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 선지생도. 선지자. 대언자. 예언. 대언. 대언인가, 예언인가?. 선지 先知 앞일을 미리 앎. / 남보다 일찍 깨달아 앎. / 남보다 먼저 깨달아 아는 사람. 선지생도 先知生徒 , company of the prophets 문자적으로 '선지자의 아들들.' 선지자의 추종자. 선지자의 제자.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들. 또는 선지 학교 학생들(왕하2:3,5,7). 선지 생도는 선지자와 부자(父子) 같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선지자의 임무를 보조하고, 때가 되면 선지자의 직분을 승계하였다. 선지 학교는 사무엘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 [올바른 용어] '선지동산, 선지생도'를 보라. 선지자 先知者 , prophet 앞의 일을 내다보고 예견하는 사람.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그분의 뜻과 섭리를 전하는 대언자(代言者).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에게 전달하는 일(왕하17:13; 렘1:4-10; 겔3:17)과 미래에 이루어질 일에 대해 예언하는(암3:13-15) 두 가지 사역을 수행하였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을 '최초의 선지자'로(창20:7), 모세를 '탁월한 선지자'로 일컬었으나(신18:18), 선지자 직분은 사실상 사무엘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본다. 구약의 선지자는 ① 이사야·예레미야·에스겔·다니엘과 같은 대선지자와 ② 열두 명의 소선지자 등 문서로 기록을 남긴 선지자들이 있는가 하면, ③ 나단·엘리야·엘리사 등 기록을 남기지 않은 선지자들도 있다. 신약에서도 예언의 특징과 형태, 사역을 볼 때 구약의 선지자와 같은 사명을 감당한 자들이 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여 년만에 등장한 세례 요한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선지자 중의 선지자라 할 수 있다(마13:57; 눅13:33). → '선견자'를 보라. 대언자 代言者 , one who defend , advocate 타인을 대신해서 변호하는 자나 타인의 뜻을 대신 전하는 자. 대변자(代辯者). 구약에서는 모세를 대신해 애굽의 바로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할 사명을 맡은 아론에게 사용되었다(출 7:1). 이 말은 히브리어로 ‘나비’인데, 번역하면 ‘선지자’(prophet)다. 따라서 넓은 측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 앞에서 선포한 선지자는 모두 여기 해당된다 할 수 있다(겔 37:4). 한편, 신약에서는 죄인을 위해 세상에 내려오시고, 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서 중보 기도해 주시는 분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요일 2:1). 이에 대해 계시록에서는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계 19:10)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대언자’를 가리키는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는 ‘보혜사’(保惠師)로 번역되기도 하며, 요한복음에서는 여러 차례 ‘성령’으로 번역하고 있다(요 14:16, 26; 15:26; 16:7). 대언자 Prophets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초반부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대신 전한 하나님의 사람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보낸 대사 혹은 대변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아벨은 가인을 위한 대언자였고 아론은 모세의 대언자로서(출7:1) 하나님의 메시지 혹은 모세가 하나님에게서 받은 메시지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신 전하였다. 한편 구약시대의 거룩한 음악가들도 대언하였다(대상25:1). 성경은 거짓으로 꾸며 낸 말을 하는 자들도 그냥 대언자 혹은 거짓 대언자라고 부른다. 참 대언자가 대언할 때에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것 같이 거짓 대언자들은 악한 영으로 충만하였다(삼상18:10). 신약시대의 대언자들 역시 사도들 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대신 전하였는데 그 까닭은 그때까지 기록된 성경 말씀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고전11:4; 14:1, 30 등 참조). 그런 차원에서 유다와 실라는 대언자였고 안디옥 교회에는 대언자와 교사가 있었으며 하나님은 교회에 사도들과 대언자들을 주셨다(고전12:28; 참조 행21:9; 엡2:20; 계18:20). 따라서 완전한 성경 말씀이 주어진 이후에는 더 이상 교회에 대언자가 필요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 구약시대의 대언자들은 주님의 특별 대사로 필요에 따라 세워져서 백성의 의무를 알려 주고 죄를 깨우쳐 주며 회개하고 개혁할 것을 외치고 왕에게 경고하며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였다(왕하17:13; 렘25:4). 