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각스님/ ‘속도시대’를 돌아보며 |
요령부득이다. 웬만한 단행본 크기의 핸드폰 이용안내서를 모두 읽어서 사용법을 알기엔 도무지 엄두도 나지 않고, 그냥 사용하자니 무엇 하나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다. 현란한 인터넷 기능에 주눅이 들어 컴맹을 자처한 마당에 날로 변해가는 전화기마저 폰맹으로 내모는 오늘이다. 신기에 가까운 어린학생들의 손놀림을 보면서 자꾸만 더디어가고 나이 먹어 가는 손이 가뜩이나 더 굼뜨지 싶다. 문맹의 어머니들도 살림만 잘하고, 가족 건사도 잘하더라고 자위하지만 왠지 뒤쳐져가는 심사를 추스르기엔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만사를 제쳐두고 이들을 잘 이용하는 것과 씨름하는 것도 객쩍은 일이기도 하다.
‘컴맹’에 한술 더 떠 ‘폰맹’
일이 이러함에도 잠시라도 핸드폰이 곁에 없으면 불안하고, 책상 앞에 앉자마자 습관적으로 인터넷을 뒤지는 버릇은 거의 중독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주위를 둘러봐도 자동차며 열차며 비행기까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보다 멀리, 보다 빨리, 보다 정확하게 내몰아 가는 속도와 전쟁뿐이다. 가히 속도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명제가 틀린 말이 아니게 되었다. 이제는 꿈의 속도 고속열차 시대란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서울에서 목포까지 2시간 30분이면 도달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한양 천리가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 시절임에도 기실 어지럽다. 굼뜨고 게으른 천성 때문인가. 무엇인가 부족하고 어쩌면 허전하기조차 하다. 세 시간 이상을 얻었음에도 오히려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완행열차를 타고 하루 밤을 꼬박 새우며 가는 길에 만나는 삶들은 이제는 없지 싶다. 차창 밖의 변화하는 풍경도 고단한 여행길에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도 이제는 사라진 풍경이다. 설렘을 가득 안고 상경하는 꿈을 이제는 꿈의 속도와 바꿔버린 것이다. 다섯 시간의 여유와 설렘 가득한 상경의 꿈, 이 두 가지를 개량적인 가치의 등가로 비교하는 것은 무망한 일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수치화된 경제의 원리로 설명하면 달리 대꾸할 바도 많지 않다. 그렇지만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은 상상에서 동경으로 동경에서 신화로 이어지는 생각의 길도 지워버리고 있다. 우리는 지금 전설이나 신화가 없는 세상을 살고 있지 않은가. 옥토끼가 방아 찍는 달나라의 꿈도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갔다 온 위로 우리들 마음에서 소리없이 사라졌다. 꿈이 꿈을 먹어버린 세상인 것이다. 어떤 꿈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것인지는 알 수는 없다.
꿈이 꿈을 먹어버린 세상
송나라 휘종 황제는 그 자신이 뛰어난 문인화가였으며, 관리를 등용하는 과거 시험에서도 반드시 시 몇 줄을 적어 놓고 문장속의 뜻을 그리도록 했다고 한다. 이것은 관리들의 예술적 감수성을 시험하기보다 인품이나 사상을 보기 위한 것. 황제는 시험장에서 다음과 같은 시구를 출제했다. 꽃을 밟고 돌아온 말발굽에 꽃향기가 그윽하다 踏花歸去馬踏香 장원으로 뽑은 작품에는 꽃이 만발한 들판이 그려져 있지 않았다. 단지 걸어가는 말을 따라 두 마리의 나비가 말발굽 주위를 맴돌고 있는 그림이었다. 꽃향기를 따라오는 나비 두 마리를 그림으로써 말이 꽃밭을 지나왔다는 사실을 암시한 것이다. 명문에 명답인 셈이다. 인터넷이 속도와 정보를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이런 꿈이나 동경까지도 잃어버리고 싶진 않다.
도각스님/ 사자암 주지 [불교신문 2033호/ 5월21일자] 2004-05-19 오전 11:53:45 / 송고
|
|
첫댓글 나무관세음보살_()()()_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