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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원해요
240728낮 (대상11:15-19)
<15)삼십 우두머리 중 세 사람이 바위로 내려가서 아둘람 굴 다윗에게 이를 때에 블레셋 군대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16)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은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17)다윗이 갈망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꼬 하매 18)이 세 사람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리고 19)이르되 내 하나님이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이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 하고 그들이 자기 생명도 돌보지 아니하고 이것을 가져왔으므로 그것을 마시기를 원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아멘
한 부인이 사고로 두 팔을 잃은 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은혜를 받으니 감사해서 무언가 봉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두 팔이 없으니 봉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저도 주님의 교회를 위해 일하고 싶은데 팔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때 성령께서 이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네게 이가 있지 않느냐?', '하나님, 이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교회 종을 이 사람 저 사람이 치는데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지 못하더구나. 네가 시간을 맞추어 정성을 다해 네 이로 종 줄을 물고 종을 쳐 봐라.', 감동을 받은 집사님이 "아멘!"하고는 정시에 가서 기도한 후 종 줄을 이로 꽉 물고 종을 쳤습니다.
30분전에 초종을 치고, 정시에 재종을 칩니다.
"하나님, 이 종소리를 듣고 모두 다 일어나 새벽기도에 나오게 해 주세요." 집사님이 이로 줄을 물고치는 댕그랑 댕그랑 하는 종소리에 교인들이 감동을 받고 모두 다 일어나 새벽기도를 하러 왔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부흥되는 것입니다. 새벽예배, 수요예배, 주일 낮예배, 저녁예배 때 마다 초종과 재종을 정확하게 시간에 맞춰 종 줄을 이로 물고 종을 치는 모습에 모두 감동을 받고 교회에 나오니 교회가 부흥이 되었고, 이 집사님도 그 종 줄을 치면서 주님의 축복을 넘치도록 받았다고 합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은 정말로 가슴 뭉클한 감동적인 실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블레셋은 강대국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사막지대입니다. 우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우물물을 마시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강대국 블레셋이 베들레헴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군사들과 함께 베들레헴 근처 르바임 골짜기에 진을 치고 블레셋과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 땅을 빼앗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사실은 물을 마시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어느 장군, 어느 군사가 저 땅으로 쳐들어가 저 땅을 빼앗아 줄까 하는 의미였습니다. 다윗은 그 땅을 빼앗고 말겠다는 꿈을 불태우면서 베들레헴을 바라보며 전략을 짜던 중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세 사람은 목숨을 걸었습니다.
“우리가 모시고 있는 왕이 저 땅의 우물물을 마시고 싶어 하시니 목숨을 걸고 가서 떠다 드리자.”
그리고 물을 길러 가려고 적진을 뚫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물을 떠 왔습니다. 몰래 들어가서 몰래 떠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18절에 <18)이 세 사람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
목숨을 걸고 싸워 물을 떠온 것입니다. 다윗에게 돌아 와서 세 사람이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베들레헴 우물물을 마시고 싶다고 하셔서 물을 길어 왔습니다. 드시지요.”
다윗은 그 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그렇게 사랑하고 자기에게 그렇게 충성하는 신하를 보았습니다. 감동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물을 들고 말했습니다.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고.......”
다윗은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렸습니다. 하나님께 그 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드렸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단을 쌓고 그 위에 부었다는 말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드렸다는 말입니다. 가장 귀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베들레헴을 빼앗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19절에 <19)이르되 내 하나님이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이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하며 그 물을 자기가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부어 드렸습니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모든 군사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훌륭한 지휘관 밑에 훌륭한 장수들입니다.
후에 다윗은 베들레헴 땅을 블레셋으로부터 도로 빼앗아 이스라엘 땅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요즘 세상 참으로 살기 힘듭니다.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하지만 돈 벌기 힘들다고 합니다.
자녀 키우기 참 힘듭니다.
부모 모시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부부가 마음 맞춰 사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생활 쉽지 않습니다.
청년들 일자리 구하기 하늘에 별 따기 입니다. 그냥 알바인생으로 끝날까 걱정이 태산입니다. 그러니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세상과 사회는 더 무섭습니다. 안전하지 않습니다.
갈등과 반목과 편 가름으로 서로 미워하고, 저주합니다.
신앙생활하기도 힘듭니다. 신앙생활이 행복해야 되는데 무거운 짐을 진 것 같습니다. 가정에서도 갈등, 직장에서도 갈등... 긴장에 끈을 놓치 못하는데...교회 와서도 마음이 편하지 못하고, 갈등관계가 생기고....
