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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 차츰차츰 고여가던 작은 물방울이 점점 불어나, 자신의 몸뚱어리를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커지자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진다. 습기가 가득한 배의 밑바닥에서 감시하는 일이 직무인 '두 남자'에게는 자주 보아온 광경이지만, 둘 중 누구도 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 당연하다, 자주 보아왔기에 이젠 눈에조차 들어오지 않으니까.
허나 모른다. 작은 물방울들이 옷 위로 떨어지고, 떨어지고, 계속 떨어지며... 그들의 옷을 축축이 적셔 온다는 것을... 흠뻑 젖어 불쾌감을 느낄 때야 비로소 자신이 이런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바닥으로 떨어진 물방울들이 고이고 고여, 물웅덩이가 생겨날 정도로 축축하고 불결한 장소지만, 두 남자는 서로가 주고받는 사소한 대화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세상에 지옥이란 곳이 있다면 아마 여기가 아닐까?"
두 남자 중, 의자에 기대앉은 키 작은 이가 서 있는 이에게 새로이 다른 화제를 꺼낸다.
"지옥은 이 배의 종착점이지, 여기는... 지옥문 입구라는 게 더 어울리지 않아?"
나머지 한 남자가 선 채로 말을 받으며 허리춤에 매여 있는 채찍을 손으로 더듬는다. 무사히 있다는 것이 확인되자, 반대쪽 허리에 매여 있는 열쇠꾸러미를 같은 식으로 확인한다.
"솔직히 지옥은 있어야 해."
"왜 그렇게 생각해?"
키 작은 남자는 자신이 꺼낸 말에 서 있는 남자가 웃음조로 묻자, 주변을 눈짓으로 가리킨다.
거대한 선내의 좌우로는 철창으로 가로막힌 방들이 좌우와 앞으로 둥글게 늘어져, 세상의 사람들에게 벌레 이하의 취급을 받는 자들이 각각 갇혀 있다. 어린 아이라면 그 선실을 가득 메운 죄수들이 세상에게 버림받은 눈빛을 대하는 것만으로 겁먹고 울며 뛰쳐나갈 것이다. 설사 용감한 어른이라 하여도, 각각의 방 안, 아니 감옥 안에 갇힌 죄수들이 퍼붓는 협박과 모욕을 듣게 된다면 위축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저런 놈들이 산사람의 땅 위에 당당히 돌아다니는데, 사후에 신들이라도 저들을 심판해 주지 않는다면 착한 사람만 손해 보며 살다 죽는 거잖아?"
"그렇긴 하지... 근데... 뭘, 기준으로 심판하지?"
키 작은 남자는 의외의 부분을 지적당하자, 잠깐 생각을 하는 시늉을 하더니 머뭇머뭇 대답한다.
"신들은 전지전능 하다잖아? 선행, 악행... 다 알고 있을 텐데 이보다 완벽한 심판관이 있을 리가 없지 않아?"
"그러면... 뭘 기준으로 선, 악을 나눌까?"
키 큰 남자가 계속 생뚱맞은 것들만을 골라 묻자, 키 작은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참말로, 머릿속이 특이하네... 짜샤, 당연히 법대로겠지?"
"법이란 건 사는 곳마다 다르잖아? 우리 드레마랑 이베이드만 봐도 확 다른데?"
"우린 드레마 사람이니깐, 드레마의 법만 지키며 살면 되지."
"법에 없으면?"
"그러면, 뭐... 신들이 알아서... 아씨, 나도 몰라."
질문의 내용이 황당한지 키 작은 남자는 손을 내저으며 귀찮은 티를 낸다.
"궁금하면 재상님께 여쭤보던가, 곧 오신다고 했으니까."
"여왕님도 오셨다지?"
"암. 원래는 베르제바브 대공님이 오시고 했었는데... 휴, 그분을 대할 때마다 내가 재판대에 선 기분이라니까."
"여왕님 방은 어디야?"
키 작은 남자는 괴짜처럼 대화의 주제에 제대로 따라가지를 못해 보인다. 키 작은 남자는 이런 대화에 익숙한지 태평하게 받는다.
"왜, 여왕님이라도 뵈어보려고? 아서라, 그러다 너. 재상님께 모가지 날아간다."
"재상님이?"
"요즘 묘한 소문 돌잖아."
상당히 민감한 소문이었는지 키 작은 남자는 그 말을 꺼내고는 몸을 일으켜 서 있는 남자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재상님이랑 여왕님이랑 그거라는 소문이 있어."
