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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률이상 제23권
양 사문 승민ㆍ보창 등 편집
6.성문들 ⑪
6) 성문무학의 비구니승[聲聞無學學尼僧部]
(1) 발다라(跋陀羅) 스스로 전생 일을 알고, 부처님을 만나 도를 이루다
바가바(婆伽婆)께서 나열성(羅閱城)에 계실 때였다. 발다라(跋陀羅) 비구니가 비구 동산[比丘園]을 나와 한 나무 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생각에 골몰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전생 일을 알아내고서 피시식 웃자 여러 비구니들이 보고 그 까닭을 물으므로 발다라 비구니는 말하였다.
“나는 내 자신의 과거의 일을 알고 있습니다. 과거 91겁(劫) 때에 비바시 (毘婆尸)여래께서 세간에 출현하셨는데, 그 때 발라마제바(跋羅摩提婆)라는 한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재물이 넉넉하여 부유하기가 한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어린아이는 보배 일산[寶蓋]을 가지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 때 마침 단정하기 견줄 데 없는 어느 한 장자의 부인도 그를 따르며 지나갔는데, 여러 많은 사람들이 모두 다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는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지금 온갖 보배를 모아서 만든 보배 일산을 들고 이 길을 지나가는데도 나를 유심히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 장자의 아내는 저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구나. 나는 이제 무슨 방법을 찾아서라도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게 하여야겠다.’
어린아이는 손에 보배 일산을 들고 이내 마을 경계를 벗어나 비바시여래에게로 갔다. 그리고 여래 뒤에 서서 보배 일산을 들고 일곱 밤낮 동안을 지나고서 서원을 세웠다.
‘제가 세존께 공양한 공덕으로 장차 단정하기 견줄 데 없는 여인의 몸이 되게 하십시오. 그래서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은 모두 나한테 홀려서 땅바닥에 쓰러지게 하옵소서.’
어린아이는 목숨을 마치고 삼십삼천(三十三天)에 가서 태어나 천녀(天女)가 되었는데, 다섯 가지 일의 훌륭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다섯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하늘로서의 수명과 하늘로서의 아름다움과 하늘로서의 즐거움과 하늘로서의 신족(神足)과 하늘로서의 뛰어난 공덕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천인들은 이 천녀를 보고 모두가 그와 함께 지내려는 희망을 품었기에 그때의 삼십삼천 천인들은 모두가 다투게 되었습니다. 천녀는 수명을 마치고 인간 세상에 와 태어나서 후야달다(后若達多) 바라문의 단정하고 아름다운 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인간 세상과 천상을 오가면서 언제나 단정한 모습을 지녔습니다. 여러 부처님을 많이 만나 모두 다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면서 여인으로 태어나기를 빌었습니다.
뒤에는 인간 세상의 비천한 바라문의 집에 태어나서 월광(月光) 동자의 여종이 되었는데, 이름은 기라(幾羅)였습니다. 월광 동자의 아내의 이름은 마노하라(摩奴訶羅)였는데 단정하기 견줄 데가 없었습니다.
그 때에 월광 부인은 그의 여종에게 말하였습니다.
‘너는 집 밖으로 나가서 만약 사문이거나 바라문을 만나거든 여기로 모시고 오너라. 내가 보시를 하고 싶어서 그러느니라.’
종이 집을 나갔더니 어느 벽지불(辟支佛)이 문지방 위에서 걸식을 하고 있었기에 기라 여종은 말하였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주인께서 보시를 하신답니다.’
벽지불이 집안으로 들어오자, 부인은 벽지불의 옷차림이 단정하지 않은 것을 보고 기라를 나무랐습니다.
‘어서 저 사문을 밖으로 내보내라. 나는 보시하지 않겠다.’
그래서 여종은 말하였습니다.
‘아씨께서는 마음의 문을 여시고 사문을 겉모습만을 보고 미워하지 마십시오. 공양하는 공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큰 것입니다.’
그러나 부인은 대답하였습니다.
‘빨리 이 사문을 쫓아내라. 나는 보시할 수가 없다.’
여종은 다시 아뢰었습니다.
‘만약 아씨께서 이 사문께 보시하지 않으시겠다면, 대신 제가 오늘 받아야 될 몫의 밥을 드릴 터이니 애석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러자 부인이 보릿가루를 여종에게 내주었습니다. 여종 기라는 그렇게 자신의 몫인 보릿가루를 벽지불의 발우 속에다 넣어 드렸습니다. 벽지불은 공양을 먹은 뒤에 몸을 허공으로 띄워 올라갔습니다.
여종은 그 모습을 보고 기뻐하며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서원을 세웠습니다.
‘지금 지은 이 공덕으로 이제 저를 나쁜 길[惡趣]에 떨어지지 말게 하옵시며, 저로 하여금 장차 오는 세상에 오래오래 언제나 이 성인을 만나게 하시어 저를 위하여 설법하여서 속히 해탈되게 하여지이다.’
이 때 바라내성(波羅奈城)의 법마달다왕(梵摩達多王)은 그 벽지불이 허공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그가 보시를 받았나 보구나.’
그 때에 월광 장자는 5백 명의 장사꾼을 거느리고 큰 강당에 모여서 벽지불이 발우를 가지고 허공에 올라가는 모습을 멀리서 보았습니다. 그러자 어떤 장사꾼이 말하였습니다.
‘이 성인은 반드시 우리 집에서 밥을 얻으셨으리라.’
그 때 대월광 부인은 그것을 보고 기라 여종에게 말하였습니다.
‘앞으로 네가 얻게 될 공덕을 가져다 나에게 보시하라. 이것이야말로 바로 내가 보시한 바이니라. 나는 이제 다시 밥을 가져다 너에게 주리라.’
그러나 여종은 대답하였습니다.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자 월광 부인이 또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너에게 두 사람 몫의 밥을 주겠다.’
기라 여종은 또 대답하였습니다.
‘역시 필요 없습니다.’
부인도 또 말하였습니다.
‘내가 너에게 세 사람 몫, 다섯 사람 몫, 열 사람 몫, 스무 사람 몫, 아니면 백 사람의 몫이건 천 사람의 몫이건 다 주겠다.’
그래도 기라 여종은 말하였습니다.
‘저는 절대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결국 부인은 말하였습니다.
‘만일 네가 끝까지 나에게 주지 않겠다면, 나는 너의 귀와 코와 손을 잘라 버리겠다.’
기라 여종은 여전히 말하였습니다.
‘저는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그러자 장자의 아내는 막대기로 여종을 마구 때렸습니다. 월광 장자가 돌아와서 기라 여종이 머리가 깨지고 옷이 찢겨진 채 슬피 울며 눈물 흘리는 것을 보고 어찌 된 연유인지를 물었습니다. 기라 여종이 자세하게 그 일을 아뢰었습니다. 그러자 월광 동자는 그의 부인을 여종으로 만들고, 기라 여종은 첫째 부인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기라는 5백 명의 채녀들에게 둘러싸여 백 가지 천 가지의 값진 보배로써 그의 몸을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범마달라왕은 월광의 여종이 그 벽지불에게 밥을 대접했다는 소문을 듣고, 백천 냥의 값진 보배를 월광 장자의 부인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또 월광 장자에게는 논밭을 하사해 주었습니다.
그 때의 범마달다왕은 바로 지금의 가비라(伽毘羅)의 마사라(摩奢羅)이시며, 월광 장자는 바로 지금의 대가섭(大迦葉)이시며, 기라 여종은 바로 지금의 나의 몸인데, 이제 부처님을 만나게 되어 아라한이 되었습니다.”『발다라비구니경(跋陀羅比丘尼經)』에 나온다.
(2) 숙리(叔離)는 털옷으로 몸을 싸고 태어났으며 출가하여 도를 깨치다
사위국(舍衛國) 어느 한 장자의 아내가 비길 상대가 없을 만큼 너무나 아름다운 딸을 낳았다.
그 아이가 태어날 때에 섬세하고 부드러운 흰 털옷으로 몸을 감싸고 나왔다. 부모가 괴이하게 생각하며 관상을 보았더니 아주 길한 징조라고 하였기에 그것으로 인하여 이름을 숙리(叔離)[양(梁)나라 말로 희다白는 뜻이다.]라고 지었다. 숙리가 자라자 털옷도 몸을 따라 커졌다.
이 여인이야말로 누구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유달리 아름다웠으므로 국내의 원근에서 다투어 와서 청혼을 하였다. 그러나 여인은 부모에게 아뢰었다.
“저는 출가하려 합니다.”
부모는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였기에 그의 뜻을 어기지 않았다. 부모는 이내 털옷을 들어내고 다섯 가지 옷[五衣]을 만들려고 하였지만, 여인은 부모에게 아뢰었다.
“제가 지금 입고 있는 옷으로 이미 완전하니 다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제게 출가만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바로 부처님께로 가서 예배하고 출가하기를 청하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잘 왔다.”
그러자 여인의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지고 입고 있던 흰 털옷도 이내 다섯 가지 옷으로 변하였다. 여인은 대애도(大愛道)에게 맡겨져 비구니가 되어 정진하다가 오래지 않아서 아라한 도를 이루었다.
아난(阿難)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숙리는 본래 무슨 덕을 닦았기에 태어나면서 털옷이 함께 나왔고, 또 출가하여 도를 얻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과거 비바시(毘婆屍)라는 부처님께서 계실 때의 일이다. 이 때 왕과 신하, 그리고 백성들이 공양을 많이 베풀었다.
그러나 다이가(陀膩伽)라는 한 여인은 너무나 가난하여 부부 두 사람이 가진 것이라곤 오직 털옷 하나뿐이었다. 때문에 만약 남편이 바깥에 나가면서 그 옷을 입고 가면 아내는 발가숭이로 있었고, 만약 아내가 털옷을 입으면 남편은 발가벗고 앉아 있었다.
권화(勸化)라고 하는 어떤 비구가 다니다가 그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여인을 보고 권하며 말하였다.
‘부처님 세상을 만나기는 어렵고 사람 몸은 얻기도 어렵습니다. 당신은 법을 들어야 하고 당신은 보시를 하여야 합니다.’
여인은 집으로 돌아가 남편에게 말하였다.
‘바깥에 사문이 한 분 계신데 우리에게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들으며 보시를 하라고 권하십니다.’
그러자 남편은 대답하였다.
‘우리 집이 이렇게 가난한데, 비록 우리에게 보시를 할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무엇으로 보시를 할 수 있겠소?’
아내는 말하였다.
‘내 생각으로는 이 털옷을 보시하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말하였다.
‘나와 당신은 둘이서 같이 오직 이 하나의 털옷만 가지고, 차례로 출입을 하면서 먹을 것을 구해서 살아가고 있소. 이제 만약 이것을 보시해 버린다면 그냥 앉아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지 않겠소?’
부인은 말하였다.
‘사람이란 나면 죽음이 있어서 보시하지 않아도 반드시 죽는 것입니다. 보시한다면 죽은 뒤에 희망이나 있지요. 보시를 하지 않고 죽으면 뒤에는 마침내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남편은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죽을 것이 분명하니 그럼 우리 보시를 하십시다.’
아내는 이내 도로 나가서 비구에게 아뢰었다.
‘대덕이시여, 보시 책에 우리 이름을 올려 써 주십시오.’
비구는 대답하였다.
