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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장편소설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06월 05일 출간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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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이 책의 주제어
#한국소설 #여성서사 #결혼 #가족 #부조리 #현대사 #비극 #제사 #하와이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
한국문학이 당도한 올곧은 따스함, 정세랑 신작 장편소설
독창적인 목소리와 세계관으로 구축한 SF소설부터 우리 시대의 현실에 단단히 발 딛고 나아가는 이야기들까지, 폭넓은 작품 세계로 우리에게 늘 새로운 놀라움을 선사했던 정세랑.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되는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이경미 감독, 정유미 주연)과, SM에서 제작중인 케이팝 드라마 〈일루미네이션〉의 각본을 집필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는 그가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로 돌아왔다. 『시선으로부터,』는 구상부터 완성까지 5년이 걸린 대작으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피프티 피플』 이후 4년 만에 내놓는 신작 장편소설이다. 『시선으로부터,』는 올해 3월 오픈한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서 3개월간 연재되었으며, 〈주간 문학동네〉 연재 후 출간되는 첫 소설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시대의 폭력과 억압 앞에서 순종하지 않았던 심시선과 그에게서 모계로 이어지는 여성 중심의 삼대 이야기이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겪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 심시선과, 20세기의 막바지를 살아낸 시선의 딸 명혜, 명은,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손녀 화수와 우윤. 심시선에게서 뻗어나온 여성들의 삶은 우리에게 가능한 새로운 시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협력업체 사장이 자행한 테러에 움츠러들었던 화수는 세상의 일그러지고 오염된 면을 설명할 언어를 찾고자 한다. 해림은 친구에게 가해진 인종차별 발언에 대신 화를 내다가 괴롭힘을 당했지만 후회하거나 굴하지 않는다. 경아는 무난한 자질을 가지고도 오래 견디는 여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뒤따라오는 여성들에게 힘을 주고자 한다.
북소믈리에 한마디!
한국과 미국에 나뉘어 살고 있는 한 가족이 단 한 번뿐인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와이로 떠난다는 다소 엉뚱한 상황에서 출발하는 이 소설은 현대사의 비극과 이 시대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 세계의 부조리를 관통하며 나아간다. 미술가이자 작가이며 시대를 앞서간 어른이었던 심시선. 그녀가 두 번의 결혼으로 만들어낸 이 독특한 가계의 구성원들은 하와이에서 그녀를 기리며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해나간다. 정세랑이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라고 밝힌 것처럼, 『시선으로부터,』는 한 시대의 여성들에 대한 올곧고 따스한 시선으로부터 비롯된 작품이다.
저자소개
정세랑
저자 : 정세랑
현대문학가>소설가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0년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2017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목소리를 드릴게요』,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재인, 재욱, 재훈』 『보건교사 안은영』이 있다.
목차
시선으로부터,
작가의 말
추천사
김하나(작가)
‘정세랑, 하와이, 그리고 제사’라니, 세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이미 재미는 보장된 셈인데 이 책은 그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다. 귀엽고 웃기는 소재를 충분히 귀엽고 웃기게 쓰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넓고 깊은 성찰을 푹푹 찔러넣는 정세랑 작가의 솜씨는 이제 불가사의한 경지에 올랐다. 결코 잊을 수 없을 사람, 심시선으로부터 뻗어나온 이 강렬한 힘은 나를 책을 읽기 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았다. 아마도 이 힘은 내가 살아가는 내내 태양처럼 뜨겁고 환하게 나를 비춰줄 것이다. 정세랑 작가의 모든 글을 사랑하지만, 그중 가장 사랑하는 것을 꼽으라면 나는 『시선으로부터,』라고 말하겠다.
박상영(소설가)
나에게 정세랑이라는 세 글자는 청량함의 동의어이다. 그녀의 소설은 언제나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정확한 온도로 사랑스러운 인물들의 일대기를 펼쳐나간다.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 역시 마찬가지라 읽는 내내 코끝에 싱그러운 민트향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옆으로 누워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한쪽 팔에 쥐가 나는 줄도 모르고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저린 팔을 주무르며 생각했다. 내 생에 이토록 한국의 현대사를 정통으로 관통하는, 그러면서도 경쾌함과 꼿꼿함을 잃지 않는 인물을 본 적이 있었던가.
