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말끔한 대로가 들어섰지만 삼십 년 전 남한산성 아래에는 민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산성 아래 반듯하고 높은 터에 기대어 집짓기가 좋았고, 숲이며 냇가가 있어 먹을거리를 구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산나물로 나물밥을 지어 먹고, 닭을 놓아 길러 그 닭이 낳은 달걀을 모아 장에 내다 팔면서 소박하고 정답게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러다 주말이면 남한산성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산성 아래의 집들은 특별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산성구경 온 서울 사람이나 등산객을 위해 하나 둘 밥집이 되었다. 처음에는 초라한 살림에 그때그때 되는 대로 식사를 만들어 대접하고 주는 대로 돈을 받았다. 하지만 점점 사람이 많아지면서 여럿이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필요하게 됐는데, 그때 특별한 식재료가 되어주었던 것이 바로 닭이다.
이 마을 닭들은 가파른 산길을 반은 날고, 반은 뛰다시피 살아서 근육이 많고 힘이 센 탓에 1시간이면 고아내는 서울식 백숙 만드는 방법으로는 푹 고아낼 수가 없었다. 산성 올라가는 길에 ‘백숙 먹을 심산이다’라고 말하면 내려 올 때까지 서너 시간 푹 고아 찹쌀죽과 함께 내놓았는데, 이것이 서울식 백숙과는 차별되는 깊은 맛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남한산성 밑 닭죽마을’의 소문이 퍼져 나갔다.
지금의 닭죽마을은 남한산성 아래의 개천이 덮이면서 건너편 단대동으로 옮긴 것이다. 닭죽으로 유명한 성남의 명물거리가 없어지는 것을 막고자 시청이 자리를 내어주고 닭죽촌으로 형성했는데, 닭죽을 끓이는 방식이 서로 비슷해 어느 집이랄 것도 없이 맛과 양이 후하다. 지금은 뒤뜰에 뛰노는 토종닭 잡는 풍경은 사라졌지만 20개가 넘는 ‘닭죽’가게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산성 아래 오순도순 모여 살던 시절의 인심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