‘만약 보시를 하시겠다면 지금 당장에 보시하십시오. 그대들을 위하여 주원(呪願)을 하겠습니다.’
그러자 숙리는 아뢰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지금 입고 있는 이 털옷뿐입니다. 속에 다른 옷을 입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인의 모습이란 더러운 것이라 여기에서 옷을 벗기는 마땅치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바로 안으로 돌아 들어가서 멀리서 아래를 향하고 몸에 입었던 털옷을 벗어서 비구에게 주었다. 비구는 주원을 하고 부처님께로 가지고 갔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야, 그 털옷을 가지고 오너라.’
비구가 부처님께 털옷을 드리자 부처님께서 손수 받으셨다. 그런데 그 털옷은 더럽게 때가 끼어 있었으므로 그곳에 모여 있던 왕과 여러 대중들은 마음속으로는 조금 부처님께서 이 때가 낀 털옷을 받으시는 것을 싫어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대중의 마음을 아시고서 말씀하셨다.
‘내가 이 모임을 살피건대 이 털옷을 보시한 이보다 더 깨끗하고 큰 보시를 한 이는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대중들은 두려워하며 몸을 웅크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왕의 부인은 기쁜 마음에 이내 자기 몸에 입고 있던 영락(瓔珞)으로 꾸민 보배 옷을 벗어서 다이가에게 보냈고, 왕 또한 기뻐하면서 옷을 벗어서 그 남편에게 보내어 모임에 나오도록 명령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가난한 여인 다이가란 이가 누구인지 알고 싶으냐? 바로 지금의 숙리 비구니이니라. 그 때에 청정한 마음으로 털옷을 보시하였기 때문에 91겁 동안 태어나는 곳에서 마다 언제나 털옷과 함께 태어났고, 모자란 바가 없었느니라.”『현우경(賢愚經)』 제7권에 나온다.
(3) 발타가비라(跋陀迦毘羅)가 왕의 핍박을 받았으나 그의 마음은 물들지 않았다
구살라국(俱薩羅國)의 바사닉왕(波斯匿王)은 발타가비라가 출가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내 궁중으로 청하여 들여 여름 넉 달 동안의 안거(安居)에 자기와 한 곳에서 함께 머물도록 하였다.
왕은 동산에 가서 문지기에게 말하였다.
“너는 문을 잘 지키어 이 출가하려는 여인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여라.”
문지기는 생각하였다.
‘이 출가할 여인은 이곳에 사는 것을 좋아하므로 도망가지는 않으리라.’
그러다 문지기가 딴 일이 있어서 잠시 나간 사이에 여인은 부인의 옷을 입고 문에서 나와 멀리 기원(祇園)에 이르러 부처님의 설법을 들었다.
부처님께서는 멀리서 보고 말씀하셨다.
“잘 왔노라, 발타가비라야.”
그러자 이내 입고 있던 부인의 옷은 사라지고 머리카락도 저절로 떨어지며 가사가 몸에 입혀지면서 비구니가 되었다.
발타가비라가 부처님께로 와서 예배하자,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하여 네 가지 여의족의 힘[四如意足力]을 말씀하셨고, 이 때 비구니는 신족의 힘을 얻었다.
왕은 발타가비라 여인이 도망갔다는 말을 듣고 이내 병사들을 거느리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와서 비구 대중을 에워싸고 비구니의 방을 에워쌌다. 그런데 이 비구니가 갑자기 허공으로 날아오르므로 왕은 그것을 쳐다보고서 이내 뉘우치는 마음을 내었다.
“내가 어떻게 아라한 비구니를 더럽힐 수 있겠는가?”
왕이 마음이 답답하여 땅에 주저앉아 비구니를 향하여 과오를 뉘우쳤다. 절 안의 비구니들이 발타가비라를 몰아내며 나가라고 하니, 대답하였다.
“나는 애욕의 마음은 없었습니다.”
비구니들은 말하였습니다.
“당신이 여름 넉 달 동안을 왕의 궁전 안에서 함께 살았는데, 어떻게 애욕이 없었다고 합니까?”
그리고 이 일을 부처님께 아뢰니, 부처님께서는 모든 일을 아시면서 짐짓 이 비구니에게 물으셨다.
“너는 실제로 음행을 하지 않았느냐?”
비구니가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어떻게 음행을 하겠사옵니까? 저는 이 음행이란 것이야말로 마치 달군 쇠를 몸에다 넣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있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네가 만약 음행의 마음이 없었다면, 죄가 없느니라.”『십송률선송(十誦律善誦)』 제2권에 나온다.
(4) 화색(華色)이 도를 얻은 뒤에 누워 있었는데 바라문이 몰래 부정한 짓을 하다
부처님께서 사위성(舍衛城)에 계셨다. 그 때 우선나읍(優善那邑)에 어느 젊은 거사(居士) 한 사람이 돌아다니며 놀다가 연화색(蓮華色)이라는 한 여인을 보게 되었다. 그 여인의 생김새가 마치 잘생긴 복숭아처럼 아름다웠고 몸매도 아주 여성스러웠기에 그 마음과 용모를 공경하고 중히 여기어 이내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서 부인에게 태기가 있었으므로 친정 집에 보냈는데, 달이 차서 딸을 낳았다. 남편은 아내가 해산을 하였으므로 가까이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러다 드디어 몰래 그녀의 어머니와 정을 통하고 말았다. 연화색이 그것을 알고는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려 하였다. 그러나 부부의 길을 끊으면 부모에게 누(累)가 될까 두려웠고, 또 젖먹이 아이가 가여워서 부끄러움을 꾹 참고 남편의 집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딸을 여덟 살까지 기르고 난 다음에 집을 떠나 바라내(波羅奈)에 이르렀다. 부인은 오래 굶주리고 몹시 지쳤던 터라 물가에 앉아 있었다.
이 때 한 장자가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다가 그녀를 보고는 사랑하게 되어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사는 누구입니까? 부모와 성씨는 무엇이며 현재 남편은 누구인데, 왜 혼자 여기에 계십니까?”
연화색은 말하였다.
“저는 아무개의 딸인데, 지금은 혼자 있습니다.”
장자는 다시 물었다.
“만약 남편이 없으시다면 저의 정실(正室)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대답하였다.
“여인은 남편이 있어야 되는데, 왜 안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내 여인을 싣고 돌아가 정식 부인으로 삼았다.
연화색은 그 집안을 두루 돌보며 모두가 화합하게 하였고, 부부도 서로가 중히 여기면서 여덟 해를 지냈다.
어느 날 장자는 그의 부인에게 말하였다.
“나에게는 우선나읍(優善那邑)에 받을 돈이 있는데, 거두어들이지 않는 지가 벌써 8년이나 되었소. 따져서 계산해 보면 엄청나게 큰 돈이 될 것이오. 이제 가서 그 돈을 받아 와야겠으니 당신과는 잠시 이별을 해야 되겠소.”
부인은 말하였다.
“그 읍의 풍속에 여인들은 방탕하게 놉니다. 당신이 지금 가시면 어쩌면 장부의 지조를 잃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장자가 대답하였다.
“나 비록 못나고 어리석지만 그 정도로 막 나가는 사람은 아니오.”
부인은 다시 말하였다.
“만약 꼭 그렇다면 가셔도 됩니다마는, 맹세 한마디는 듣고 싶습니다.”
장부가 대답하였다.
“그래, 좋습니다. 내가 만약 사악한 마음을 일으킨다면 그런 생각을 더불어 같이 없애겠습니다.”
장자는 이렇게 부인과 이별하고 떠나가 그 읍에 도착하였다. 돈을 찾고 거두어들일 곳이 많았기에 어느덧 해를 지나게 되었으므로 장자는 여인 생각이 점차로 깊어지게 되었다.
“내가 만약 사악하게 음행을 한다면 본래의 맹세를 저버리는 것이 된다. 그러나 다시 별실(別室)을 취하게 된다면 그거야 약속을 어긴 것이 되지 않으리라.”
그래서 그럴 만한 기회를 찾고 있다가 한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얼굴 모습이 아름답고 아무리 보아도 사악해 보이지는 않았기에 매우 공경하고 사랑하여 이내 가서 구혼하였다.
여자의 아버지는 장자가 재주도 총명하고 큰 부자였기 때문에 기뻐하면서 그에게 허락하였다. 장자는 거두어들일 것을 다 찾아 거두어들인 뒤에 그 여인을 본국으로 데리고 돌아와 따로 집을 마련하여 살게 해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장자가 매일같이 아침이면 나갔다가 저물어서야 돌아오는 것이 옛날과는 사뭇 다르므로, 연화색은 괴이하게 여기어 은밀하게 그 따라다니는 종에게 물어보았다. 따라다니는 종은 대답하였다.
“나이 어린 작은 부인이 계십니다.”
날이 저물어 그 남편이 돌아오자 연화색은 물었다.
“당신께서는 새로 작은 부인을 보았다던데 무엇 때문에 숨겨 놓고 나에게 보여 주지 않는 것입니까?”
장자가 대답하였다.
“당신이 보시면 나를 원망할까 두려웠기 때문에 밖에다 따로 살게 하였습니다.”
부인은 말하였다.
“제가 싫어하거나 시새움이 없을 것을 신명(神明)께서 보고 아십니다. 불러와서 당신 돌보는 일을 돕게 하십시오.”
그러자 장자는 바로 그 여인을 데리고 돌아왔다.
이렇게 모녀(母女)가 서로 만났으나 서로가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첫째 부인은 머리를 감으면서 작은 부인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고서야 비로소 딸이 아닌가 의심을 하게 되었다. 곧 고향과 부모며 성씨를 물어보았더니 여인은 자세히 대답하였고, 그제야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놀라 한탄하면서 말하였다.
“내가 옛날에는 어머니와 함께 남편을 나누었고, 지금은 딸과 낭군을 같이하게 되었구나. 나고 죽고 혼미한 어지러움이 여기까지 이르렀구나. 애욕을 끊고 출가하여 도를 닦지 않으면, 이러한 뒤바뀜을 무엇으로 그치게 하겠느냐?”
연화색은 모든 것을 버리고서 떠나 기원(祇洹)의 문에 이르렀으나 굶주린 데다 몹시 지쳐서 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 때 세존께서는 마침 대중에게 에워싸여 설법을 하고 계셨다. 연화색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명절의 모임이라 음식이 있을 것이라 여기면서 정사(精舍)에 들어갔다. 불세존께서 대중들을 위하여 설법하시는 것을 보고, 법을 듣자 저절로 마음이 열리고 이해가 되면서 배고픔과 목마름이 싹 가셨다.
이 때 세존께서는 대중의 모임 가운데에서 누가 제도될 만한가를 두루 살펴보고 계셨다. 연화색만이 도의 과위를 얻을 만하였기에 이내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를 설명하셨으니, 연화색은 그 자리에서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면서 법눈의 깨끗함을 얻었다.
과위를 얻은 뒤에 일심으로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서 있었다. 부처님의 설법이 끝나고 모인 대중들이 저마다 돌아가자, 연화색은 부처님께로 나아가 발에 예배하고 길게 무릎 꿇고 합장하고 아뢰었다.
“부처님 법 가운데서 출가할 수 있게 하옵소서.”
부처님께서는 바로 허락하시면서 파사파제(波闍波提) 비구니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이제 이 여인을 제도하여 도를 닦게 하십시오.”
