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 서울서 뉴욕까지 순간이동…양자역학에선 가능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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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 토대 만든 슈뢰딩거 탄생 130주년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이 남긴 말이다. 가까이서 보는지, 멀리서 보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비단 인간사만은 아니다. 자연의 일도 다르지 않다. 먼 우주나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세계(거시계), 티끌보다 작은 입자가 지배하는 세계(미시계)엔 서로 다른 법칙이 적용된다. 아인슈타인조차 눈 감는 순간까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양자역학'은 바로 이 미시의 세계를 설명하는 물리학이다. 점묘화는 한 발 떨어져 보면 한 폭의 멋진 그림이 되지만, 바짝 다가가 보면 여러 개의 점들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고전역학은 에너지가 연속적이라고 봤지만 아주 작은 물리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은 에너지가 수많은 점들로 띄엄띄엄 존재한다고 봤다. 이 때문에 고전역학은 행성의 공전이나 주변 사물의 움직임은 설명해도 빛의 성질과 같은 불연속적인 알갱이의 세계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래서 탄생한 게 양자역학이다. 1900년 가을, 당시 42세였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빛에너지는 연속적이지 않고 덩어리로 돼 있다"며 '양자화된 세상'을 처음 이야기했다. 미국 특허청장 찰스 듀얼이 "이제 발명될 수 있는 것은 모두 발명됐다"고 호언장담했다고 전해질 정도로 인간의 지적 자만이 정점에 달했을 때였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양자역학의 등장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송두리째 바꿔놨고, 기술 발전이 이 같은 패러다임(세계관) 변화를 뒤쫓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8월 12일은 양자역학의 토대를 닦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태어난 지 130주년이 되는 날이다. 과학자들이 그토록 어렵다고 하는 양자역학이 무엇인지, 양자역학이 첨단 기술과 만나 가져올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들여다봤다.
양자역학을 모르는 사람도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실험이 있다. 바로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이다. 고양이 한 마리가 밀폐된 상자 안에 들어 있다. 상자 속에는 1시간 안에 50% 확률로 붕괴되는 방사선 원소와 청산가리를 담은 병이 있다. 방사성 원소가 붕괴되면 청산가리 병이 깨져 고양이는 죽는다. 반대로 붕괴되지 않으면 병은 그대로 있고 고양이도 산다. 1시간 뒤 고양이는 살았을까, 죽었을까.
고전역학에 따르면 상자를 열지 않아도 고양이는 살았거나 죽었거나 둘 중 하나다. 관찰자가 모를 뿐 고양이의 운명은 이미 100% 결정됐다. 양자역학의 관점은 다르다. 상자를 열기 전 고양이는 50% 살아있기도 하고, 50% 죽어있기도 한 상태로 존재한다. 관찰자가 상자를 여는 순간 공존하던 두 상태가 깨지면서 하나로 결정될 뿐 그전까지 삶과 죽음이 '중첩'돼 있다.
슈뢰딩거가 이 실험을 고안한 이유는 "세상이 확률로 존재한다"고 봤던 양자역학의 해석(코펜하겐 해석)을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닐스 보어를 중심으로 정립된 코펜하겐 해석은 확률론적 세계와 불확정성의 원리를 기본으로 했다. 이 해석에 따르면 빛의 최소 단위인 광자(光子)는 실험 속 고양이와 같다. 때론 물결이나 소리처럼 흐르는 '파동'이지만, 때론 모래알처럼 멈춰 있는 '입자'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떠다니면서 이곳저곳에 동시에 존재한다. A란 장소에 있을 수도 있고, B란 장소에 있을 수도 있다. 누군가 관찰하는 순간 A, B 중 하나로 확정될 뿐 그전까지는 오로지 확률로 존재한다는 얘기다.
