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내리는 무더운 여름날, 실외 운동이 어려운 이 시기에 스크린골프는 더없이 반가운 피난처가 됩니다. 에어컨 바람 속에서 서너 시간을 골프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으니, 은퇴자들 사이에서는 단연 인기 만점입니다.
비용도 저렴하고, 집 근처에 골프존이 즐비해 접근성도 탁월합니다.
저에게는 ‘일산포럼’이라는 오래된 스크린골프 모임이 있습니다.
고양, 김포, 파주에 거주하는 농협과 농협대학에서 은퇴한 분들이 모여 매주 목요일과 일요일, 정기적으로 라운드를 즐깁니다.
작은 내기를 곁들이지만, 1등과 꼴찌의 차이는 고작 2~3천 원 정도. 부담은 적고, 긴장감은 적당히 유지되니 더없이 유쾌한 시간입니다.
우리가 고집하는 단 하나의 코스
이 모임의 또 하나의 특징은, 늘 같은 가상 골프장—‘마스터즈 아일랜드 CC’만을 고수한다는 점입니다.
난이도는 ‘프로’, 그린 속도는 ‘빠름’으로 설정한 탓에, 아마추어로서 싱글 플레이어가 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다른 골프장들도 시도해 보았지만, 오히려 너무 쉬워져서 흥미가 반감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마스터즈 아일랜드’로 향합니다. 이따금 7자 스코어를 그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8자, 9자를 넘기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골프가 아니라 ‘인생’과의 게임 같습니다.
기적 같은 한 날, 후반 올 파!
오늘은 그야말로 진기한 날이었습니다.
전반 9홀은 평범했지만, 후반 9홀에서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무려 ‘올 파’를 기록한 것입니다.
이 골프장의 후반은 전반보다 난이도가 높습니다. 바람, 벙커, 거리, 그린… 어느 하나도 만만치 않은데,
그 모든 장애물을 피해 9홀 연속 파를 잡아냈다는 건, 지금 다시 생각해도 믿기 힘든 기록입니다.
일산포럼의 역사상 최초이며, 저 스스로도 다시는 반복할 수 없을 것 같은 대기록입니다.
오늘의 아이러니와 유쾌한 반전
더 재미있는 건, 오늘 동반 플레이어인 스와니현과 청마13 두 분 모두 7자를 그린 실력자들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기량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흐름이었습니다.
그래서 골프는 재미있는 운동입니다.
잘 될 때가 있고, 영 엉망인 날도 있고,
기대 없이 치러간 날, 오히려 멋진 결과가 나올 때도 있습니다.
사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려 테니스를 포기해야 할 것 같았는데, 간신히 두 게임을 마치고 스크린골프장으로 향했습니다.
다소 무리를 했기에 큰 기대는 없었지만, 그 무심함이 오히려 결과를 바꿔 놓았는지도 모릅니다.
골프는 인생과 닮았다
인생과 꼭 닮았습니다.
때로는 기대했던 일이 뜻밖의 실패로 돌아오고,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던 날, 상상 이상으로 멋진 일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오늘처럼요.
남은 인생길에도
이런 뜻밖의 행운이 찾아오기를,
오늘의 ‘올 파’처럼 스스로도 놀랄 만한 기적이
불쑥 나타나주기를 조용히 기대해
봅니다.
'박군의심정'은 박태호입니다.
첫댓글 골프는 30대 부터 꾸준히 쳤으니 꽤나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돈과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ㅎㅎ
그동안 싱글, 이글, 홀인원까지 달성하여 이제 더이상 원이 없습니다.
은퇴한 이후에는 비용이 많이 들어 필드 한 번 가는 것이 겁이 납니다.
그래도 스크린골프는 예외입니다. 비용도 이 만원 안밖이면 되고 재미도 필드 못지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비록 후반 9홀 이지만 가장 어려운 코스에서 올 파를 달성했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싱글 골퍼로서 손색이 없다는 사실을 실력으로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자신있게 치니 이런 결과가 오듯이
남은 인생길에서도 이와같은 경사가 찾아오리라 믿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