파사파제 비구니가 이내 연화색을 출가시켜 구족계(具足戒)를 받게 하였으니, 부지런히 행하고 힘써 나아가다가 아라한이 되었다.
8해탈(解脫)을 갖추게 되자 얼굴 모습에 빛이 나서 옛날보다 갑절 더 아름다워졌다. 그러므로 성에 들어가 걸식할 때에 어떤 바라문 하나가 그를 보고 음탕한 마음을 먹으며 생각하였다.
‘이런, 비구니라 이제는 얻을 수가 없겠구나. 그가 살고 있는 처소로 찾아가 어디 방법을 찾아보리라.’
연화색이 뒤에 다시 걸식을 나갔는데, 그 바라문이 몰래 뒤따라 들어가 그의 침대 밑에 엎드려 숨어 있었다. 이날은 여러 비구니들이 밤이 새도록 설법을 듣느라 몹시 지쳤으므로 방으로 돌아가 배와 가슴을 위로 하고 누워서 깊은 잠에 빠졌다. 이 때 바라문이 평상 밑에서 나와 부정한 짓을 하였다. 그러자 비구니의 몸은 이내 허공으로 솟아올랐고, 그 바라문은 평상 위에서 산 채로 곧바로 지옥에 들어갔다.『미사색률(彌沙塞律)』 제5권에 나온다.
(5) 연화(蓮華) 음녀(婬女)는 변화로 된 사람을 본 뒤에 설법을 듣고 뜻이 풀리다
부처님께서는 라열기(羅閱祇) 기사굴산(耆闍堀山)에 계셨다. 그 때에 연화(蓮華)라고 하는 한 음녀가 있었다. 착한 마음이 저절로 나서 문득 세간 일을 버리고 비구니가 되려고 산 속 부처님께로 갔다.
그런데 여인이 아직 부처님 처소에 이르기 전 중도에 흐르는 샘물에서 물을 마시고 손을 씻으면서 스스로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 모습을 살펴보았다. 자신의 얼굴이 아름답기 견줄 데 없으므로 혼자서 생각하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얼굴을 어떻게 버리고 사문이 되겠느냐? 잠시라도 나의 마음대로 유쾌하게 살아 보아야지.’
그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부처님께서는 연화가 제도되어야 함을 아셨다. 그래서 생김새가 단정하여 세상에서는 다시없을 만큼 뛰어나게 아름다운 부인으로 변하였는데, 연화 여인보다 더 훌륭하였다.
부처님께서 변한 부인이 길을 찾아오는 것을 연화가 보고는, 마음으로 매우 사랑하고 공경하면서 이내 변화로 된 사람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시는 길이십니까? 당신의 남편과 안팎식구들 모두는 어느 곳에 계시기에 어째서 혼자 다니시면서 따르는 종도 없으십니까?”
변화로 된 사람은 대답하였다.
“성안에서 오는 길인데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비록 서로 알지는 못합니다마는 함께 도로 샘물 위쪽으로 가 주셨으면 합니다.”
연화는 말하였다.
“좋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샘물 위로 도로 가서 서로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변화로 된 사람이 연화의 무릎을 베개삼아 누워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깐 사이에 갑자기 숨이 끊어져 몸은 띵띵 부풀어오르고 냄새가 나면서 문드러지며 배가 썩어 쳐지면서 벌레가 나오고 이가 빠지고 머리카락이 떨어지며 몸의 살이 가리가리 흩어졌다. 연화가 그것을 보고 마음에 크게 놀라 두려워하였다.
‘어떻게 그리 아름답던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죽게 되었을까? 이렇게 어여쁜 사람도 오히려 이 모양으로 되었는데, 난들 어찌 오래 살 수 있겠는가? 두려워서라도 나는 이제 부처님께 나아가 정진하며 도를 배우리라.’
그리고는 이내 부처님께로 가서 온몸을 땅에 던져 예배하고 이런 사정을 설명 드렸다. 부처님께서는 연화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에게는 믿고 의지할 수 없는 네 가지 일이 있느니라. 첫째는 젊음도 반드시 늙음으로 돌아가야 하며, 둘째는 굳세고 튼튼함도 반드시 죽음으로 돌아가야 하며, 셋째는 6친(親)의 즐거움도 반드시 이별하여야 하며, 넷째는 재물과 보물을 쌓아 놓았더라도 반드시 분산되게 마련인 것이니라.”
연화는 법을 듣고 기뻐하며 이해하여 아라한이 되었다.『연화녀경(蓮華女經)』에 나온다.
(6) 5백의 바라문녀(婆羅門女)들이 법을 듣고 깨치다
사위국(舍衛國) 동남쪽 바다에 등대가 있었다. 그 위에는 꽃과 향의 깨끗한 나무들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바라문 여자 5백 인이 외도를 받들어 섬기며 살고 있었다. 뜻을 세우고 정진하면서도 부처님께서 계시는 것을 몰랐는데, 그 여인들끼리 서로 말하였다.
“우리들이 여인으로 태어났기에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세 가지 일[三事]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몸은 자유로울 수 없으며 수명도 짧고 모습은 마치 허깨비와 같아서 다시 죽어야 될 몸일 뿐이다.
우리가 함께 향과 꽃의 등대 위에 가서 향과 꽃을 따다가 힘써 정진하며 재(齋)를 지내도록 하자. 범천(梵天)이 내려오시면 우리가 범천에 가서 태어나 오래오래 살면서 다시 죽지 않으며, 또 감시 같은 것은 없이 자유롭게 모든 죄의 응보를 떠나서 다시는 근심이 없게 하여 주시기를 빌어 보도록 하자.”
여인들은 이내 공양 거리를 가지고 등대 위에 가서 꽃과 향을 따다가 범천을 받들어 섬기면서 일심으로 재를 지니며 높으신 신이 내려오기를 빌었다. 부처님께서는 그 마음들이 제도할 만함을 보시고 이내 대중들과 함께 허공으로 날아올라 등대 위에 가셔서 나무 아래에 앉으셨다.
모든 여인들은 기뻐하면서 이 분이 바로 범천이라 여기며 서로가 경하하고 위로하였다.
“이제 우리 소원을 이루게 되었구나.”
이 때 천인 한 분이 여인들에게 말하였다.
“이 분은 범천이 아니고 바로 삼계(三界)에서 가장 높으신 부처님이시온데, 사람을 제도하심이 한량없습니다.”
그러자 모든 여인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은 때[垢]가 많아서 지금 여인이 되었사옵니다. 감시와 단속을 벗어나 이제 범천에 나기를 원하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여인들아, 너희들이 착하고 영리해서 이런 원을 세웠구나. 세상에는 그 과보가 분명한 두 가지 일이 있으니, 선을 행하면 복을 받고 악을 행하면 재앙을 받음이 그것이니라. 세간의 괴로움과 천상의 즐거움, 그리고 유위(有爲)의 번거로움과 무위(無爲)의 고요함, 누가 그것을 잘 선택하여 그 진실을 구하겠느냐? 훌륭하도다, 여인들아. 참으로 장한 뜻을 세웠구나.”
세존께서는 이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누가 능히 자리[地]를 골라서
감시를 떨치고 하늘을 취할까.
누가 법의 글귀를 말하기를
마치 좋은 꽃을 고르듯 할까.
세간에 산처럼 쌓인 논의와
허깨비 같은 법이 잠깐뿐임을 알고
악마의 꽃이 피는 것을 끊으면
죽고 나는 것을 다시 보지 않으리.
모든 여인들은 이 게송을 듣고 참된 도를 배우는 비구니가 되기를 원하였다. 그러자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지고 법의가 완전히 갖추어졌으며, 고요한 선정을 생각하다가 바로 아라한 도를 얻었다.『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 제3권에 나온다.
(7) 바라문니(婆羅門尼)가 우타이(優陀夷)를 청하였으나 오만 때문에 법을 듣지 못하다
우타이가 구살라국(拘薩羅國)에 가서 비뉴가단연씨(毘紐迦亶延氏) 바라문니의 암라원(菴羅園)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니(尼)의 여러 제자들은 이곳 저곳 다니면서 나무를 하다가 암라원에 이르렀다. 그들은 한 나무 아래 앉아 있는 우타이를 발견하였다. 우타이의 용모가 단정하고 모든 감관이 고요하며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아 첫째가는 조복(調伏)을 성취하였음을 알았다. 제자들은 그에게로 나아가 문안하고 물러나 앉았다.
그 때 우타이는 젊은이들을 위하여 갖가지로 설법하여 권하고 격려한 뒤에 잠자코 있었다. 그 젊은이들은 법을 듣고 기뻐하면서 묶은 나무를 짊어지고 니의 처소로 돌아가 화상(和上)에게 말하였다.
“동산 안에 성이 구담씨(瞿曇氏)라는 사문이 계셨는데 설법을 아주 잘 하였습니다.”
니는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가서 내일 여기 오셔서 밥을 잡수도록 청하여라.”
제자들이 분부를 받고 가서 청하자 존자가 잠자코 있으므로 돌아와 화상에게 말하였다.
“존자께서는 청을 받으셨습니다.”
다음 날 우타이는 날이 새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니의 집으로 갔다. 니는 멀리서 우타이가 오는 것을 보고 자리를 펴며 앉기를 청하고 갖가지 음식을 마련하여 손수 맛있는 것을 공양하였다. 우타이는 만족하게 음식을 먹은 후 손을 씻고 양치질하고 발우를 씻고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바라문니는 좋은 가죽신을 신고 옷으로 머리를 덮고서 따로 높은 평상에 있으면서 오만한 모습을 나타내며 우타이에게 말하였다.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으시다면 대답하여 주시겠습니까?”
우타이가 대답하였다.
“누이여,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다음 날 제자들은 다시 동산 안으로 나무를 하러 가서 설법을 듣고는 돌아와 화상에게 말하였다. 니는 다시 제자를 보내어 식사하기를 청하게 하고 앞에서와 같이 세 번을 그렇게 하면서 법을 청하였다. 그러나 우타이는 번번이 때가 아니라고 대답하였으므로, 여러 제자들은 말하였다.
“화상 니께서 공경하지 않은 태도로 앉으셨는데, 그가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화상 니는 말하였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다시 나를 위하여 청하라.”
분부를 받고 다시 청하여 앞에서와 같이 공양하였다.
이 때 화상 니는 식사가 다 끝난 것을 알고는 가죽신과 훌륭한 옷을 벗고 다시 낮은 평상에 앉아서 공경하며 아뢰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대답하여 주시겠습니까?”
우타이는 대답하였다.
“묻기만 하시오. 그대를 위하여 말해 주리다.”
그는 이내 물었다.
“괴로움과 즐거움을 자신이 짓는다고 어찌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또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남이 짓는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또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자신과 남이 짓는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또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신이 짓는 것도 아니고, 남이 짓는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답하였다.
“누이여, 아라하(阿羅訶)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르게 생긴다’고 하셨느니라.”
다시 물었다.
“그 이치는 무엇입니까?”
대답하였다.
“그것은 그 인연에서 모든 괴로움과 즐거움이 생기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우타이는 다시 말하였다.
“내가 이제 그대에게 묻겠다. 그대의 뜻대로 대답을 하여라. 눈이 있는가?”
“있습니다.”
“그럼 물질[色]이 있는가?”
“있습니다.”
