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오페라 가운데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은 과연 누구의 작품일까요? 그것은 베르디도 푸치니도 아닙니다. 작가 생전에 1만 4천회 공연으로 역사상 최고의 기록을 갖고 있는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입니다.
* 마스카니와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 피에트르 마스카니
1887년, 밀라노의 유명한 악보 출판사인 손초뇨는 젊은 작곡가들을 발굴하려는 목적으로 단막 오페라 현상 공모'를 실시했습니다. 신데렐라 같은 입신과 일확천금을 노리던 수많은 음악가들이 여기에 응모했는데, 당시 불과 27세의 나이로 이탈리아의 시골에서 음악교사를 하고 있던 피에트르 마스카니가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로 당당히 1등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1890년 5월 17일 로마 콘스탄치 극장에서 초연되었는데, 마스카니는 이 공연으로 하루아침에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무명 음악가의 이름은 단번에 전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는 물론 전 유럽을 휩쓸어 명지휘자 구스타프 말러도 이 작품을 극찬하면서 스스로 부다페스트 오페라하우스에서 지휘하기도 했습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원작은 시칠리아 태생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조반니 베르가의 소설 <시골에서의 생활>입니다. 그러면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가난한 무명 작곡가였던 마스카니는 원작자 베르가에게 사정사정하여 소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오페라로 만들 것을 겨우 허락받습니다. 그리고 문학을 좋아하는 고향 친구 토제티에게 대본 작업을 부탁하고 이를 토대로 작곡에 착수했습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시골의 군인' 즉 '재향군인'이라는 뜻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갓 돌아온 젊은 남자 주인공 투리두를 말합니다. 이 작품은 단막 오페라 공모의 당선작이었듯이 한 시간 분량의 단 하나의 막으로 되어 있어서, 마치 군더더기 없이 잘 정리된 단편소설을 읽는 기분이 듭니다.
* 시칠리아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배경은 원작 그대로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의 섬입니다. 시칠리아 섬은 자주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고 지배 계급으로부터 극심한 수탈을 당해온 불행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시칠리아인들은 카톨릭 신앙과 가족의 유대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가난하고 거친 삶을 살아왔습니다. 무명의 작곡가 마스카니는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해 베르가가 글로 남긴 척박한 시칠리아의 풍경을 시칠리아 고유의 음악으로 극적으로 표현해 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음악과 문학이 기막힐 전도로 훌륭하게 결합된 ‘베스스모 오페라’를 만들었습니다. 사실주의적인 베스스모 음악을 통해 마스카니는 애증의 여러 양상들이 척박한 토양에 도사린 시대적 모순에서 비롯된 것임을 리얼하게 들려줍니다.
마스카니는 시골 청년의 허망한 죽음을 단 하루의 시간 속에 압축해서 담아냅니다. 아주 쿨하고 군더더기 없는 압축입니다. 베리스모 오페라답게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투리두의 죽음도 음악이나 아리아가 아닌 마을 사람들의 “투리두가 죽었다”는 비명으로 마무리됩니다. 마스카니가 오늘날까지 베리스모 오페라의 선구자로 불리는 것은 이 같은 천재적인 능력 때문입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오페라의 백미는 그 유명한 ‘간주곡’입니다. 이 곡은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최고의 오페라 음악의 하나로 꼽고 있는 명곡입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은 정오의 시간을 나타냅니다. 부활적 일요일 오전 성당에서 미사를 본 사람들은 점심을 먹으러 서둘러 집으로 돌아갑니다.
정오에 즈음하여 점심을 먹은 다음에는 지중해 지방 특유의 시에스타, 즉 낮잠을 잡니다. 이 정오의 시칠리아식 수면은 간주곡에서 실감나게 드러납니다. 이 간주곡은 앞으로 벌어질 비극적 사건(결투 후에 투리두가 죽는)이 불안과 열정이 교차되는 느낌으로 묘사되는 음악입니다.
1890년 5월 17일 초연 당시 60번의 커튼콜이 있었고, 객석에 앉아 있던 마르게리타 여왕과 원작자 베르가도 열광했다고 합니다. 스물 여섯 청년에 불과했던 마스카니는 이 작품 한 편으로 국왕에게 훈장을 받는 등 엄청난 출세를 했을 뿐 아니라 돈방석위에도 올라앉았습니다.
