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문(祝文)의 풀이
제사 때 우리는 지방(紙榜)을 모셔 놓고 축(祝)을 읽는다. 이 지방과 축의 내용을 자세히 알고 모시고 또 읽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시중에 나온 관혼상제에 대하여 쓴 책이나 인터넷에는, 뭉뚱그려 풀어 놓고 있어 한 글자 한 글자의 뜻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이에 대한 개략적인 풀이를 해보기로 한다.
그럼 축문의 예식을 보자. 돌아가신 아버지의 제사 때 읽는 축문이다. 한문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띄어 쓰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선 어구의 풀이가 주된 목적이라 편의상 띄어쓰기로 하였다.
維 歲次 庚辰 五月 ○○朔 十五日○○
孝子 ○○ 敢昭告于
顯考 學生 府君
顯妣 孺人 ○○姓氏 歲序遷易
顯考 諱日復臨 追遠感時 昊天罔極
謹以 淸酌庶羞 恭伸奠獻 尙
饗
축문은 예기(禮記)에 나온 문장을 많이 인용하고, 또 사자(四字)성어로 독축하기 좋게 문장구성이 되어 있다. 그럼 한 자씩 그 뜻을 따져 보자.
維(유): 이 글자는 발어사(發語辭)다. 발어사란 주로 한문에서 써 온 말인데, 현재 어떤 사전에도 표제어로 실려 있지 않아, 일반인들이 정작 쓰면서도 그 정확한 뜻을 모른 경우가 많다.발어사란 말을 시작하기에 앞서 별뜻 없이 내거는 말이다. 우리말로 나타내자면 ‘아, 저, 에 말하자면’ 등의 뜻이다. ‘이어, 오늘’ 등으로 해석하는 데가 있으나 적절치 않다.
유는 발어사이기 때문에 첫머리에 석 자쯤 낮추어서 한 자만 외따로 쓰거나, 위에 예시한 것처럼 본문의 뒷글자와 한 자 띄어 쓴다.
歲次(세차): 해의 차례란 뜻이다. 이 말 다음에 경진년, 을미년 등의 태세(太歲)를 쓰면 된다. 이 축에서는 해의 차례가 경진년이라 뜻이다.
○○朔(삭): ○○에는 그달 초하룻날의 간지(干支)를 쓴다. (왜 초하룻날의 간지를 쓰느냐에 대해서는 졸고 ‘축문의 干支朔에 대하여’를 참조)
十五日○○: ○○에는 그날의 간지를 쓴다.
孝子(효자) ○○: 이때의 효자는 부모를 정성 들여 모시는 아들이란 뜻이 아니다. 여기서의 효자는 제사를 지낼 때, 제주가 부모의 혼백에게 자기를 이르는 일인칭 대명사다. 축문을 읽을 때의 제주를 이르는 말이다. 비문을 새길 때도 아들의 이름 위에 이렇게 적는다.
이 경우의 ‘孝’ 자는 ‘효도 효’자가 아니라, ‘부모상 입을 효’ 자로 읽는다. ‘친상에 복(服)을 입다’의 뜻이다. 부모의 상중에 있는 사람도 역시 효자라고 한다. 어느 젊은이가 아버지가 읽는 축문을 듣고, ‘살았을 때 효도하지 않은 사람은 축문에 뭐라고 써야 하는냐’고 물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청년은 이러한 효자의 뜻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효(孝)’ 자에는 맏이라는 뜻도 있어서, 효자 하면 맏아들이란 뜻이다. 작은아들은 자(子), 큰손자는 효손(孝孫), 작은 손자는 손(孫)이다. 효자 뒤의 ○○에는 제주의 이름을 쓴다.
만약에 맏이가 유고가 있어서 제사를 모실 수 없어 차자가 모신 경우에는,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자(子)’라고 쓴다. 맏이 이름이 갑동(甲童)이고 동생이 을동이라면, ‘甲童有故 將事未得 使子 乙童(갑동유고 장사미득 사자 을동)’이라 쓴다. ‘갑동이 유고가 있어, 할 수 없이 아들 을동으로 하여금 제사를 올립니다’의 뜻이다.
敢昭告于(감소고우): 감히(敢) 밝혀(昭) 누구에게(于) 고한다(告)는 뜻이다. 감히라는 말을 쓴 것은 조상에 대한 겸손의 의미를 담고 있다. 아내에게는 ‘감(敢)’자를 쓰지 않고, 아들에게는 ‘감소(敢昭)’ 두 자를 쓰지 않는다.
