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을 열어 보니 이런 글이 보입니다.
충남 아산의 어느 병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원장 선생님이 순회 중이었나 봅니다.
한 외국인노동자가 입원해 있었는데 울고 있더랍니다.
그 이유를 물은즉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 모시러 필리핀을 가야하는데, 비행기 값이 없어서라고.
사연을 들은 원장 선생님은 1백만 원을 주면서 갚으라고 말했답니다.
그러고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외국인이 찾아와 원장선생님을 뵈야 한다고 했답니다.
그가 놓고 간 것은 사진에 보이는 돈과 영문 편지 한 통. 그 편지를 읽은 원장 의사선생님은 감동을 먹고요...
그래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답니다.
오늘 답사 가기 전에 훈훈한 편지 한 통과 시작합니다.
( * 영어 대문자 인쇄체 : 괄호 안의 한글은 졸역 . (?) 부분은 이해 못한 부분임)
May 18. 2024 (5월 18일.2024년)
Doctor, I would like to apologize
If I had just returned the money you lent me because my mother was ill and I was ill ( ? ). I just saved the money I would like to return to you and I'm very sorry.
( 의사 선생님, 사과 말씀 올립니다.
선생님이 빌려주신 그 돈을 진즉 갚았었야 했는데, 저희 어머니와 제가 아프는 바람에.
돌려 드릴려고 모았습니다. 매우 죄송합니다. )
I'm so grateful that I could bury my father with the money you lent me.
( 정말로 감사합니다. 제게 빌려 주신 돈으로 아버님 장례를 잘 치를 수 있었습니다. )
Doctor, I always include you in my prayer because what you did for me was a great help.
( 선생님, 제 기도 속에는 언제나 선생님이 계십니다.
선생님이 제게 해주신 것은 엄청난 도움이었으니까요. )
Thank you very much again and I'm really sorry if I returned the money late.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그리고 정말 죄송합니다. 늦게서야 돌려드리게 된 점을 )
God bless you always doctor.
( 선생님에게 항상 하느님의 가호가 있으시길. )
이런 따뜻한 인정이 민들레 홀씨처럼 세계 만방에 흩어지길 바라면서 오늘 답사길에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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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산 가까이서는 검은등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린다.
배방산성 갔을 적에 들었던 "홀딱 뻐꾹"의 네박자 울음 소리가 애처로운데
오늘 일기예보는 최저 16도 에서 27도까지 올라가는 초여름 날씨라는데...
약속한 10시 10분까지 도마시장 입구버스정류장에서 만나야 한다.
역산해서 차 탈 시간을 정하고 집을 나선다.
10여분 전에 도마시장 입구에 도착한다.
여유가 있어서 옛생각을 하면서 입구의 문을 올려다 본다.
세계 속의 한국임을 과시하듯 각국 언어로 디자인 해놓은 시장입구문....
( 안녕히 가세요. Hellow.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 )
기다리던 시내버스를 타고 이제는 폐역이 되어 버린 원정역(元亭驛) 앞을 지나 간다.
원정동의 원정(元亭)이란 말이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가진 지명일텐데,
백제시대의 군사주둔지의 <亭>을 나타내는 것은 아닌가 하면서 지나간다.
송준길 묘소 1.5km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표지판 뒤로 붉은 점 표시 아래로는 계룡시의 위왕산 (이곳에서는 '우렁이산'이라 부르는 산)이 보이고 그 앞에는 흑석동산성도 보인다.
왼쪽 화살표 방향으로 틀어서 걸어 간다.
논에는 벌써 모내기가 이뤄져 있고,, 한 옆에는 금계국이 노랗게 피어있다. 멀리 마을 입구에 있는 노거수가 보이고..
만보가 일이 있어서 빠지는 바람에 사륜구동이 아닌 3륜차로 변신한 모임이 웬지 허전하다.
원정동 입구에 있는 왕버드나무 아래에는 상석이 있고,
현감을 지낸 월성이씨 성을 가진 사람의 상석이 이제는 길손의 의자가 되어 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왼쪽으로 소 축사속에 웬 벼 못자리가 보인다. 급수 장치도 되어 있고.
현대화된 벼 못자리를 여기에서 본다.
우명동 가는 길로 조금 더 올라가니 왼쪽으로 보이는 논에는 기계모 이앙을 마친 한 켠에 남겨 둔 예비용 모판이 있다.
벼 힌 포기를 떼 내어 사진 찍고 심어 준다. 잘 크거라..
뿌리 부분에는 빈 벼 껍데기를 아직도 매달고 있는 볏모...
벼의 일생이 춘추(春秋)라고 해서 일 년(年,秊)으로 삼았는데.
우리의 역사와 함께 해 온 벼...(禾, 稻 )
청주 소로리 볍씨는 1만3천년도 전이라든가... 세계 최고(最古)의 볍씨라는데.
우리의 먹거리의 대종을 이루는 쌀...
논 건너 편에는 노거수가 큰 바위와 함께 있다. 보배가 가리킨다.
서낭당? 아니면 치성드리는 나무?
송준길 묘소 안내표지판
송준길 묘소 안내판을 만난다. 0.4km. 왼쪽으로 돌아간다. 아마도 남향으로 된 곳이라면 왼쪽 산줄기에 있겠지....