“눈 알음알이[眼識]가 있고 눈 닿음[眼觸]이 있으니, 닿음의 인연으로 느낌[受]이 나는 것이니라. 속으로 괴로움이나 즐거움이나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깨닫는가?”
“그러하옵니다.”
우타이는 말하였다.
“이것은 바로 아라한의 말씀이신데, 그 인연으로부터 괴로움과 즐거움이 생겨나는 것이니라.”
존자가 이 법을 말하자, 바라문니는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눈의 깨끗함을 얻었다. 그리고 자리로부터 일어나 의복을 바로잡고 공경하며 합장하고 존자에게 말하였다.
“저는 오늘 뛰어난 결정(決定)에 들었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부처님과 가르침과 스님들[佛法僧]께 귀의하겠사오며, 수명이 다하도록 3보(寶)께 의지하겠습니다.”『우타이좌수적정조복경(優陀夷坐樹寂靜調伏經)』에 나온다.
(8) 차마(差摩)와 연화선(蓮華鮮)이 우악스럽고 사나운 사람들을 만나자 눈을 빼내어 재앙을 면하다
옛날 사위성 구살라원(拘薩羅園)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게으르고 음란한 무리들이 살고 있으면서 오로지 흉악한 짓만을 골라 하고 있었다.
이 때 나라 안의 여러 비구니들이 나무 아래에서 정진하면서 오로지 바른 도만을 생각하며 그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들 비구니 중에서 지혜의 첫째는 차마(差摩)였고, 신족의 첫째는 연화선(蓮華鮮)이었다. 저마다 덕행이 있고 거룩한 위엄이 높고 뛰어났었다.
그러던 어느 날 때마침 날이 조금 더웠기에 다 함께 목욕을 하려고 흐르는 물가로 나아갔다. 그런데 흉악한 무리들은 멀리서 이들을 보고는 이내 나쁜 마음과 음탕한 뜻이 일어났다. 흉악한 무리들이 비구니들을 범하려고 기다리고 있다가, 마침 비구니들이 옷을 벗고 물 속에 들어가 목욕을 시작하자 이내 다가가서 옷을 들어 먼 데에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비구니를 끌고 가서 그들을 범하려 하였다.
이 때 비구니들은 슬퍼서 상심하는 한편 그들을 가엾이 여기었다. 그리고 두 눈을 후벼 빼내어 손바닥 위에 놓고, 또 여러 가지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였다.
“당신들이 우리를 좋아라 하는 것은 얼굴빛만을 사랑해서입니다. 우리가 이미 봉사가 되어 눈도 없으니 이제 좋아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리고 다시 장(腸)과 위(胃)와 몸 속의 오장(五臟)과 손발을 각기 떼어 한쪽에 버려두고 흉악한 무리들에게 말하였다.
“보기 좋은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흉악한 무리들은 이것을 보고서 갑자기 두려워하면서 세상이 무상하고 삼계(三界)는 마치 더부살이 같음을 알게 되었다. 또 몸이라는 것은 변화로 이루어진 것이며, 뼈와 피는 부정한 것이어서 탐내 집착할 만한 것이 아님을 알고, 이내 옷을 반환하며 머리 조아려 허물을 뉘우쳤다.
“저희들이 해서는 안 될 악한 짓을 하였고 또 의리를 반역하였습니다만, 제발 그 재앙이 없게 하여 주십시오.”
오래도록 무릎 꿇고 합장하고 저마다 5계(戒)를 받고 부처님께로 가서 땅에 머리 조아리며 자신의 죄를 스스로 자책하였다.『생경(生經)』 제4권에 나오며, 또 『비니(毘尼)』에도 나온다.
(9) 비저라(毘低羅)가 먼저는 간탐을 부렸으나 부처님에게서 교화를 받고 도를 깨치다
수달(須達) 장자에게 비저라(毘低羅)라는 늙은 여종이 있었다. 집안 일에 근면하고 근신하므로 창고를 관장하게 하면서 모두를 그에게 맡기고 살았다.
수달 장자는 부처님과 스님들을 청하여 필요한 물건을 공급하고 비구를 간병하느라 구하고 찾는 물건이 많았다. 그러자 그 여종은 인색하게 욕심을 부리면서 부처님과 가르침과 스님들[佛法僧]께 화를 내면서 말하였다.
“우리 집 장자님은 어리석고 미혹하여서 사문의 술책에 놀아나는구나. 염치없이 만날 달라고만 하는데 그 사람들한테 무슨 도가 있겠느냐?”
이런 말을 한 뒤에 다시 나쁜 원을 세웠다.
“언제나 부처님이니 가르침이니 스님네니 하는 그 따위 이름을 듣지 않게 될까?”
말리(末利) 부인이 그 말을 듣고 말하였다.
“아름다운 연꽃처럼 좋은 사람인 수달이 어찌하여 네 마리 독사를 세웠을까?”
그리고 즉시 수달에게 명령하였다.
“당신의 부인을 불러오십시오.”
그의 부인이 도착하자 말하였다.
“당신 집 늙은 여종은 나쁜 말로 비방을 하는데, 어째서 내쫓지 않습니까?”
부인은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나오셔서 이익되게 하는 무리가 많습니다. 하물며 늙은 여종이겠습니까?”
말리 부인은 듣자마자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였다.
“내가 부처님을 청하고자 하니, 당신은 여종을 보내 주시오.”
다음 날 부처님께서 도착하셨다. 장자도 여종에게 병에 가득히 금과 좋은 마니주를 담아 가지고 보내며 가서 왕가를 돕고 뭇 스님들에게 공양하라고 권하였다.
그 때 부처님께서 문을 들어가시자 늙은 여종은 그 모습을 보고서 마음으로 언짢아하며 즉시 물러나 개구멍으로 빠져나가려 하였다. 그러나 개구멍과 사방의 작은 거리들이 일시에 막히고 바른 길만이 트여 있어서 여종은 급한 김에 얼굴을 부채로 가렸다. 부처님께서는 그 앞에 서서 부채를 마치 거울처럼 만들어 장애를 없게 하셨다. 여종이 머리를 돌려 사방 어디를 돌아보아도 모두 다 부처님이 보이는지라 머리를 숙이고 땅에 엎드리니 열 개의 손가락이 모두가 부처님으로 변화하였다.
늙은 여종은 부처님과 여러 깨우침을 보고 80만 겁(劫)을 물리쳐 없앴으며, 비록 믿음을 내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생사의 죄를 물리칠 수 있었다. 부처님께서 몸의 신기함을 보이자 여종은 달려서 집으로 돌아가 나무 장롱 속으로 들어가 흰 털옷으로 머리를 싸고서 다시 부처님을 보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여종은 죄가 중한지라 부처와는 인연이 없지만, 라후라(羅睺羅)가 그와는 큰 인연이 있으니 그를 교화하게 하리라.”
그래서 라후라는 부처님의 거룩한 신력을 이어받아 여의정(如意定)에 들어가 몸을 변화하여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었다. 1,250명의 비구는 천 명의 아들로 변했으며, 아난은 전장신(典藏臣)이 되었고, 난타(難陀)는 주병신(主兵臣)이 되었으며, 7보(寶)와 4병(兵)이 모두 다 두루 갖추어졌다. 이 때 금륜보(金輪寶)가 공중에 떠 있으면서 연화대(蓮華臺)를 타고 지름길로 해서 수달 대장자의 집으로 갔다. 야차(夜叉)가 부르짖었다.
“성왕(聖王)이 세간에 나오셔서 나쁜 사람들을 내쫓고 착한 법을 펴 드날리십니다.”
여종은 듣자마자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였다.
‘성왕이 나오셨다면 여의주(如意珠)가 있으므로 구하거나 찾아 달라고 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말할 수가 있으리라.’
그 때 성왕은 종을 치고 북을 울리면서 큰 보배 수레를 타고 수달의 집에 이르렀다. 여종은 성왕을 보자 아주 크게 기뻐하였다.
‘이제 성왕께서 세간에 나오셨으니 생활이 윤택하고 이익되는 일이 많겠구나. 그리고 선악을 분별하여 아시므로 사문에게 미혹되는 일은 절대 없으리라.’
이렇게 생각하며 나무로 만든 장롱으로부터 나와 성왕에게 공경히 예배하였다.
성왕은 이내 주보장신(主寶藏臣)을 시켜 여인에게로 가서 말하게 하였다.
“누이여, 당신은 전생에 복이 있어서 왕이 되실 몸이십니다. 성왕께서 지금 누이를 옥녀보(玉女寶)로 삼으시려 하십니다.”
여종이 아뢰었다.
“저의 몸은 비천하여 마치 쓰레기와 같습니다. 이렇게 성왕께서 찾아 주신 것만으로도 너무나 크고 기쁜 경사입니다. 제가 어찌 옥녀보까지 감당해 내겠습니까? 저를 정 생각해 주신다면 저의 주인에게 명하여 저를 놓아 노비 신분을 벗어나게 해 주신다면 너무나 고맙겠습니다.”
그러자 성왕은 수달에게 말하였다.
“그대 집에 있는 저 늙은 하인은 여러 가지 형상이 높고 뛰어나므로, 나는 이제 그를 옥녀보로 쓰려고 하오.”
수달은 아뢰었다.
“명을 따를 뿐이옵니다. 대왕에게 올리옵니다.”
늙은 여종은 자신을 놓아 준다는 말을 듣고 너무 기뻐서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성왕은 이내 여의주로써 여인의 얼굴을 비추면서 여인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옥녀보처럼 보이게 하자, 갑절 더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모든 사문들은 고상한 말과 큰 소리로 스스로 도가 있다고 말하지만, 하나도 효험이 없었습니다. 성왕이 세상에 나오시니 이렇게 이익되는 것이 많습니다. 늙어서 이제 아무 쓸모도 없는 나를 옥녀보처럼 만드셨으니 말입니다.”
늙은 여종은 이 말을 하고 나서 온몸을 땅에 던지고 성왕에게 예배하였다. 이 때 전장신이 왕의 좋은 명령을 펴며 10선법(善法)을 열어 주었다. 여인은 열 가지 선행을 듣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이내 말하였다.
“성왕께서 말씀하신 바 이치가 장하지 않음이 없으십니다.”
그리고 왕에게 예배하면서 과오를 뉘우치고 자책하였으니, 마음은 이미 조복되었다. 그제야 라후라는 본래의 몸으로 회복되었으니, 여종은 머리를 들어 1,250명의 비구를 보면서 말하였다.
“부처님 법이 청정하여 중생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저와 같은 못되고 나쁜 이조차도 오히려 제도를 하셨군요.”
이 말을 하고 나서 5계를 받기를 청하므로, 라후라는 그를 위하여 3귀 5계의 법[三歸五戒法]을 말하였다. 여종은 이 법을 듣고 아직 머리도 들기 전에 수다원(須陀洹)이 되었다.
그리고 라후라는 이 여종을 데리고 기타림(祇陀林)으로 나아갔다. 기타림에 닿자마자 여종은 부처님을 보고 기뻐하면서 합장하고 예배하고 참회하였다. 여종이 부처님께 출가를 청하자, 부처님께서는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여인을 데리고 교담미(僑曇彌)에게로 가라.”