김보라(영화감독)
책을 읽으며 무척 행복했다. 이 세계가 끝나지 않기를 바랐고 심시선 집안 모임에 끼어 함께 팬케이크를 먹고 싶었다. 기 센 여자들이 아닌 “기세 좋은 여자들”이 멋진 여성의 제사를 준비하는 여정을 보며 이런 제사라면 얼마든지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선처럼 쓰고, 읽고, 자신의 삶을 산 할머니가 우리 모두에게 있었더라면 한국 사회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이 책은 가부장제에 포섭되지 않은 여성이 가장이 될 때, 가족들이 어떠한 결을 갖고 살아갈지에 대한 기분좋은 전망을 준다. 내게 위로와 계보를 선사한 이 근사한 작품이 페미니즘 영화의 고전 〈안토니아스 라인〉처럼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
책 속으로
지난 세기 여성들의 마음엔 절벽의 풍경이 하나씩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최근에 더욱 하게 되었다. 십 년 전 세상을 뜬 할머니를 깨워, 날마다의 모멸감을 어떻게 견뎠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떻게 가슴이 터져 죽지 않고 웃으면서 일흔아홉까지 살 수 있었느냐고. _15쪽
우윤은 방에 ‘리브 어 리틀Live a little’이라고 멋들어진 필기체로 적힌 포스터를 붙였다. 글씨 아래로 커다란 파도와 점처럼 작게 서핑하는 여자아이가 그려져 있었고, 우윤은 더이상 아이가 아니었지만 마음속에 늘 아픈 아이가 있었으므로 서핑을 해봐야겠다고 결정했던 것이었다. 리브 어 리틀. 난 좀 살아볼 거야. _100~101쪽
우윤은 피곤해서 바로 쓰러질 것만 같았는데, 규림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우윤은 사촌동생이 무척이나 부러웠지만 꼬인 마음을 가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누군가는 건강하게, 좋은 운동신경을 가지고 태어나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뿐이었다.
“아, 무지개.”
졸음에 겨워 기분좋은 얼굴로 지수가 해변 저쪽을 가리켰다.
꽤 선명한 무지개가 보였다. 휴대폰 카메라로 열심히 찍어보더니 아쉬워했다.
“엉망으로 찍히네……”
“그러게. 눈에는 이렇게 잘 보이는데.”
“나 결심했어. 할머니 제사상에 완벽한 무지개 사진을 가져갈 거야.”
“뭐? 그렇게 단순하게 결정하는 거야?”
지수의 결정에 우윤은 깔깔 웃었지만, 속으로 자신도 결정했다.
완벽하게 파도를 탈 거야. 그 파도의 거품을 가져갈 거야. _102쪽
그러니 여러분, 앞으로의 이십 년을 버텨내세요.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모퉁이가 찾아오면 과감히 회전하세요. 매일 그리되 관절을 아끼세요. 아, 지금 그 말에 웃는 사람이 있고 심각해지는 사람이 있군요. 벌써 관절이 시큰거리는 사람도 많지요? 관절은 타고나는 부분이 커서 막 써도 평생 쓰는 경우가 있고 아껴 써도 남아나지 않는 경우가 있어 불공평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모든 면에서 닳아 없어지지 마십시오. _229쪽
“엄마 이제 안 울어?”
해림이 물었다.
“응, 안 울어. 얼른 다시 사러 갔어.”
“왜 그런 걸로 울었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었던 거야, 그 사람이 죽고 없어도.
우윤은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건조한 답을 택했다.
“속상하면 울 수도 있지.”
_296쪽
출판사 서평
2020 올해의 한국문학 1위(알라딘)
2020 올해의 책(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조선일보, 문화일보) 선정
출판계에서 올해 가장 많은 시선을 모은 문학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라면 『시선으로부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시선으로부터,』는 예악판매 기간 중 종합 베스트셀러 1위(알라딘)에 올랐으며 출간 즉시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주요 서점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문학사에 남을 독창적인 인물 심시선 여사를 통해 모계사회에 대한 희망적인 전망을 제시하며 문화계 전반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소설 속 한 문장이 특정 사건과 관련하여 KBS 뉴스에 인용되며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오기도 함으로써, 현실을 대변하는 또다른 언어로서의 문학 작품의 파급력을 몸소 보여주기도 했다. 이경미 감독이 연출하고 정유미, 남주혁 배우가 주연한 넷플릭스의 화제작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자이자 각본가로도 바쁜 한 해를 보낸 정세랑 작가는, 『시선으로부터,』가 각종 조사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현재 대중과 문학계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작가임을 증명했다.