예수 믿는 것, 교회 다니는 것이 자랑스러워야 하는데...요즈음은 교회가 너무 사회의 지탄을 받으니... 교회 다니는 것이 무슨 죄를 지는 듯... 주눅이 드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에 와서도 감동 받고, 가정에서도 부모님에게 감동 받고, 자녀에게 감동 받고, 남편에게 감동 받고, 부인에게 감동 받고, 직장에서도 감동 받고, 이 사회를 보면서도 감동 받고.... 감동 받으면 마음이 좀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감동 받으면 힘이 좀 날 것 같습니다. 감동 받으면 강팍한 내 마음이 조금은 부드러워지고 너그러워질 것 같습니다.
설문조사를 했더니 현대인들이 제일 원하는 것이 감동이라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누군가에게 감동을 받는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래서 눈가에 촉촉한 눈물이 맺쳐 봤으면 좋겠고, 마음이 북받쳐 올라 가슴이 메어져 봤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를 축복합니다. 이 사회가 이 나라 백성들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가정생활도 감동, 학교생활도 감동, 직장생활도 감동, 교회생활도 감동... 그래서 다하라 요네꼬처럼 두 다리와 한 팔이 없고, 남은 한 팔도 세손가락 밖에 없어도 <사는 것이 황홀하다>고 말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떠할 때 우리가 감동 받고, 감동 줄 수 있을까요?
1. 서로의 마음을 알아줄 때 감동이 있습니다.
다윗은 나라를 통일시키고 싶어 하였습니다. 자기의 고향 베들레헴을 찾고 싶었습니다. 자기가 자라면서 마시던 물을 마시고 싶었습니다. 물을 마시고 싶다고 중얼거렸습니다. 물을 마시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땅을 찾고 싶다는 의미였습니다. 세 사람의 장수는 다윗왕의 심정을 알아주었습니다.
“고향 땅을 얼마나 가고 싶으실까?”
“예루살렘을 빼앗으려면 베들레헴은 길목이니 얼마나 점령하고 싶어 하실까?”
“블레셋은 이스라엘에 가장 큰 원수 나라이니 얼마나 물리치고 싶어 하실까?”
세 사람은 다윗의 마음을 알아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가서 우물물을 떠왔습니다. 이 때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신하들 마음을 알아주었습니다.
세 장수들은 다윗의 마음을 알아주고 다윗은 목숨을 걸고 우물물을 떠온 장수들의 마음을 알아주었습니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 줄 때 우리는 감동합니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줄 때 우리는 살맛이 납니다. 서로를 알아주는 세상, 서로를 알아주고 이해할 때 정말 우리는 눈물 나도록 감동합니다. 누군가 나의 수고를 알아주고, 누군가 나의 고생을 알아주고, 누군가 나의 아픔을 알아 줄 때, 우리는 감동합니다.
성도가 목사의 수고와 어려움을 알아주고, 목사가 성도들의 어려움과 아픔을 알아줄 때 감동합니다. 우리교회는 이런 아름다운 감동들로 가득차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아내는 남편의 수고를 알아주고, 남편은 아내의 어려움을 알아주고, 자녀들은 부모님의 고생을 알아주고, 부모들은 자녀들이 잘 자라줘서 고마워하는 모습이 있다면 감동이 있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더 열심히 살고 싶어지고, 더 열심히 노력하고 싶고, 더 수고하고, 더 사랑하고 아끼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어느 날 혼자 살고 있는 과부집에 강도가 들어갔습니다. 자고 있는 과부를 깨우며 칼을 들이대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꼼짝 말고 두 손 들어!” 과부는 한 손만 들었습니다.
“두 손 들라니까?”
과부가 말했습니다.
“이 쪽 손은 오십 견이라 들 수가 없습니다.”
순간 강도는 칼을 놓고 마주 앉아 오십견 이야기에 들어갔습니다.
“사실은 나도 한쪽 팔이 오십 견이요. 그래서 나도 한쪽 팔이 잘 안 올라가요”
그리고 오십견에 좋은 약, 치료 방법으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아침이 되었습니다. 강도는 강도짓도 잃어버리고 둘은 오십 견을 잘 고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서로의 맘을 알아준다는 것이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어떤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그 목사님이 설교의 약점을 보완하려고 사모님께 "설교 중에 잘못된 점이 있으면 지적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사모님은 설교할 때마다 지적할 것을 메모하며 "사투리를 쓰지 말라!“, ”표정을 밝게 하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지적했습니다.
