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꽃, 하얀 세상
손 원
나는 하얀 눈꽃의 향연을 좋아한다. 새하얀 눈꽃, 순수 그 자체다. 백옥같은 하얀 눈이 지천을 뒤덮으면 내 마음도 하얗게 물든다. 티끌 없는 마음이란 이런걸까? 백옥 같이 순수하고 솜털같이 가볍고 포근하다. 마음을 비운 듯 하다. 삶을 마감하는 순간 마음을 비우면 가져 갈 것도 없고 두고갈 것도 없다는 생각에 평온하다고 한다. 눈 내리는 날이면 백옥의 향연과 푸른 하늘이 어우러져 경이롭다. 먹구름과 흙먼지를 떨구고 높이 높이 올라간 작은 물방울이 눈꽃되어 펄펄 내려 천지를 뒤 덮는다.
보플 보플 하얀 꽃잎이 수도 없이 내린다.
세상은 온통 백색의 꽃잎으로 가득하다. 깡마른 나뭇가지에도 가파른 지붕위에도 눈꽃을 피운다.
하얀 꽃잎 향연은 며칠간 계속 되고, 한겨울 찬바람에 옷을 날려버린 만물을 포근히 감싸 준다.
한겨울 산야의 초목이 말라 푸르름을 잃었을때 대지는 황량하다고 한다. 겨울이 황량하다는 표현은하얀 눈꽃세상을 간과한 것임이 분명하다. 파란 하늘과 지상의 하얀꽃 세상을 보라. 거대한 대자연의 향연에 저절로 감탄사를 자아낸다. 하얀 눈꽃은 곳곳에서 세상을 장식한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핀 눈꽃이 아름답고, 소나무 가지가 휘도록 덮은 눈꽃은 크리스마스 추리처럼 아름답다. 산 꼭대기에 핀 상고대는 예술작품이다. 꽁꽁언 날에 등산을 하면 이러한 장관을 만끽할 수가 있다.
만개한 겨울꽃을 혼자보기 아까워 사진을 찍는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 SNS로 실시간 올려진다. 아름다운 풍광을 나누고자 하는 그 마음도 참으로 아름답다. 누군가가 올려놓은 사진에 눈 호강을 실컷할 수 있어 좋다. 눈꽃 향연을 다 같이 즐기고 마음을 정화하고자 하는 배려가 돋보인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모아 보관하기도 한다. 이렇게 모은 사진이 수십장은 된다. 즐거움도 나누면 배가된다. 나눔의 미학이다. 좋은 것을 나누어 주는 이에게 머리가 숙여진다.
그뿐이랴? 삼 사월이면 벚꽃, 복숭아꽃 등이 온동네를 하얗게 물들이다. 금방 꽃봉우리를 터뜨렸을 때는 연분홍이지만 만개하면 흰꽃에 가깝다. 사과꽃, 배꽃은 필때부터 흰색이다. 봄 꽃의 종류도 많지만 흰꽃이 많아 초봄의 산야 또한 거대한 흰꽃정원이다. 흰꽃정원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내 움이트고 잎이 자라 세상은 초록정원으로 바뀐다.
자연의 속살은 하얀색인 것 같다. 녹색 산천이 저물면 흰색의 꽃눈이 덮고, 검은 구름 사이로 흰구름이 나타난다. 특히 검푸른 파도의 포말이 하얗게 드러나는 것을 보면 잔잔한 바닷물은 하얀색을 감추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자연은 더욱 순수한 것 같다. 하얀색은 거대한 자연의 빛이고 가장 친숙한 색이다. 쌀과 밀가루는 하얀색이다. 평생을 먹어도 질리지 않고 에너지를 공급한다. 소금과 설탕도 하얀색이다. 목화솜, 양털솜은 하얗기도 할뿐더러 따뜻하고 포근함으로 우리 몸을 감싸 준다. 하얀색은 아무것도 없이 깨끗하지만 무궁무진한 정보와 지혜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백색의 종이는 문명을 일으키고 이어갔다. 책상 위에 놓인 한 장의 백지장을 보면 지혜가 번뜩이기도 한다. 책자는 흰 종이의 마술이다. 한 권의 책에 모든 것을 담을 수있다.
우리는 백의민족의 후손이다. 수백년간 입어 온 흰색의 바지저고리에는 조상의 얼이 담겨있다. 둔탁한 듯 날렵한 곡선미의 한복은 예술이다. 입으면 편안하고 포근하고 폼은 여유로워 보인다. 기품넘치는 한복, 예로부터 흰색을 즐겨입어 백의민족으로불렸다. 한복을 일상복으로 입었으니 소박한 사치였다. 남성은 곰처럼 우직해 보이고 여성은 학처럼 고매한 모습이었다. 매마르고 혼탁한 세상에 거대한 백색의 물결이 일어 정직, 배려의 세상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2023.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