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전령 코스모스
분홍빛과 흰빛으로 나풀대는 들녘
이따금 부는 바람에도
꺾일듯 가날픈 꽃의 자태
연천 군부대 앞은
노란색의 코스모스가 장관을 이루고
꽃들 머리 위로 나비가 팔랑이고
벌들이 윙윙 대는 모습이
가을이 아닌 여름처럼 곱다
어여쁜 향기로 피어나
두 눈을 온통 멀게 하는 그들
봄꽃이 곱다 한들
단풍색으로 물들어 들녘을
수 놓은 미의 화신 옆에서
주눅이 들고 만다
황색 코스모스
아내의 울부짖는 소리에 잠을 깼다. 눈앞의 풍경은 나를 평생동안 괴롭힌 그날의 풍경이 고스란히 재현 되어 있었다.
하얀 침대 시트는 구겨져 있었고 항상 있어야 한 아내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화장실로 뛰어 들었다.
화장실 앞에 널부러져 있는 아내의 옷자락은 온통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아내의 숨소리를 확인 하려는 순간
기괴한 표정의 아내를 보았다.
그리고 장모님을 깨우려 아래층. 계단을 내려가다 그만 발이 미끄러져 그대로 나뒹굴고 말았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두런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 보니 눈앞에 비웃듯이 썩소를 날리는 아내의 얼굴이 들어왔다.
이제 정신이 들어 남자가 장난좀 친걸 가지고 놀라서
혼비백산 하는 꼴이라니 쯧쯧 아내의 혀 차는 소리를 듣다 주위를 살폈다.
장모는 2인용 소파에 앉아
티브 채널을 이리저리 누르더니
아 이서방 자네도 참딱해
어쩌다 이꼴이 되었누
하마터면 저승 갈뻔 한 것을 우리가 119불러서
병원에 오길 잘했지
그래도 그렇지 내가 왜 여기 있어 나는
사태 파악을 못 하고 마녀 얼굴을 한 아내를 빤히 바라보았다.
형의 전화를 받고 갑자기 신명난 아이가 되었다.
잠시 동안이지만 고향집에 가면 답답한 가슴이 조금은 시원할것 같았다.
아내에게 아버지 기일에 어머니를 뵈러 가겠다 하자
반대 의사를 하지 않고 따라 나섰다.
아내를 옆자리에 태우고 운전했다. 다른 날 같으면
아내의 의사도 묻지 않고 이것저것 음악을 골랐다면
오늘은 신중하게 아내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선곡 했다. 아내는 기분이 좋은지 나를 칭찬 했다.
그동안 결혼생활 20년이 넘은 동안
아내의 칭찬을 받은 거억은 손가락을 꼽아도
열손가락이면 충분했다.
오빠 오늘 보니까 나이 먹어도 엄마를 만나러 가는 게
즐거운 모양이지
왠일로 오늘은 친절하게 굴고..
속으로는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지만 참고 운전 했다
.
아내를 집안에 내려 준후
조금전 보았던 낚시터를 둘러 보기로 했다.
그곳에는 강태공을 흉내내는 사내들이 군데 군데
자리 잡고 앉아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순간 여러가지 생각이 스쳤다.
저녁 식사때 조금전 들렀던 낚시터 이야기를 어머니께
했다.
내 말이 끝나자 마자
아내가 관심을 보였다.
어머니 이런 시골에도
낚시터가 있어요.
어릴때 아빠 따라서 낚시터에 간적이있어요.
사실 나도 대학 다니기 전에는 친구들과
저수지에서 여름이면 수영도 하고
물고기도 잡았었다.
아내의 관심 있는 태도에
의아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척 대꾸 했다.
그럼 우리 내일 집으로 올라가기전에
낚시터 구경이나 할까?
무기력한 생활이 이어지자
점점 시간 관념이 사라졌다.