顯考(현고): 현은 조상에 대한 높임말 즉 경칭이다. ‘높고 밝은, 존경하는’의 뜻이다. 그래서 현자가 나오면 줄을 바꾸어 위로 한 자 높여 쓴다.
考(고)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뜻한다. 부(父)를 고(考)라 하고 모(母)를 비(妣)라 함은 예기곡례하편(禮記曲禮下編)에 생왈부모(生曰父母)요 사왈고비(死曰考妣)라 한데 근거한 것이다. 그러니 현고(顯考)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높여서 말하는 것이다. ‘존경하는 아버지’라는 말이다. 어머니는 현비(顯妣)라 한다. 妣(비)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가리킨다.
조부는 현조고(顯祖考), 조모는 현조비(顯祖妣), 남편은 현벽(顯辟), 아내는 망실(亡室) 또는 고실(故室), 아들은 망자(亡子), 기타는 친족관계에 따라 쓴다.
서기 1297년 이전에는 皇考, 皇妣(황고, 황비)라 썼는데, 元(원) 나라 황제가 皇(황) 자를 못 쓰게하고 顯(현) 자를 쓰게 하였다.
學生(학생): 이 자리에는 벼슬자리를 쓰는데, 학생은 벼슬 못한 고인에게 쓴다. 벼슬은 못했지만 학문을 닦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處士(처사)라고 써도 된다. 관직을 맡았다면 장관, 도지사, 군수, 교장 등으로 쓰면 된다.
府君(부군): 여기서 府(부) 자는 ‘죽은 조상’을 가리키며, 군(君) 자는 ‘죽은 이에 대한 존칭’을 가리키는 글자다. 그러므로 부군은 ‘조상님’이라는 뜻이다. 宋(송) 나라 때 주자(朱子)가 주자어록(朱子語錄)에 망부(亡父) 또는 망조부(亡祖父)의 존칭으로 쓰도록 한데서 유래하였다.
위에서 풀이한 ‘顯考 學生 府君’은 뒤에 ‘신위(神位)’만 붙이면 지방(紙榜)이 된다. 여기서 지방의 ‘顯考 學生 府君 神位’를 풀이하면, ‘존경하는 아버님 학생이신 조상님 신의 자리’라는 말이 된다.
孺人(유인): 원래는 9품 문무관의 아내 품계인데, 여기서 발전하여 벼슬하지 않은 양반의 아내를 통칭한다. 유인은 고대에 대부(大夫)의 아내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옛날에는 정경부인, 정부인, 숙부인 등을 썼듯이, 지금도 여성의 관직이 있으면 그 직명을 쓰면 되겠다.
○○姓氏: ○○는 유인의 본관을 쓰면 된다. 金海金氏(김해김씨), 安東權氏(안동권씨) 등과 같이 쓰면 된다.
위에서 현고와 현비 두 분을 다 적은 것은 제사에 양위분이 다 같이 오시기 때문이다.
歲序遷易(세서천역): 세서는 해의 순서이고, 천역(遷易)은 두 글자 다 바뀐다는 뜻이다. 곧 세월이 흘렀다는 뜻이다.
顯考(현고): 여기서의 현고(顯考)는 누구의 기제사인가를 밝히는 것이다. 만약 어머니의 기제사면 ‘현비유인전주이씨(顯妣孺人全州李氏)’라 쓴다.
諱日復臨(휘일부림): 휘(諱)는 ‘꺼리다, 피하다, 숨기다’는 뜻이다. 휘(諱) 자는 자호(字號) 부르기를 꺼린다는 뜻에서, 돌아가신 분의 생전의 이름자를 가리키게 되었다. 휘지비지(諱之祕之)란 말은 꺼리어 숨기고 우물쭈물 얼버무려 넘김이란 말인데, 이것이 우리말 흐지부지가 되었다. 諱(휘) 자가 그런 뜻이기 때문에, 죽은 사람의 이름을 휘라고 하고 제삿날을 諱日(휘일)이라 한다. 휘일은 기일(忌日)과 같은 말이다.
부림(復臨)은 ‘다시 부’, ‘임할 림’ 자로 다시 임했다는 뜻이다. 휘일부림은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왔다는 뜻이다. 우리는 여기서 제사는 돌아가신 날에 지내야 함을 알 수 있다. 속설에 제사는 돌아가시기 전날, 산 날에 지낸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허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내와 아랫사람의 기제사에는 ‘망일부지(亡日復至)’라 쓴다. 왜냐하면 휘(諱)는 윗사람의 이름을 피하는데 쓰이기 때문이다.