아직 교담미의 처소에 도착하기 전 길 중간에서 라후라는 그를 위하여 괴로움[苦]ㆍ공(空)ㆍ무상(無常)ㆍ무아(無我) 등의 법을 해설하였다. 여종은 이 말을 들은 뒤에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지며 비구니가 되면서 3명(明), 6통(通)이며 8해탈(解脫)을 완전히 갖추었다. 바사닉왕(波斯匿王)과 말리 부인은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여인 같은 이는 전생에 어떤 죄가 있었고, 또 어떠한 복과 경사로 아라한 도를 얻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과거의 겁 때에 부처님 세존께서 계셨나니, 명호는 보개등왕불(寶蓋燈王佛)이셨느니라. 그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후 상법(像法) 동안에 잡보화광왕(雜寶花光王)이라는 왕이 있었느니라. 그 왕에게는 쾌견(快見)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출가하려고 청하자 그 부왕은 이내 허락하였느니라.
이 때 총명하여 지혜가 많고 깊이 실상(實相)을 이해하는 비구가 있다가 그를 받아 제자로 삼았으며, 또 덕화광(德花光)이라는 비구가 법요(法要)를 잘 말하여 초학(初學)을 잘 이끌어 나갔느니라.
왕자 비구는 비록 출가는 하였으나 오히려 교만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화상이 그를 위하여 매우 깊은 묘한 법인 반야바라밀(般若婆羅蜜)의 커다란 공(空)의 이치를 설명하였는데도 왕자는 듣고 나서 잘못 이해하고 그릇되게 말하였느니라. 그래서 비구가 죽은 뒤에 왕자 비구가 말하였다.
‘우리 대화상은 텅 비고 지혜가 없어서 다만 허무하고 공(空)한 일을 찬탄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 생에는 그를 보지 않기를 원한다. 나의 아사리(阿闍梨)는 지혜가 있고 말재주도 있으므로 이 생에서 선지식(善知識)이 되기를 원한다.’
왕자 비구는 이 말을 한 뒤에 바른 법은 그릇된 법으로 말하면서 모두가 그릇된 소견을 짓게 하였다. 비록 계율을 잘 지켜서 위엄 있는 거동으로는 모자라지 않았지만, 법을 잘못 알았기 때문에 목숨을 마친 뒤에는 그대로 아비(阿鼻)지옥에 떨어졌다. 그리고 80억 겁 동안을 빈천한 사람이거나 귀머거리나 봉사로 태어났고, 남의 집 여종이 되곤 하였었다.
그 때의 화상은 바로 지금의 나의 몸이며, 그 때의 아사리는 바로 지금의 라후라이고, 왕자 비구는 바로 지금의 이 늙은 여종이니라.”『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 제6권에 나온다.
(10) 바사타(婆四吒) 어머니는 아들들이 죽자 미친 증세까지 일어났으나 법을 듣고 도를 얻다
어느 바사타 바라문의 어머니는 여섯 아들이 잇달아 죽자 죽은 아들들을 생각하다가 미친 증세가 일어났다. 발가숭이가 되어 머리를 풀어 헤치고 길을 따라 달려 다니곤 하였는데, 한번은 멀리서 세존을 보고 이내 본심으로 돌아가 부끄러워하면서 몸을 여미며 쭈그리고 앉았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울다라승(鬱多羅僧)을 가져다 입혀 주고 법을 듣게 하여라.”
아난이 옷을 주어 입혀서 부처님 앞에 데리고 가니 그 어머니는 머리 조아리고 부처님께 예배하였다. 부처님께서 그를 위하여 법을 말씀하시어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이롭게 하시고 기쁘게 하시자, 3자귀(自歸)를 받고 우바이가 되어서는 기뻐하면서 떠나갔다.
그러다 그의 일곱째 아들도 뒷날 죽게 되었는데, 이 여인은 도무지 슬퍼하거나 울지 않았다. 남편은 게송으로써 물었다.
딴 아들들이 먼저 목숨을 마칠 적엔
그대는 아들 생각에 괴로워하면서
밤낮을 마시지도 먹지도 않고
미친 증세까지 일어날 지경이더니
이제 일곱째 아들이 죽었는데도
이 아이의 죽음은 고통스럽지 않습니까?
아내는 말하였다.
자손이란 그 수가 한량이 없어
인연(因緣)이 어울리면 나는 것이오.
오랜 세월 동안의 과거를 지나면서
나와 당신 또한 그러하였지요.
그러니 태어나는 곳마다
다시 서로 미워하고 해치게 됩니다.
필요하면 나게 되는 줄 안다면
무엇 하러 또 근심을 하겠소?
나는 이미 벗어남 알고 있기에
이 때문에 다시는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남편은 말하였다.
이러한 법 아직은 듣지 못했는데
이제야 당신의 말 들었소.
어느 곳에서 바른 법을 들었기에
아들을 근심하지 아니합니까?
아내는 말하였다.
오늘 평등하고 바르게 깨달으신 이께서
영원히 온갖 고통 여의게 하려고
고집멸도(苦集滅道)를 말씀하셨으므로
안온하게 열반에 나아갔으며
나는 이미 바른 법을 알고 있기에
아들 위한 근심을 환히 깨우쳤소.
남편은 말하였다.
나도 이제 또한
미치암라원(彌絺菴羅園)에 가서
저 세존으로부터
아들 근심하는 괴로움 깨우치기 청하리라.
아내는 말하였다.
평등하고 바르게 깨달으신 이의
부드러운 금빛의 몸[金色身] 보게 되면
조복되지 않은 이를 능히 조복하며
널리 온갖 사람들을 제도하시옵니다.
그 남편이 가서 부처님을 뵙자 부처님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고집멸도(苦集滅道)는
열반을 향함이 아닌 것이요
그것은 곧 법을 보는 것이니라.
견줄 데 없는 법[無等聞] 이루는 것이니라.
법을 듣자 뜻이 풀리어 부처님에게서 출가하여 혼자 고요히 생각하다가 아라한이 되었으며, 아내와 딸 손타반리(孫陀槃梨)도 모두 출가하여 괴로움의 끝[苦邊]을 마쳤다.『잡아함경(雜阿含經)』 제34권에 나온다.
(11) 고독한 모녀(母女)가 왕에게 받아들여지고 출가하여 도를 깨치다
사위성(舍衛城)에 외롭게 살고 있는 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나이 열일곱 살이었다. 용모가 단정하고 엄숙하였으나 옷은 몸조차 가리지 못할 정도였으며, 어머니의 걸식으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 딸은 정숙 현명하고 아는 것이 많았으며, 경서를 읽고 절개를 지키면서 문 밖 출입을 하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왕이 다니는 길 곁에 살면서 마음으로는 왕에게 시집갈 것을 원하였고, 또 부처님과 같은 신을 섬기기를 원하였다.
어느 날 왕이 나라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까마귀 한 마리가 가난한 여인의 문 위에서 우는 것을 보게 되었다. 왕은 이내 활을 들어 까마귀를 쏘았다. 그러자 까마귀는 왕의 화살을 몸에 매단 채 여인의 집으로 날아 들어갔다. 왕의 시중이 까마귀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더니, 여인은 얼굴도 내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저 화살을 뽑고 까마귀를 놓아 보내고 화살만을 밖으로 던져 주었다. 왕의 시중이 그 여인의 손가락을 보고 그가 비범한 사람인 줄을 알았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 왕의 첫째 부인이 죽었다. 널리 부인을 구하였으나 마땅한 상대가 없는지라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찾고 있었다. 마침 주위 사람들이 이렇게 아뢰었다.
“예전에 까마귀를 쏘았을 때, 외롭게 살고 있는 어머니에게 나이 16, 7세쯤 되는 딸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비록 얼굴은 보지 못하였사오나 손을 보고 음성을 들으니 분명 귀인 같았나이다.”
그러자 왕은 이내 명하였다.
“얼른 가서 불러서 데리고 오너라. 관상쟁이에게 점을 치도록 해 보자.”
심부름꾼은 여인의 집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안으로 들어갔는데, 마침 여인의 어머니는 집에 없었고, 여인 혼자만이 있었다.
심부름꾼이 여인에게 나오라고 세 번이나 불렀으나 응답하지 않으므로, 심부름꾼은 말하였다.
“가난한 집 딸이여, 어서 나오시오.”
여인은 대답하였다.
“잘났건 못났건 간에 저마다 한 집안의 자손인데, 당신은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나의 집에 마구 들어오는 것이오? 어서 문 밖으로 나가시오.”
심부름꾼이 말하였다.
“국왕께서 저를 보내어 당신을 불러오라 하셨소. 당신은 하찮은 집 자손으로서 어찌 감히 이리 무엄하게 구는 것이오?”
여인은 말하였다.
“국왕께서 무슨 일로 당신을 시켜 나를 데려오라 하시었단 말이오? 만약 나를 여종으로 삼겠다는 뜻이라면, 우리 집은 국법을 범한 바가 없으니 갈 수 없는 일이오. 만약 나를 청하여 아내로 삼겠다면 그대들이야말로 나의 잔심부름꾼에 지나지 않거늘, 당신이 어찌 감히 경솔하게 가난한 집의 대문이라고 세력을 뽐내며 박차고 들어와서 여인을 협박하는 것이오? 여인이 비록 미미하기는 하나 저마다 자신의 숙명이 있는 것이므로, 위협에 굽히지는 않겠소. 그대들은 왕에게 가서 그대로 아뢰시오.”
그러자 그 심부름꾼이 돌아가 자세히 왕에게 아뢰자, 왕은 칙명으로 백관(百官)에게 수레를 차리고 예의를 갖추게 하였다. 그리고 5백 명의 채녀들을 딸리어 가서 그를 영접하며, 심부름꾼에게 소와 양, 돼지와 술 등의 폐백 음식을 가지고 가서 공경히 뵙게 하였다. 심부름꾼은 비단 일산을 씌운 수레를 타고, 여인을 영접할 다섯 마리의 말을 끌고 여인의 집으로 갔다. 정병(精兵) 10만이 그 수레를 앞장서고, 뒤에는 수레 천 승(乘)과 작은 말 만 마리로 인도하게 하였다. 그리고 분산되어 따르는 12만 명의 사람들과 함께 종을 치고 북을 울리니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으며, 구경꾼들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여인의 집 문 앞에 도착하여 심부름꾼이 수레에서 내려 먼저 공경히 뵙기를 청하자, 여인은 명령을 공경히 받고 말하였다.
“심부름꾼과 모든 백관이며 백성들에게 감사합니다. 모두가 길을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외롭고 가난한 집 딸로서 비천하고 귀하지 아니한데, 멀리서 번거롭게 관속 시종들을 오시게 하였고, 왕의 중한 명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이 여인이 빈한하고 천한 것은 전생에 잘못 지은 복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의 계전(階殿)을 감당하기에는 스스로가 헤아려도 누추하며 여인으로서의 위엄 있고 덕 있는 자태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생김새도 복숭아꽃과 우담바라와 같은 뛰어난 용모가 아니며, 음성은 관현(管絃) 같은 귀에 스며드는 아름다움이 없으며, 지혜는 거룩한 대인(大人)으로서의 밝음이 없습니다. 지식은 만 리를 볼 수 있는 성인의 식견이 없으며, 몸은 자금(紫金) 같은 빛나는 윤기가 없고, 기식(氣息)은 전단(旃檀)과 사향(麝香)의 향기로움이 없습니다. 또 말씨는 충성스럽고 온화하지 못하며, 어질거나 착한 아름다움이 없고, 행은 진퇴(進退)와 고하(高下)의 예절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릇되게 왕명을 욕되게 하였고, 구경꾼들을 쓸데없이 수고롭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채녀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생을 반복하며 이 비천한 사역에 떨어졌구나. 지금부터라도 서로가 함께 따르면서 마땅히 저마다의 마음을 바로잡고 선행을 닦는 일을 해야 하느니라. 그리고 왕의 법도를 범하지 말아라.”
