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 김용욱 (신흥고 2년)
우리 집엔
자정이 다 되어서야 들어오는
머슴 하나 있습니다.
그는
자기를 무척 닮은 아이들의 잠자리를 살펴 주고는
지친 몸을 방바닥에 부립니다.
아침,
그는 덜 깬 눈을 비비며
우리 형제를
학교라는 곳까지 데려다주고
허름한 지갑 속에서
몇 장 안 되는 구겨진 종이돈을
살점처럼 떼어 줍니다.
그리곤
그는 일자리로 가서
개미처럼 밥알을 모으며 땀을 흘립니다.
그러기를 20여 년...
지칠 때도 되었는데
이제는 힘부칠 때도 되었는데
오늘도 그는
작은 체구에 축 처진 어깰 툭툭 털고는
우리에게 주름진 웃음을 보이지만
머슴 생활 너무 힘겹고 서러울 때
우리에게
이따금 들키는 눈물방울
그 속에
파들파들 별처럼 떨고 있는
남은 가족의 눈망울들
그 머슴을
우리는
아버지라 부릅니다.
아버지!
[고교 백일장 수상작]
https://youtu.be/oj5T8VA5YQw
(노을) - 김용욱(신흥고 2년)
청초하게 빛나던 눈방울에
벌건 핏물이 엎치러 졌다
힘들었는지 핏자국을 남겨뒀더군
그 녀석 힘깨나 들었을 거야
얼마나 아플까
밴드 하나 붙여 줄 수 없어
눈을 감아 버렸지
내 뇌신경에 아직도 흐르는 핏물
난 잠이 들어 버렸어
깨어보니 누군가 닦아줬더군
아마 착한 구름이 그런 것 같아
그런데 신기한 건
오늘도 그 녀석
자기 할 일을 잊지 않았어
그리곤 온몸에서 벌건 핏물을 토해 냈지
마치 교훈의 메시지라도 보내듯
구름도 닦다 지쳐 물들어 버리고 말았어.
사람들은 그걸 보곤 지친 심신을 달랬지
예쁘다 했을 거야
그렇게 힘들어하는 그를 보고
웃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어
그런데 내가 틀렸던 것 같아
해는 온종일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어
저녁땐 열심히 일해 지친 그들에게
감동과 축복을 주려 아픈 몸을 불살랐을 거야
고통과 환희 속의 축복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그 감동과 축복을 받아왔어
그 축복으로 매일 아침잠에서
눈을 뜰 수 있었을 거야
그리곤 그 축복의 물결을 보기 위해
낮엔 해처럼 열심히 일했던 거야
그에게 너무 고마운 나머지
이름을 붙여 줬데
그 후로 사람들은 그를
저녁노을이라고 불렀어
노을이라고
[고교백일장 수상작]
김용욱 아버지 글
때는 바야흐로 1999년 초여름이었다.
김용욱 군 어미가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고교 백일장에 나가서 무슨 상인가 받았다고 "일찍 오셔서 축하해주세요!"하는 것이었다.
그날따라 거래처 손님과 약속이 있어서 늦게 귀가했더니 용욱 군은 공부하고 있고, 용욱 군 어미는 하늘님(?)이 오셨는지도 모르고 꿈 속을 날고 있었다.
나는 용욱 군 아비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는 상장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틀 뒤, 용욱 군이 신문을 가져다 책상 위에 놓았다. 신문에는 고교백일장 소식으로 가득했다. 한결같이 분야별 수상자는 여고생들이었다. 유일하게 남학생 한 명이 우수상 명단에 있었다. 김용욱 군이었다.
나는 용욱 군한테,
'모두 여학생에게 상을 주다 보니 아쉬워서 남학생 한 명을 주었는가보다'라고 말했다.
무더운 여름을 무사히 지냈다.
소설小雪이 다가오느라 그러는지 몹시 추운 날이었다.
그날도 용욱이 어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제발!, 오늘은 일찍 들어오시라고 청탁도 아니고 명령이었다. 무슨 일인가 물어도 대답은 아니 하고 아무튼 일찍 오라고만 했다.
용욱이네 외할머님도, 나와 동창생인 처남 내외도 와 있었다. - 속으로, '오늘이 용욱이네 외할머님 생신인가?' 생각했다.
용욱이는 야간 자율학습에 가고, 용욱이 동생이 방에서 들고나오는 것은, 가을에 실시한 고교백일장에서 <노을>이란 시로 용욱이가 받은 상장이었다. 한 번 받기도 어렵다는데 고교백일장에서 "봄ㆍ가을"에 연속으로 수상 소식을 듣고도 나는 정신없이 살았다.
아이엠에프로 사무실이 휘청거렸다.
내가 설계하고 직접 지은 집을 남의 손에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서려고 마치 하숙생처럼 살던 무렵 일이었다.
샛별을 보고 출근하고, 저녁별을 보고 귀가하는, 어느 날은 신문보다 늦게 귀가하는 개미처럼 살던 시절이었다.
나는 이렇게 저렇게 용욱이 형제한테 많이 미안하고 부족한 아비였다.
그러니 용욱이 어미한텐 더 말해 무엇하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여 년 전이다.
2021. 08. 29. 수리산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