그 지적을 듣고 목사님은 하나씩 고쳐 갔지만, 이상하게도 강단에 올라서서 사모님을 보기만 하면 기가 팍 죽어서 더 설교를 못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의 설교가 점점 후퇴하는 것을 보고 사모님이 답답해서 기도원에 갔습니다. 기도하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해결책인지를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돌아와서 목사님이 설교할 때 더 이상 메모를 하지 않고 "아멘! 아멘!" 하면서 목사님의 설교를 그냥 받아들였습니다. 그때부터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처럼 사모님이 은혜 받는 모습을 보면서 목사님은 힘을 얻어 더욱 능력 있는 설교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부부가 서로 지적을 하고 못하는 것 교정을 해주면 더 잘하고 발전이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은 이게 함정입니다. 서로에게 상처만 주지요...그보다 잘하는 점 칭찬해주고 격려해주고..수고했다는 말,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더 잘하게 되고, 신뢰도 쌓이고, 힘이 됩니다.
*가수 박지현// 새롭게 하소서 간증... 자녀가 육남매...
다섯째를 가졌을 때, 장모님이 모임에 갔다가 무슨 말을 듣고(무슨 대책으로 아이들을 많이 났냐? 딸을 엄마인 네가 말려야지... ) 와서 밤늦게 자기 부인(딸)에게 전화로 큰소리가 나는 것을 듣게 됨... 부인이 엄마! 이것이 내가 선택한 최고야! 난 이제까지 최고의 것을 선택했고, 다섯째 낳는 것도 내가 최고로 선택한 거야! 그러니 더 이상 뭐라고 말하지 마!...그러자 장모님이 이번에는 사위 얘기를 하는 거예요... 장모님이 사위도 변변찮고, 수입도 그렇고... 자기 남편을 그렇게 이야기 하니까... 부인이 엄마한데...엄마!하고 큰소리를 치더래요.. “이 남자가 얼마나 최고인 줄 알아! 내가 최고로 선택한 남편이야!”
그걸 듣고 있던 박지현 가수가 너무나 감동이었다고 그래요...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래요...
우리가 서로 지적하고, 판단하고, 가볍게 내 뱉는 말 대신 칭찬해주고, 격려하는 말 합시다. 진정성 있는 말 한마디는 감동을 줍니다.
2. 함께 힘을 합해 목표를 이룰 때 감동이 있습니다.
다윗왕과 장수들과 군사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 땅을 정복하고 통일왕국을 이루었습니다. 통일 왕국을 이룬 다윗의 나라는 이스라엘 역사에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온 나라에 기쁨과 축제가 펼쳐졌습니다. 온 나라가 감동의 도가니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때 태극전사들과 온 국민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집에서 거리에서 식당에서 어디서든지 온 국민은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했고, 선수들은 그 힘을 입어 죽기로 그라운드에서 뛰었습니다. 결국 4강까지 오르는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그때는 너와 내가 따로 없었습니다. 목표를 향해 온 국민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감동을 느끼지 않은 국민이 없었습니다.
옛날 영국 런던에 아주 유명한 목사님 세 분이 계셨습니다. 한 분은 그리스도 교회의 목사님인 F.B 마이어라는 분이며, 또 한 분은 유명한 설교가 스펄젼 목사님(침례교), 웨스트민스터 교회의 캠벨 몰간 목사님이십니다.
그런데 세 분 중에서 몰간 목사님이 미국에서 사역하다가 영국으로 돌아와서 웨스트민스터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이어 목사님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몰간 목사님이 미국에 있을 때는 기도하기 좋았는데, 같은 도시에서 일하게 되니깐 그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게 되더라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이어 목사님은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 마음 속에서 이 시기와 질투를 없애 주옵소서." 아무리 기도해도 그 시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마이어 목사님께 이런 음성을 들려 주셨습니다.
