 아시아 일부의 가난한 개발도상국들이 적도 부근에 위치해 있고, 농업 의존도가 높아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를 더 크게 입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선진국들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개발도상국들이 기후 변화의 충격에 적응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지원도 해야 한다"고 선진국의 국제적 책임을 촉구했다. 2007년의 IPCC 보고서는 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그 공로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함께 2007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물론 일각에서는 IPCC 보고서 자체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비판론자도 있다. 기후물리학자 프레드 싱거는 환경칼럼니스트 데니스 에이버리와 함께 쓴 저서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Unstoppable Global Warming·2008)'에서 "지구가 더워지는 건 사실이지만, 지금의 온난화는 적어도 100만년 전부터 1500년 주기로 나타나는 자연적 기후 변동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싱거 박사는 "인간 활동이 지구 온난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IPCC 주장은 과학적인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1996년부터 보고서에 한 조항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회의적 환경주의자' '쿨잇' 등의 저서를 쓴 덴마크의 환경운동가 비외른 롬보르는 "설사 기후변화가 인간 활동에 의해 유발된다 해도 이를 억제하는 데 드는 비용을 따지면 실익이 적다"면서 온실가스 감축안에 회의적이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 기후변화 논의는 IPCC 보고서를 토대로 '금세기 말까지 지구의 온도 상승을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평균 2도 이내로 억제하겠다'는 정책 목표를 설정하고 막바지 협상의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특히 글로벌 경제위기를 계기로, 지난 수십년간의 성장 방식을 재검토해 '그린 이코노미'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의 목소리도 전보다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후변화의 경제학'은 지난 2006년 10월 영국에서 나온 '스턴 보고서'를 계기로 논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세계은행 부총재 겸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낸 니콜라스 스턴 현 런던정경대 교수가 영국 정부의 의뢰로 낸 '기후변화의 경제학에 대한 스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아 생기는 손실이 매년 지구 전체 GDP의 5%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기후변화 피해를 광의로 해석하면 전 세계 GDP의 20%도 넘을 것이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반면 온실가스 감축 비용은 매년 GDP의 1%에 달할 것이라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신속하고 즉각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아마르티야 센처럼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경제학자들은 스턴 보고서를 적극 지지한 반면, 케네스 애로 등의 경제학자들은 스턴 교수가 계산한 '이익-비용 계산법'의 타당성을 따지면서 논쟁의 불씨를 지펴나갔다.
■한 갈래냐, 두 갈래냐
이번 코펜하겐 서미트의 주요 쟁점들은 무엇일까?
교토 의정서는 '선진국'으로 통칭되는 부속서 I 국가에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웠다. 하지만 기후변화 문제가 국제적 공조를 필요로 하는 글로벌 이슈가 되면서, 개도국 참여 문제가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선진국들은 이번 코펜하겐 회의에서 개도국까지 포괄해서 온실가스 의무감축 방안을 도출해내는 하나의 틀(One Track)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반면 개도국들은 교토의정서의 틀을 유지하면서, 개도국에 대해서는 기후변화협약에 근거해 새로운 틀을 만들어내는 '양 갈래(Two track) 접근법'을 지지한다.
오는 202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도 논쟁거리다. IPCC 보고서에서는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을 1990년 대비 25~40%로 권고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선진국들이 내놓은 수치는 1990년 대비 16~23% 수준이다.
EU는 오는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20%를 감축하되, 다른 나라들의 이행 사항을 보아가며 30%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1990년 대비 25% 감축 목표치를 내놨다. 미국은 하원에서 통과된 '왁스만-마키 법안'에서 오는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17% 감축하기로 했는데, 상원에서는 이를 20%로 수정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은 코펜하겐 회의 전까지 상원에서 법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을 담은 수치를 내놔야 할 판이다. 캐나다는 2006년 대비 20% 감축 목표를 제시했는데, 이는 1990년을 기준하면 고작 3% 감축하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중국을 비롯, G77블록(개발도상국)은 "선진국들의 '보다 야심 찬 감축 공약(deeper cut)'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상 최대 규모의 '그린 머니' 조성되나
IPCC 보고서가 기후변화에 대한 선진국의 책임을 강조한 만큼, 개도국이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기후변화에도 적응(adaptation)할 수 있게 선진국이 얼마만큼의 돈과 기술을 지원하느냐가 큰 쟁점이다.
