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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스님 / “참선은 나의 길” 실천하는 수좌 일선스님 |
원고청탁을 받고 바쁘게 살아가다가 갑자기 나의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항상 옆에 있으면서 보는 도반, 가끔 만나는 도반, 행자도반, 강원도반, 선방에 다닐 때 같이 도를 닦았던 도반, 총무원 등 같이 소임을 보면서 생활하던 도반 등을 생각하면 보고 싶은 도반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리움에 사무쳐 갑자기 차를 몰고 달려가 밤새도록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 중에 가장 보고 싶은 도반들이 행자시절 도반들이며, 도반들 중에 가장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일선스님를 소개하고자 한다. 21여년 전에 해인사 행자실은 그야말로 조그마한 방에 항상 만원이었다. 행자실에 잘 수 있는 인원은 10여명, 그러나 항상 27~29명은 기본이며 많을 때는 36명까지 되었다. 그 시절 대한불교 조계종 큰스님들은(자운 성철 일타 혜암 법전)등 모두 해인사에 다 계셔서 그런지 하루에 보통 3~4명은 해인사로 출가하여 자고 나면 몇 사람이 없어졌다. 다시 또 채워지고 해인사의 모든 후원 일을 행자님 위주로 움직였다. 나무로 밥하는 일, 채공, 국, 간상, 두부 등 해인사에서는 행자님들이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갈 정도로 일이 많았으며 또한 해인사 행자실은 엄격하기로 전국 사찰에서 다 아는 사실이었다. 행자 마지막날까지 흐트러짐없어 성철스님 시봉 힘들지만 사력다해 늘 건강하고 뒷방서 차 한잔 하고파 그런 가운데 우리들끼리는 재미있는 사건들이 정말 많았다. 단오날 운동회 때 강원스님들과 축구를 하면 행자님들은 스님들이라 조심해서 공을 차야 되는데 운동장에 들어서면 행자실의 스트레스, 힘든 과정 등을 다 녹여버린다. 강원스님과 선원스님들은 소위 우리들의 밥이 랄 정도로 스님들을 심하게 다루었고 우리(행자시절도반)들에게 한번도 이겨보지를 못했다. 그 후한은 며칠 지나지 않아 강원 큰방에 불려 들어가 몇 시간씩 꿇어앉아 훈계를 듣고 쓰러지는 행자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래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항상 씩씩했고 행자님들의 개성들이 다 강했으며, 암자순례 때 큰 스님를 찾아뵙고 법문을 들으러 가면 “이번 기수 행자들은 씩씩한 행자들이 많아 큰스님 들이 많이 나오겠다”며 항상 칭찬을 해주었다. 그만큼 개성들이 다 강했었다. 그러다 보니 행자님들 간에 문제들이 많아 행자실에서 대중공사 하는 날이 부지기수였고 죽비 부러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수계 받기 직전에 김행자(관암스님), 마행자(일선스님), 그리고 나를 합쳐 셋이서 반장, 부전장, 경책장 소임을 맡았는데 수계받기 직전이라 조금 느슨해진 행자실 규율을 풀어주기도 했다. 평소에 굉장히 온순하던 일선스님(마행자)이 수계 받는 날까지 흐트러지면 감당하기 힘들다며 다잡아가는 모습에 나와 다른 행자님들이 무척 놀라기까지 하였다. 수계 후 성철스님 시봉을 다른 상좌들은 힘들어서 다 도망갔으나, 원적 직전까지 끝까지 남아서 시봉을 하였으며, 주지를 맡아라 해도 “내가 갈 길은 오로지 참선”이라며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선방에 다니는 올곧은 수좌이다. 그리고 같이 선방에 다니는 원근스님, 씩씩한 본해스님, 성광스님, 항상 행자실의 모범이 되었는데 최근에 몸에 병이 생겨 두 스님 다 힘든 수술을 받아 우리들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많이 좋아져 도반들이 조금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그래도 이런 도반이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심 우 거창포교당 주지 |
첫댓글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