밤새 뒤척거리다 시장기가 돌아 눈을 뜨면
밖에서는 쓰레기차 지나는 소리 페지를 줍는 노인들의
고성이 오고 가고 있었다.
겨우 눈을 뜨고 핸드폰을 들여다 보면 반가운 소식은 없고 죄다 광고성 문구였다.
그날도 여지없이 햇반을 렌지에 데워 시들어 빠진
신김치 한조각을 얹어 막 밥 한술을 떴을때 였다.
휴대전화가 울렸을때 적막했던 방안이 환해졌다.
강은호씨 되시죠? 예 그렇습니다.
은호는 뜨악 하게 대답했다.
저는 지난번에 강은호씨가 구직 신청한 이력서를 보낸 ㅁㅁ
회사입니다. 예 ㅁㅁ 회사라구요?
은호는 잠시 상대방의 말을 잘 못 알아 들은줄 알았다.
그리고 이어서 상대방은 은호가 생각할 틈도 없이 다음 알을 이어 갔다.
오늘 오후 1시. 까지 저희 본사로 오셔서
소정의 교육을 이수 하셔야 합니다.
은호는 자신이 그동안 수없이 많은 이력서를 낸 끝에
취업이 확정 됐다는 여자의 말에 뛸듯이 기뻤다.
다른 것은 생각할 여유도 없이
단 한벌 밖에 없는 외투와 구두를 신고 좁은 원룸을 나왔다. 오늘 아침까지도 안개가 끼인듯 눈앞의 사물이 희뿌옇게 보이던 것들이 초롱하게 다가와 친근감을 표했다.
은호는 지하철 2호선 성수역 개찰구를 빠져 나와
교육 받기로 한 회사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분주 하게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휴대 전화로 찾아 오는 길 약도를 이리저리 눈 여겨 보았다.
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빠져 나와 어느 빌딩 앞에 섰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약속한 오후 1시 까지는 약 20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깊은 연기를 들이 마시니
몇달동안 전전긍긍 하며 노심초사 했던 지난 날이 마치 꿈만 같다. 은호는 담배 꽁초를 비벼 끄고 나서 엘리버이터 버튼을 눌렀다.
오층에 도착하자 건장한 사내들이 양복을 갖춰 입고 그곳에 도착한 사람들에게 안내문을 배포 하고 있었다.은호는 비교적 젊은 축에 끼는 남자 옆에 자리를 잡았다.
사무실에는 대략 십여명의 남.녀가 상기된채
자신의 이름이 불리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 10분 정도 지났을까 한 사내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빠르게 제품 설명이 이어지고 나서
설문지 한장이 은호 자신이 앉아 있는 책상에 놓여 졌다.
은호는 옆자리에 앉은 사내를 흘끗 바라보았다.
사내는 별다른 반응 없이 종이를 메우고 있었다.
은호는 생각했다.
조금전 젊은 직원이 회사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했을때 수습 기간 삼개월은 고정 급여는 없으며
앞으로 실적에 따라 차등 지급 된다는 말은
은호의 가슴을 뛰게 했다.
여기는
택시 회사 면접에서 거푸 퇴짜를 맞은 은호는
자신감이 바닥을 첬다.
기술 없이 심부름만 하는 공장에도 이력서를 넣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고교 동창 톡방에서는 아들자랑 손자 자랑하는 동창들 보기 싫어 탈퇴를 했다.
그러던 어느날 초중고를 함께 다닌 친구 순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에는 자격지심에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순길은 은호의 사정을 모두 안다는 듯이
소주나 한잔 하자고 했다. 은호는 못이기는 척 순길과
만나 자신의 속내를 털어 놓게 되었다.
은호는 한국에 와서 동창들에게 허세를 부리다 지금은
동창들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는 속사정을 술기운에 하고 말았다.
며칠 뒤 순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이 어렵게 마련한 자리라는 너스레와 함께
은호의 취업 알선 이야기를 했다.
은호는 자신을 이해해 주는 순길이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