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김금용
젊은 아리랑 외
‘너는 한국인이니 고국에 가서 공부해라’
재일교포 1세 부모님 말씀따라
흙먼지 나는 옛고향 길 찾아들었다가
아리랑을 배웠다는 제일교포 2세의 노래를 들으니
토해놓는 가락에 눈물이 씹힌다
한.일간의 우정어린 식사를 앞에 두고
함께 아리랑 노래를 합창하며 손뼉 치지만
우리네 아리랑은 여전히 아프다
용서 없이 사과 없이 잊었다기엔 적절치 않다
충돌이나 시비가 멈춰지지 않는 게 맞다
우리네 부모들은 배고팠고
벚꽃 휘날리듯 사라질 수 없는
절규하며 쌓아 올린 恨더미 속에서
밑동이 잘린 채 복구되지 않는 남북 철조망 앞에서
독한 감자 싹을 키웠을 것이다
생도 죽음도 잔혹한 아름다움이라지만
덧없는 죽음을 향해 내달린 전쟁은
지금도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 여전하니
아리랑은 지금도 목이 쉰다
젊은 K-문화 덕에 세계로 번져나가지만
내 안의 아리랑은
속우물이 깊어 목이 메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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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마지노선
네가 보였어
숨겨놓은 편지처럼 어둠의 냄새가 났지
운동화가 트렁크가 약병이
옷장에서 베란다에서 신발장에서
연이어 튀어나왔어
내 꿈속엔 네가 들어올 수 없다고
내 잠꼬대는 너의 영역이 아니라고
알아들을 수 없다고
표정 없이 돌아서 나갔지 ,
몸의 거리와 마음의 거리는 몇만 킬로 떨어져 있던가
뒷면과 앞면이 동전처럼 그리 다르던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코로나 기간동안 익숙해진 거리두기가
틈을 비집고 웅덩이를 만들었던가
혼자 누운 더블 침대가
깨어있지 않은 꿈속처럼
저수지에 빠진 몸처럼
춥고 휑해서 비 맞은 새처럼 떨었지
꿈은 꿈으로만 끝나는 것이라고
잊으라고 내게 다독이듯 되뇌었지
나사 풀린 달팽이관을 위해서라도
기억은 지워버리는 게 맞겠지
꿈속에선 여전히 젊고 패기 넘쳐
눈물도 흘리고 싸우기도 하니 다행이라고
혼자 꿈풀이를 하는 게 좋겠지
내가 네가 될 수 없어
어디까지 내 안에 두고 있을지 몰라서
마음을 믿는다지만, 몸이 멀어지면
또 어찌 견딜 수 있으려나 몰라서
너 여기 있구나, 내 안에 있구나
식탁 위로 떨어지는
해 질 녘 노을 한 줌을
내 안의 책갈피에 끼어두고
쓰다듬으며 잠들지
꿈속에서라도 따뜻하게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도
춥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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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용 1997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물의 시간이 온다』, 『각을 끌어안다』, 『핏줄은 따스하다, 아프다』, 『넘치는 그늘』, 『광화문쟈콥』 중국어번역시집 『나의 시에게』 외 두 권. 김삿갓문학상, 동국문학상, 펜번역문학상 등. 현, 계간 《시결》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