그들은 또한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을 도와서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게 하였다. 이 일은 특히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중요했는데 왜냐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참 제사장들이 없었기 때문이다(왕하4:23). 또한 그들은 왕들을 도와서 백성에게 경건과 덕을 추구하게 하였다. 그들은 겸손하고 신실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으며(왕하1:8; 슥13:4; 마3:4) 세상의 기쁨과 사치를 멀리하고(왕하5:15) 종종 학대를 받아 죽임을 당하였지만(마23:34-37; 히11:32-38; 약5:10)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증인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들 중의 어떤 이들은 쟁기질하는 농부였고 소를 모는 목자였다(왕상19:20; 암7:14; 슥13:5). 사무엘 당시에는 기브아, 나욧, 벧엘, 길갈, 여리고 등지에 대언자들의 학교가 있어서 젊은이들이 교육을 받고 경배하는 일을 안내하는 것을 준비하였다(삼상10:5; 19:20; 왕하2:3, 5; 4:38). 여기서 교육을 받은 대언자들의 아들들은 종교 지도자가 되고 영감을 받은 대언자가 되었다. 단 아모스의 경우는 예외이다(암7:14-15). 성경에는 미리암, 드보라, 훌다, 빌립의 네 딸 등과 같은 몇 명의 여대언자도 나온다. 대언자들은 환상과 꿈 등을 통해 직접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았다(민24:2-16; 욜2:28; 행10:11-12; 계1:10-20 비교). 이런 계시를 받을 때에는 하나님의 현현을 보여 주는 권능 있는 일이 나타나기도 하였고 어떤 때에는 그런 계시들이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그들의 마음에 불어넣어졌다. 그들은 이런 메시지를 글이나 말로 왕과 통치자와 제사장들과 백성들에게 거침없이 선포하였고 이때에 기적이나 다른 표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사20:1-6; 렘7:2; 19:1-15; 겔3:10). 구약성경에는 히브리 대언자들이 기록한 16개의 대언서가 있다. 이 중 4개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같은 큰 대언자들의 글이고 나머지 12개는 작은 대언자들의 글이다. 큰 대언자, 작은 대언자라 함은 그들의 능력이 많고 작음을 뜻하지 않고 대언의 분량이 많고 적음을 뜻한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는 큰 대언자이지만 그의 말을 들은 사람은 거의 없었고 요나는 작은 대언자이지만 그의 말에 온 니느웨가 회개하였다. 대언서들의 연대에 대해서는 공통된 의견이 없으며 다음에 나오는 순서는 대략적인 것으로 실제와는 조금 다를 수 있다. 대언자들의 연대 선도 참조(7). 1. 요나,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의 통치 혹은 여로보암 이전의 왕 요아스의 통치 때 2. 요엘, 유다의 웃시야 왕 때, 아모스와 호세아가 등장하기 전에 3. 아모스, 유다 왕 웃시야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의 후반부 4. 호세아, 유다 왕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와 그 이후의 아들 시대 5. 이사야, 유다의 웃시야 왕이 죽을 때부터 요담의 통치 시작부터 므낫세의 통치 때까지 6. 미가, 유다 왕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 그는 이사야와 동시대 인물이었다. 7. 나훔, 히스기야의 통치 후반부와 산헤립의 원정 이후 8. 스바냐, 요시야의 통치 시작부터 니느웨의 멸망까지 9. 예레미야, 유다의 요시야 왕의 제13년부터 살룸, 여호야김, 여고니야, 시드기야의 통치 끝까지 즉 갈대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때까지. 그는 그 뒤 2년이 지나서 이집트에서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10. 하박국, 여호야김의 통치 시작부터 느부갓네살이 오기까지 11. 오바댜, 예루살렘의 멸망과 포로 생활 시작 부분에서부터 이두매아가 황폐하기까지 12. 에스겔, 유다의 여고니야 왕과 함께 바빌론으로 끌려갔다가 주전 590년경에 대언을 시작하여 느부갓네살 밑에서 지내며 예루살렘이 점령된 후까지 대언하였다. 13. 다니엘, 유다의 여호야김 왕의 제4년에 어린 나이에 갈대아로 끌려가 포로 생활이 끝날 때까지 바빌론에서 대언하였다. 14. 학개, 포로들과 함께 주전 536년경에 귀환해서 다리오의 제2년에 대언하였다. 15. 스가랴, 학개와 같은 시대에 유대에서 대언하였다. 16. 말라기,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일하던 시절의 후반부에 주전 416년경에 대언하였다. 구약시대의 모든 대언자가 증언한 그리스도는(눅24:27, 44; 행10:43; 벧전1:10-11) 모든 시대에서 대언자 중에 대언자로서(신18:15-19; 행3:22-24) 자신의 영과 종들을 통해 하나님과 혼의 불멸과 사후 세계 등 사람과 관련된 모든 진리를 계시하셨다.