"에이... 설마, 나이 차가 그렇게 나는데. 여왕님이 열다섯이시고, 재상님이 스물넷이니깐... 아홉이나 차이 나나?"
"아니, 아직 그 단계까지는 아니고... 내가 수도에서 잠깐 들은 거로는... 여왕님이 재상님 뒤를 쫓아다니는 거래, 재상님도 은근 신경 쓰는 듯한 눈치고. 그거 있잖아? 총각 선생과 여제자 사이의 묘한 감정 같은 거."
"그래도 나이 차가..."
"상류층 사이에는 원래 혼인이 빠르잖아? 이베이드 같은 곳에서는 데릴사위나 민며느리가 흔하다는데... 심하면 갓난아기랑 성인을 맺어놓기까지 한다잖아?"
두 남자는 갑자기 대화를 멈추고는 뒤를 돌아본다. 유일한 출입구의 문을 열고 다른 남자가 고개만을 내밀고서 말을 끼어들 분위기를 기다리는 것이 그들에게 보였다.
"여어, 슬슬 준비하라고 재상님이 곧 오신다니까."
그 말에 두 남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도리어 선실 전체가 크게 술렁인다. 어두운 방에 수감된 죄수들이 보이는 반응은 각기 제각각의 크기였지만, 서른 명이 넘는 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이니, 그 소음은 벽을 울리고 울려, 시끄럽게 커진다.
"모두 입 닥쳐! 한 마디만 더 나불거리면, 채찍 맛을 보여줄 테니까!"
두 남자 중 누군가가 기를 제압하기 위해 거칠게 소리지른다. 그렇지만, 역효과. 이미 잃을 것 없이 심판의 때만 기다리는 그들이 겁먹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우리 안의 발광하는 원숭이처럼, 감옥 전체가 더욱 시끄럽도록 날뛰며 소리지르는 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소리질렀던 자는 골머리를 싸맨다.
"정말이지... 이런 인간말종들을 말로 조용히 시킬 수가 있을 리가 없지..."
그는 중얼거리고는 자신들이 들어온 선실의 문을 손으로 쾅쾅 두들긴다. 갑옷을 입고 있었는지 문을 두들길 때마다 쇠 부딪히는 소리가 소음 사이를 비집고 울린다.
"야, 할 일 없는 녀석들, 몽땅 다 들어와서 이 새끼들 조용히 시켜."
그자의 말에 십여 명의 갑옷 차림의 건장한 남자들이 각자의 손에 몽둥이나 채찍을 쥐고 선실에 우르르 몰려들어온다. 그리고 각자가 흩어져, 철창문을 열고 들어가 폭력으로 죄수들을 조용히 시킨다. 폭력과 강도, 살인 등의 더러운 행위를 당연한 것처럼 여겨온 자들에게는 역시나 같은 방식으로 응수해야 잘 먹힌다.
욕설로 가득하던 선실 안은 두들겨 맞는 소리와 비명이 섞여, 대신 채운다. 철창 안에서 안심하고 발악하던 원숭이들은 두들겨 맞고서야 꼬리를 내리고 바닥을 기며 얌전해진다.
선실 안이 죽은 사람만 있는 것처럼 조용해지자, 마음에 든 누군가가 씨익 웃으며 일을 끝내고서 방을 나가는 이들에게 수고했다는 의미로 몇몇의 어깨를 두들긴다.
"이제 조용하네... 이 미천한 중생들아, 어찌 낙원을 버려두고 이런 업보의 나락에 떨어졌는고?"
키 작은 남자가 목소리를 고아하게 세워 낭독하듯이 읊는다. 이에, 옆의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쳐다본다.
"낙원? 천국? 그건 어디에 있는데?"
"...아마 여기 위층부터는 다 천국이 아닐까?"
키 작은 남자는 말을 않다가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해 주지만, 이 원수 같은 남자는 또다시 엉뚱한 데를 물고 늘어진다.
"아니지. 여기 위는 현세지. 산 사람이 사는 곳이니까."
"산 사람의 땅에 지옥을 만들어 놨는데, 산 사람을 위한 천국이라고 없을 리가 없잖아?"
이번에는 키 작은 남자가 묻는 입장이 되었다. 갑자기 질문을 받게 된 서 있던 남자는 엉뚱한 것을 생각하는 데에는 일류인지, 능숙히 받아친다.
"생각해 보면, 이 배가 자체가 그런 거 같아. 배 밑바닥은 지옥, 위층 대부분은 현세, 그리고 맨 위에는 여왕님이 위치한 곳이니깐... 천국이겠지?"