5백 명의 채녀들은 모두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나이다.”
그들의 대답을 듣고 나자, 또 2천5백의 하인[靑衣]을 불러서 말하였다.
“사람에겐 날 때부터의 귀천이란 없고, 도(道) 있는 사람이 바로 존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너희들은 모두가 착한 사람들의 자손인데, 예로부터 지금까지의 변화로 비천하고 미력한 자리에 처하게 되었을 뿐이다. 스스로가 비천하다 여기지 말고 선행을 하는 데 힘써야 하느니라.”
모두가 말하였다.
“가르침을 받들겠사옵니다.”
백관은 앞으로 나아가 왕가의 예의로서 황금 천 덩어리와 백은(白銀) 2천 덩이와 화려하고 상서로운 영락(瓔珞)ㆍ수정(水精)ㆍ유리(琉璃)ㆍ명월신주(明月神珠)ㆍ산호(珊瑚)ㆍ호박(琥珀)ㆍ백소(白素) 천 필ㆍ어겸(御縑) 천 필ㆍ비단의 피륙에 붉은 수를 놓은 자색, 녹색, 백색, 황색, 적색의 명주옷이며, 전단의 향기가 있는 갖가지의 것 천 필을 올렸다. 백관들이 옷 백 벌과 부인의 복식을 바치자, 여인은 그것을 받아들고 들어가 잘 꾸며 차려 입고 밖으로 나와서는 윗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백관들이 그 모습을 보고 다들 기뻐하면서 모두 다 함께 만세를 불렀다.
“우리 백성 만민의 어머니를 얻었구나.”
채녀와 하인들은 가까이에 붙어 따랐으니, 마치 아들이 어머니를 얻은 것과 같았다. 여인이 옷깃을 여미며 수레에 오르자 수레가 절로 바로 놓이고 말은 절로 길들여지며 하늘은 청명하여지면서 흰 코끼리가 구름처럼 모여 와 서로 따르며 울어댔다. 백관과 신민들은 모두가 말하였다.
“천인께서 이 세상에 내려오셨으니 나라가 반드시 편안하게 보전되리라.”
이렇게 왕궁의 문에 도달하자 저절로 문이 열리므로, 5백 명의 시종은 궁중으로 들어가 수레에서 내렸다. 궁중에서는 5색 광명이 저절로 나며 전각 위가 빛나면서 안팎을 밝게 비추었다. 여인이 궁전에 들어가 왕을 배알하자 왕은 여인을 보고는 놀라 두려워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자리에서 내려와 그에게 답하였다. 대부인이 왕을 백배(百拜)를 하며 뵙는데, 무릎 꿇는 것이 마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서 저절로 무릎을 꿇고 저절로 일어나 백배를 다 마쳤다. 왕도 오래도록 길게 무릎 꿇고 그에게 답례하였다.
부인이 궁중 안에 두루 명령을 내리는 것이 모두들 부드럽고 온화하며 어질고 착하게 행동하여 다른 이의 뜻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왕도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말을 천천히 하고 말수를 적게 하며, 말을 하면 반드시 이치에 부합되게 하였다. 이렇게 안팎이 서로 공경하며 승복을 하였다.
부인은 궁중에 들어온 지 밤낮 7일 동안을 잠도 자지 아니하고 여러 다른 부인들과 채녀들과 더불어 함께 서로 재미있게 놀았다. 왕은 그 부인을 만나고 싶은 뜻이 있었으나, 부인의 뜻이 곧고 마음은 깨끗하여 흐리거나 더러움에 있지 않았으며, 본래 뜻이 청정한지라 왕과는 함께 말하지도 아니하고 서로가 만나지도 아니하려 하였다. 왕은 말하였다.
“아내로서의 의무요 부부로서의 정분은 은혜와 사랑으로써 친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인께서는 궁중에 들어오신 지 밤낮 7일 동안을 우리가 서로 만나지도 못하게 하시는데, 그 뜻은 어떠한 것입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법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그러자 부인은 채녀를 시켜 왕에게 대답하도록 하였다.
“제가 본래 태어나면서부터 두 가지 소원이 있었사온데, 이제 이미 하나는 얻었거니와 아직 하나는 얻지 못하였나이다. 때문에 아직 만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왕은 말하였다.
“이미 얻었다는 것은 무엇이며, 아직 얻지 못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인은 대답하였다.
“저는 어릴 적부터 조그마한 서원을 세우되, 남편을 국왕처럼 되게 하는 것과 신을 섬기되 부처님을 따르는 것이었나이다.”
왕은 말하였다.
“한번 만나 본 다음에 나중에 가서 부처님을 부르겠습니다.”
부인은 말하였다.
“아니옵니다. 부처님을 뵙지 못하오면 끝내 왕을 만나 뵙지 않겠나이다.”
그러자 왕은 크게 성을 내었다.
“너는 본래 빈한하고 미천한 걸인 집안의 사람이다. 어찌 감히 만승(萬乘)의 뜻을 어기느냐?”
부인은 말하였다.
“아내의 목숨은 지아비에게 달려 있는 것이니 마음대로 부리면서 명령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랜 서원이 있는지라 저버릴 수가 없나이다. 왕이란 비록 높기는 하나 무고한 사람을 억지로 문초할 수는 없나이다.”
왕은 말하였다.
“나는 만승의 임금이라 나를 범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일 수 있다. 어찌 감히 억지로라느니 뜻대로라느니 하는 말을 하는 것이냐?”
부인은 말하였다.
“왕이란 백성의 부모이므로 끊고 베는 것도 도리로써 하셔야 합니다. 어떻게 혼자 기쁘고 혼자 성내면서 마음대로 할 수 있겠나이까? 일개 범부라 하더라도 그런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국왕이겠나이까?”
왕은 말하였다.
“나의 말을 따른다면 용서하겠거니와 따르지 않는다면 죽이리라.”
부인은 말하였다.
“내 비록 여인의 몸이나, 저 또한 작으나마 마음이 있습니다. 제 마음이 따르게 되면 만나겠거니와 마음을 따르게 되지 않으시면 끝내 만나지 않겠나이다.”
왕은 말하였다.
“그럼 어떻게 청하면 되겠소?”
부인은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지금 우리 나라에 계시므로 왕께서 청하시면 반드시 오실 것입니다.”
왕은 말하였다.
“백관들이 비웃을까 두렵소.”
부인은 말하였다.
“왕께서 부처님을 청하시어 궁중에 들이시고, 부처님께서 전각에 오르시면 백관은 저절로 기뻐하며 가는 세상마다 복을 받을 것이므로 왕을 비웃지 못할 것입니다.”
왕은 말하였다.
“그럼 좋습니다.”
바로 그날 주방에 왕명을 내려서 10만 사람 분의 음식을 장만하게 하고서 시녀를 보내어 부인에게 아뢰게 하였다.
“부처님을 청하려고 10만 사람이 먹을 분량의 음식을 다 장만하여 놓았으니, 어서 가서 부처님을 초청하십시오.”
부인은 말하였다.
“아내란 명령만을 따를 뿐이니, 부처님을 청할 의무는 대왕께 있습니다. 대왕께서 잠깐 수레를 타고 직접 가시지요. 직접 부처님을 만나 뵈옵고 깊이 공경하셔야 되오리다.”
왕은 말하였다.
“내가 청하는 것이라면 나 스스로 가겠지만, 이것은 당신이 초청하는 것이므로 당신이 직접 가야 합니다. 나는 가지 않겠습니다.”
부인은 말하였다.
“왕이 존귀한 분이시지만 그래도 이 첩(妾)의 남편이십니다. 여인의 힘은 왕의 미약한 말씀 한마디보다도 못한 것이니, 왕께서는 위신을 굽히시어 잠시 가셔서 부처님을 만나 뵈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저는 이제 대왕의 집안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 부부로서나 아내로서의 의무가 없었으니, 이제 우리는 자연히 타인이 되는 것뿐입니다.”
왕은 말하였다.
“부부로서 아직 이루어지지 못했으니 권리와 의무도 없습니다. 이제 당신의 뜻에 달렸을 뿐입니다.”
부인은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몸에서 빛이 나며 얼굴색이 보통과 너무 달랐기에, 왕은 부인이 자살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혹은 떠나 버리려고 하는 것일까 의심을 하였다. 순라꾼과 염탐꾼을 시켜 지키게 하였고, 문을 지키는 병사들에게도 궁문을 닫아걸게 하였다. 걸어다니며 순찰하는 사람들이 서로 쭉 이어지게 하였기에 나는 새조차도 넘어갈 수가 없게 하였다. 또 궁중 안의 채녀들을 차례로 이어 세워서 바늘 하나도 찌를 자리가 없도록 하였다.
부인은, 왕이 부처님을 청하러 갈 마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믿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내 전각 위에서 변화로 사라져 버렸다.
부인의 몸이 보이지 않으므로 채녀 천 사람과 71인의 부인들은 모두가 놀라서 서로가 바라보며 흩어져서 찾았다. 그러나 안팎을 둘러싼 울타리까지 다 찾아도 끝내 보이지 않자, 왕은 크게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일어나 말하였다.
“이제 어떻게 하나? 내가 너무 뻣뻣하게만 굴어서 그만 한이 될 일을 만들고 말았구나. 무슨 방법을 써야 그녀를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그러자 둘째 부인이 왕에게 아뢰었다.
“대부인(大夫人)은 우리 같은 평범한 소인의 무리가 아니었나이다. 왕께서는 마땅히 그의 뜻에 맞추어 따라 주셨어야 하는데, 그렇게 거역을 하면서 왕께서 좋을 대로 성내고 욕설을 하면서 그녀를 대접하셨나이다. 그 분은 천인(天人)이었습니다. 왕께서 대부인을 떠나가시게 하셨으니, 이제 저희들 71인은 누구를 의지하고 믿어야 하옵니까?”
채녀와 하인들도 모두 다 슬피 울어대니 마치 초상난 집 같았다. 그리고 공경(公卿) 남녀 또한 모두가 슬퍼하고 원망하면서 말하였다.
“이제 우리 나라 안에서는 누구를 의지하고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온갖 새들도 울부짖었으므로 천지가 크게 진동하였다. 왕은 사태의 심각성을 깊이 느껴 죽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늘을 향하여 한숨을 쉬니 눈물이 비 오듯 떨어졌으며, 백성들은 모두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도시나 시골이 텅 비고 황폐해졌으며 모두들 열씩 다섯씩 서로 모여서 슬퍼하기만 하였다.
밤낮 7일 동안을 왕은 꼼짝도 않고 누워서 곡기를 끊고 먹지 않았으므로, 둘째 부인이 말하였다.
“잠시라도 부처님을 만나 뵙고 청하여 함께 모시고 오시옵소서.”
왕은 부처님께로 가서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아기라내국(阿祇羅奈國)의 왕 하가달류(何迦達留)이옵니다.”