"네 기도를 바꾸어라. 질투를 없애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그들의 축복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음성이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스펄전 목사님과 캠벨 몰간 목사님과 그 교회들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나니깐 마음속에 평안과 기쁨과 자유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자기 교회의 공개기도 석상에서 마이어 목사님이 이런 유명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몰간 목사님의 교회를 축복해 주셔서, 사람들이 메워지도록 해주시고, 들어갈 자리가 없거든 우리 교회로 보내 주시옵소서." 이 세분은 아름답게 주를 위해서 사역했으며, 이 세 교회는 다함께 성장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남이 잘되는 것을 축복하지 못하고, 시기하는 일이 많습니다. 시기는 내가 영적으로 무너지는 길입니다. 망하는 길입니다. 시기를 버려야 합니다. 오히려 마이어 목사님처럼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복 받을 큰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기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시기를 극복하고 축복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더 주십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어느 공동체든지 목표가 있고, 사명이 있습니다. 그 목표를 한마음 한뜻이 되어 이룰 때, 감동이고, 행복이고, 보람입니다.(마음 따로, 생각 따로.. 감동이 아니라 슬픔이예요)
*우리교회 자랑 : 못하는 것이 없고, 없는 것이 없는 교회...(20주년기념교회 등.....)
3.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감동입니다.
세 사람이 목숨을 걸고 베들레헴 우물물을 길어 왔습니다. 다윗은 그 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물은 그냥 물이 아닙니다. 부하들이 목숨을 걸고 떠온 물이기에 그 물은 곧 부하들의 생명이요, 피와 같습니다. 이 물을 다윗이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다윗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한 자입니다.
다윗은 시편18편 1-2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1)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다윗이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하는 이 싯구가 얼마나 감동인지 모릅니다.
다윗은 이 물을 하나님께 부어 드리면서 피눈물 나는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하나님! 이 물은 베들레헴 우물물입니다. 하나님께 이 물을 드립니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입니다. 그 땅을 되찾게 하여 주옵소서. 그 땅을 점령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은 다윗이 부어드린 물을 받으시고 베들레헴을 되찾게 해주시고, 통일 왕국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누구보다 사랑했고, 다윗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는 이마다 감동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는 증거들을 보는 모든 사람이 감동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도초중앙교회에 명동산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암에 걸리셨을 때 수술을 권하는 자녀들에게 수술비를 갖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자식들이 돈을 가져 오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돈을 교회에 바쳐서 교회 천장을 새로 하도록 해라. 혹 돈이 남으면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어라. 나는 살 만큼 살았고 또 하나님께서 나를 오라고 하시는데 내가 여기에서 더 오래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수술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또 교우들이 병문안을 오면 문을 닫고 “오지 마세요. 왜 아까운 시간을 제게 쓰십니까? 교회에 가서 충성하고 기도하고 전도하세요. 저는 주님과 함께 이 암을 잘 이겨나갈 테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신 장로님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 장로님이 돌아가시는 날 그 집으로 하늘에서 무지개가 내려왔습니다. 그것을 보고 온 동네 사람들이 “와! 저 장로님은 하늘에서 인정하신 장로님이야. 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실 거야.”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답니다.
영국 미들랜드 지방에는 이상한 두 개의 무덤이 있습니다. 이 무덤 앞에는 오른 손이 없는 여인 동상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이 동상 이야기 때문에 이 동상을 구경하러 오는 관광객이 연일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이 오른 손이 없는 여인 동상 이야기가 있습니다. 회교도들이 성지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군이 출동하여 회교도들과 치열하게 싸울 때였습니다.
십자군병중에 한 병사가 회교도 정복자 살라딘(1138-1193)에게 포로로 잡혔습니다. 그런데 그 병사에게는 사랑하는 애인이 있었습니다. 약혼까지 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담대하게 회교도 장군을 찾아가서 자기 애인을 석방시켜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허사였습니다. 지쳐버린 여인은 일단 집에 가서 기다려 보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사라딘은 그 여인이 얼마나 자기 애인을 사랑하는가 시험하여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의 진심어린 사랑에 감동을 느낍니다. 당신의 간청을 듣고 생각한 결과 당신의 오른손을 잘라 보내면 당신의 애인은 당신 품으로 무사히 돌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편지를 읽고 그 여인은 당장 오른 손을 잘라 종이에 싸서 정복자 사라딘에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 병사는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두 사람의 묘는 나란히 있게 되었고 오른 손 없는 동상이 세워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오른 손을 주었지만,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예수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기까지 한 사랑입니다. 이보다 더 큰 감동이 어디 있습니까? 주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셨다는 것을 믿고, 느낄 수 있다면 날마다 감동의 도가니 속에서 살아도 부족할 것입니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감동이 있고,
함께 힘을 합해 목표를 이루는 감동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감동,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감동, 그 사랑이 우리의 모습이 되는 감동이 있는 세상, 교회,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첫댓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