보어를 공격한 것은 슈뢰딩거만이 아니었다. 아인슈타인도 죽기 전까지 공개적으로 양자역학의 해석에 의문을 품었다. 특히 '양자 얽힘'이란 현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자 얽힘이란 두 개의 입자가 강한 상관성을 가지면 아무리 멀리 떨어뜨려놔도 한쪽이 반응하면 다른 한쪽도 즉각 반응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얽혀 있는 한 쌍의 전자는 하나가 위(+)로 회전하면 다른 하나는 아래(-)로 회전하는 특성을 갖는다. 각 전자는 위아래 중 어느 쪽으로 돌지 모르는 '중첩' 상태지만, 어느 하나가 한 방향으로 확정되면 다른 전자도 반대 방향으로 확정된다. 두 입자를 은하 반대편에 갈라 놓아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최근 일론 머스크가 구상 중인 초고속 진공 열차 '하이퍼루프'를 타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16분이면 갈 수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아직 이론상이기는 하지만 공기저항이 거의 없이 달리는 하이퍼루프 특성상 음속에 가까운 시속 1200㎞ 이상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의 세계는 이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의 순간이동이 이야기되는 공간이다. 영화 '스타워즈'나 '스타트랙' 등에 나온 것처럼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은하계 사이의 순간이동도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몇 분의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서울에서 워싱턴, 뉴욕, 두바이 등 원하는 곳 어디든지 순간이동할 수 있다. 이때 이동은 물체가 실제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물체의 정보가 이동하는 것이다. 즉 순간이동을 하려면 인간 같은 생물체의 세포를 나눠서 순간이동을 시킨 후 다시 세포를 모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기술로는 한두 개 원자를 옮기는 것도 어려운 일이어서 인간의 순간이동은 아직 '꿈의 기술'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빛보다 빠른 통신은 불가능하지만 인간이 빛의 성질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교과서 속 양자역학이 빠르게 현실의 기술로 변모하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양자통신과 양자컴퓨터다. 기존 디지털컴퓨터의 정보 단위인 '비트'는 0이나 1 중 하나로만 존재하지만, 양자 컴퓨터의 '큐비트(양자 비트)'는 0이 될 수도 있고 1이 될 수도 있는 중첩 상태다. 동시에 두 가지로 존재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로 결정됐을 때보다 조합 가능한 경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문제는 이 같은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기존 디지털 통신에서 사용되는 암호가 순식간에 풀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모든 암호를 풀 수 있는 양자컴퓨터에 맞서 어떤 해킹도 막아낼 수 있는 양자암호통신을 상용화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김재완 교수는 "양자컴퓨터는 기존 암호 방식을 무너뜨릴 수 있지만, 양자암호를 쓰면 도·감청 시도를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에 방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양자암호통신 기술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 선두주자는 중국이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양자통신위성 '묵자호를 쏘아 올린 데 이어 올해는 묵자호를 이용해 1200㎞ 떨어진 두 개의 지상관측소에 같은 양자 정보를 전송해 그 결과를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장거리 양자 얽힘 실험에 성공해 지구 어디서든 양자통신을 할 수 있는 시대를 최전방에서 앞당기고 있는 것. 안도열 교수는 "우리도 SKT, KT 등 민영통신사를 중심으로 한 연구가 진전이 있으나 정부가 연간 1조원 이상을 투자하는 미국 중국 일본 등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고 말했다.
■ 아무도 예측못하는 난수 생성기로 비밀번호 안전성 높여
알쏭달쏭한 양자역학은 알게 모르게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전자제품의 필수 부품인 반도체는 양자역학만으로 설명이 가능한 현상이다. 레이저는 양자역학을 응용해 아주 짧은 전자기파를 증폭시킨다. 전기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현상 역시 고전물리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사물인터넷(IoT)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최근 양자역학은 '양자난수생성기'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IoT는 여러 가전 제품이 서로 연결돼 있음을 의미한다. 삶이 편리해질 수 있지만 해킹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인공지능 TV나 냉장고, 세탁기가 해킹을 당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개인정보가 빠져나가는 것뿐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난수는 IoT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불규칙한 숫자를 의미하는 난수는 암호와 같은 보안 시스템을 비롯해 게임, 금융거래 등에 폭넓게 사용된다. 문제는 현재 많은 전자기기가 사용하는 난수가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아무리 불규칙적이라고 하지만 특정 '알고리즘'이 있기 때문에 이를 파악하면 난수 해킹이 가능하다. 연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하지만 성능이 뛰어난 컴퓨터를 활용하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예측 가능한 난수는 더 이상 난수가 아니다. 과학자들은 난수 생성에 양자역학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양자난수는 사람이 만들어낸 알고리즘이 아니라 자연에서 발생하는 '특정 현상'을 이용한다. 광자를 활용하는 양자난수생성기가 대표적이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빛은 작은 알갱이인 '광자'로 이뤄져 있다. 광자가 거울에 반사될 경우에만 숫자를 넣어 난수를 만들어낸다.
지난해 11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세계 벤처 경진대회에서 전 세계 2600여 개의 스타트업을 누르고 최고상을 받은 벤처기업 '이와이엘'은 방사성 동위원소가 붕괴되는 시간을 측정해 난수를 생성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방사성 동위원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입자들이 방출되는데, 이 시간을 측정해 난수를 생성한다. 백정현 이와이엘 상무는 "인체에 무해한 방사성 동위원소는 이미 화재감지기 등에서 활용하고 있다"며 "동위원소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숫자로 전환해 난수를 만들면 해킹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윤진 기자 / 원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