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Sunflower)
최용현(수필가)
전쟁터로 떠난 남편 혹은 애인이 전사했다거나 행방불명되었다는 통지를 받으면 그를 기다리는 여인의 삶도
뒤틀리게 마련인데, 그 남자가 나중에 멀쩡하게 살아 돌아오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이야기를 다룬
외국영화는 ‘애수(Waterloo Bridge)’, ‘기적(The Miracle)’, ‘쉘부르의 우산(The Umbrellas of Cherbourg)’,‘해바라기
(Sunflower)’ 등 상당히 많다.
거장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이 1970년에 연출한 이탈리아 영화 ‘해바라기’는 남녀주인공의 사랑,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이별과 가슴시린 재회를 담은 이야기로 많은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첫 장면부터 잔잔하게 흐르는
헨리 맨시니의 주제음악 ‘잃어버린 사랑(Loss of Love)’의 애잔한 선율은 한번 들으면 귀에 계속 맴돌아 자꾸 흥얼
거리게 된다.
이 영화는 정치색을 배제하고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바라기가 옛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을 상징하는 꽃이고,
옛 소련에서 촬영되었다는 이유 등으로 수입이 되지 않아 우여곡절을 겪다가 1982년에야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상영되었다.
이탈리아 나폴리에 사는 처녀 지오반나(소피아 로렌 扮)는 휴가 나온 밀라노 출신의 군인 안토니오(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 扮)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두 사람은 서둘러 결혼식을 올린다. 귀대일
자가 가까워오자 안토니오는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일부러 미친 행동을 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하지만 곧
들통이 나서 러시아 전선으로 떠나게 된다.
세월이 흐르고, 전쟁이 끝나자 귀환병들을 태운 열차가 이탈리아로 돌아오는데, 애타게 기다리던 남편 안토니오로
부터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남편의 사진을 들고 역에서 기다리던 지오반나는 남편과 같은 부대에 있던 사람으로
부터 남편이 눈 덮인 들판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쓰러져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남편이 살아있다고 믿고
있는 지오반나는 남편의 사진을 들고 머나먼 러시아로 남편을 찾아 나선다. 가는 길의 우크라이나 들판에는 노란
해바라기 꽃물결이 장관을 이루며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옆에는 이탈리아 참전용사들의 묘지가 있었는데,
지오반나가 묘비명을 하나하나 확인해 봐도 남편의 이름은 없었다. 지오반나는 모스크바 북쪽의 이탈리아 타운에서
남편을 봤다는 얘기를 듣고 그 집을 찾아간다. 그 집에는 마샤라는 이름의 젊은 러시아 여인이 살고 남편을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어린 딸도 있었다. 지오반나는 마샤로부터 눈보라 속에서 빈사상태의 남편을 발견하여
간신히 집으로 끌고 왔으며, 기력은 회복했으나 기억상실증에 걸려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녀의 방 침대에 나란히
놓여있는 두개의 베개를 보고 지오반나는 속으로 오열한다.
퇴근하는 남편을 마중하러 나가는 마샤를 따라 역으로 간 지오반나는 방금 도착한 기차에서 내린 남편이 자신을
보고도 아무런 내색이나 말도 없이 멍하게 서있는 것을 보자 억장이 무너진다. 지오반나는 출발하는 기차에 올라
객실 바닥에 주저앉아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이탈리아 집으로 돌아온 지오반나는 늘 가지고 다니던 남편의 사진을 찢어버리고 남편의 사진이 담겨있는 액자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친다. 그리고 세상에 복수라도 하듯 자신이 일하러 다니는 마네킹 회사 공장장의 구애를 받아들여
새 가정을 꾸린다. 이들 사이에 아들이 태어난다.
세월이 흐르고, 안토니오는 러시아로 떠나면서 돌아올 때 지오반나에게 털목도리를 사주겠다고 한 약속을 기억해
낸다. 안토니오는 털목도리를 사서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로 향한다. 안토니오의 전화를 받은 지오반나는 처음엔
만나지 않겠다고 했지만 다시 전화가 오자 이사한 집주소를 알려준다. 마침 남편은 그날 야간근무였다.
지오반나의 집에서 만난 두 사람, 마침 정전이 되자 촛불을 켜고 마주 앉는다. 안토니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이야기를 하면서 지오반나에게 털목도리 선물을 준다. 안토니오가 다시 합치자고 하지만 지오반나는 요람에 있는
아들을 보여주며 이름을 안토니오라고 지었다고 한다. 날이 밝자, 두 사람은 기차역에서 가슴 아픈 이별을 한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선구자로 불리는 비토리오 데시카(1902~1974) 감독과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두 국민배우 소피아 로렌과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1924~1996)의 합작품이다. 이 세 사람이 뭉쳐서 만든 영화가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 소피아 로렌이 관능미를 버리고 억척스런 아줌마로 나오는 이 ‘해바라기’가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은 지오반나가 기차역에서 꿈에도 그리던 남편을 만났을 때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멍하게 서있는 남편을 두고 출발하는 기차에 뛰어올라 객실바닥에 주저앉아서 대성통곡하는 모습이 아닌가
싶다. 수년간 헤매다 찾은 남편을 보고 북받치는 그리움과 절망을 온몸으로 표현한 소피아 로렌의 열연이 돋보이는
명장면이다. 소피아 로렌(1934~ )은 로마에서 태어나 나폴리에서 자랐고, 15세 때 미인대회에 입상하여 모델로
뽑혀 영화계에 입문했다. 174cm의 키에 긴 목과 볼륨 있는 가슴, 시원스럽게 큼직한 이목구비로 관능미의 화신
으로 불리었다.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의 ‘두 여인’(1960년)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사극 ‘엘시드’
(1961년)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1957년, 22살이나 많은 유부남 영화제작자 카를로 폰티(1912~2007)와 결혼을 했는데, 이탈리아가 이혼을 인정하지
않아 멕시코에 가서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호사가들은 카를로 폰티의 여배우 편력과 소피아 로렌의 주위를 맴돌던
남자들을 떠올리며 이들이 곧 이혼할 거라고 했지만, 두 사람은 폰티의 머리가 파뿌리가 되어 사망할 때까지 함께살았다.
2007년, 이탈리아의 유명 타이어회사인 피렐리 달력에 세미누드사진을 실은 73세의 소피아 로렌은 그해 축구전문
지와의 인터뷰에서 ‘2부 리그 팀인 나폴리가 1부 리그(세리에A)로 승격하면 스트립쇼를 하겠다.’고 말해서 큰 화제가
되었다. 그해 나폴리 팀이 1부 리그에 진출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소피아 로렌의 고향에 대한 사랑은 짐작하고도 남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