"여왕님이 계신 곳이 왜 천국이야? 뭘 기준으로?"
이제는 둘 다 같은 수준이 되어버렸다. 누가 하는 말인지를 구분해야 할 의미도 함께 없어졌다.
"여왕님이 사람이 살 만한 땅을 만들고 계시잖아. 솔직히 죽고 난 뒤에 천국에 가봐야 의미가 있냐? 살았을 적에 천국 같은 땅 위에 살아야지."
"여왕님이 신이라는 거네?"
"...그러면 대공님이 심판관인가?"
"디자엘 재상님은 밑에서 받드는 천사 역활이고."
"아, 천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번에 출항한 배에 진짜 특이하게 생긴 남자가 승선하고 있데. 뭐라더라... 도저히 실재할 것 같지 않은 끝내주는 외모라는데..."
"실재하지 않는다면 없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실제로 배에 있으니깐 난리라는 거지. 그 사람 구경하려고 구경꾼들 몰려가고 지금 장난이 아냐."
두 사람은 정신없이 말을 나누다 전과 같이 입을 다물고 조용해진다. 이번에도 그들 뒤의 출입구로는 아까 소식을 전했던 이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야, 재상님 거의 오셨어. 실수하지 말고. 첫인상은 예의 있는 분 같은데... 이런 흉악한 죄수들 상대로는 좀 그럴지도 모르니깐, 너희가 보조를 잘 좀 하고... 아, 지금 오셨다. "
말을 전하던 이가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치우자 문틈으로 누군가 재상과 인사말을 나누는 소리가 새어들어 온다.
"디자엘 재상님. 시간이 걸려서 죄송합니다. 죄수들이 꽤 난폭해서... 이렇게라도 조용히 시키지 않으면 업무에 지장이 많으실 것 같기에..."
"아뇨, 괜찮습니다. 간수장님께서 이런 흉포한 이들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할 일을 해주시는 겁니다."
주홍 머리의 남자, 디자엘 재상이 방 안에 선실 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생각지 못한 외부의 인물이 들어오자 죄수들은 순간 떠들썩해졌지만, 재상의 곁에서 간수장의 직책을 가진 그가 인상을 쓰자 곧 조용해졌다.
"간수들 두 명 정도를 재상님 곁에 붙여놓겠습니다. 갇혀 있으니 별일은 없으시겠습니다만, 그래도 최소한 조용히는 시키려면 그들이 필요하실 겁니다."
"신경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이 좀 오래 걸릴 듯한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저희야 훌륭한 재상님을 받들어 모시게 되어 영광이지요. 저희에게 이렇게 존칭을 써 주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아뇨. 다른 분들을 하대할 만큼 저는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재상의 겸손한 말에 간수장은 도리어 부담되는지 턱을 긁으며 잠깐 시선을 돌렸다. 무언가 재상과 말을 섞는다는 영애를 좀 더 누리고 싶었는지 그는 잠깐 생각하는가 싶더니 곧 다른 화제를 꺼냈다.
"여왕님께서도 같이 오셨다고 들었습니다만..."
"피곤하셨는지 마차 안에서 잠드셨습니다."
"그 말씀은... 지금도?"
"아마, 일어나실 때에는 작은 소동이 있을 겁니다."
무언가 장난으로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악동처럼 재상은 작은 웃음을 흘렸다. 그의 사람과 가까이하는 친근한 인상에 간수장은 본인도 모르게 따라 웃음을 내었다. 두 사람이 사이좋게 선실 안으로 들어오자, 뒤에서 간수들이 작은 책상과 의자를 가지고서 따라 들어왔다. 그들이 적당한 자리에 책상과 의자를 놓아 자리를 마련해주었고, 재상은 그 책상 위에 손가방을 올려놓고서 안의 내용물들을 꺼내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깨너머로 본 간수장이 작은 놀람의 소리를 내었다.
"이야, 재상님... 이런 악질들의 재판기록을 뭐하러 재검토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백번 사형을 시켜도 부족한 작자들인데..."
"이미 공정한 재판을 통해 전원 노역형을 판결받았다고는 하지만, 조금... 신경쓰이는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신경쓰이는 것 말씀이십니까? 재상님?"
"예. 재판장님의 판결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의문을 남기지 않고 확실히 해두어야 뒤끝이 없는 법이니까요."
재상은 서류들을 한데 모아서는 세워, 탁자의 평평한 부위에 탁탁 쳐 가지런히 정리하고는 잉크병과 펜을 꺼내놓았다. 그리고 그가 자리에 앉자, 간수장은 뒤의 간수 중 두 명을 남기고 나머지 모두는 밖으로 내보냈다.