追遠感時(추원감시): 이때의 遠(원) 자는 단순히 멀다는 뜻이 아니고 ‘조상’이란 뜻이다. 그래서 추원(追遠)은 조상의 미덕을 추모한다는 뜻이다. 추원보본(追遠報本)이란 말이 있다. 조상을 추모하고 그 근본에 보답한다는 말이다.
感(감)은 ‘생각하다, 고맙게 여기다, 은혜를 새겨두다’의 뜻이다. 時(시)는 돌아가신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을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 ‘때[時]’는 살아계실 때 온 힘을 다하여 자식을 돌봐 준 그때를 포함한다. 돌아가신 때를 맞이하여 길러준 은혜에 진정한 마음으로 감동한다는 뜻이다.
昊天罔極(호천망극): 호천은 ‘하늘 호’, ‘하늘 천’ 자이니 하늘이란 말이다. 망극은 없을망, 끝 극 자로 끝이 없다는 뜻이다. 부모의 은혜는 넓고 커서 하늘같이 끝이 없음을 표현한 것이다.
조부모 이상에는 ‘불승영모(不勝永慕 깊이 흠모하는 마음을 이길 수 없나이다)’로 쓰고, 아내에게는 ‘불승비념(不勝悲念 슬픈 마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이라 쓰고, 방계 친족 기타에는 ‘불승감창(不勝感愴 가슴 아픔을 이길 수 없다)’이라 쓴다.
謹以(근이): ‘근이(謹以)’는 ‘삼가’의 뜻이다. 아내와 아랫사람에게는 ‘자이(玆以 이에)’라 쓴다.
淸酌庶羞(청작서수): 청작은 술이다. 예기에 酒曰淸酌(주왈청작)이라 하여 술을 청작이라 한다고 되어 있다. 굳이 맑은 술이란 뜻이 아니다. 서수는 뭇가지 음식이란 뜻이다. 羞(수)는 음식이란 뜻이다. 진수성찬(珍羞盛饌)이란 말의 그 羞(수) 자다. 예기에 군조양수(群鳥養羞)라는 말이 나오는데, 새들이 먹이를 갈무리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청작서수는 술과 음식이란 뜻이다.
恭伸奠獻(공신전헌): 恭(공손하다), 伸(펴다), 奠(제사), 獻(바치는 물건)은 공손하게 제사 음식을 드린다는 뜻이다. 전헌(奠獻)을 바친다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다. 獻(헌)은 ‘바치는 물건’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전헌은 제수(祭需)를 가리킨다. 아내와 아랫사람에게는 ‘신차전의(伸此奠儀 이 제물을 차린다)’라 쓴다.
尙(상) 饗(향): 이 상(尙)을 ‘존숭하다, 높이 받들다’란 뜻으로 해석하는 이가 있으나 그것은 잘못이다. ‘바라다’란 뜻이다. 향(響)은 흠향(歆饗)이란 뜻이다. 흠향은 신이나 조상의 혼령이 제사 음식을 기쁘게 받는다는 말이다. 예부터 흠향을 庶幾來饗(서기내향)이라 했다. 庶幾來饗(서기내향)의 서기(庶幾)는 ‘바라다’란 뜻이다. 그러니 서기내향은 ‘조상님 혼백이 오셔서 歆饗(흠향)하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이다.
그래서 흠향하시라는 존칭어인 향(響) 자는, 높여서 줄을 바꾸어 다음 줄의 상단에 쓴다. 다음 줄의 여유가 없으면 한 칸 띄어서 쓴다.
이상으로 축문의 풀이를 마친다.
♣ 그런데 세상이 바뀌어 제사 문화도 점차 간소화되어 가고 있다. 한문으로 된 축은 젊은 세대는 잘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 성인도 시속을 따른다고 하였다. 들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한문 축을 읽는 것은 이제 고려하여야 할 때가 되었다. 그래서 한글로 된 우리말 축이 보급되고 있다. 한글 축문을 예시한다.
2021년 9월 15일 아들 ○○는 아버님 어머님 신위 앞에 삼가 고하나이다. 아버님께서 별세하신 날을 당하니 추모의 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에 간소한 제수를 드리오니 강림하시와 흠향하시옵소서. |
첫댓글 축문의 풀이 관심을 두고 배웠던 기억을 되살려 어려운 글자와 뜻을 반복하며 읽었습니다.
그리고 한글 축문은 젊은 새대 들에께 참고가 되도록 도움을 주셨네요?
박사님 늘 고맙습니다.
다은 선생님 항상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