(사족) 흔히 우리가 먹는 피자 중에서 가장 심플한 ‘마르게리타 피자’는 당시 가난했던 이탈리아 남부 서민들이 먹을 수 있도록 위의 마르게리타 여왕이 특별히 지시해서 생겨났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마치 송나라 시대의 소동파가 항조우 지사로 있을 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돼지고기로 ‘동파육’을 개발했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얘기입니다.
* 영화 <대부 III>에 나오는 투리두와 알피오의 대결 장면, 오른편은 마스카니
*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이후의 마스카니
하루아침에 유명 인사가 된 마스카니는 자신이 베르디의 후계자라는 자만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외에 14곡의 오페라를 작곡했지만 모두 시시했습니다. 반면에 푸치니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마스카니는 초조해졌습니다. 1858년생인 푸치니와 1863년생인 마스카니는 밀라노 음악원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였습니다. 푸치니와의 경쟁으로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은 마스카니는 새로운 길을 모색했습니다.
즉 새로 등장한 무솔리니 정권에 알랑거리면서 정부 작곡자가 되었습니다. 이 후 20년 동안이나 정부 작곡가로서 지원금을 받고 일을 했습니다. 파시스트 정권에 신물이 난 토스카니가 박차고 떠난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의 지휘자로 취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처신은 그에게 독으로 작용했습니다. 즉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무솔리니에게 이용당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를테면 그의 마지막 오페라 <네로>는 지도자 무솔리니를 간접 찬양했다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말엽에 이르러 무솔리니 정권은 망했습니다. 연합군이 로마에 진주한 다음 마스카니는 전 재산을 몰수당했습니다. 그는 제2차 대전이 끝나고 4개월 후 1945년 8월 2일 숨을 거두었습니다. 무솔리니의 앞잡이라는 멍에를 쓴 채 쓸쓸히 로마의 공동묘지에 묻혔습니다. 아직도 이탈리아에서 마스카니는 여전히 친 무솔리니라는 낙인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파시스트의 악몽이 이탈리아인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탓입니다.
그래도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이탈리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 중 하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 줄거리, 시칠리아의 부활절에 벌어지는 피의 복수극 ]
이야기의 배경은 1880년경, 시칠리아 섬 어느 마을의 부활절입니다. 갓 제대한 투리두는 애인이었던 롤라가 같은 마을의 알피오와 결혼한 사실을 알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다가 자신을 위로해주는 처녀 산투차와 사랑하는 사이가 됩니다.
그러나 결혼한 롤라가 다시 유혹하자 투리두는 옛 사랑을 잊지 못해 다시 롤라와 밀회하기 시작하지요. 오페라의 첫 장면은 운송업자 알피오가 일하러 간 사이에 투리두가 롤라와 밤을 보내고 나서 새벽에 부르는 시칠리아나 ‘우윳빛 셔츠처럼 하얀 롤라'입니다. 곧 이어 그 유명한 마을사람들의 합창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가 마을을 가득 채웁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알피오는 운송마차를 몰고 나타나 사랑스런 아내 덕분에 힘든 줄 모르고 일한다는 내용의 아리아 ‘말은 힘차게 달려’를 노래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사제가 성상을 앞세우고 행진하는 부활절 행렬예식을 지켜보며 ‘주 찬미가’를 노래합니다.
* 갈등하는 투리두
투리두와 결혼을 약속한 산투차는 사실을 알고 나서 투리두의 어머니 루치아에게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유명한 아리아 ‘어머니도 아시다시피’를 노래합니다. 군대에서 돌아왔을 때 롤라의 변심에 상처 받았던 투리두를 자신이 위로해 진정시켰는데, 이제 두 사람 사이를 질투한 롤라가 투리두를 다시 유혹한다며 처절한 심정으로 시어머니 될 루치아에게 하소연하는 장면입니다.
산투차가 ‘어디 갔었느냐’고 추궁하자 투리두는 ‘질투심 따위로 나를 잡아 두지는 못할 것’이라며 냉랭한 태도를 보입니다. 화를 내도 간청해도 소용이 없자 분노를 참지 못하게 된 산투차는 롤라의 남편 알피오에게 달려가 롤라와 투리두의 관계를 고자질합니다. 격분한 알피오는 투리두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합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포도주를 마시던 투리두는 알피오가 술을 거절하며 모욕을 주자 그에게 달려들어 결투를 신청합니다. 취한 채 집으로 돌아온 투리두는 어머니 루치아에게 산투차를 딸처럼 여겨달라고 부탁한 뒤 알피오와 결투를 하러 다시 나가지요. 곧 마을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투리두는 알피오의 칼에 찔려 숨을 거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