"아...! 재상님, 적어도 아침 식사는 하시고서 업무를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자리를 너무 오래 비우면... 여왕 전하께서 삐치실지도 모릅니다...그분의 입이 돌아가면 저도 감당이 안되거든요... 후훗. "
"하하, 그러면... 간단한 식사라도 이곳으로 날라 드려도 되련지요? 이런 곳에서 입맛이 도실지는 잘 모르게습니다만..."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주변에서 노려보는 시선들을 향해, 간수장은 한 바퀴 돌아보고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아,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재상이 성의에 감사를 표하자 간수장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서 선실을 나갔다. 그가 나가자마자, 호랑이 없는 산속처럼 다시 또, 선실 안이 들끓기 시작했지만, 재상의 뒤에 서 있던 간수 중 하나가 채찍을 들어 위협적으로 휘두르자 다시금 조용해졌다.
"재상님, 결코 마음을 놓아선 안 됩니다. 저들은 비열한 인간쓰레기들이거든요. 행여나 동정심을 품으시면 안 됩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사람처럼 굴지 않는 자들을 사람처럼 대우해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재상 역시 같은 생각인지 눈은 책상의 서류들을 향한 채로 대답했다. 그는 서류들의 정리가 끝나자 일을 시작하고자 펜을 집어들었다. 허나, 타이밍 나쁘게도 천장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책상 위의 서류 위로 떨어져 눅눅하게 적셨다. 자리가 좋지 않다고 여겨진 재상은 책상을 끌어 자리를 옮겨 앉았다. 그렇지만, 습기 찬 선실의 밑바닥서 물방울이 떨어지지 않는 자리를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그는 몇 번이나 자리를 바꾸고서야 간신히 물이 떨어지지 않는 사각지대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자 그러면, 먼저... '죄수 번호 1호' 부터 시작할까요? 누구시죠?"
재상이 주위의 감옥들을 둘러보며 묻자, 죄수 대신 간수 중 한 명이 채찍 쥔 손의 손가락을 세워 가장 좌측의 감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기입니다. 감옥 하나당 두 명씩, 번호 순으로 반시계방향으로 있으니 찾기 쉬우실 겁니다."
재상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몸을 돌려 '죄수번호 1호'가 있을 방향 쪽을 향한채로 다시 물었다.
"예, 자아...그러면... 1호. 묻겠습니다."
"..."
"지난번 재판에서 증언하지 않은 내용 있습니까? 있으시다면 지금 발언할 기회를 드리지요."
"...내 엉덩이나 핥아. 기생오래비 새꺄."
그 말에 악의로 가득한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간수들이 얼굴이 붉어져서는 채찍을 휘두르며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들의 웃음소리는 좀처럼 줄어들지가 않았다. 화가 치밀은 간수 한 명이 동료 간수들을 부르러 나가려 했지만, 모욕당한 재상은 도리어 웃는 낯으로 그 간수를 말렸다.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예, 하지만... 이래서야 재상님의 입장이..."
"...하여튼 기다려주세요."
재상은 웃음소리가 잠잠해질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웃어 재끼는 죄수들이 온종일 웃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는 그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고, 자신의 말소리가 충분히 전해지는 게 가능한 정도까지 소리가 작아지자 재상은 다시 물었다.
"죄수번호 1호. 지금 제가 하려는 이 질문들은 당신이 구원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것 역시 재판의 일부이고, 이번에도 불성실하게 응대할 경우, 불이익이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큭큭."
"이제, 성실히 참여할 생각이 드십니까?"
"내 사타구니나 핥아, 그러면 성실히 해주지... 카하하하."
다시 한번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람이 아닌 자가 쓰는 말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즐거움을 목적으로 한 악의로 사람을 비웃는 그들의 행태에 재상은 그들을 사람으로 대해줄 마지막 의지마저 사라짐을 느꼈다.
그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서는 간수들을 돌아보았다. 도움을 바라는 것이라 여긴 간수들이 대신 죄수들을 진정시키고자 나서려 했지만, 재상은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채찍을 빌려달라는 의사를 표현했다.
"재상님이 나설 것까지가 아니라, 저희가 대신..."
"누군가가 저를 따르게 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이번에는 조금 거친 방법을 쓰려고 합니다."
"그러니 저희가..."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미 벼랑 끝에 몰려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작자입니다. 때리거나 겁을 주어봐야 아무런 도움이 안됩니다."
