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드라마]
인생이 무덤덤하게 지나가는 것보다 조금은 드라마틱한 게 낫지 않을까? 드라마틱한 인생 드라마 가운데서도 청춘 드라마가 으뜸이지 싶다.
그런데 요즘은 어쩐 일인지 드라마는 있는데 청춘이 없다. 젊은이는 있는데 젊음이 없다. 서투르고 어설프나마 풋풋한 열정이 없는 거다.
군사독재 시절엔 장발 문화가 있었고 노래부르는 통키타 시인들도 많았다. 나팔바지로 독특한 패션 문화를 선도한 청춘 문화가 존재했고 미니스커트로 도발적 문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던 것들이 이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새로이 씨앗을 뿌려야 되는데, 어디서 누가 어떻게 어떤 씨앗을 뿌렸는지 보지를 못 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젊음과 청춘은 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무언가 달리 보이는 상큼함과 신선함이 없다. 모두가 서로를 흉내내며 닮아가고 있다. 모두가 세상에 휩쓸리고 있다. 도드라져 보이고 드라마틱한 청춘물들이 없다.
성숙이 청춘을 지배하고, 음란으로 잔인해지고, 따라하기가 성행한다. 그 어떤 발군의 모델도 없이 말이다.
싸이가 서구를 일시 삼켰고, BTS가 세계의 젊은이들을 열광케 했고, '기생충'이 로컬(아카데미)마저 집어삼켰지만 그 뿐이다. 드라마는 여전히 미드를 넘어서지 못 한다. 특히 젊은 드라마가 없다.
드라마는 이야기고 스토리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과연 스토리가 이야기가 드라마가 있는가? 자신이 주인공인 이야기들 말이다.
환생 이야기가 넘쳐나고 회귀 이야기가 범람하는데, 너무도 현실적이지 않다. 이상이 현실을 가져오고 현실이 이상을 꿈꾸게 하는데, 현실과 이상을 뒤섞어 허황된 꿈의 동화를 만들어내니, 현실의 젊음이 이방인이 되어 방황을 겪는다.
그리고 어느 작가도 이젠 청춘 드라마를 쓰지 않는다. 청춘들에게서 그 어떤 실마리도 단서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젊음이 사라진 채 무늬만 젊은이인 이들만 찾아지기 때문이다.
이상을 꿈꾸지 않기에 날개가 퇴화하고 열정은 숨어버렸다. 매니아, 오타쿠, 좀비, 광인들만 넘쳐나는 세상 풍경이다. 젊음이 발산하는 뜨거움과 타는듯한 목마름이 없다.
분노는 그저 광기일 뿐이요, 생존에만 머무는 좀비적 문화 생태계요, 음란물에 천착하는 오타쿠요, 사이코에 젖어드는 매니아들 뿐이다.
청춘 드라마는 걱정하고, 고민하고, 옳게 분노하고, 시대를 반항하며, 사랑하고 꿈꾸며 행동하는 젊음의 표상들을 나타내고 보여주는 것이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모르는 세상을 향해 커다란 외침을 토해내는 게 청춘이고 드라마다.
그런 드라마가 2020년에서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잠시 그 맛을 봤었기에 다소 낙관적 기대를 가져본다.
kjm _ 202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