이런 정세랑 작가의 대표작으로 남을 것이 분명한 『시선으로부터,』의 10만 부 발행을 기념해 새해 에디션을 출간한다.
연말연초에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새단장된 새해 에디션은 아직 『시선으로부터,』를 읽어보지 못한 독자들에게 기분좋은 연말 선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작되었다. 또한 이미 『시선으로부터,』의 매력을 확인한 독자들에게는 케이크 위의 따뜻한 촛불처럼 다정한 마음을 소중한 이들에게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
한국문학이 당도한 올곧은 따스함, 정세랑 최신작 장편소설
독창적인 목소리와 세계관으로 구축한 SF소설부터 우리 시대의 현실에 단단히 발 딛고 나아가는 이야기들까지, 폭넓은 작품 세계로 우리에게 늘 새로운 놀라움을 선사했던 정세랑. 『시선으로부터,』는 구상부터 완성까지 5년이 걸린 대작으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피프티 피플』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소설이다. 『시선으로부터,』는 올해 3월 오픈한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서 3개월간 연재되었으며, 〈주간 문학동네〉 연재 후 출간된 첫 소설이기도 하다.
정세랑 작가의 모든 글을 사랑하지만, 그중 가장 사랑하는 것을 꼽으라면 『시선으로부터,』라고 말하겠다.
_김하나(작가)
이토록 한국의 현대사를 정통으로 관통하는, 그러면서도 경쾌함과 꼿꼿함을 잃지 않는 인물을 본 적이 있던가.
_박상영(소설가)
가부장제에 포섭되지 않은 여성이 가장이 될 때, 가족들이 어떠한 결을 갖고 살아갈지에 대한 기분좋은 전망을 준다.
_김보라(영화감독)
한국과 미국에 나뉘어 살고 있는 한 가족이 단 한 번뿐인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와이로 떠난다는 다소 엉뚱한 상황에서 출발하는 『시선으로부터,』는, 현대사의 비극과 이 시대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 세계의 부조리를 관통하며 나아간다. 미술가이자 작가이며 시대를 앞서간 어른이었던 심시선. 그녀가 두 번의 결혼으로 만들어낸 이 독특한 가계의 구성원들은 하와이에서 그녀를 기리며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해나간다.
정세랑이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라고 밝힌 것처럼, 『시선으로부터,』는 한 시대의 여성들에 대한 올곧고 따스한 시선으로부터 비롯된 작품이다. 데뷔 10년,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쳐내면서도 우리를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는 그가, 사랑스러운 소설을 쓰는 작가에서 이제는 사랑을 행사하는 작가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우린 하와이에서 제사를 지낼 거야.”
진행자 심시선씨, 유일하게 제사 문화에 강경한 반대 발언을 하고 계신데요. 본인 사후에도 그럼 제사를 거부하실 건가요?
심시선 그럼요, 죽은 사람 위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봤자 뭐하겠습니까? 사라져야 할 관습입니다.
김행래 바깥 물 좀 드셨다고 그렇게 쉽게 말하는 거 아닙니다. 전통문화를 그리 우습게 여기고 깔보면 안 돼요.
심시선 형식만 남고 마음이 사라지면 고생일 뿐입니다. 그것도 순전 여자들만. 우리 큰딸에게 나 죽고 절대 제사 지낼 생각일랑 말라고 해놨습니다.
진행자 아, 따님에게요? 아드님 있으시잖아요.
심시선 셋째요……? 걔? 걔한테 무슨. 나 죽고 나서 모든 대소사는 큰딸이 알아서 잘할 겁니다.
김행래 몹쓸 언행은 아주 골라서 다 하시는군요.
