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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하느님의 말씀] 우리를 사들이시고 나눠 주시는 주님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요한 6,5)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심에 앞서 주님께서 제자 필립보에게 던지신 질문입니다. 얼핏 보기에 설화적 상황에 딱히 이질적이지 않은 질문이지만, 분명 곱씹어 볼 요소 하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 피조물을 상대로 주권을 가지신 분께서 굳이 빵을 사들이셔야 하는가요? 모든 것이 당신 것인데 일부러 사들이신다는 표현으로 제자를 시험하신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사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아고라조’는 사전적 의미로 “탁 트인 장소”를 뜻하는 ‘아고라’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아고라는 정치, 경제, 종교적 차원에서 사람들을 모아들이는 도시의 중심을 차지했습니다. 시민들은 아고라에서 정치적 문제를 토론하고 경제 활동을 수행했으며 도시의 수호신에게 희생제를 바쳤습니다. 이 시민들의 행위는 일련의 ‘전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해당 의미는 다른 영역들에서도 통용되지만, 특별히 ‘사다’라는 행위를 포함한 경제적 활동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땅을 파면 돈이 나오냐’는 말이 있듯이, 경제 활동을 위해 아고라에 들어서는 이들은 돈 또는 재화를 자기가 피땀으로 마련해 와야만 합니다. 또 준비해 온 것들로 사람들과 흥정을 하며 의견 차이를 조율하거나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한 싸움을 벌이기도 합니다. 돈 또는 재화를 훔치려는 이들도 있으니, 그것을 방어하기 위한 긴장과 통제가 요구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시기 위해 벌이신 전투는 무엇일까요? 당신께서 수행하신 십자가 상 제사입니다. 당신의 몸과 피로 온 인류의 죗값을 지불하신 사건, 그로써 우리 모두를 당신의 몸으로 사들이시고 당신 것으로 삼아주시는 성체성사입니다. 비록 오천 명을 먹이시는 자리에서 십자가 사건이 곧이곧대로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이 기적 자체가 후에 이뤄질 주님의 제사를 가리키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성경은 ‘아이’가 기적의 단초인 보리 빵과 물고기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사람이 어른이 되며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잃게 되는 순수한 모습을 간직한 아이는 하느님께서 이루실 인류의 정화를 가늠케 합니다. 더 나아가, 아이는 오천 명에 달하는 장정에 비해서 지극히 미소한 존재로서 작은이를 상징합니다. 이 작은이가 지닌 5개의 빵과 2마리의 물고기로 주님께서 기적을 완수하심은 1차적으로 하느님이시지만 섬기는 이로서 작은이가 되셨고 그러한 당신 몸을 희생 제물로 바치시어 이루신 구원의 제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또 한편으로, 작은이의 존재는 사람들 가운데 작은이들, 게다가 작은이들 가운데 작은이인 죄인조차도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구원을 희망하게 합니다.(5+2=7 세상 창조가 이루어진 날 수) 오천 명이 먹고 나서 남은 것을 모으니 열 두 광주리를 채웠다는 이야기도 주님의 십자가 상 제사의 구원 효과를 기대하게 합니다. 하느님 백성 이스라엘이 열 두 지파로 세워졌듯이, 온 인류는 주님의 성체성사의 신비 하에 버려지는 것 없이 모아들여져 주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창조될 수 있는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주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 상 제사로 당신을 따르는 이들을 사들이십니다. 주님께서 사들이신 그리스도인들은, 아이가 지닌 빵과 물고기가 무한히 늘어나 사람들에게 주어졌듯이, 온 세상을 향해 나누어지게 됩니다. 이 은총이 매일의 성찬례를 통해 주어지고 있습니다. 성찬례에서 당신 몸과 피로 성변화된 빵과 포도주를 받아먹음으로써 우리는 주님과 한 몸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주님과 한 몸을 이루게 된 우리는 세상에 파견되어 주님께서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사들이시기 위한 양식으로 활용됩니다. 이천년 전에 벌어진 십자가 상 제사에 우리 역시 참여하기를 초대받고 있는 셈입니다.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사들이시기 위해 십자가 상에서 당신 몸값을 치르시는 전투를 치르셨단 믿음 안에서 반성해봅니다. 내 나름의 전투로 벌어들인 내 삶의 귀중한 것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다른 이들과 나누고 있는지요? 언제나 무상으로, 은총으로 주어지고 있는 주님 전투의 공로에 감사하며 우리 역시 성체성사의 신비를 뒤따르는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르코와 함께 떠나는 복음 여행]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마르 12,44)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지 사흘째 되는 날, 예루살렘 성전으로 나아가신 예수님 앞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 그리고 원로들이 다가와 말합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또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마르 11,28)라고 따집니다. 아마도 전날 성전에서 장사하던 이들과 환전하는 이들의 자리를 둘러엎으셨던 사건을 빌미로 예수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추궁하는 것 같습니다.(마르 11,15-19 참조)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세례를 베푼 것은 누구의 권한이냐고 되물으십니다. 그들은 요한을 참 예언자로 여기던 군중들이 두려워 제대로 답변을 내놓지 못하였고, 예수님께서도 그들에게 굳이 자신의 권한이 어디에서 오는지 말할 필요가 없음을 피력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마르 12,1-9)를 통해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포도밭에서 일하는 소작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마치 그 포도밭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음을 고발하십니다. 예수님의 비유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던 그들은 예수님을 붙잡으려 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 황제에게 세금을 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로 시비를 걸어옵니다. 