이번 코펜하겐 회의에서 인도, 브라질 등 강성 개도국들은 '노 머니 노 딜(No Money, No Deal: 지원 약속 없이는 협상도 없다)' 원칙을 강하게 고집한다. 선진국들의 만족할 만한 '지원' 약속이 먼저 나와야만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이번 회의의 최종 성패는 '돈'이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10월 29~30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은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해 매년 1000억유로(약 175조원)의 기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가운데 개도국이 자체적으로 재원을 마련하거나 탄소 시장 등을 통해 조성하는 금액을 제외하면, 220억~500억유로의 공공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가운데 EU가 감당할 분담액은 대략 150억유로로 추정된다. EU는 코펜하겐 회의 때 미국의 동참 여부, 중국·인도와 같은 개발도상국의 협력 여부 등을 감안해서 EU 분담액을 최종 제시할 계획이다.
반면 중국과 개도국그룹 G77은 그동안 "선진국이 매년 78개국 국민총생산(GNP)의 0.5~1%를 지원금으로 내놓아야 한다"며 EU가 제시한 금액의 2배 이상을 주장해왔다. 이 계산에 따르면 요구 금액이 무려 2000억~4000억달러에 이른다. 심지어 수단 같은 나라는 5000억달러(약 590조원) 규모의 지원을 주장한다.
2008년 현재 세계 공적개발원조(ODA) 규모가 1200억달러(약 140조원) 수준임을 감안할 때, 엄청난 규모의 지원금이 '그린 머니'라는 이름으로 조성되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이다.
■기업에는 위기인가, 기회인가?
기후변화 논의에 능동적 입장을 취해온 EU나 일본의 기업들은 물론, 미국의 대표적 글로벌 기업들도 일찌감치 스스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우고 '녹색 경영'에 돌입해왔다. 가령 미국 화학회사 듀폰은 1990년대부터 기후변화 대응전략을 세우고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데 5000만달러 이상을 투자,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72% 수준으로 감축했다. 2015년까지 최소 15% 이상을 추가 감축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번 코펜하겐 회의를 주재하는 의장국 덴마크만 해도 환경 문제에서 선도적 입장이다. 덴마크는 1973년 오일 쇼크가 닥쳤을 당시 에너지의 90% 이상을 석유에 의존했다. 오일 쇼크를 이겨나가기 위해 강도 높은 에너지 효율화 정책을 펴왔다. 코니 헤드가르 덴마크 환경부 장관은 "그 결과, 덴마크는 지난 30년간 경제 규모가 70% 커졌어도 에너지 사용량은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덴마크는 전체 전력의 20% 이상을 풍력으로 생산한다. 국내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덴마크 풍력 설비 회사들이 세계 시장의 40%를 점유한다.
덴마크 에너지그룹 동(DONG)의 안데르스 엘드룹(Anders Eldrup) 최고경영자는 "덴마크의 에너지 부문은 도전을 기회로 바꾼 경험이 있다"면서 '그린 이코노미'가 가져다줄 기회를 부각했다. 또 "기업들 스스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계획을 세우라"고 조언했다.
■한국 입장은?
한국은 교토의정서 체결 당시에는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한 피해 등을 감안해 감축의무국에서 제외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 녹색 성장을 선포했지만, 이번 코펜하겐 회의에서는 교토의정서 때처럼 감축의무국에서 제외되는 개도국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기를 희망하는 입장이다. 정부는 "선진국과 개도국은 온실가스 배출에 있어 역사적 책임이 다르기 때문에, 선진국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legally binding) 보다 야심 찬 감축 공약(deeper cut)을 제시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대신 한국을 비롯한 개도국은 나라별로 자국 상황에 맞는 적절한 감축 계획을 마련해 자발적으로 이행하는 국제 등록부(International Registry)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정부는 또 세 가지 방안의 202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발표했다. 5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녹색성장위원회에서는 세 방안 중에 둘로 압축했다. BAU(Business As Usual·별도의 감축 노력이 없을 경우의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27% 감축' 또는 '30% 감축' 등 2가지 안이다. 정부는 17일 국무회의에서 확정할 예정인데, 30% 감축안이 유력하다. 이는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4%가량 감축하는 수준이다.
국제사회가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없는 개발도상국들에 요구하는 감축 수준은 BAU 대비 15~30%인데, 한국은 이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목표치를 설정하는 것이다. 물론 선진국에 요구되는 감축 목표치(1990년 대비 25~40%)에는 훨씬 못 미친다.
그럼에도 국내 기업들은 반발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미흡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국내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08년 현재 온실가스 감축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기업은 국내에 6.0%에 불과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유동헌 연구위원은 "기후변화 논의를 주도하는 유럽에서는 이를 무역과 연계시키려는 '녹색 보호주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면서 "한국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는 기후변화와 같은 첨예한 글로벌 이슈에 초미의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서 대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 기후변화협약이 걸어온길
■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협약' 채택. 차별화된 공동 부담 원칙에 따라 가입당사국을 부속서 I(Annex I) 국가와 비부속서 국가로 구분.