간수들은 그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채찍을 넘겼지만, 그러면서도 걱정이 되는지 한 명이 재상이 나서려는 걸 붙잡고 물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때린다 해도, 얼마 못 가 또 저 지랄을 할 겁니다."
"음... 그렇군요. 알게 해주어야지요. 밑바닥에 추락했다 해도, 그걸로 끝이 아니란 걸 말이지요."
재상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죄수번호 1호가 있을 감옥 앞에 다가가 문을 열어달라는 손짓을 취해 보였다. 간수 한 명이 열쇠꾸러미를 들고 달려와 감옥 문을 열어주자마자 재상은 망설임 없이 안에 들어섰다.
감옥 안에는 죄수 두 명이 축축한 바닥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각자의 다리에는 바닥에 붙어 있는 족쇄에 다리가 구속되어 일어서기는커녕, 다리를 편하게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손에는 두 손이 모아져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상반신은 벽의 사슬에 매여 꼼짝도 할 수 없어 보였다. 감옥 안에는 화장실도 없었고, 볼일을 보게 해줄 만큼의 인간적인 대접조차 받질 못하는지. 앉은 자리 주변과 다리 사이에는 누렇거나 갈색의 오물들이 말라붙어 파리들이 들끓고 있었다.
"...위생상 문제가 많아 보이는군요."
재상이 죄수번호 1호라 생각되는 자를 내려보며 중얼거리자, 1호는 지저분하게 자란 턱수염으로 뒤덮인 얼굴을 들어 재상을 노려보았다. 머리는 씻지도, 자르지도 못해 산발에 기름때가 가득하였고, 주름진 얼굴에는 때와 기름땀이 말라붙어 광택까지 날 지경이었다.
이렇게 밑바닥에 추락한 자에게는 어떤 고통이나 욕을 선사한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질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밑바닥에서의 삶이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왜, 네가 깨끗이 닦아주려고? 그럼 혀로 여기나 좀 핥아줘, 요즘 여자를 구경도 못했더니, 이 녀석이 혼자 멋대로 날뛰네... 키히히히."
1호가 다리를 벌려서는 원숭이처럼 지저분한 털이 난 손으로 긁으며 빈정거리자, 옆의 죄수가 따라 비웃었다. 그리고 그 악의 찬 웃음은 빠르게 번져, 또다시 전염병처럼 선실을 가득 메워갔다. 재상은 그런 그자의 앞에서 위협적으로 채찍을 휘둘러 보였다. 공기를 가르며 바닥에 부딪힌 가죽 재질의 채찍에서 '찰싹' 소리를 내며 뱀처럼 소리를 내 울었지만, 1호는 전혀 겁먹지 않고서 도리어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가운데손가락을 들어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려고 하였지만... 스스로 그것을 거부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재상은 간수들에게 고개를 돌려 귀잇말로 몇 가지를 지시했다. 그 말을 듣는 간수들의 얼굴에는 잠시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으나 곧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상의 지시대로 움직이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간수들은 족쇄 열쇠를 가지고 와 1호의 양다리로 좌우 쪽으로 흩어지고는 족쇄를 풀어주었다.
무엇을 하려고 자신을 풀어주는 것인지가 의심이 드는지, 1호는 표정의 변화를 감추지 못하였다. 족쇄를 풀어준 간수들이 1호의 한쪽 다리를 붙잡고서 감옥 문쪽에 끌고 가기 시작하자, 뒤늦게 본능적으로 무언가 불안을 느꼈는지 1호는 발버둥을 쳤다. 그렇지만, 간수들의 우악스런 손길은 멈추질 않았다.
간수들이 문틀의 딱딱한 모서리에 1호의 종아리 부근을 밀어붙이고서 단단히 붙잡자, 재상은 감정이 사라진 눈으로 1호를 내려다보고서 짤막하게 말했다.
"이런 말이 있지요. 도둑은 담을 넘다 다리가 부러지고 나서야 도둑질을 관둔다."
그 말을 한 재상은 문을 세게 닫았다. 문틀에 걸쳐진 죄수의 다리가 문의 모서리에 받히자, 그의 종아리뼈에서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시끄럽게 요동치는 죄수의 발버둥과 비명소리에 묻혔지만, 뼈에 손상이 갔음을 알린 것임은 분명했다.
다리를 붙잡고 구르며 고통스러워 하는 죄수를 내려다보는 간수들조차 재상이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정말로 할 것이라 생각 못했는지 다들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실제로 속담은 없고,. 제가 지어낸 말이긴 합니다만... 항상 맞는 말 같더군요."