이러한 그들의 위선을 간파하신 예수님께서는 데나리온에 그려진 초상에 빗대어 카이사르의 것, 곧 황제에게 바치는 것과 하느님의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임을 분명하게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 이번에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찾아와 부활에 관한 논쟁을 벌입니다. 이때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질책하시며 부활의 참된 의미를 설명해 주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반대하는 모든 이들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잘못된 그들의 생각을 바로잡기 위해 갖은 애를 쓰십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계신 예수님의 눈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한 여인의 모습이 들어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고받는 왁자지껄한 소리 때문에 정신이 없었을 법한데,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렙톤 두 닢, 곧 콰드란스 한 닢을 헌금함에 넣고 있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십니다. 당시 1콰드란스가 하루 품삯인 1데나리온의 1/64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던 점을 생각할 때, 과부는 정말 작은 액수를 봉헌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까이 부르시어 말씀하십니다. 그 여인이 봉헌한 콰드란스 한 닢이 부자들이 봉헌한 많은 돈보다 훨씬 큰 금액이었다고. 겉으로 보기에, 부자들이 낸 것이 당연히 더 많지만, 예수님께서는 겉모습이 아닌 봉헌하는 이의 내면을 들여다보십니다. 부유한 가운데 얼마를 하느님께 봉헌한 것이 아니라, 비록 콰드란스 한 닢이지만 자신이 가진 전부를 내놓았기에 그녀의 봉헌이 더욱 값지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분명합니다. 하느님의 계산법은 우리의 계산법과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분께서 보시는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진심으로 주님만을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할 줄 아는 우리의 마음가짐인 것을.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88)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교회 공동체 안에선 모든 이가 동등한 형제
바오로 사도 서간 가운데 가장 짧은 글이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이하 필레몬서)입니다. 이 서간은 이름 그대로 필레몬 개인에게 보낸 서간이지만, 콜로새에 있는 그의 집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가정 교회 신자들에게 보내는 서간이기도 합니다.(2절 참조)
아울러 이 서간은 바오로 사도가 직접 쓴 글로 인정받고 있는 일곱 서간 가운데 가장 뒤에 배치된 경전입니다. 그리고 필레몬서는 바오로 사도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썼기에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과 함께 ‘옥중 서간’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필레몬서가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쓰였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성경학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감옥에 있을 때 썼다면 55년께, 카이사리아에 갇혀 있었을 때면 58~60년께, 로마에서 옥중 생활을 했을 때라면 61~63년께 쓰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헬라어 신약성경은 ‘Προs Φιλημονα’(프로스 필레모나), 라틴어 대중성경 「불가타」는 ‘Ad Philemonem’,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으로 표기합니다.
헬라어 필레몬(Φιλημων)은 사랑하다란 의미의 동사 ‘필레오’(φιλεω)에서 나온 말로 우리말로 ‘사랑하는 이’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당시 프리기아(오늘날 튀르키예)에서 흔히 불린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는 아내 ‘아피아’와 아들로 짐작되는 ‘아르키포스’ 함께 살았습니다. 아르키포스는 콜로새 교회에서 특정 직무를 수행했습니다.(콜로 4,17 참조)
필레몬은 바오로 사도의 복음 설교를 듣고 회심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됐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콜로새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에페소에서 활발히 복음을 선포할 때 필레몬이 세례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후 그는 바오로 사도의 ‘사랑하는 협력자’(1절)이자 ‘동지’(17절)가 됩니다. 필레몬은 콜로새 교회의 주요 인사였습니다. 그는 바오로 사도가 자신을 위해 손님방을 하나 마련해달라(22절)고 부탁하고, ‘오네시모스’라는 종을 거느릴 만큼(16절) 부유했고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오네시모스는 우리말로 ‘유익한’ ‘이로운’ ‘쓸모있는’이란 뜻입니다. 그는 필레몬의 집에서 물질적인 손실을 입힐 만큼 부정한 행위를 저지른 후 바오로 사도가 갇혀 있는 곳으로 도망쳤습니다.(18절) 하지만 필레몬은 바오로 사도의 권유로 그리스도인이 된 오네시모스를 복음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줍니다.(21절 참조)
필레몬은 자기 집을 교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내어줘(2절) 신생 콜로새 교회의 성장을 적극 도와 신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5-7절)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형제여, 나는 그대의 사랑으로 큰 기쁨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대 덕분에 성도들이 마음에 생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라고 칭찬했습니다.(7절) 16세기에 저술된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필레몬은 아내 아피아와 함께 네로 황제 시대(54~68년) 때 콜로새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필레몬 축일은 11월 22일입니다.
