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고린토 1서 4,1-5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여기며 하느님의 심오한 진리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관리인에게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것은 주인에 대한 충성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서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는 조금도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또 내가 나 자신을 심판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양심에 조금도 거리끼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죄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는 무슨 일이나 미리 앞질러 심판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오시면 어둠 속에 감추어진 것을 밝혀내시고 사람의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에는 각 사람이 하느님께로부터 응분의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복음 루가 4,33-39
그때에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께 "요한의 제자들은 물론이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제자들까지도 자주 단식하며 기도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합니까?" 하며 따지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잔칫집에 온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도 그들을 단식하게 할 수 있겠느냐? 이제 때가 오면 신랑을 빼앗길 것이니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을 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을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못 쓰게 만들 뿐만 아니라 새 옷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새 술을 헌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릴 것이니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는 못 쓰게 된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또 묵은 포도주를 마셔 본 사람은 '묵은 것이 더 좋다.' 하면서 새 것을 마시려 하지 않는다."
어제는 약간 후회되는 작업을 하나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제까지 제가 썼던 강론 자료들을 지우는 작업이었지요. 제가 신부가 된 뒤부터 써 놓은 강론이었지요. 또한 다른 신부님의 강론들도 제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모아 놓았었기 때문에 그 강론의 양은 상당했습니다. 하지만 이 강론들을 계속 보관하면 여기에 집착할 것 같아서 지우기로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파일들을 지우면서 마음 한 구석에 ‘아깝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어요. 왜냐하면 강론 쓸 시간이 없을 정도로 급할 때에 지난 강론은 상당한 도움이 되거든요.
제가 부제 때의 일입니다. 이제 신부가 될 날도 1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더욱 더 준비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서 공부를 더욱 더 철저히 할 것을 결심했지요. 왜냐하면 성서 공부와 묵상만 제대로 해 놓는다면 강론 및 각종 강의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1년 내내 성서를 붙잡고 공부를 하면서, 그 부분에 대한 묵상까지도 함께 했지요. 드디어 요한 묵시록 22장을 끝으로 이 작업을 모두 마쳤습니다. A4 용지로 500페이지가 넘는 작업. 이 작업이 저장된 파일을 보면서 저는 너무나도 흐뭇했습니다. 신부가 되기 위한 준비를 다 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서품을 받고 얼마 뒤, 저는 엄청난 일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입니다. 소위 CIH 바이러스(체르노빌 바이러스)로 그 당시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지요. 하드 디스크를 아예 못쓰게 만들었거든요. 저 역시 그 피해를 입게 되었고요, 특히 부제 때 해 놓은 성서 작업 파일 역시 쓸 수 없는 상황에 처해졌습니다.
얼마나 아깝던 지요. 1년 동안 다른 것은 하나도 하지 않고 했던 작업이었는데 얼마나 아깝겠습니까? 더군다나 1년 동안 했던 작업을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다는 것이 더욱 더 억울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용산에 하드 디스크를 들고서 데이터 복구가 가능한 지를 물었습니다. 가능하답니다. 저는 너무나 기뻤지요. 하지만 바로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데이터 복구비용이 30만원이랍니다. 더군다나 제가 원하는 파일을 복구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저는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지요. 그런데 지금 저는 그렇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만약 그 파일이 있다면, 저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 파일을 열어 봤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참조해서 강론과 강의를 했었겠지요. 즉, 그 크신 주님을 내 스스로 한정을 지어놓고서 그 틀에 맞게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체험이 있었기에, 저는 과감하게 어제 몽땅 다 지웠습니다. 새로운 주님의 체험을 기대하면서 말이지요.
사실 과거에 연연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요? 과거를 발판삼아서 멋진 미래를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과거에 연연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법이지요. 그런데도 우리들은 과거의 모습만을 간직하려고 하고, 그 기준에 맞춰서만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단죄하려 합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과거에 연연하는 유다인들은 바로 그런 모습 때문에 주님조차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거든요.
주님께서는 새로움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새로움은 과거에 집착하면서 사는 모습이 아닙니다. 과거는 과거로 끝내야 합니다. 그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계신 하느님으로 오신 주님을 모시면서, 현재라는 시간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시간은 아까워할 것도 후회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늘 새롭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생각하면서 단순하게 ‘지금’ 최선을 다하면서 살면 속편하지 않을까요?
컴퓨터에 쓸모없는 파일들을 지우도록 합시다.
제 눈엔 황금만 보였습니다
중국의 여씨 춘추에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백주 대낮, 시장 한 복판에 벌려놓은 금은방에 놓인 황금덩어리를 넋 빠진 듯이 쳐다보고 있던 한 사내가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그 사내는 느닷없이 그것을 집어 들고 도망을 쳤습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시장바닥에서 도망을 가면 어디까지 갈 수가 있겠습니까? 물건을 훔친 사내는 마침내 붙들려서 재판관 앞에 섰습니다. 기가 막힌 재판관이 사내에게 묻습니다.
"시장 바닥에 그렇게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그것을 도둑질 할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이 말을 들은 사내는, "그때 제 눈엔 황금만 보였지 사람들은 하나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황금은 안보이고 주님은 보이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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