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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최재완 |
2019-09-06 11:28:16 |
■연산군과 임사홍
18세(1494)때 임금으로 등극한 연산군은 이듬해 그의 생모 폐비 윤씨가 시약을 받은 연유를 알게 됐다.분노가 극에 달했다.재위4년인1498년 연산군은 김일손(金馹孫)이 작성한 사초(史草)의 내용이 국사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를 들어 수많은 선비와 중신들을 죽였다.김종직(金宗直)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하고 사림파와 삼사(三司)대간들이 무수히 죽었다.조선시대 최초의 사화인 무오사화(戊午士禍)는 이처럼 연산군의 복수심 때문에 일어났다.
연산군의 복수는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간신 임사홍(任士洪)과 그의 셋째 아들 숭재(崇載)는 연산군을 날이 갈수록 더욱 악행과 패륜적 행동을 일삼는 포악한 인물로 만들어갔다.여기에는 임사홍이 연산군에게 들여보낸 장녹수(張綠水)까지 한몫 거들었다.연산군의 복수심과 간신배들의 국정문란이 극에 달했다.
임사홍은 성종 때 탄핵당해 평안도 의주로 귀양가 있었다.연산군이 등극하자 왕가의 인척들을 동원해 복권하는 데 성공했다.그 때부터 임사홍은 권력을 잡고 자신을 탄핵한 중신들에 대해 복수의 칼날을 세웠다. 1504년 폐비 윤씨 문제를 다시 건들여 사화를 일으켰다.갑자사화(甲子士禍)였다.갑자사화는 임사홍이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악용했다.사림파뿐 아니라 훈구파에서도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임사홍의 악행은 자신의 부귀영화와 권력을 탐하는데 왕과 나라를 이용해 왔다는 점이다.그것도 왕의 포악함과 복수심을 이용해 교묘하게 정적들을 제거하고 권력과 재물을 키워왔다.국정은 몰라라 하고 악행과 패륜을 일삼는 포악한 임금,그 밑에서 왕의 눈과 귀를 막아 자신의 권세와 부를 누리는 간신들이 자꾸만 나라를 나락으로 몰아갔다.
갑자사화2년 후인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났다.연산군은 폐위돼 강화도로 귀양갔다가 두 달 만에 역병으로 병사했다.임사홍은 반정이 성공한 그날 잡혀서 처형됐다가20여일 만에 다시 부관참시당하는 극형을 받았다.그토록 정적들을 처참하게 죽게 했던 임사홍이 그런 끔직한 형벌을 자신이 받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그래서 사람들은 역사를 가벼이 보지 말라고 경고한다.
결국 나라가 잘 되려면 임금이 현군(賢君)이어야 하고,중신들이 충성스러워야 했다.연산군과 같은 암군(暗君)과 임사홍 같은 간흉(奸凶)이 만나게 되면 나라는 걷잡을 수 없이 어지러워짐을 역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욱백여 년 전에 일어난 조선왕조 최대의 간신배가 오늘의 대한민국에도 비슷하게 재현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만약에 그러하다면 임사홍 같은 간흉은 요즘 한창 나라를 어지럽히는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아닐까.임사홍 가족과 장관후보의 가족은 너무나 닮아있다.
중종실록에 실려 있는 임사홍에 관한 이 싯구를 음미해보자.
『작은 소인은 숭재요,큰 소인은 사홍이라.小任崇載大任洪
천고에 으뜸가는 간흉이구나.千古姦兇是最雄
천도(天道)는 돌고 돌아 마땅히 보복이 있으리니,天道好還應有報
알겠느냐.네 뼈 또한 바람에 날려질 것을.從知汝骨赤飄風』(耕甫)
2019. 9.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