필레몬서는 총 23절로 구성돼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필레몬서를 쓴 배경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서간 내용 정황상 필레몬의 종 오네시모스와 관련한 일 처리 때문에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필레몬 집에서 도망친 오네시모스는 바오로 사도를 만나 세례를 받고 협력자가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충실하고 사랑받는 형제”(콜로 4,9)라 인정할 만큼 오네시모스를 곁에 둡니다.
하지만 오네시모스는 자유인이 아니라 도망친 종의 신분이었기에 체포돼 감옥에 갇힐까 봐 늘 불안에 떨었습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당시 로마법에 따라 도망자를 은닉해 개인 재산권을 침해한 중범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오네시모스를 주인인 필레몬에게 돌려보내기로 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러나 오네시모스를 그냥 보내지 않고 그의 손에 필레몬에게 보내는 서간을 쥐여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네시모스를 자신을 맞아들이듯이 형제로 맞아 달라고 부탁합니다.(16-17절) 그러면서 “내가 말하는 것 이상으로 그대가 해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라며 오네시모스를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줄 것을 은근히 요청합니다.(21절)
필레몬서는 초대 교회의 노예 제도에 관한 ‘복음의 관점’, 곧 그리스도교 가르침의 일면을 볼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 서간에서 주인과 종에 관한 관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1코린 7,20-24; 에페 6,5-9; 콜로 3,22-4,1) 바오로 사도는 근본적으로 노예제도를 반대하지 않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분리의 벽이 허물어져 더 이상 “종도 자유인도 없다”고 단언합니다.(갈라 3,28) 또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십시오”라고 권고합니다.(로마 12,10) 이렇게 바오로 사도는 노예제도를 직접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교회 공동체 안에서 특히 전례 모임에서는 모든 이가 동등하며 서로 형제임을 확언합니다.
“당시 노예제도는 누구도 문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복음은 그렇게 모든 사람이 당연시하는 비인간적 제도의 희생자인 노예들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서 강요하지는 않는다.(8-9절, 14절) 다만 믿음과 사랑으로(5절) 내 자신부터 변화하고, 또 그러한 변화가 불의한 사회 제도와 그 희생자와 관련하여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도록 인도한다.”(「주석 성경」 839쪽)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37) 예언자들의 스승 엘리야
신학생 시절 한 선배가 소개해 준 헬렌 켈러의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란 글을 본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헬렌 켈러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 장애인이었다. 그는 장애를 훌륭히 극복한 현대의 위인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그의 삶을 성공적으로 가능하게 한 스승이 있다. 헬렌이 7세 때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보스턴의 한 시각 장애 학원을 찾았다가 만난, 평생의 교사가 될 앤 설리번이었다.
당시 앤 설리번은 겨우 21살이었다. 앤 설리번도 5세 때 눈병으로 시력을 잃었다가 수술로 시력을 회복했지만, 평생 실명의 불안과 싸우면서 살아야 했다. 앤 설리번의 이러한 체험이 헬렌의 교육에 도움이 되었다. 앤 설리번은 엄마가 아기에게 말을 걸듯이 끊임없이 헬렌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말을 써 주었다. 헬렌도 마찬가지로 손가락 말로 대답했다.
헬렌은 1904년 하버드대학 래드클리프 칼리지를 우등생으로 졸업했고, 3중 장애의 몸으로 대학 교육을 마친 세계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앤 설리번은 학교 강의실에서 언제나 곁에 앉아 강의를 손가락 말로 헬렌에게 전해 주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 내용을 점자로 다시 적어 읽게 하였다. 이처럼 헬렌 같은 위인의 생애에서 앤 설리번이라는 스승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처럼 인생의 큰 행복은 없을 듯하다.