조금 가니 노거수가 보인다. 안내판도 보이고.
마을 입구에 있는 정자나무.... 장승이 있었을 곳이다.
원정동 느티나무 보호수 200년 이상이 되었다고.
보호수 안내판 밑에 자그마한 표석에 "동춘당 송준길의 묘소" 가는 길 표시가 보인다. 서기 2000년 6월 어느 날에 세웠다.
작은 실개천을 건너니 솔밭 사이로 커다란 봉분이 보인다.
위 큰 봉분이 동춘당 송준길 묘소이고, 아래는 큰아들의 묘이다.
안내판을 드려다 본다.
석물과 비석도 들여다 보고...
아래의 큰아들 묘의 문무석 옆의 구멍뚫린 돌도 본다.( 제를 지낼 때 천막용 고리 묶는 돌이다. 사방에 있다.)
동네 발현로 108번지에 있는 기와집
아마도 송준길 묘소와 관련된 집이겠지 하고 추정하고서..
성지기가 앞장서서 대문 안으로 들어 간다. ㅁ자형 옛기와집이다.
헛기침소리 내지만 아무 기척이 없다.
한참 지나서야 나타나는 두 사람. 이야기를 나눈다.
바리재고개 가는 길도 물어보고,, 고갯길이 없어졌다는 말만 듣고.. 집을 나선다.
바릿재, 발우, 鉢(발) ..
<영모재>라는 현판을 발견한다. 재실 겸 관리실로 쓴 기와집이다.
영모재 입구의 흙돌담도 정겨웁고, 돌 절구통도 옛스럽다.
집을 나서자 길 모퉁이에서 만나는 뽕나무 열매 오디가 익어가고 있다. 충청도에서는 오들개라고도 하고.
봄에 누에 치던 시절이 생각난다. 배 고픈데 번데기 얻어 먹던 시절... 오랜만에 보는 오디. 옛추억들..
짐작으로 찾아 나서는 바릿재 고개길, 낮으막한 산등성이 쪽이 증촌으로 가는 길이 있는 고개려니 하고 무작정 나선다.
길 없는 길을 다닌 지가 한 두 번이던가. 사과 과수원 옆으로 난 길 아닌 길로 무작정 올라간다.
사과 과수원 저 멀리 건너 편에 보리로 보이는 밭이 보인다. "보리"라고 말하는 보배..
보릿고개가 생각나는 시절....
길없는 길을 찾아 올라가는 사람들.
나는 맨발로 겁없이 오른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뱀도 있고,, 밤가시도 있고,, 돌길에 미끄러지면서...
산등성이에 올라섰는데 오른쪽으로 아니면 왼쪽으로 망설여진다.
그때 마침 보배가 아래쪽에서 발견한 이정표 표지.
반갑다 둘레산길 안내표식이다.
증촌-> 실밋재-> 월성대 ->서낭당.-> 팔각정 ->버스정류장
오른쪽 길로 산정상을 향해 올라가니 드디어 '팔각정'이 나타난다.
아 , 우리가 목표했던 증촌꽃마을 이정표도 보인다. 0.7Km 거리다.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서낭당도 보고 싶었는데,.....
멀리 건너다 보이는 곳에 흑석동산성도 보이고
붉은 점 아래로 흑석동산성이 보이고.. 우리가 건넜던 원정교 다리도 보인다.
미끄러지면서 내려오니 월성산 등산로 안내판이 낡을대로 낡은 모습으로 있다.
출발점이자 도착점인 셈이니 어찌 아니 반가우랴.
빛바랜 월성산 등산로 안내판 .
퇴색할 대로 퇴색해서 읽기가 어렵다.
종점이라 마침 우리가 타고갈 시내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냇가에 가서 맨발을 씻고 신발로 갈아신고. 버스에 올라탄다.
지난 번 왔을 때 찍었던 증촌꽃마을 안내도 다시 찍어보고서.
庾(곳집 유)씨 집성촌인 증촌 마을 유래비도 있고, 사당도 있고....
부여 성흥산성에서 본 유금필 사당과도 관련된 성씨이다.
자리에 앉고 2- 3분 지나자 버스는 종점을 출발하고 우리는 늦은 점심을 예약한다.
오후 2시경에 도착할 것이라고.. 3명 분을 ... 돌솥찰밥...
거의 정확하게 도착하니 맛있는 점심상이 인심좋게 차려져 있다.
곁들여 듣는 여사장님의 퇴근하는 종업원 이야기는 한 편의 인생극장 실화편이다.
70의 병든 남편의 병구완과 하루 3차례나 알바한다는 종업원의 이야기는 가슴을 저미게 한다.
두번 째 알바를 끝내고 돌아가는 그런 종업원 아주머니에게 지나가는 말로 던진
'웃으면서 출근하고 웃으면서 퇴근하는 삶'을 말한 나를 무색하게 만드는
삶의 속 모습에 가슴이 찡해진다. <성자>가 따로 없구나...
식당 아주머니의 끝없는 인생 이야기를 나중으로 미루고는 식당문을 나선다.
오늘 하루도 무언가 가슴 찡하게 만든 하루였다...
검은등뻐꾸기는 여전히 봄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2024.05.22(수) 카페지기 자부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