예언 豫言 , prophecy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된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을 말한다. 이 일은 하나님이 친히 택하신 선지자(예언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신 18:18; 겔 3:17-19; 암 3:7-8). 이때 선지자들은 성령의 역사와 충만함으로 예언했으며(민 12:6; 눅 1:67; 벧후 1:20-21), 그 예언들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딤후 3:16). 구약 예언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추어져 있으며, 신약은 그 예언의 성취를 보여 준다(눅 24:26-27, 44). 하나님께서 그 권위로써(사 41:22-23) 전하신 예언은 반드시 성취될 것으로서(마 5:18; 24:35) 사사로이 풀어서는 안되며(벧후 1:20), 또 인간의 생각과 판단으로 바꿔 가르쳐서도 안된다(계 22:18-19). 한편, 예언에는 경고의 메시지나(출 3:18; 렘 1:16-17), 어떤 일의 예고(창 41:25; 사 42:9), 또는 종교적인 훈계(신 31:19-22; 사 2:3), 도덕적인 권면이나 충고(왕상 1:11-14; 사 3:10-11; 렘 25:4-6), 감추인 것에 대한 계시(왕하 6:12; 사 48:6), 약속(욜 2:31-32; 말 3:1), 축복(창 9:26-27; 민 24:7-9), 위협과 심판(왕상 13:21-22; 욜 3:2), 메시야의 오심(삼하 7:14-16; 사 55:3), 경계(딤전 1:18; 4:14) 등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원어이해 (나바) - 기본 의미는 ‘내뿜다’, ‘발표하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으로 장래사를 말하다’, ‘성령에 의해 대언하다’는 뜻(스 5:1). 때로 ‘(성령의 인도로) 하나님을 찬양하다’는 뜻(삼상 19:20). (호제) - 기본 의미는 ‘보다’(응시하다), ‘인지하다.’ ‘보는 자’(Seer), 즉 이상을 보는 자(삼하 24:11).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예언(렘 14:14). (프로페튜오) - 기본 의미는 ‘미리 말하다.’ 다가올 앞 일을 고지(告知)하거나(막 7:6), 신탁이나 숨겨진 일들을 말하는 예언자(요 8:52), 혹은 복음을 가르치며 선포하는 것 즉 ‘설교하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고전 11:4). [네이버 지식백과] 예언 [豫言, prophecy]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가스펠서브).(수정) 예언 Prophecy 원래 이 말은 대언을 뜻하며 대언 중에서 특히 앞날을 예측하는 것을 예언이라 할 수 있다. 대언 참조. 예언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서 미래를 미리 말하는 것으로 미래에 대해 막연히 좋을 것을 기대하거나 혹은 헛된 신탁을 받는 일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러므로 현대 교회에서 횡행하는 개인의 길흉에 관한 예언은 성경의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 참된 예언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나오며 또한 대언자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하나님에게서 나왔음을 보여 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참된 예언에는 다음의 특징이 있다. (1)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합당한 시간에 공포된다. (2) 일어나는 사건이 정확하게 상세하게 예측되어야 한다. (3) 사람의 명철이나 지혜로 알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4)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전달해야 한다. 성경의 예언들은 실제로 사건들이 발생하기 수세기 전에 예언되었으며 그 당시에는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었고 그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은 사건이나 사람들의 역사와 성격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예언들은 정확하게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십자가 처형과 유대인들의 흩어짐과 보존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성경의 예언은 대규모의 예언으로서 가장 초기의 예언이 세상 역사의 끝에까지 이르는 엄청난 규모를 보이고 있다. 물론 이런 예언들은 점진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시대에서 시대로 넘어가면서 발전하였고 같은 주제를 여러 사람이 예언하였으며 심지어 그들은 자기들이 예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다(벧전1:10-11). 따라서 예언은 하나님의 일이며 단지 우리 눈에 놀라울 뿐이다. 대언자들의 기록에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들이 있으며 기도하며 연구할 때에 이런 부분들이 드러날 것이다. 한편 지금까지 성취되지 않은 예언들 특히 우리 주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된 예언들은 곧 그분께서 오실 때에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이다.
대언 代言 남을 대신하여 말함.