심시선 선생 생각이랑 내 생각이랑 어느 쪽이 더 오래갈 생각인지는 나중 사람들이 판단하겠지요. _9~10쪽
누구보다 이 세계의 난폭함을 잘 알고 있으면서 약한 이들에게 공감할 줄 알았던 여성. 올곧으면서도 부드럽고, 때로는 과격할 정도로 진보적인 발언으로 세간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했던 심시선 여사의 10주기에, 그녀의 가족들은 단 한 번뿐인 제사를 지내기로 한다. 그것도 그녀가 젊은 시절을 보낸 하와이에서.
“기일 저녁 여덟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 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_83쪽
그들은 그곳에서 특별한 제사를 준비한다. 방법은 각자 자유롭게 그곳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들을 수집해 오는 것.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심시선과 연결된 그들은 그녀에 대한 저마다의 기억을 가지고 하와이를 여행한다.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고, 서로를 배려하고, 아름다운 것을 가만히 지켜볼 줄 아는 사람들이지만 조금씩 아픔과 상처를 지니고 있는 그들은, 심시선을 기리기 위한 여행에서 그녀에게 선물할 물건과 추억을 찾으며 자기 자신을 들여다본다.
“야생에서라면 도태되었을 무른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을 사랑했다.
그 무름을. 순정함을. 슬픔을. 유약함을.”
『시선으로부터,』는 시대의 폭력과 억압 앞에서 순종하지 않았던 심시선과 그에게서 모계로 이어지는 여성 중심의 삼대 이야기이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겪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 심시선과, 20세기의 막바지를 살아낸 시선의 딸 명혜, 명은,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손녀 화수와 우윤. 심시선에게서 뻗어나온 여성들의 삶은 우리에게 가능한 새로운 시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협력업체 사장이 자행한 테러에 움츠러들었던 화수는 세상의 일그러지고 오염된 면을 설명할 언어를 찾고자 한다. 해림은 친구에게 가해진 인종차별 발언에 대신 화를 내다가 괴롭힘을 당했지만 후회하거나 굴하지 않는다. 경아는 무난한 자질을 가지고도 오래 견디는 여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뒤따라오는 여성들에게 힘을 주고자 한다. 바로 심시선이 그러했듯이.
이제 내가 그 아주머니들보다 나이가 많은데, 나는 영영 음식을 못하는 사람으로 남았으니 비척거리는 젊은이가 찾아와도 먹일 것이 없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손맛이 생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무것도 당연히 솟아나진 않는구나 싶고 나는 나대로 젊은이들에게 할 몫을 한 것이면 좋겠다. 낙과 같은 나의 실패와 방황을 양분 삼아 다음 세대가 덜 헤맨다면 그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_299쪽
정세랑이 불러낸 인물들은 인간이 특별할 것 없는 존재로서 다른 존재들과 어우러지는 세상을 희망한다. 까만 고양이를 실수로 밟으면 안 되니 센서등을 달아야 한다고 말하는 난정, 인간만의 미감을 위해 새들이 죽어가고 있는 현실에 분노하는 해림, 꽃목걸이의 면실이 거북이를 죽일 수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있다. “남이 잘못한 것 위주로 기억하는 인간이랑 자신이 잘못한 것 위주로 기억하는 인간. 후자 쪽이 훨씬 낫지”라는 말은 이들을 설명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자신이 잘못한 것 위주로 기억하는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절실하게 통감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위기와 위험을 예민하게 짚어낸다. 유조선 침몰 소식에 새들을 씻기러 가는 지수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는 정세랑의 섬세한 감수성이 가리키는 세상이 멀지만은 않음을 예감할 수 있다.
