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산행문화가 많이 바뀌었다.
나침반에 의지한 채 깊은 산속 헤매다가 엉뚱한 곳으로 내려서기 일쑤였던 예전의 경험은 알바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이었다.
독도(讀圖)란 자기의 위치를 아는 데서 출발한다.
요즘엔 GPS(위치추적기)에서 다 확인할 수 있으니 식은 죽 먹기.
거기다 지형도에 이런저런 산이름이 높고낮음 구별없이 올라있으니 열혈산꾼이라면 욕심나기 마련이어서 ‘봉따묵기’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철그른 봄비 내리는 겨울날, 서글픔 뿌리치고 산자락 올라 붙은 건 오로지 미답의 산이 있어서다.
찾는 이 없어 등로는 없고, 그나마 산짐승들이 다녔음직한 길엔 온갖 장애물들이 앞을 막아선다.
그러한 산을 왜 가느냐고 묻는다면 “산이 거기에 있어서”라는 ‘힐러리 경’의 말을 패러디하여 “지형도에 있어서”라고 말할 것이다.
애시당초 조망포인터 하나없는 육산이어서 오리무중(五里霧中)의 우중산행은 그리 서운하지 않았다.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군은 남부의 대구권과 북부의 안동권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군의 중앙부에 매봉산(梅峰山 489.7m)이 있다.
조선시대엔 '박달산(朴達山)'이라고 하였고, ‘박달산 봉수(熢燧)’라는 기록도 나온다.
또 ‘관아에서 남쪽으로 24리이며 신녕 화산에서 뻗어 나온다.‘라고 산줄기도 기재하였다.
‘해동지도‘에는 박타산(博陀山), 박달사(朴達寺)'라는 사찰 이름도 확인할 수 있고, ‘거매동(巨梅洞)은 매봉산 밑이 되므로 거매라 하였다.’라고 되어있다.
봉이랄 것도 없는 박태산은 여기에서 생겨난 이름으로 보인다.
코스: 거매리 여림실(사거리)-축산농가 사일로-능선-잇단 묘-박태산-포장도로(육각정자)-산판길-무인산불감시탑-매봉산-임도-산판길-삼장매운탕-원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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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km가 채 되지 않는 길을 3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고도표.
네비엔 거매리 여림실(군위군 효령면 거매리 552-9번지)을 입력하여 거매리사거리에 차를 댔다.
거매리 버스정류장에서 바라보는 도로안내판에는 '박태산 트레킹코스'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곧장 가면 수정암을 지나 박태산과 매봉산의 중간지점인 육각정자가 있는 고개마루에 도착할 것.
사거리에서 2차선 아스팔트도로를 따라 100여m 진행하면...
앞서가던 일행들은 성질급하게도 우측 낮은 능선으로 바로 붙어 오르지만...
나는 30여m 더 윗쪽 민가로 진입하여...
일행들을 쳐다보며...
축산농가인 듯한 집으로 들어가...
가축사료저장소(사일로) 우측으로 난..
널따란 길을 따라...
고개마루에 올라 붙는다. 앞서 능선으로 붙은 일행들은 화살표 우측으로 올라와...
그쪽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잘 단장된 무덤이 있어.
돌아서 진행방향에도 무덤이 있고...
다시 또 무덤이 있다. 지능선이라 묘지들이 들어서 있지만...
등로는 그저 알아서 가야만 한다.
또 조성된 가족묘원은...
국가유공자 육군소령 밀양박씨의 묘.
선명하지 않은 산길에 누군가 파란 비닐자락으로 등로 표시를 한 듯한데, 아무래도 이건 아니올씨다였다.
그렇게 밍그적거리다 장수 씨를 만나...
지형지물이라고는 무덤뿐인 오리무중 산속을...
봉사 코끼리코 만지듯 무중(霧中)을 뚫고...
가야만 한다.
우산을 가져갔지만 잡목때문에 무용지물이 되었고, 일회용 우의는 잡목에 찍혀 찢어졌으며, 방수가 될 것 같았던 겨울 장갑은 이미 젖어버렸다.
상고대는 아니고, 그냥 빗방울이 나뭇가지에 맺혀 결빙이 되었으니...
산속 기온은 빙점이하의 영하의 날씨. 따라서 사진을 찍기위해 젖은 장갑을 꼈다벗었다하였으니 손이 시려와.
봉인 듯 아닌 듯 두루뭉실한 지점을 그냥 지나치다 되돌아 와서 박태산 봉따묵기. 지형도에 엄연히 이름올라 있으니 인증은 필수.
그래서 여기까지 걸음을 맞춘 장수 씨를 모델로 세웠다.