말씀 대언 -代言 , a reading by proxy , a preaching by proxy 공예배시에 회중을 대표하여 지정된 성경 말씀을 낭독하거나, 그 말씀에 기초하여 강론(설교)하는 것을 가리킨다. 대언 Prophecy 이 단어와 대언자(prophet)는 성경에 500회 이상 나오며 성경 기록 그 자체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대영어사전에서 이 단어의 주된 의미가 ‘예언하다’이므로 기존의 우리말 성경은 이 단어들을 앞날을 예견하는 ‘예언’과 ‘선지자’로 번역했다. 그러나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남의 말을 대신 전한다’는 ‘대언’(代言)이며 성경의 용례 역시 전적으로 이것을 가리킨다(출7:1; 겔37:4; 계19:10). 예수님은 아벨을 가리켜 최초의 대언자 즉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한 자라고 하심으로써 이 사실을 확증하셨는데(눅11:50-51) 실로 그는 가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고 그 결과 박해를 받아 죽게 되었으며 결코 앞날을 예측한 선지자가 아니었다. 이런 차원에서 아브라함도 대언자라 불린다(창20:7). 구약시대의 대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임할 때에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라는 선언과 함께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주의 이름으로 대언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대언자를 죽이라고 명령하셨다(신18:22). 이와 같이 대언자의 책무는 엄청났으며 구약시대 유다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의 패망에는 거짓 대언자들의 역할이 지대했다. 거짓 대언자 참조. 한편 성경 기록 자체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대언자들이 받은 그대로 기록한 것이다(벧후1:20-21). 기존의 우리말 성경이 이처럼 중요한 단어를 고린도전서 12-14장 등에서 선지자나 예언 등으로 번역했기 때문에 교회 내에 심각한 영적 선물(은사) 문제가 일어나고 기복신앙이 널리 퍼져 많은 교인들이 입시, 입사, 이사 때마다 예언기도 받으러 기도원의 점쟁이들을 찾아다니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신약시대 초기에도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대언자들을 사용하셔서 말씀을 전해주셨지만 그것은 대언의 말씀이지 결코 예언의 말씀이 아니다. 구약 대언자들의 말씀 중 여러 부분이 미래를 다루므로 대언에 예언의 의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언이라는 말은 이미 그 의미도 다 포함하고 있다. 사실 구약시대에도 이런 문제가 있어서 처음에는 선견자(seer)라는 호칭이 있었으나 후에는 대언자로 바뀌었다(삼상9:9). 이런 선견자야말로 ‘앞날을 내다보는 사람’으로 ‘선지자’와 같은 말이다. 그러므로 이런 구절에서 대언자를 선지자로 번역하면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예언, 선견자 참조. 대언인가, 예언인가? 성도들이 성경을 성경으로 풀려면 성경 번역시 중요 용어를 반드시 일관성 있게 번역해서 용어색인(concordance) 기능이 되게 해야 한다. 미국의 성도들이 성경대로 믿으며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에게 스트롱(Strong)이나 영(Young)이 만든 용어색인이 있어 누구라도 제대로 성경을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이 어떤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는가를 살펴보려면 용어색인을 이용하여 그 단어의 용례를 처음부터 살펴보면 된다. 그런데 불행히 개역성경은 이러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예로 ‘prophecy’ 혹은 ‘prophet’이라는 단어를 들 수 있다. 이 단어들은 성경에 500회 이상 나오며 성경 기록 그 자체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대 영어사전을 살펴보면 이 단어의 주된 의미가 ‘예언하다’이므로 개역성경의 번역자들은 이것들을 앞날을 예견하는 ‘예언’, ‘선지자’ 등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남의 말을 대신 전한다’는 ‘대언’(代言)이며 성경의 용례 역시 전적으로 이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심지어 개역성경도 출애굽기 7장 1절, 에스겔 37장 4절, 계시록 19장 10절 등 10 구절에서는 부득이 대언으로 바르게 번역했다. 개역: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출7:1-2) 개역: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겔37:4) 개역: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계19:10) 누가복음 11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신다. 흠정역: 이로써 창세로부터 흘린 모든 대언자들의 피를 이 세대에게 요구하리니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은 사가랴의 피까지라(눅11:50-51). 예수님께서는 아벨을 가리켜 최초의 대언자라고 하신다. 다시 말해 아벨은 하나님의 말씀을 최초로 대언한 자라는 말이다. 그러면 그가 누구에게 대언했는가? 