심시선 여사와 그의 가족들은 부조리와 불합리에 소리낼 만큼 강단 있으면서 세상을 예민하고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다. 연약함은 세상의 빈틈을 날카롭게 감각하고, 빈틈의 존재들은 강단 있는 마음을 나누며 목소리를 획득한다. 정세랑의 세계에서 선함은 강함으로 쓰인다. 선한 의지는 강한 행동을 추동하고, 어떤 존재도 소외시키지 않는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고안해낼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일은 정세랑이 건네주는 선함의 상상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북로그 리뷰 (13)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wl**js9718 | 2020-12-12 | 추천: 0 | 5점 만점에 5점
처음에는 하와이에서 제사를 지내는 내용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과연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까?라는 궁금증과
정세랑 작가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시선으로부터 뻗어 나온 가지들이 다시 시선을 향해 모이는 여정을 담은 이야기. 시선의 10주기를 맞아 시선이 젊은 시절을 보낸 하와이로 떠난 시선의 가족들은 뻔한 제사상이 아니라 조금 특별한 제사상을 준비한다. 하와이에서 시간을 보내며 가장 의미 있는 음식, 물건, 혹은 경험을 올리기로 한다. 제사를 마치 게임처럼 경쟁하는 모습은 우리의 평소 인식과 전혀 다르지만 거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방법이기 때문에.
가족 모두 각자 시선과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그에 맞는 시선의 글과 인물의 사연을 함께 풀어나가 지루함도 덜고 둘만의 추억을 공유 받는 기분이 든다.
시선으로부터,라는 제목을 보고 처음에는 눈과 눈이 마주치는 그 시선을 말하는 줄 알았다. 심시선이라 인물에게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임을 깨달은 건 조금 부끄럽게도 한참 읽고 나서였다. 시선으로부터, 이보다 더 책의 모든 것을 표현할 말이 있을까?
T에서의 학살을 피해 하와이로 도망치듯 떠난 시선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잠깐의 휴식을 보내던 도중 마티아스를 만난다. 예술가라고 소개한 마티아스는 시선을 뮤즈라는 이름의 도구로 사용했다. 시선은 마티아스와 함께 독일로 떠나고 그곳에서도 여전히 자신을 도구로 이용하는 마티아스의 곁에서 살아나간다. 그리고 요제프 리의 도움을 받아 마티아스를 떠나기 직전, 마티아스는 자살한다.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그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그 자신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도 나의 행복, 나의 예술, 나의 사랑이었던 게 분명하다.
이 죽음을 통해 그동안 시선을 착취한 마티아스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것을 견디지 못한 비운의 예술가가 된다. 그리고 시선을 향해 쏟아지는 무수한 말들을 피해 시선은 한국으로 돌아와 그리는 것을 그만둔다. 그 대신 글로써 마음을 표현한다. 절망의 바닥까지 쫓겨났던 시선은 다시 일어나 새로운 세상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용기와 단단한 의지가 책 너머로 읽고 있는 나에게도 느껴졌다.
"심시선 여사 닮았으면 어떻게든 살아남겠지."
곁에서는 난정이 비행 시간이 다른 우윤을 안고 놓질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난정도 명혜의 말에 어느 정도 위안을 얻었다. 우윤이는 약해 보이지만 시선으로부터 뻗어나왔지. 지지 않고 꺾이지 않을 거야. 그걸로 충분할 거야.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우윤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 지수는 기름유출 사건을 도우기 위해 따로 떠난다. 명혜가 지수에게 하는 말과 난정이 우윤을 보며 하는 생각을 보며 '시선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꺾이지 않고 나아갈 것이란 믿음이 얼마나 단단한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 믿음과 용기가 전해졌다. 책을 읽는 내내 실패하고 바닥으로 내쳐졌지만, 끝끝내 다시 일어나 계속해냈던 사람의 힘이 내 안에도 생겨나는 것 같았다. 그 용기를 잊지 않고, 잃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서 해내고 싶다.
시선으로부터. - 정세랑 na**e20816 | 2020-10-12 | 추천: 0 | 5점 만점에 5점
(심)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작가님 다운 여성이 중심이 되는 시트콤 같은 가족 이야기그 안에서도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생태주의에 대한 경고그리고 여성 대상의 범죄를 품고 있다.
그렇다고 무겁지만 않은..^^
각자 개성이 확실하며, 따로 또 같이 가능한 가족물론 그 안에 배려가 있지만..
ㅇ126폭력은 사람의 인격을 조각한다.조각하다가 아예 부숴버리기도 하지만,폭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폭력의 기미를 감지할 수 있게 되는데,그렇게 얻은 감지력을 유용하게 쓰는 사람도 있고절망해 방치해버리는 사람도 있어서 한 가지 결로 말할 수는 없다.
