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12:22~30)
일반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우지 않고
반드시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세우려는 이유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그것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자기중심성을 버리고, 나의 선택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태도.
그것을 현실에서 가시적인 것으로 도출하면,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가 가장 유익(interest)한 것을 알고 인정하는 것.
‘레위인이 아니면 어때? 레위인 중에서도 형편없는 자들이 많은데...
레위인 아니더라도 거룩한 이들을 세우면 어때?’라고 생각한다면
매우 합리적이고 올바른 접근 같으나,
하나님의 영역에 대한 감안을 등한시 하는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무지성지지, 일단 어떤 존재를 신뢰하게 됨으로 이후, 그 존재의
모든 것을 신뢰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이행되는
신뢰와 추종의 수순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안별로 일일이 진정성이나 선량함으로
측정할 수도, 측정이 가능하지 않은 일들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지만, 시간이 흘러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시점이 되었을 때
비로소 이해되는, 그런 일들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메시지보다 메신저에 대한 신뢰가 우선이다.
그런데 레위인에 대한 원칙에 다소 의문점이 있다고 해서
내 임의대로 조정한다면 그것은 곧 메신저를 신뢰하지 못하는 반증이 된다.
그래서 악한 심성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하나님께서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굳이 세우시려는 것을
비록 지금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배척하는 것이 이나라
선량한 뜻의 가능성을 분명히 믿고 따르는 것이 옳다.
그런 접근은 최근에 내가 겪은 아래의 것과 유사한 고민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먼저 발견하려는 태도」와
「일단 하나님이 기본적으로 장착해 주신 나의 기재(奇才)와 역량을
발휘하여 기본적 노력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는 것」
그 사이의 미묘하지만 중대한 차이에 대해서 주목한다.
해석 또는 경우에 따라, 두 가지가 다르지 않는 같은 마음의 동기와 중심이면서
단지 표현의 차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거론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이다.
후자의 기본적으로 장착해 주신 나의 기재와 역량을 먼저 또는 동시에
발휘한다는 것에 내밀히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발견하려는데
집중하는 것을 다소 부적절하다는 인식, 또는 폄훼하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아마도 내가 그랬던 것 같다. 조금, 아주 조금처럼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요동칠 만큼, 클릭 수정을 해야 할 것 같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노골적으로(!)’, Priority#1으로 삼고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여야 할 것 같다.
<오늘의 명언>
‘우리 자신을 주님께 맡기고 드리면,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주님이
좋은 것을 더해 주신다.’ -J.존-
“하나님, 연구실에 앉아서 먼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묵상을 합니다.
평안한 마음과 환경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걱정거리는 생각하면 블랙홀처럼 넘쳐 흐르지만,
그것보다는 지금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실제 그 크기만큼 느낄 수 있는 지혜로운 눈과 마음을 주십시오.
고난과 고통이 있겠지만,
영혼을 사는 우리에게 점과 같은 미래의 찰나적 순간에
마음 뺏기거나 흔들리지 않는 강한 믿음을 주십시오.
영원을 바라보며 현재를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양정환, 수도통합병원에서 입원한 상태에서 항암치료를 연말까지 받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잡아 주셔서 세상이 알 수 없는 평안을 누리게 해 주시고
하나님과 긴밀하게 사귐을 갖는, 오히려 행복한 시간이 되게 해 주세요.
치료에 성과가 있어서, 바라옵기는 완전한 치유와 회복을 주십시오.
그리하여 정환이의 남은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증거하는 것으로
채워지고 듣는 이들에게 복음의 위력이 전해지게 해 주십시오.
양소영, 이소망, 이현영, 이은준, 오지현, 김수연! 저희 가족들
하나님 사랑 안에서 온전히 붙들림으로 살게 해 주세요.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의 능력으로 서로를 대하고
사랑 나누게 해 주세요.
오늘 오후에 학생들에게 강의합니다.
진정으로, 사랑을 담아서 강의하게 해 주세요.
저녁에는 제자훈련에 참가합니다. 겸손과 감사로 그 시간을 보내게 해 주십시오.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