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토요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망원동 소재 성미산마을극장에서 극단 애인(연출 강예슬)은 여성 조현당사자 연극 "우리, 여기있어요"를 상연했다.
"그만 좀 해! 내 장애가 더 이상 특별하다고 말하지마!" 5명의 여배우는 혼신의 힘을 다해 열연했다.
우물쭈물, 왔다갔다 해도 할건 하는 강박증 현경은 오늘도 쓸고 닦고를 반복한다. 웬지 불안하고 불결하고 또 닦는다. 그래도 깔끔하고 예쁘고 할말은 조근조근 잘 한다. "내 장애는 오래됐지만 꿈이 있어요. 이젠 사랑하는 락우씨랑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리고 싶어요." 꿈도 분명하고 온 가족들은 그녀의 연기에 눈물의 박수를 보냈다.
환청과 함께여도 자신만만한 은미는 노래방 영화관을 주름잡는다. 할일도 많다. 맡은 직책도 역할도 많다. 이 연극이 뮤지컬이 된 이유는 은미의 노래로 시작하고 은미의 노래로 춤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은미는 아이돌 노래도 섭렵했다. 장애나이 고참이다. "군산백일장에서 상도 받았어요, 문학회에 캔커피도 쐈어요, 노래방에 13곡 모두 100점이에요. 나 이래뵈도 능력자요 자랑할것 많은 여자에요. 나 어때요? 엊그제 집사 안수 받아 너무 기쁘고 오늘 연극 잘해서 두번째로 너무 기뻐요" 멀쑥 큰키에 옅은 화장이 도드라진 이쁜 얼굴도 조현을 자랑했다. 가족이 바빠 못 왔지만 조명 받은 은미 배우의 얼굴은 찬란했다.
불안과 불면에도 당당하고 의연한 성욱은 참 이쁘게도 통통하다. 망상 환청 환각 시달려도 연극은 너무 재미 있다. 스토리 전개가 밋밋하다 할 즈음 떨컥 성욱이 일행에서 빠진다. 불면 주 증상으로 재발 입원한 것이다. 가족 외에는 면회가 되지 않는다. 소식도 없다. 여러날이 지나고 "나 여기 왔어요. 퇴원해서 바로 왔지만 병증이 심해서 연극하다 재발할 지 모른대요. 공연하고 싶어 졸라서 퇴원했지요. 폐쇄병동에 밖의 소식을 전해주었어요. 희망을 주고 나왔지요. 병 나아서 빨리들 나오시라고." 환히 웃으며 우산을 돌리며 춤추는 배우 성욱은 입퇴원을 반복하면서도 연극으로 재기하는 멋쟁이였다.
무대에만 서면 펄펄나는 아줌마 보람은 발병 기간 동안에는 쑥맥이었고 내성적인 벙어리였다. 뇌병변으로 발음이 부정확하지만 대본을 큰소리로 외치곤 했다. 맨날 1등으로 출근한다. 숫기 없던 장애인에서 역할과 대본만 주어지면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로 탄생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없었어요. 이사를 너무 자주 가서 친구를 못사귀었죠. 대학시절에도 난 나홀로 외로이 지내야 했답니다. 재작년 연극을 만난 후 이렇게 수다쟁이가 됬어요. 연극이 내 인생을 바꿔줬어요" 장애인이면서 장애인 같지 않는 아줌마 보람은 좌충우돌 우리, 여기 있어요를 빛내 주었다.
장애나이 오십에도 싫은 건 싫은 선미. 어선미 여사는 참 질긴 병 뇌병변 장애로 50년을 지내고 두 자녀에 손자들 주렁주렁 많기도 하지만 장애가 싫은건 싫다. 남이 장애인거 남이 아픈거 이해된다. 그러나 내가 장애인 건 싫다고 강력 부정한다. 누구나 장애를 지겨워 한다. 긴 병에 효자 없다. "난 말할 때 일그러지는 표정 얼굴 근육이 싫어서 긴 챙모자를 쓰고 다녀요. 그런데 오늘 연극하는 내모습 어때요? 난 내 장애를 연극으로 자랑할 정도가 됬답니다. 우리 아픔을 누가 알아주나요? 내가 내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뇌병변 찡그린 얼굴도 절룩이는 다리도 당당한 배우다. 뇌병변도 정신장애인에 속하며 당사자로 삶을 알게 해준 연극이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해서 특별할 것 없는 정신장애를 가진 그녀들이 애인을 만나 무대에 오르는 그들의 30일의 이야기이다. 여성 조현당사자는 2중고에 시달린다. 장애로 차별당하고 여성이라 배제당한다. 감수하고 사는 인생이라 고독한 눈망울에 눈물만 그렁하다. 그들이 연극에서 하고픈 말을 했다.
범죄로 조현당사자를 몰지 말라.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다. 범죄 0.04%에 불과하다. 선량한 다수의 조현당사자를 차별하지 말라. 전 국민 25%가 우울과 스트레스로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 지역사회에 같이 살아야할 우리가 조현당사자이다. 우린 우리나름대로 치유하고 재활하고 있다. 우리, 여기에서 우리 이야기를 한다.
김지수 구성으로 스토리가 탄탄하게 전개되고 관객으로부터 호응을 받고 배우와 관객이 혼연일체 되는 일체감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조명과 디자인 무대가 소박하다. 의자 몇개 밀레의 만종 걸린 책장하나, 걸터 앉은 책상, 우산들, 가방 소품, 앞치마 정도가 이들의 전부였다. 그러나 잔잔한 목소리의 대사와 노래와 춤들은 관객의 박수와 흥겨운 장단에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수화 통역이 쉴새없이 진행됐고 앞좌석엔 주로 휠체어 발달 장애우들이 자리했다. 70여명 객석과 스텝은 하나로 뭉쳤다. 같이 눈물 한숨 짓다가 이것이 환청이고 망상이고 정신장애로구나 직접 체험하며 소름돋기도 하는 어둠이 있었다. 내 귀에 쉴새없이 들이는 환청 욕설 비난 악한 명령이 쏟아지는 걸 듣는게 힘들었다. 조현당사자는 그 속에서 일하고 밥먹고 움직이는 것이다.
권기호의 사진 손가락 손바닥 10개 얽혀진 모습은 서로의 아픔을 감내하는 장면인 듯하다. 둥그렇게 원을 그린 열 손가락이 모아져서 조현당사자의 재기를 상징하고 있었다. 포스터에도 큼지막하게 나 붙었다.
이00은 "당사자가 짧은 시간 연습해서 저렇게 잘 연극할 줄 몰랐다. 평소 보던 그들이 아니었다. 자랑스럽다"고 감상했고,
박00은 "당사자 현실을 그려서 너무 좋았고, 앞으로도 이런 문화행사가 많아져서 조현당사자 인식이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같이했던 00문학회 동료들과 00 부모님 오빠는 꽃다발을 증정하고 함께 기념사진으로 인증샷을 남겼다. 어디든 누구든 조현당사자의 인식 개선과 권익활동을 위해 서로가 노력해야할 때이다.
토요일 3시7시, 일요일 3시 7시 공연하며 입장료는 1만원. 폭염속 생명력으로 일어나는 조현당사자들의 연극에 박수를 보냅니다.
-인랑제 리포터
첫댓글 대단하세요.
너무 멋지네요
소식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우와~~ 좋아요. 좋은 소식이네요. 인랑제 리포터님께서 소식을 매우 리얼하게 전해주셔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연극이 있었군요
시간이 되었다면 볼수도 있었을텐데
이런 연극소식은 단체로 까페에서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