ㅇ178어떤 자살은 가해였다.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그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그 자신이기도 했겠지만그보다도 나의 행복,나의 예술, 나의 사랑이었던 게 분명하다.그가 되살아 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회복하지 못했으면 하는집요한 의지의 실행이었다. 닫기
시선으로부터, gr**e801 | 2020-10-05 | 추천: 0 | 5점 만점에 5점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라는 정세랑 작가님의 말이 인상적이었던 작품입니다.
특히 20세기 여인인 할머니께서 누리지 못했던 삶을 보여드리고 싶었다는 대목에 울컥하네요.
어느 분야에서나 그렇지만, 여성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것입니다. 더군다나 한국전쟁을 겪으며 나라는 피폐하지만 신사고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심시선 할머니는 더욱 더 견디지 못했을듯 합니다.
처음엔 '시선으로부터'라는 타이틀이 눈(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할머니 '시선으로부터'라는 사실도 여러의미를 내포하고 있는것 같아 새롭게 다가옵니다.
여성의,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작품이라는 의미가 더해져 사회에 대한 일침도 이 책의 특별함을 더하고 있으며, 한편의 모노드라마 연극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할머니의 인터뷰 녹취록과 가족의 현재모습을 교차해서 그려낸 스토리라인도 매력적이었네요.
우리 사회의 인간군상을 축소해 놓은 듯한 심시선 할머니 가계도의 다양한 캐릭터가 입체적이고 현실속으로 스며들게 했으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써 나의 삶, 내 어머니의 삶 그리고 그 이전 할머님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다음 세대인 내 아이의 삶도 고민하게 하네요.
중간중간 살며시 미소짓게 만드는 위트와 수십년이 지나도 변하지않는 여성성이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적절히 배합되어 휙휙 읽히는 속도감과는 달리 묵직하게 파문을 남기는 작품이라 추천해봅니다.
20세기든 21세기든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녹록치않았을 여성들의 삶이라는 주제를 다시금 생각해볼수있는 정세랑 작가님의 [시선으로부터,] 응원합니다~
어떤 시선(視線) qu**tz2 | 2020-10-02 | 추천: 0 | 5점 만점에 5점
눈이 가는 길 또는 눈의 방향. ‘시선’이라기에 내가 생각한 건 시선(視線)이었다. 일종의 지향점을 언급하고자 이와 같은 제목을 붙이지 않았을까, 막연히 짐작했던 것이다. 사람 이름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는지라 살짝 당황했다. 제목으로 삼을 정도라면 분명 주인공일 텐데, 이미 모든 상황이 종료됐다는 점도 독특했다. 주인공의 생인 소설이 시작하는 대목에서 이미 끝났다.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이라도 되는 걸까. 이미 떠난 이의 생을 반추하는 소설이라니, 이를 어찌; 받아들이면 좋을지 난감하기도 했다.
정확히는 ‘시선’이라 불린 이의 자손들이 이야기를 이끌었다. 시선은 바람과도 같은 존재였고, 시대 및 사회와의 융화를 모른 채 살았다. 어디에 귀속되길 싫어했던 특성은 유언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흐르는 물 따라 세계를 유랑하길 희망하는 어머니의 바람은 별다른 의심없이 자녀들에 의해 계승됐다. 가끔은 찾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것이야말로 어머니다움임을 그들은 잘 알았다.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던 해에 무슨 이유에선가 제사를 지내기로 마음먹기 전까지는 말이다.
말이 많았다. 이제 와서 제사를 지낸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의아해했고, 꼭 그래야만 하는가도 의문이었다. 많은 식구들이 한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았는데, 계획한 게 남들이 다 지내는 제사가 아니었는지라 가능했다. 어머니가 한 때 생활했던 곳, 하와이로 향하는 모두의 마음이 한결 같지는 않았다. 억지로 따라 나선 것만 같은 모양새도 일부 보였지만, 어쨌건 그들의 기이한 제사는 시작됐다.