그는 가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고 그 결과 박해를 받아 죽게 되었다. 이런 구절에서 개역성경처럼 아벨을 ‘선지자’라고 하면 말이 되겠는가? 아브라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창세기 20장에는 처음으로 ‘대언자’라는 단어가 나온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를 취하고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런 말씀을 주신다. 흠정역: 그러므로 이제 그 남자(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가 대언자이므로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만일 네가 그녀를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모든 것이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창20:7). 여기에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대언자’가 되어 아비멜렉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 내용이 나온다. 앞날을 예견한다는 의미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사실 구약시대의 대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임할 때에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라는 선언과 함께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선포했다. 그들이 이런 선언을 할 때에는 평상시 입에 올리기 어려운 ‘여호와’(영어의 LORD)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까지 자기들의 메시지가 주님의 말씀임을 확증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주’(LORD)의 이름으로 대언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대언자를 죽이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흠정역: 만일 대언자가 주의 이름으로 말하는데 그 일이 뒤따라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성취되지도 아니하면 그것은 주께서 말씀하지 아니하신 것이요, 오직 그 대언자가 자기 뜻대로 그것을 말하였나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신18:22). 이와 같이 대언자의 책무는 엄청났으며 특히 구약시대 유다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의 패망에는 거짓 대언자들의 역할이 지대했다. 한편 성경 기록 자체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대언자들이 받은 그대로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다음 말씀처럼 성경 기록은 대언인 것이다. 흠정역: 성경 기록의 대언 중 어떤 것도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벧후1:20-21). 이처럼 성경은 분명히 성경 기록 그 자체가 대언임을 보여 주지만 개역성경으로는 도저히 이것을 알 길이 없다. 개역: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여기서 개역성경이 ‘예언’으로 번역한 단어 역시 앞날을 예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대언으로 주신 말씀을 뜻한다. 앞 뒤 문맥이 분명하지 않은가? 이처럼 중요한 단어를 ‘선지자’나 ‘예언’ 등으로 번역했기 때문에 한국 교회 내에서도 고린도 교회의 은사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하여 많은 교인들이 입시, 입사, 이사 때마다 예언기도 받으러 기도원의 점쟁이들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신약시대에도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대언자들을 사용하셔서 말씀을 전해주셨는데 그것은 대언의 말씀이지 결코 예언의 말씀이 아니다. 그러나 개역성경은 고전12-14장의 대언, 대언자를 다 예언, 선지자로 번역하여 기복무속신앙을 부추기고 있다. 구약의 대언자들의 말씀 중 여러 부분이 미래를 다루므로 대언에 예언의 의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언이라는 말은 이미 그 의미도 다 포함하고 있다. 사실 구약시대에도 이런 문제가 있어서 처음에는 ‘선견자’(seer)라는 호칭이 있었으나 후에는 ‘대언자’로 바뀌었다. 흠정역: (예전에 이스라엘에서는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여쭈려 할 때에 이같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선견자(seer)에게로 가자, 하였더니 지금 대언자(prophet)라 부르는 사람을 예전에는 선견자라 불렀더라)(삼상9:9). 여기 나오는 선견자야말로 ‘앞날을 내다보는 사람’으로 ‘선지자’와 같은 말이다. 그러므로 이런 구절에서 대언자를 ‘선지자’로 번역하면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게 된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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