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개요 & 배경
시벨리우스는 베토벤 이후 최대의 작곡가이다. 이 말은 시벨리우스의 전기를 쓴 영국의 음악가 세실 그레이 (Cecil Gray)가 한 말이다. 좀 과장된
표현이지만, 시벨리우스는 적어도 금세기 최대의 교향곡 작곡가의 한 사람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시벨리우스를 잘 이해하고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프랑스나 라틴계 나라들에서는 그다지 높은 평가를 못받고 있다. 이는 거꾸로 포레가 독일에서 이해를 받지 못하고, 브람스가
라틴계 국가에서 그다지 사랑을 받지 못하는 거나 비슷하다. 이런데에 또 시벨리우스 음악의 독특한 성격이 잘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시벨리우스의 음악에는 북구적 풍토나 민족의 양상이 아주 강하기 때문이다.
교향곡 제1번이나 교향곡 제2번은 그래도 나은데, 그 이후의 교향곡은 라틴계 국가에서는
거의 연주되고 있지 않다.
시벨리우스는 교향곡 7곡과 핀란드의 민족서사시 칼라발라를 재료로 한 몇 개의 교향시로써 핀란드
음악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제7번을 완성시킨 이후에는 거의 작곡을 하지 않았고, 1957년 92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약 32년 동안은 수수께끼같은 침묵을 지켰다. 1955년에 시벨리우스의 양자이며 지휘자인 유시 얄라스도 부친은 지금도 작곡하고
있습니다만, 가족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부친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되도록 말을 꺼내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졌었다. 그러나 결국 사후에도 발표는 되지 않았다. 과연 제8번이 작곡된 것인지 아니면 도중에 태워
버렸는지, 그 점은 전혀 모른다. 마치 핀란드의 어둡고 침침한 숲처럼 신비의 베일에 싸여 있을 뿐이다.
시벨리우스의 출세작은 1900년에 발표된 교향시 핀란디아다. 그 때 이미 시벨리우스는 모음곡
카렐리아, 교향시 전설(En Saga), 교향시 투오넬라의 백조등을 작곡했었다. 그리고 핀란디아를 작곡한 해에, 그에게 있어서는 최초의 교향곡인
교향곡 제1번을 완성했다.(출판은 3년뒤에 했다.) 시벨리우스는 제1번을 완성하자 곧 다음 교향곡에 착수했다. 그가 이처럼 잇따라 대작에 손을
댈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그의 생활이 완전히 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핀란드 정부에서는 1897년 (32세)에 이 유망한 청년작곡가에게
종신연금을 지불키로 결정했고, 따라서 1년에 약 2,000마르크의 국가보조를 받고 있었다.
1900년에 그는 새로운 세기를 축하하기 위해 개최된 파리 세계박람회에 헬싱키 필하모니를 이끌고
참가했다. 이어서 북유럽 국가와 독일을 순항했고, 다음 해에는 중부 유럽과 이탈리아까지 돌아다녔고, 돌아오는 길에 프라하에 들러서 드보르작도
만났다. 이 여행은 그에게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시시각각으로 변모하는 20세기 초반의 예술사조를 직접 피부로 체험했고 마음껏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여행중에도 스케치를 계속하고 있었던 제2번이 이 여행에서 얻은 것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제2번에서는 제1번과는
달리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그의 독자성이 훨씬 표면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작곡은 1902년에 완료되었고, 그 해 3월 8일에 시벨리우스 자신의 지휘로
헬싱키에서 초연되었다. 그의 나이 37세의 일이다. 그리고 이 곡이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교향곡 제1번에서는 아직도 차이코프스키나 러시아
국민음악파의 영향이 씻기지 않았지만, 교향곡 제2번에서는 그와 같은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시벨리우스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형식적으로 일단은 고전적 형식을 지키고는
있지만, 내용은 전혀 새로워서 7곡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민족적 정서가 짙은 곡으로 만들어 놓았다.
|
시벨리우스 교향곡 1번 마단조 Op.39 비교감상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가 지휘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Decca)도 들을만하다.
