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40대가 되자 슬슬 내 체력도
바닥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깡 말랐는데
매일 자정까지 학생들과 함께 학교에 남아 있다 보니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3㎏짜리 아령 두 개를 사서
아침저녁으로 재미삼아 운동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나 자신을
위한 운동이었다기보다는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한 도구였다...
아령을 까딱까딱하면서 시작했던
운동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어 하루도
빠짐없이 근육운동과 유산소운동을 병행했다.
나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약골(弱骨)이었던
내가 병원 문턱 근처도 안 가는 강골(强骨)로 변모하고
어느새 책장엔 영어책만큼이나 많은 운동 관련 도서가 꽂히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20여 해, 정년을 5년 정도
앞둔 1990년대 중반 어느 날 대구시민회관에서
열리는 전국보디빌딩대회 공고 포스터를 봤다. 구경만
할 심사로 찾은 행사장에서 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잘 가꾸어 탄력 있게 빛나는 근육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순간 황홀경에 빠졌다. 그 근육들이 얼마나 오랜 수련과
고통 끝에 나온 것인가를 알기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마음먹었다. 퇴직하면 꼭 저 무대의 일원이 되겠노라고...
내 계획을 털어놨을 때 아내는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뭐라고예? 삼각 빤쓰 입고
뭐하겠다고예. 영감이 노망들었나." 하지만 아내의 만류도
내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퇴직 전 4~5년 동안 더 부지런히
운동을, 그리고 1999년 10월, 정년퇴직한 지 두 달 만에 꿈에
그리던 전국보디빌더대회에 처음 출전해 중년부(50대 이상) 우승을 차지했다...
예상치 못했던 수확에 용기를 얻어
본격적으로 대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12년간 40여 차례 대회에 출전해
꾸준히 입상했고, 방송에도 출연해 동네에선
스타가 되었고, 몸의 행복은 마음의 행복을 가져왔고
젊음은 덤으로 따라와 동네에서 내 별명은 '총각'인데
뒷모습만 보면 30·40대 같다고 이웃들이 붙여줬다.
'일흔다섯 총각'은 오늘도 외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펌).......^_^
서영갑샘처럼 저도 아령과
마이 하우스 GYM을 이용하여
6년간 하루도 걸러지않고 운동을 하여오고
있으나 간혹 서울 아들네집에 갈때는 아령없이
동네 목욕탕가서 샤워 후 온탕 찜질방 냉탕 개구리
헤엄치기 냉탕서 걷기 네바퀴 푸시앞 삼삼회로 대신해오고
있으나 삼각빤츠 없어 보디빌더는 못 되었으나 앞으로 9년간을
열심히 지속한다면 서영갑샘처럼 되지말라는 법없겠지요!!.......^_^
여기까지 따라 주신님들께...
감사합니다.
별과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