"아악, 악... 허억, 허억..."
재상의 말에도 1호가 대답을 않자, 재상은 간수들에게 눈짓으로 다른 한쪽 다리도 붙잡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간수들은 주저하다 재상이 보내는 독촉에 밀려, 나머지 한쪽 다리를 붙잡아 모서리에 갖다 붙였다.
"결정하시죠. 남은 여생을 앉은뱅이로 지내시겠습니까? 절름발이로 지내시겠습니까?"
"으윽, 헉... 헉, 알았어... 알았다고 순순히 대답할게... 그러니..."
"존칭은 안 쓰시는 겁니까?"
"대답하겠습니다! 전부 다 대답하겠습니다."
그 말을 받아내고서야 재상은 간수들에게 1호를 놔줄 것을 지시했다. 다리를 붙잡고 신음하는 죄수의 모습에 약간은 동정심이 생기는지, 간수 중 한 명이 걱정스레 물었다.
"저기... 그... 의사에게 보여야 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이자는 물론, 이 선실 안의 모든 죄수들은 북쪽 끝의 얼음뿐인 대지에서 죽을 때까지 중노동을 하며 살게 될 자들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죄라는 건 말입니다.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겁니다. 젊은 혈기에 넘쳐서든, 술에 취해서든... 어떤 실수라 해도 말이죠."
재상은 그 말을 하고서는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가슴 속에서 그 고통이 밀려왔다. 불에 덴 것처럼 화끈한 통증이... 여왕을 지키지 못했다는 강박관념이 뜨거운 인두가 되어 심장을 지지는 것만 같았다. '죄는 평생 안고 살아야 한다.' 라고 속으로 되뇌며 재상은 감옥을 나와 자신의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선실 안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천장에 고인 물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 정적만이 감돌자, 이에 만족한 재상은 펜을 쥐어 들고서는 서류 속, 죄수의 건강상태에 관련한 몇 가지를 써 넣고 나서 본 업무로 돌아갔다.
"여러분은 아마 바닥에 떨어져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만... 지금의 이것 역시 재판의 일부입니다. 성실히 나오신다면, 더 이상의 불이익은 없을 겁니다."
쥐죽은 듯한 고요 속에서 재상의 말은 계속됐다.
"물론, 반대로... 바닥 끝에는 더 깊은 바닥도 있습니다. 그건, 지금 방금 확인하셨을 터이니, 다시 확인하고자 싶으신 분은 언제든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재확인을 원하는 이가 있을 리 없었다. 침 삼키는 소리마저 크게 들릴 공간 속에서 말을 끝마친 재상은 주위를 돌아보며 확인의 말을 던졌다.
"아시겠습니까?"
"..."
"아시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옛!"
마치 군인이 된 것처럼 죄수들은 소리높여 대답했다. 승냥이들을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기에, 그리고 실천해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매우 잘 먹힌 것에 재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는 서류에 눈을 돌리고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죄수번호 1호."
"옛! 으윽..."
"전의 재판에서 증언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발언하시겠습니까?"
"그게... 뭘 말해야 할지, 잘..."
"그러면, 하나하나 따져보도록 하죠."
재상은 서류에 적힌 전의 재판의 개요와 판결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재판기록 07-0001. 죄수번호 1호로 호칭. 이베이드 출신으로 자세한 신상명세는 불명. 폭행 및 살인 67회, 절도 7회, 강간 22회. 이를 자세히 서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재상은 목소리를 높여 1호가 저지른 죄목을 줄줄이 읽어나갔다. 정적뿐인 선실 안에 퍼져 나가는 재상의 목소리를 듣는 간수들의 얼굴에는 1호가 지금껏 저지른 죄목들을 들을 때마다 차츰 경멸적인 눈빛으로 변해갔다. 지금껏 작게나마 품고 있던 동정심마저 싹 날려버릴 인간말종의 과거행적을 듣고서 지금껏 용케 사람대우를 해줬다는 생각마저 들 만큼 추악한 죄목들의 열거가 끝나자, 간수 중 한 명이 화를 삭이지 못하고 애꿎은 벽에 채찍을 휘둘렀다.
"...마지막으로 드레마에서의 약탈 행위 중 현행범으로 체포. 체포 중 항복 요구에 불응하고 저항... 자 여기까지 제가 했던 말 중, 틀리거나 잘못된 거라도 있습니까?"
"...제가 해적이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저는 단지 그 배에 타고 있었던 것 뿐이라고요."
1호는 증거 운운하며 발뺌을 하려 했지만, 재상은 피식 웃고는 다른 서류를 꺼내 펼치며 대답했다.