이렇게 세 번을 반복하면서 그렇게 할 때마다 예배 공경하였다.
“연일 나라 일에 힘쓰느라 주야로 모시는 일을 하지 못하였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라 일에 지쳐 정신도 없으실 터이고, 많은 일에 시달려서 괴로울 터인데, 진실로 마음과 생각을 굽히시었소. 나라 안 관리와 백성이며 국토는 모두 편안합니까?”
왕은 말하였다.
“모두가 부처님의 은혜이옵니다. 원하옵건대 잠시 저의 처소로 왕림하옵소서.”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계시다가 순간 사이에 전각 위에 닿으셨다. 대부인과 여러 부인 채녀 3,571인은 다 같이 부처님께 예배하였다. 왕은 처음에는 부인을 아직 못 보았고 채녀들도 보지 못하였지만 부처님만이 보셨다. 왕이 부처님께 예배를 마치고 마음에 아직 걱정이 남아 기뻐하지 않자, 부처님께서는 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찾고 있는 대부인이란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인가?”
그러자 왕은 부인을 보고 기뻐하였고, 백관과 부인, 채녀들 모두 또한 기뻐하였다. 왕이 음식상을 차려 내니, 부처님께서 다 잡수시고 나서 크게 주원(呪願)을 하셨다.
“저마다 마음속에서 바라는 것을 빌어라.”
왕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의 대부인은 본래 빈천하고 고독한 어머니의 딸로서 지금은 대부인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몸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도술까지 갖고 있는데, 대체 어떠한 죄와 복이 있었기에 이런 경지에 이르렀나이까? 존귀하기로는 오직 한 사람의 밑에 있고 만 백성의 어머니가 되었으며, 어질고 자비로우며 말씨가 부드러워서 남의 뜻을 상하지도 아니합니다. 그리고 몸을 7일 동안이나 숨기고 있었지만 사람이나 귀신이나 용들까지도 그가 있는 곳을 몰랐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부인은 옛날에 큰 가라월(迦羅越)이었다. 재산이 풍부하여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였지만, 인색하게 욕심을 부리면서 보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가난해진 것이다. 가라월은 성품이 호탕하고 음란하여서 여인과 함께 놀기를 즐겼기 때문에 이제 여인의 몸으로 떨어졌다. 또 옛날에 경서에 밝은 도사(道士)들과 즐겨 어울리면서 놀고 배웠기 때문에 지혜가 있으며, 이미 5백의 부처님을 뵈었기에 지금은 나를 만나게 되었으며, 옛날에 왕과는 친한 벗이었기 때문에 지금 부부가 될 수 있었느니라.
대부인은 전생에 5백의 부처님을 섬겼었지만 다만 마음만 그렇게 지녔을 뿐 신심이 견고하지 아니하였고, 세간 사람들을 까다롭게 하고 괴롭혔기 때문에 여인의 무리 안에 떨어진 것이다. 대부인은 지금으로부터 39겁(劫) 후에 부처가 될 것이며, 왕 역시 일곱 번 천상에 가 나고 일곱 번 세간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왕이 천상에 날 때에 대부인은 천녀가 되어서 왕을 좌우에서 모시면서 언제나 왕의 뜻을 맞출 것이니라.
왕과 대부인은 같이 죽기로 원을 세운지라 태어날 적마다 서로 따르면서 함께 해탈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왕이 혼자서만 교만하고 사치하며 억지로 부인의 뜻을 억누르면서 혼자 기뻐하거나 성을 내면 서로 다시는 만나 보지 못할 것이니라.”
왕은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이내 아유월치(阿惟越致)의 도를 얻었고, 부처님께서는 왕에게 5계(戒)를 주셨다. 왕은 해마다 3재(齋)를 드리고 달마다 6재(齋)를 올렸으며, 후궁과 채녀 3,571인과 함께 서로 따르면서 선행을 하였다.
왕은 바른 가르침을 넓히어 온 나라가 태평하였고, 7보(寶)의 탑사(塔寺)를 세웠다. 내외가 서로 존경하고 더는 이별할 마음을 먹지 않았으니, 사람들이 모두가 자기 수명대로 충분히 살다가 죽었다.
그러다 어느 때 왕의 대부인이 이 세상을 생각해 보았다. 세상살이가 무상한 것인데도, 사람들은 밤낮 음란함과 사랑을 탐하는 마음에 빠져서 밝음을 잃고 더러움만으로 살아간다. 그러므로 살아서는 어진 이름을 얻지 못하고 죽어서는 부정한 귀신이 된다는 것을 대부인은 깨달았다. 대부인은 길게 탄식하다가 옷을 바꾸어서 겉모습을 엉망으로 만들고 머리를 풀어헤치고서 나아가 왕에게 말하였다.
“세상 만사는 모두가 무상한 것이라 다 죽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왕께서 저를 탐내는 까닭은 제가 나이 젊고 안색과 살갗이 곱고 부드러우며, 숨결이 향기롭고 깨끗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가 무상하여 결국 다 죽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부부가 교합(交閤)하는 것은 조금도 대단한 일이 아니요, 그저 모두가 부정한 일일 따름입니다. 은혜와 사랑에는 반드시 늙고 병드는 때가 있으니, 그 때가 언제 올지 모르는데 누가 저를 위하여 그것을 물리쳐 주겠습니까?
제가 지금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재앙이 갑자기 닥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온갖 귀하고 천한 일들이 모두 이 한 가지 일로 인하여 생겨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결국에는 띵띵 부풀어오르고 악취 나는 곳이고 부정한 것인데, 쓸데없이 아끼고 애석해 한들 또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왕께서는 몸소 남녀의 교합이 무슨 대단한 일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저의 말은 진리이지만, 왕께서 해내지 못할 일이 아닙니다.”
왕은 말하였다.
“당신은 천인(天人)의 종족이라 말씀하는 것이 거짓이 아니요, 모두가 일의 바탕을 체득한 것이라 옳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나라 사람들 남녀 모두가 다 서로 믿고 의지하고 있으니 다시 살펴서 생각을 보류하여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대부인은 말하였다.
“저는 여인의 몸이라 내 마음대로 자제(自制)할 수 없기 때문에 왕에게 아뢴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저를 보내 주셔야만 전생의 본래 서원에 부합하시는 것입니다.”
왕은 말하였다.
“내 나이 이제 다 늙어서 비록 여러 부인과 하녀들, 그리고 어린아이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의 뜻에 딱 맞는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당신은 마땅히 내 남은 평생을 함께하며 돌보아 주셔야 하고, 또 내가 죽은 뒤에는 나라의 뒷일을 맡으셔야 합니다. 태자가 아직 어린데 어떻게 버리고 떠난다는 것이며, 어디로 가신다는 것입니까?“
부인은 말하였다.
“저는 생사가 무상한 이 변화를 싫어합니다. 부처님께 사문 되기를 청하려 합니다.”
왕은 말하였다.
“당신은 바로 한 나라의 어머니요 상부인(上夫人)이시라, 모든 나라의 부인과 궁중 안의 채녀들 모두가 당신을 믿고 의지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갑자기 그런 계획을 세우셨습니까? 원근에 사는 사대부(士大夫)들이 이 소식을 들으면 다들 부당하다고 조소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문의 무리는 당신 같은 부인네가 하려고 뜻을 둘 일이 아닙니다. 다시 계획하신 바를 바꾸십시오.”
부인은 말하였다.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들은 모두 사문 가운데에서 나오셨습니다. 불가사왕(弗迦沙王)은 99개의 작은 나라들과 부인과 채녀 8, 9천 명을 다 버리고 사문이 되기를 청하였습니다. 그 전후로도 남자와 여자들로서 사문 되기를 청한 이가 적지 아니하였으니, 여자가 유독 저 한 사람만이 아닙니다.
왕은 은혜와 사랑으로써 꽃다운 색을 탐내어 저의 몸을 애석하게 여기시는데, 저의 몸은 모두가 고름이요 피요 오로(惡露)의 부정한 것투성이입니다. 여인과는 더불어 일을 해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여인과 함께 하고서 죄의 구렁텅이에 떨어지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여인의 몸은 끓는 물과 불보다도 더 뜨거워서 사람을 태우고 지지고 하여 중한 죄에 떨어지게 하므로 천 겁을 지나더라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저는 전세에 역시 남자였으나 여인과 종사하기를 즐겼고, 은혜와 사랑이 많았기 때문에 남자의 몸을 버리고 여인이 되었습니다. 여인은 실로 두려워할 만한 것인데 왕께서는 깨닫지 못할 뿐이십니다.
왕께서는 절대 여인과는 서로 떨어져 살 수 없다는 뜻을 가지고 계시지요. 그러나 아직 부인과 채녀가 3천 명이 넘게 있으니 충분히 재미있게 즐기실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저를 보내 주시어서 근심과 괴로움이 없도록 하여 주셔야 하십니다. 저는 사문이 되겠으며, 죽고 또 죽어도 결코 이 마음을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왕께서는 저에게 출가를 권해야 할지언정 제지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당신이 만약 그러하신다면 나는 나라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인은 말하였다.
“왕께서 무상함을 잘 아셨다면, 이야말로 왕으로서의 으뜸가는 원을 세우신 것입니다. 국토와 왕위와 백관과 채녀와 값진 보배며 궁성은 모두가 왕의 소유가 아니십니다. 왕의 소유는 몸과 해골과 두뇌와 5장(臟)뿐이어서 모두가 결국 다 흩어져야 할 것입니다. 애석하게 여길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왕은 말하였다.
“오늘은 그대 한 사람의 출가를 허락할 뿐이지만, 이 일로 말미암아 나의 다른 부인들과 채녀들이 서로 뒤좇아 함께 가려고 할까 두렵습니다.”
부인은 말하였다.
“저마다 전생의 복의 힘이 있는지라 남이 제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두들 칼과 막대기로 때린다 하여도 일이 마땅히 그래야 한다면 끝끝내 제지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저 하나만 보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왕께서 은혜와 사랑으로써 사람들을 위로하고 가엾이 여기시면, 모든 사람들이 저절로 친근하게 되고 왕을 좇을 것입니다.”
왕은 말하였다.
“이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덕을 흠모하고 좋아합니다. 나 이 한 남자가 어떻게 좋은 뜻을 가지고 이들을 골고루 돌볼 수 있겠습니까? 나는 당신만을 믿을 뿐이니 마땅히 바르게 제어해 주셔야 합니다. 당신이 지금 나를 버리면 이 모든 여인들은 칼을 갖고 베어 죽이려고 해야만 비로소 나를 두려워하리다.”
부인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인은 남자가 있고서야 바르게 될 수 있습니다. 왕께서 마음을 두시고 가까이하시면 저절로 편안해질 것입니다.”
왕은 말하였다.
“모두 당신에게 달려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자 부인은 여러 부인들과 채녀 3천 인을 불러 놓고 달래면서 말하였다.
“여인들이여, 이제 대왕을 가까이 잘 모시어라. 위엄이 높고 극히 귀한 분이시니 경솔하게 굴지 말아라. 나는 이제 그대들과 이별하거니와, 그대들도 각자 노력하여 부지런히 조석마다 경법을 친히 받들고 정진을 더할 것이며, 내가 하루 빨리 부처님 도를 얻어서 돌아와 제도하여 주기를 빌어야 할 것이니라.”