혼례는 부모 세대의 것이요, 제례는 자녀 세대의 것이라고 했다. 자녀의 결혼에서 드러나는 건 부모의 재력과 인맥이고, 제례에선 역전이 일어나 자녀 세대의 것이 보인다. 이는 모두가 의식에 그토록 매진하는 까닭이기도 한데, 정작 중요한 마음이 그 과정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시선의 가족은 본질에 집중했다. 저마다 자신이 준비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을 마련하고자 고군분투한다. 여기서 말하는 ‘최고’라 함은 가격이 비싼 무언가가 아니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적 가장 좋아했을 만한 것, 어머니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추억을 쌓아 올렸던 것 등 제3 자가 보았을 땐 눈길조차 가지 않을 수도 있으나 당사자들에겐 한없이 소중한 것이었다. 향긋한 커피 한 잔이, 식으면 의미가 사라지는 도너츠 하나가, 작지만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무지개 사진이, 오랜 망설임 끝에 도전했고 마침내 성공했던 첫 윈드서핑의 파도 거품이 그렇게 의미를 머금었다. 각자의 기억 속에서 어쩌다 한 번씩 떠오르고 흩어졌던 시선은 그 과정에서 집단에게 크나큰 결속력을 제공하는 주체로 우뚝 섰다.
시선은 옛 사람이었지만 깬 사람이기도 했다. 유학이 드물던 시절 독일행을 택했고, 동양인을 향한 차별을 온몸으로 이겨냈으며, 그 과정 하나하나를 잊지 않고 기록했다. 저자는 마치 잉크가 말라 바래기라도 하면 안 된다는 듯 소중한 기억을 조심스레 끄집어 올렸다. 가계도에는 없는 마티아스가 왕왕 등장했다. 그는 폭발적인 예술혼을 지닌 인물로 지금까지도 추앙받고 있었지만 그의 실체를 아는 이는 드물었다. 시선의 가족은 시선의 시선(視線)을 공유했다. 쥐 죽은 듯 참고 견뎌야 했던 날들 덕에 역설적이게도 시선은 완성됐고, 시선의 아이들 또한 탄생할 수 있었다. 마티아스라는 공동의 적 덕에 요제프 리는 시선에게 친절을 베풀었으며 용기 내어 가족을 꾸리기까지 햇다. 사람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 마티아스는 끝내 스스로에게 폭력을 가했지만, 그 폭력의 끝은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이미 모두가 떠나고 없으므로 마티아스와 시선의 죽음에 대해 물고 늘어지는 건 구차한 일로 여겨질 수 있음에도 저자는 시선의 자녀들의 시선을 통해 변명 아닌 변명을 시도한다. 죽음보다 앞서 주목해야 하는 건 삶이다. 시선은 모든 걸 견뎌가며 살아냈으므로 승자다.
시선의 굵직한 삶에 가려진 듯하지만 여성들의 굴곡진 생에 대한 주목도 필요하다. 여성을 향한 직접적인 가해는 아니나 결과적으로 아무도 주목 않았던 피해 여성들의 삶이 그려졌다. 지금도 없다고는 하기 힘든 혼혈, 다문화를 향한 냉기 또한 시선의 자녀들에겐 일상이었다. 얼마나 깨어 있으며 기민하게 반응하느냐가 이번 독서를 좌우했다. 어떤 시선(視線)으로 시선 가계를 바라보느냐를.
시선으로부터 pa**yj01 | 2020-09-30 | 추천: 0 | 5점 만점에 5점 구매
한국과 미국에 살고 있는 한 가족이 제사를 모셔야 한다.
그런데 장소가 하와이라는 설정. 참 특별하고도 재미있다.'
심시선. 그녀는 미술가이자 작가이고, 엄마이자 할머니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20세기를 살았던 여성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어떤 모습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원래 모든 운동은 계단식으로 느는 거야. 계단에 올라서는 순간이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포기하면 안돼"
운동이든 인생이든 크게 보고 포기하지 말라는 거겠지. 최근 드라마 청춘기록이 생각났다.
"네가 열려있는 사람이라 변화에도 적극적인 거겠지. 나, 너 처음 봤을 때부터 확 느꼈는데, 열려있는 사람이란 거.
튼튼하게 활짝 열리는창문이나 공기가 잘 통하는 집처럼."
요즘에 오픈마인드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는데 "열려있다"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다각도에서 생각해보게 한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