"체포 당시, 당신은 해적선에서 저항했습니다. 당신이 죄가 없다면, 왜 해적선에 타고 있었는지? 왜 체포에 저항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토록 사람을 잘 죽이는지 말씀해 보시죠?"
"...그건..."
"아무리 감추려 해도, 당신의 손에는 지워지지 않는 피가 묻어 있습니다. 법망의 틈새로 교묘히 빠져나가려 한다 해도, 저는 절대 놓치지 않을 겁니다."
여기까지 말한 재상은 1호에 대한 간이재판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됐는지 재상은 서류의 맨 밑, 전의 재판을 하였던 재판장의 이름 밑의 공란에 자신의 서명을 써 넣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서류들을 정리해 가방에 넣고서 다음 죄수에 관한 서류를 펼치고는 마지막으로 말을 덧붙였다.
"드레마에서는 당신들 같은 해적들을 대비하기 위한 해군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뒷돈을 받고, 당신들과 장단을 맞춰주는 이베이드의 부패한 해군들과는 다르죠. 당신들의 실수는 드레마의 해안으로 뱃머리를 돌렸다는 겁니다."
"..."
"아무래도 저번의 판결은 틀리지 않은 것 같군요. 그럼, 다음 죄수로 넘어가죠. 죄수 번호 2호. 당신은..."
폐쇄된 공간 속에서 재상의 재판은 계속됐다. 대부분은 자신들의 죄를 발뺌하려 했지만, 이미 한번 치뤄져 유죄가 선언된 재판의 되풀이. 재상의 검토는 단지 시간낭비였다는 것만이 반복적으로 증명될 뿐이었다.
그래도 그 간이재판은 계속됐다. 뒤에서 지키고 서 있던 간수들이 쓸데없는 절차라는 생각을 품을 정도로, 별다른 변화 없이 계속되었다.
"후우... 지치는군요. "
디자엘 재상은 나무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재상은 기댄 의자에서' 끼익' 거리는 불안정한 소리가 새어나왔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한참을 물이 똑똑 떨어지는 천장만을 바라보며 숨을 돌렸다. 책상 위의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빈 쟁반과 찻잔을 치우는 간수를 생각 없이 바라보던 중, 그는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기대던 몸을 다시 일으켰다.
한쪽 면이 찢겨나가 쓸모가 없는 종이를 책상 위에 펼치고서 급히 무언가를 적은 재상은, 뒤에서 잠자코 호위 임무를 하던 간수에게 종이를 곱게 접어 내밀면서 간단한 부탁을 하였다.
"이것을 여왕 전하께 전해주시겠습니까?"
"네, 재상님."
쪽지를 건네받은 간수는 대답하고서는 불만 하나 없이 절도있는 걸음걸이로 선실을 나갔다. 그리고 그의 대타로 다른 간수가 들어오자 재상은 그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하고는 자신의 업무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정말로 신기합니다."
새로 온 간수가 말을 걸어오자, 재상은 하려던 일을 멈추고는 빙긋 웃으며 돌아보고서 물었다.
"뭐가 말씀이십니까?"
"이 선실 안에만 쭉 계셨으면서 여왕님께 안부를 몇 번이고 정확한 시간에 전하시다니... 천리안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닙니다. 그저 전하를 삼 년동안 보필하다 보니, 이제는 그분께서 무얼 하고자 하시는지 빤히 보이더군요. 게다가..."
"게다가...?"
간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리자, 재상은 가방에서 책을 하나 꺼내어 표지를 보이면서 말했다.
"제가 점에 관심이 많아서요. 이게 의외로 정확하더군요."
그의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에 간수들은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재상 역시 그들을 따라 작게 웃고는 점성술 책을 가방에 도로 집어넣고는 업무로 돌아갔다. 지금까지 끝낸 서류들을 가방에 집어넣어 정리하고, 다음 죄수와 관련된 자료들을 책상 위로 꺼낸 재상은 죄수번호로 그 죄수를 불렀다.
"죄수번호 17호."
"...예..."
17호라 불린 죄수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작게 들리자, 간수 중 한 명이 재상을 대신해 크게 호통을 쳤다.
"17호! 이 새꺄! 엄살 부린다고 봐줄 줄 알아!"
"...그게 배,배멀미가..."
"미친놈. 해적이 배멀미? 차라리 임신을 했다고 하지그래? 그럴듯한 핑계를 대라고 새꺄!"