여러 부인들과 채녀들이 갑자기 소리 높여 크게 울었으므로 도리천(忉利天)에까지 이 소리가 들렸다. 제석(帝釋)이 아래로 내려와 가사를 수여하자 저절로 몸에 입혀지면서 머리카락이 땅에 떨어졌고, 5백 계(戒)를 수여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부인과 채녀들은 모두 크게 기뻐하였으며, 제석은 다시 가사와 밥그릇을 수여하였으므로 부인은 사문이 되었다.
왕은 이제 만족할 줄 알게 되었으므로 마음이 편안하고 침착해지면서 성내지도 않고 기뻐하며 크게 웃으면서 말하였다.
“여러 어진 이들의 공덕이야말로 높고 뛰어나거늘, 내 어찌 불쾌하게 여기겠느냐?”
왕은 이내 도의 자취를 얻고 왕은 궁중 안으로 돌아와 아주 멍하니 있다가 태자를 불러서 나라를 맡겼다. 왕은 소원을 말하였다.
“저는 이제 사문이 되고자 하옵니다. 저를 알아 주실 이 누구시옵니까?”
그러자 제석이 이내 왕의 머리를 깎았고, 가사가 몸에 입혀지면서 발우가 저절로 갖추어졌다. 왕이 이내 부처님께로 떠나가니, 열두 개의 작은 나라 왕들도 나라를 버리고 태자에게 맡기고서 왕을 따라 사문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일시에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하가달류는 바로 지금의 나의 몸이요, 대부인은 바로 지금의 구이(瞿夷)니라.『빈녀위국왕부인경(貧女爲國王夫人經)』에 나온다.
(12) 시리마(屍利摩)가 배고픔도 잊고 스님들을 도와주다
부처님께서 비선리(毘善離)에 계실 때,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듣자 하니, 비구니 안에서 복덕이 첫째가는 이는 시리마(屍利摩)라 하더구나.”
이 때 세상은 흉년이 들어서 걸식을 하러 다녀도 밥을 얻기가 어려웠다. 때마침 시리마 비구니는 성에 들어가 걸식을 하다가 비구를 보고 물었다.
“존자께서는 밥을 얻으셨습니까?”
비구가 이내 빈 발우를 그에게 보여 주었더니, 시리마 비구니가 자신의 발우 안에 있는 음식을 비구에게 덜어 주었다. 비구가 밥을 얻어서 정사(精舍)로 돌아가 다른 비구들을 불러서 함께 먹었는데, 비구들이 물었다.
“장로(長老)께서는 어디서 이 좋은 밥을 얻으셨습니까?”
대답하였다.
“시리마 비구니한테서 얻었습니다.”
그러자 여러 비구들은 이 말을 듣고 저마다 모두들 몰려가서 밥을 달라고 청하였다. 이렇게 하여 차례로 5백 명의 비구가 모두 다 밥을 얻어 갔다.
시리마 비구니는 그렇게 모두들 밥을 얻어 간 뒤에야 자기 것을 얻으려고 하였는데, 그 때는 밥 때가 이미 지나 버렸기 때문에 결국 밥을 거르고 정사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에도 여러 비구들은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비구니 정사의 문에 와 서 있었으므로, 비구니가 보고 이내 들어가서 시리마에게 말하였다.
“여러 비구들이 지금 문 밖에 와 기다리십니다.”
시리마는 듣고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옷과 발우를 가져오너라. 나는 여러 존자들을 위하여 걸식을 하겠다.”
이렇게 차례로 5백 인의 비구에게 음식을 다 공급한 다음에 또 자기 것을 얻으려 하였는데, 역시 때가 지났는지라 밥을 거르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사흘째에도 역시 그러하여 차례로 5백 인에게 음식을 공급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단 한 사람만이 아직 얻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그 비구는 시리마 비구니의 뒤를 따라 한 집으로 들어갔는데, 시리마 비구니가 벌써 사흘 동안이나 밥을 먹지 못하였기 때문에 몸이 허하고 기운이 없어서 그만 기절하며 땅에 엎어지고 말았다.『승기율(僧祇律)』 21권에 나오며, 『십송률(十誦律)』과 『사분율(四分律)』에도 모두 같다.
(13) 폭지(暴志)는 전생에 자라의 아내였다
폭지라는 비구니가 있었다. 나쁜 믿음을 품고 부처님을 비방하고 스님들을 헐뜯으므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는 지금 세상에서만 이러는 것이 아니니라. 과거 수없는 겁 때에 한 원숭이 왕이 숲 속 나무에 살고 있었다. 열매를 먹고 물을 마시며 살았는데, 한때 이런 생각을 품었다.
‘온갖 기어다니거나 숨을 쉬는 동물의 무리들을 모두 제도하여 무위(無爲)에 이르게 하고 싶구나.’
그 때 원숭이 왕은 한 마리 자라와 친구로 지내고 있었는데, 자라가 자주 원숭이 왕에게로 왕래하였다. 자라가 원숭이에게로 가면 함께 마시고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바른 이치를 해설하여 주었었다.
자라의 아내가 이렇게 왕래하는 것을 보고, 아마도 음탕한 일을 벌이는 것이리라 의심하여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디를 가십니까?’
자라는 대답하였다.
‘나는 원숭이와 친구를 맺었소. 그 원숭이는 매우 총명하고 지혜로울 뿐 아니라 모든 이치를 환히 알고 있다오.’
그러나 자라의 아내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꾀병을 앓는 척하면서 핑계를 만들어 바닥에 누워서 끙끙 앓고 있었다. 아무리 치료를 하여도 영 낫는 기미도 보이지 않자 자라의 아내는 남편에게 말하였다.
‘내 병이 너무나 위중한 모양입니다. 당신과 친하다는 그 원숭이의 간(肝)을 먹어야 살아날 수 있겠습니다.’
그 남편은 대답하였다.
‘그 친구는 내가 몸을 맡기고 목숨을 의탁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것으로 당신을 살린다는 말이오?’
그러자 아내가 말하였다.
‘부부란 한마음 한 몸이라고 하는데, 당신은 어쩌면 나를 구할 생각은 아니하고 도리어 원숭이를 위하시는 것입니까?’
남편은 아내를 공경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기에 원숭이에게 가서 자신의 집으로 같이 가 식사를 하자고 청하였다. 원숭이는 대답하였다.
‘나의 집은 육지에 있고 당신은 물 속에 사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따라갈 수 있겠소?’
그러자 자라는 말하였다.
‘내가 당신을 업으리다.’
그래서 원숭이는 자라를 따라갔는데, 자라는 원숭이를 업고서 중간쯤 와서는 원숭이에게 말하였다.
‘제 아내의 병에 당신의 간이 필요하답니다.’
원숭이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왜 일찍 말하지 않으셨소. 나의 간을 나무에다 걸어 놓고 그만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돌아가서 간을 가지고 다시 와야겠군요.’
그리하여 원숭이는 나무 위로 돌아와서는 기뻐서 팔짝팔짝 뛰었으므로 자라가 다시 물었다.
‘당신은 간을 가지고 우리 집으로 가기로 해 놓고, 여기서 이렇게 뛰어 놀고 계시다니, 왜 그러시는 거요?’
그러자 원숭이는 대답하였다.
‘이 세상에 그대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오. 함께 친구가 되어서 서로 몸을 맡기고 목숨을 의탁했으면서도 도리어 죽이려고 했으니 말이오.’
자라의 아내가 바로 지금의 폭지요, 자라는 바로 지금의 조달(調達)이며, 원숭이 왕은 바로 지금의 나의 몸이니라.”『별미후경(鼈獼猴經)』에 나온다.
(14) 폭지가 부처님을 비방하다
부처님께서 사위기국(舍衛祇國)에서 노닐고 계실 때의 일이다. 바사닉왕(波斯匿王)이 부처님과 스님들을 초청하여 궁중에서 공양을 베풀기로 하였으므로 부처님께서 왕궁으로 가고 계셨다. 그런데 폭지(暴志)라고 하는 비구니가 나무 발우를 배에다 묶어서 마치 임신한 것처럼 하고는 부처님의 옷을 끌어당기면서 말하였다.
“당신은 나의 남편으로 임신까지 시켜 놓고 옷과 밥을 대주지 않으니 이 무슨 일이오?”
그 광경을 보고 여러 대중인 천인과 제석, 범천과 사천왕과 여러 하늘의 귀신 및 온 나라 안 백성들이 놀라고 당황하며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온갖 삼계(三界)의 어른이시고 그 마음은 마니(摩尼)보다도 더 깨끗하며, 지혜의 밝음은 해와 달보다 뛰어난 분이시다. 삼계를 통틀어 독보적인 존재이시라 그에게 미칠 수 있는 이가 없도다. 모든 사악한 96종족을 다 항복 받으셨으니, 부처님께 귀의하여 복종하지 않는 것이 없다. 도덕은 높고 뛰어나서 비유할 수 없으시다. 허공에 형상이 없어 더럽힐 수 없듯이 부처님 마음은 그보다 더하여 감히 대적할 이가 없으신데, 이 비구니가 부처님의 제자이면서 어떻게 악을 품고 여래를 비방하려 할까?”
부처님께서는 대중의 마음을 보시고 의심을 터 주시려고 위쪽을 쳐다보셨다. 그 때 천제석이 내려와서 변화로 한 마리 쥐가 되어서는 비구니의 배 안에 발우를 매어 둔 끈을 물어뜯었다. 그러자 발우가 땅으로 떨어졌다.
모인 대중들은 그것을 보고 한편 성을 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뻐하기도 하면서 그 까닭을 괴이하게 여기고 있었다. 당시의 국왕이 이를 보고 성을 내었다.
“이 비구니는 집을 버리고 세상일을 멀리하여 이렇게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서도, 여래의 끝없는 공덕을 찬탄하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질투하고 비방을 하는구나.”
대왕은 이내 신하에게 땅을 파 구덩이를 만들게 하고서 그 비구니를 거꾸로 매장하려 하였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왕을 잘 설득하여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것은 나의 전생의 죄 때문이요 단지 그가 재앙을 가져온 것만은 아니니라. 아주 오랜 과거 세상 때에 마침 어느 장사꾼이 색이 또렷하고 광채가 밝고 좋은 진주(眞珠) 여러 개를 팔고 있었느니라. 이 때 어느 여인이 이 진주를 모두 사려고 시장을 향하여 갔었는데, 어느 한 남자가 나타나 갑절이나 더 되는 값으로 혼자 진주를 다 사 가지고 떠나가 버렸느니라. 그 여인은 진주를 손에 넣지 못하게 되자 마음에 원한을 품고 그 남자를 따라가며 달라고 빌어 보았다. 그러나 남자가 도무지 주려 하지 않으므로 마음에 더욱더 성을 내면서 생각하였다.
‘내가 먼저 진주를 사려고 했는데 나중에 와서는 값을 더 쳐서 다 뺏었지. 게다가 내가 이렇게 따라가면서 빌었는데도 도무지 주려 하지를 않는구나. 네가 지금 나를 이렇게 욕보였으니 나는 태어나는 세상마다 너에게 이 원수를 갚으리라.’
그 때 진주를 산 남자는 바로 지금의 나의 몸이며, 그 여인의 몸은 바로 지금의 폭지이니, 이것은 옛날부터의 인연이요, 지금의 이 몸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니라.”『생경(生經)』 제1권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