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는 멕시코 코요아칸(Coyoakan)에서 멕시코 혁명(1910~1921)이 일어나기 3년 전 태어났습니다. 독일계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이름을 평화를 뜻하는 독일어 ‘Fried’에서 따와서 여성명사형인 ‘Frida’라고 지었지요. 하지만 이름과는 달리 그녀의 삶은 고통과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프리다에게 가장 힘들었던 두 가지 사건.
하나는 열여덟 살에 당한 버스충돌 사고였고 또 하나는 평생 사랑했고 증오했던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와의 만남이었죠.
프리다는 사고를 당한 이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자신의 고통을 그림 속에 그대로 표현합니다. 1920년대 중반부터 20여 년 간 프리다는 많은 자화상을 그립니다.
프리다 칼로 ‘두 명의 프리다’(1939), 멕시코 현대미술관, 173.5㎝×173㎝(위)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명의 프리다’(1939)를 보면 그녀의 행복했던 시절과 불행했던 시절을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른편에는 프리다가 멕시코 전통의상을 입고 있으며 한 손에 남편의 어릴 적 사진을 들고 있습니다. 그녀의 심장은 온전한 채로 있다. 하지만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왼편의 프리다는 심장이 토막 나 있으며 동맥에서는 피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150여 점에 이르는 프리다 칼로의 작품들은 투쟁의 연속이었던 그녀의 인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중적인 멕시코의 전통 회화 양식으로 그린 그녀의 그림들은 유럽 고전 회화와 아방가르드 미술부터 대중적이고 민속적인 멕시코 미술까지, 또 로마 가톨릭, 아스텍 문명, 유럽 철학부터 칼로와 리베라가 지지했던 공산주의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지요.
아이를 유산하고 평생 자녀를 갖지 못한 프리다. 여자로서의 행복도 누리지 못한 프리다. 그녀에겐 그림만이 그녀를 위로하는 친구였습니다.
그런 프리다 - 씩씩하고 당차지만 안쓰러워 눈물이 나네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프리다의 유언.
“나의 마지막 외출이 즐겁기를....
그래서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면서 예술혼을 불태웠던 프리다- 참 대단하고 멋진 여자입니다.
Tip:
멕시코시티 서남쪽에 위치한 코요아칸에 가면 역사적인 인물 두 명, 트로츠키와 칼로를 만날 수 있습니다.
트로츠키의 집은 ‘트로츠키 기념관’으로, 그곳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프리다 칼로의 집은 ‘프리다 칼로 기념관’으로 만들어졌고 코요칸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첫댓글 이 분의 삶을 다룬 영화 본 적 있어요
이 영화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저는 라틴계 음악이나 영화가 취향에 맞는듯요
글은 못 읽어봤습니다 😅
저도 본 기억이 있는데 이 영화는 아니더라구요.
멕시코 여행을 가고 싶게 만드는 프리다 칼로^^
@바람숲 담에 같이 중남미 갈까요?
콜롬비아커피 농장 가보고 싶어요
쫌 무섭지만요
@happycountry 중남미는 오래 전부터 꿈꾸던 여행지였는데...ㅠㅠ 지금은 좀 자신이 없어요. 쿠바와 멕시코를 먼저 가보고 싶더라구요.(희망사항)
영화적인 그녀의 삶을 빼고 그림들이 진짜 좋은가?가 고민되었던.
전제를 빼고 사물을 보는 게 진짜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걸고 싶은 그림은 아니지만 아무튼 발상이 무척 독특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