엘리야는 기원전 9세기에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다. 유명한 예언자 엘리사의 스승이기도 하다. 아합은 북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중의 하나였지만 그의 통치기간 중 이스라엘의 종교가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아합은 시돈 왕의 딸 이제벨을 아내로 맞아들였고, 바알을 섬기고 예배하기까지 하였다. 엘리야는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역사적으로도 얼마나 혹독했는지 고증된 심각한 가뭄이 닥쳐올 것을 경고한다.(1열왕 17,1)
아합은 엘리야에게 나라를 불행하게 만든 자라고 힐책했지만, 엘리야는 오히려 임금의 잘못이라고 맞받아친다. 엘리야는 카르멜산으로 바알의 예언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예언자 사백 명도 함께 모아 대결을 벌인다. 대결에서 엘리야가 승리하고 백성들은 반대편의 예언자들을 죽인다.
엘리야의 승천(2열왕 2,1-12 참조)은 엘리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엘리사가 엘리야의 후계자라는 정당성을 부과하고 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자기 혼자 가게 해달라고 했지만 엘리사는 여정을 같이 했다. 엘리사는 그의 스승 엘리야가 곧 승천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엘리야의 영적 능력 가운데 장자로서 받아야 할 몫을 요구했다.
예언자들은 분명히 엘리사에게 엘리야의 영감을 내렸다고 확신한다.(2열왕 2,15) 엘리야는 하느님께 대한 깊은 신앙과 열성적인 헌신으로 바알과의 투쟁을 선도한 예언자이다. 그의 제자들은 엘리야의 가르침을 계속 오랫동안 기억하며 실천했다.
[성경 속 기도 이야기] (9) 고통 속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예레미야
절망적인 상황에도 하느님을 신뢰하는 자세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같이 하느님과 한 개인의 씨름을 다룬 고백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 기록된 예례미야의 다섯 개 고백은 아주 오래되었으면서도 하느님께 따지는 고통스러운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때문에 치욕과 비웃음을 당하지만, 자신의 기쁨이자 즐거움인 그분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기에 침묵할 수도 없습니다.(예레 15,15-16) 그는 자신의 사명 때문에 자신이 처하게 된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편으로는 하느님께 화를 내고 따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을 계속 신뢰합니다. 그의 마음은 양쪽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정의롭게 판단하시고 마음과 속을 떠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습니다. … 그럴지라도 당신께 공정성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어찌하여 악인들의 길은 번성하고 배신자들은 모두 성공하여 편히 살기만 합니까?”(예레 11,20;12,1)
큰 고난을 겪는 예레미야는 자기를 박해하는 이들에게 저주를 퍼붓습니다.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닥치게 하시고 그들을 부수시되 갑절로 부수어 주소서.”(예레 17,18) “그들의 죄악을 용서하지 마시고 … 그들을 당신 앞에서 거꾸러지게 하시고 당신 분노의 때에 그들을 마구 다루소서.”(예레 18,23) 나아가 자기의 운명을 욕하며 신세 한탄을 합니다. “저주를 받아라, 내가 태어난 날! …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나와 고난과 슬픔을 겪으며 내 일생을 수치 속에서 마감해야 하는가?”(예레 20,14.18).
그는 급기야 자기를 도와주지 않는 하느님께 실망을 느끼고 하느님을 나쁘게 말합니다. “당신께서는 저에게 가짜 시냇물처럼, 믿을 수 없는 물이 되었습니다.”(예레 15,17) “주님, 당신께서 저를 꾀시어 저는 그 꾐에 넘어갔습니다.”(예레 20,7) 하지만 하느님은 예레미야의 원망에도 화를 내시지 않습니다. 다만 ‘네가 쓸모없는 말을 삼가면’(예레 15,19)이라고 따끔한 주의를 주시면서 그를 당신의 대변인으로 만드시고 그에게 여러 가지를 약속해 주십니다.(예레 15,19;20-21)
하느님은 예레미야가 지금의 고통을 견디고 앞으로의 사명에 걸맞게 성장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네가 사람들과 달리기를 하다가 먼저 지쳤다면 어찌 말들과 겨루겠느냐? 네가 안전한 땅에만 의지한다면 요르단의 울창한 숲속에서는 어찌하겠느냐?”(예레 12,5)
너무나 힘들어 타인과 하느님과 자신 등 누구에 대해서도 고운 말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마음을 토로할 수 있으며 하느님은 그것을 귀여겨들으시고 설령 당장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의 고통을 가볍게 해 주십니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어디인지를 내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나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계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로마 11,33)라고 말합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느님(마태 1,23)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길(요한 14,6)이십니다.
첫 번째 고백과 두 번째 고백이 예레미야의 기도(11,18-20; 12,1-4; 15,10; 15,15-18)와 하느님의 응답(11,21-23; 12,5-6)으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세 번째 네 번째 고백에서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상대방을 저주하기에 이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자세가 우리로 하여금 고통의 늪에서 벗어나 그분의 위안을 얻도록 이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