채찍을 집어들고서 17호가 있는 감옥으로 간수가 감옥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재상은 그의 뒤를 따라 그 감옥 안에 들어갔다. 다른 죄수들과 마찬가지로 손발이 구속되어 오물로 범벅인 옷을 입은 17호가 재상의 눈에 보였다. 어두컴컴해 나이는 알아보기가 어려웠지만, 원래 마른 체질인지 갸름한 얼굴형이라는 것만은 간신히 알아 볼 수 있었다. 진짜로 배멀미를 하는지 광대뼈가 움푹 들어간 창백한 얼굴 아래로는 토사물이 늘러붙어 있었다.
재상의 모습이 보이자 그 17호는 자신이 실제로 배멀미를 한다는 것을 보이려고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저 타이밍이 절묘했는지... 재상과 간수가 보는 앞에서 토악질을 하였다. 하도 토해서 더 이상 토할 것도 없는지, 그자의 더러운 입술 밑으로 건더기 없는 누런 색의 걸쭉한 액체만이 주륵 흐르자, 간수는 못 볼 것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재상 역시 자연스레 찌푸려지는 얼굴만큼은 어쩔 수 없었지만, 대신 간수가 휘두르려는 채찍만큼은 막았다.
"우선 의사에게 보이도록 하지요."
간수는 재상이 1호의 다리를 부러뜨린 이후와는 다른, 죄수에게 동정심을 베푸는 모습에, 그가 죄진 이들을 어떠한 눈으로 보는 사람인지가 애매해졌다. 그렇기에 간수는 돌려서 물었다.
"재상님. 설마 죄수들에게 동정을 품으시는 겁니까? 이놈들은 사람들을 개미 죽이듯 재미로 죽여온 자들입니다."
"압니다."
"저들이 해친 사람들 역시, 손발을 비비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을 겁니다. 그때 저 악질들이 동정을 베풀었다면 적어도 이곳에는 오지 않았을 겁니다."
"압니다."
"아신다면, 재상님 그러니 의사는..."
간수가 계속 붙들고 늘어지자 재상은 귀찮음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의사을 부르려 한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하였다.
"동정 때문에 그런 게 아닙니다. 다만, 확실히 하자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재상님?"
"이자가 진짜로 배멀미를 하는지, 아니면 꾀병을 부리려는 것인지 확인하려는 겁니다."
"아... 아, 그런군요."
간수는 그제야 납득하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상이 먼저 감옥 문을 나서자 뒤따라 나가기 전, 간수는 그 죄수에게 험상 굳은 얼굴로 단단히 못을 박았다.
"재상님이 이번 한 번만 특별히 베푸시는 '동정'이다. 만약, 그것마저 속이려 한 만큼 비열한 놈이라는 게 밝혀지면, 죽을 때까지 매질을 할 줄 알아라."
"...예."
17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간수는 그 죄수를 흘겨보고는 감옥을 나와 문을 잠갔다. 간수가 나온 것을 확인한 재상은 책상 위의 서류들을 한데 모아, 가방 속에 잘 구분되도록 밀어 넣고는 가방을 닫았다. 가방을 집어들고서 재상이 몸을 일으키자 간수들은 그제야 재상이 일을 잠시 쉬려 한다는 것을 눈치 빠르게 알고는, 그들 역시 오랫동안 제자리서 힘주고 서 있느라 찌뿌둥한 몸을 풀며, 쉬는 시간 동안 잠깐 붙일 낮잠에 대한 기대로 표정이 밝아져 갔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 17호에 대한 진찰이 끝나면, 제가 다시 왔을 때에 꼭 알려주십시오."
"예, 고생하셨습니다. 재상님."
간수들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자 재상은 역시나 미소를 지으며 응답했다.
"예,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재상이 선실을 나가자, 간수들은 감옥 안을 한 바퀴 돌아보며 마무리 점검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다가 1호가 다리가 부러진 채 여전히 쭉 방치됐다는 것을 깨닫고는 의사에게 이 자도 보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놓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재상님은 보일 필요가 없다고는 하였지만, 그래도 일단 멀쩡한 사람이 설사 죄수라 하여도, 두 눈 뜨고서 병신이 되도록 내버려둔다면 꿈자리가 사나울 것 같기에 일단은 보이는 것이 낫겠다고 결정한 두 간수는 죄수들을 감시할 자를 부르고는 의사를 부르러 선실을 나갔다.
첫댓글 글을 잘쓰시네요. ^^* 단지 가볍게 보기에는 생각할 것들도 있구요. 잘 보고 갑니다.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글을 잘 못쓴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 의욕이 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