■ 1993년 한국, 47번째로 기후변화협약에 가입.
■ 1994년 '기후변화에 관한 UN협약' 발효.
■ 1995년 독일 베를린 -제1차 당사국총회. 2000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협상그룹 설치.
■ 1996년 스위스 제네바 -제2차 당사국총회. "인간 활동이 기후에 명백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을 과학적 사실로 공식 인정.
■ 1997년 일본 교토 -제3차 당사국총회.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의무화하는 '교토의정서' 채택.
■ 1998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제4차 당사국총회. 교토의정서의 세부절차 마련을 위한 행동계획 수립.
■ 1999년 독일 본 -제5차 당사국총회. 아르헨티나의 자발적인 감축목표발표를 계기로,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 문제 부각.
■ 2000년 네덜란드 헤이그 -제6차 당사국총회. 2002년 교토의정서 발효를 위한 상세 운영규정을 확정할 예정이었으나 미국·일본·호주 등과 EU의 입장 차이로 결렬.
■ 2001년 독일 본 -제6차 당사국총회 속개회의. 미국을 배제하고 교토의정서 체제에 합의.
■ 2001년 모로코 마라케시 -제7차 당사국총회. 교토메커니즘, 의무준수체제 등과 관련된 정책현안에 최종합의 도출.
■ 2002년 인도 뉴델리 -제8차 당사국총회.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촉구하는 뉴델리 각료선언 채택.
■ 2003년 이탈리아 밀라노 -제9차 당사국총회. 기후변화 특별기금 및 최빈국기금의 운용방안 타결.
■ 2004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제10차 당사국총회. 기후변화의 영향, 취약성 평가 등 5년활동 계획 수립.
■ 2005년 캐나다 몬트리올 -제11차 당사국총회. 2012년 이후 기후변화체제 협의회구성에 합의.
■ 2006년 케냐 나이로비 -제12차 당사국총회. 선진국의 2차 이행기간(2013~2017년)온실가스 감축량 설정을 위한 논의 일정 합의.
■ 2007년 인도네시아 발리 -제13차 당사국총회. 2012년 이후의 선진국·개도국 의무부담 논의. '발리 로드맵'을 채택해 2009년말을 협상 목표 시점으로 정함.
■ 2008년 폴란드 포즈난 -제14차 당사국총회. 2009년 코펜하겐 서미트를 위한 기반 마련.
■ 2009년 12월(예정) 덴마크 코펜하겐 -제15차 당사국총회. 교토의정서 1차 이행기간(2008~2012)종료를 앞두고 '포스트 교토체제' 구성 논의. 선진국과 개도국간 입장 차이가 커 난항이 예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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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온실가스 배출을 제한해 지구온난화를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채택. '리우환경협약'이라고도 한다.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 변화와 관련된 전 지구적 위험을 평가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1988년 설립한 정부 간 기후변화 협의체. 기상학자·해양학자·빙하 전문가·경제학자 등 3000여명의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2007년 낸 보고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총회에서 선진국의 온실가스 의무감축 목표치를 정했다. 2005년 2월 16일 공식 발효됐다. 의무감축에 합의한 37개국+EU는 2008~2012년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평균 5.2% 감축해야 한다.
▲부속서I(annex I) 국가 1997년 교토의정서 채택 당시 2008~2012년 자국 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평균 5.2% 줄이기로 합의한 탄소 감축 의무국. OECD 24개국과 동구권 국가 등 37개국과 EU가 여기에 해당된다. 미국은 의회 비준을 거부해 포함되지 않는다.
▲비(非) 부속서I(non-annex I) 국가 교토의정서에서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없는 국가. 현재 OECD 국가 중에는 우리나라와 멕시코가 여기에 해당된다.
▲감축기준(Baseline for cuts)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연도. 교토의정서는 1990년을 기준연도로 정했고, 미국 기후변화법률은 2005년을 기준연도로 삼는다.
▲발리 로드맵 2007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13차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됐다. 2013년부터 적용할 '교토의정서 이후'의 새 기후변화협약을 논의하자는 계획안. 2년간의 협상을 거쳐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 총회에서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COP15 올 12월 열리는 코펜하겐 회의의 공식 타이틀. COP는 매년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nference of the Parties)를 말한다. 그동안 온실가스 감축 노력의 기준이 됐던 교토의정서(2012년 만료)를 대체할 새로운 국제협약을 논의한다.
▲온실가스 이산화탄소(CO₂) 등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6가지 기체를 말한다. 세계기상기구와 유엔환경계획은 이 가운데 이산화탄소(CO₂)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고 선언했다. 그 밖에도 메탄(CH₄), 아산화질소(N₂O) 등이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