아쉬케나지는 당대를 대표하는 명피아니스트지만 이 음반을 들어보면 그가 지휘자로서도 뛰어난 자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힘차고
강렬하며 한음한음이 매우 풍요롭다. 스칸디나비안적 색채를 극적으로 표출하는데 아마도 이것은 아쉬케나지의 피가 러시안이라는 데에서도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겠다. 그는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을 녹음했는데 하나같이 시벨리우스적 정서를 잘 표현해내고 있다. 1번에서는 대가다운 여유와 호방한
스케일 모두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카라얀 콩쿨에 우승을 해 일약 유명해진 지휘자 오크 카무의 헬싱키 방송 교향악단 (Grammophon)도 추천 음반이다. 그는
핀란드 출신이라 그런지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전곡을 녹음했고 또 여타 지휘자들보다 많은 애착을 보이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그의 지휘는 핀란드적
정서감으로 가득차 있다. 매우 스케일이 크고 대자연의 신비감 등이 느껴지는 그런 웅대한 기운이 감도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핀란드 하면 생각나는게
많은 숲들과 빙하 등인데 이런 대자연의 풍경이 이 연주 속에서 잘 나타나 있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비엔나 필하모닉(DG)은 편안한 듯 하면서도 잠시도 느슨함을
찾아볼 수 없는 지속적인 지구력, 그러면서도 여유와 대자연의 아름다움 등이 느껴지는 호연을 펼친다. 1990년 2월의 실황녹음으로, 번스타인이
비엔나 필과 녹음한 시벨리우스의 1번 고향곡 중 베스트를 꼽으라면 단연 이 앨범을 권하고 싶다.
알렉산더 깁슨이 이끄는 로열 스코티시 오케스트라의 음반(Chandos)은 여타
1번에 비해 어쿠스틱한 울림을 극대화한 게 가장 큰 매력이다. 1982년 글라스고의 로열 스코티시 오케스트라 센터에서의 녹음으로 콘서트 홀의
어쿠스틱한 자연스런 울림이 따뜻하고 풍성한 음을 양산해낸다. 따라서 카라얀의 극히 섬새하고 풍요로우며 세련된 완벽한 연출이나 아쉬케나지의 장대한
스케일 같은 맛 대신 독자적인 음향미학이 잔잔하게 다가온다. 깁슨의 지휘는 그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시벨리우스적 정서가 본능적으로 연출되는
듯하다. 스코티시 오케스트라의 무한한 잠재력을 잘 느낄 수 있게 하는 음반이다. 깁슨의 로열 스코티시도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을 녹음한 바
있다.
사이먼 래틀은 과연 신의 손이라 할 만하다. 그가 손을 대면 무엇하나 졸작이 없으니
말이다. 버밍험 심포니와 녹음한 음반(EMI)에서도 그는 명쾌한 지휘를 펼친다. 사이먼 래틀의 연주는 1악장만 들어도 금새 알 수 있다. 그
강렬한 파워로 다가오는 잘 짜여진 연주란....느린 악장에서도 시정을 잘 살려내는데 전반적으로 단원들과의 교감이 좋아보인다. 전체적으로
미스테리컬하면서도 마치 한편의 신화를 듣는 듯한 그런 북구의 정서를 접할 수 있다. 사이먼 래틀도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1~7번을
녹음했다.
끝으로 작년에 저가 시리즈 중의 하나로 국내에 소개된 쿠르트 잔데를링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을 추천하고 싶다. 그가 이끄는 베를린 신포니 오케스트라의 음반(Brilliant)은 일단 독일 지휘자에 의한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
해석이라는 점에서 소개될때부터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1970년부터 77년까지 녹음기간을 거친 이 음반에서 잔데를링은 독일 특유의 묵직하고
역동적인 추진력으로 작품을 대하고 있다. 핀란드적 정서라든지 또는 시벨리우스적 색채 라든지 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먼 또다른 류의 지휘랄 수
있다. 그럼에도 강건한 기상이 엿보이는 연주와 깊은 울림은 들을수록 묘하게 사람을 사로잡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