도로가 올라오는 이 고갯마루엔 육각정자가 세워져 있어 우리는 이곳에서 간단식사를 하였다.
육각정자에서 바라보는 도로.
고개마루는 지금도 공사가 진행 중.
이정표에서 휘어지는 도로의 돌출된 지점이...
다시 능선으로 붙을 것이지만...
그 낮은 능선은 도로와 나란히 진행하므로...
100여m 도로를 따르다 좌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장수 씨는 잠깐 고민을 하더니 도로를 따라 탈출해버벼...
나 혼자 질퍽질퍽한 무덤 옆을 지나...
잡목 성가신 능선으로 걷다가 나란히 따라오는 우측 산판도로로 내려서..
곧장 오르노라니...
시설물이 나와...
쳐다보니 무인감시탑.
헬기장이 있는 제법 널따란 정수리가 매봉산.
삼각점은...
군위 24번.
헬기장 옆에는 무덤 한 기가 있고...
아까 박태산처럼 노란 표지기에 매봉산이란 글자가 적혀있다.
대개 매봉(또는 응봉)은 매가 사냥감을 노리는 도드라진 바위봉이지만 군위 매봉산은 다르다.
수리과의 날짐승이 아닌 '매화 매(梅)'자를 쓰고 있어 다른 매봉과 다르다.
이 산자락엔 거매리(巨梅里)와 금매리(錦梅里), 신매실 등 매화와 관련된 지명이 여럿 보인다.
너덜도 아니고, 그렇다고 육산도 아닌 작은 바위덩어리가 흩어져 있는 두루뭉실한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만나는 임도에선 우측으로...
100여m 진행하면...
우로 크게 휘어지는 곡각지점에서 산길을 갈아탄다.
낙엽이 수북히 쌓인...
두루뭉실한 능선을...
Gps에 의지한 채 진행하노라니 귀한 바위가 나오고...
무덤과...
이미 수목장으로 변해 자연으로 돌아간 무덤이 있어...
비석을 확인하니 인생무상이 느껴지는 유인김해김씨지묘.
잘 단장된 무덤은...
오천 정씨(烏川 鄭氏)묘.
다시 무덤을 만나면...
등로는 산판길 수준.
세멘트 포장임도를 만나 무덤이 있는 곳으로 가 보았지만...
밑으로 난 길이 없어...
우측 세멘트 농로를 따라...
마을로 내려서...
돌아본 모습.
거매리 마을을 벗어나...
돌아보니 도로변에 '삼장매운탕' 집이 있다.
도로를 따라 버스로 돌아오다 아까 무덤이 있는 곳으로 올려다보지만 길은 없고....
우리 버스는 우리를 내려준 그곳에 대기하고 있다.
살짝 당겨보니 내가 올라간 사일로가 있는 좌측과, 일행들이 오른 우측 산자락이 잡힌다.
주섬주섬 젖은 장비를 똘똘 말아 비닐팩에 싼 뒤 배낭에 넣었다.
그런 뒤 삼장매운탕 안내판을...
당겨서 확인한다. 날머리인 삼장매운탕집은 여기서 걸어 대략 5분 거리.
- 봄 비 -
강에 얼음장 꺼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내 가슴속 어디서 나는 소리 같습니다
봄이 온다기로
밤새것 울어 새일 것은 없으련만
밤을 새워 땅이 꺼지게 통곡함은
이 겨울이 가는 때문이었습니다
한밤을 즐기차게 서러워함은
겨울이 또 하나 가려 함이었습니다
화려한 꽃철을 가져온다지만
이 겨울을 보냄은
견딜 수 없는 비애였기에
한밤을 울어울어 보내는 것입니다
<노 천 명>
첫댓글 나 같으면 비 온다고 몸 사린다고 뻐스속에 처박혀 앉았을텐데 ㅎㅎ
아무튼 존경 스럽습니다. 광주의 백계남 선생이 별세 했답니다.
거기까지 가서 안 올라 갈 수도 없고해서....ㅉ.
백 선생님의 소식 접하고 사이트 '백계남의 전국산줄기'에 들어가 봤더니 사실이군요.
2017년 11월 말에 별세하셨으니 벌써 1주년이 지났군요. 2016년 4월 자은도가는 여객선에서 뵌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네요.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선생님의 인자한 모습이 떠올라 함께 찍은 당시 사진을 올립니다.
늦게나마 백계남 선생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저도 어는 섬 산행때 뵌듯한 기억이 납니다~세월앞에선...올도 공부 많이 하고 갑니데이~우중 산행 고생 만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