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6일(목)
* 시작 기도
주님...
교회의 전통을 지키는 성탄절은 지났지만, 오늘도 주님의 생명이 내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성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온갖 비존재 세력과 어둠의 영 그리고 죄의 세력들이 틈만 나면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이 마지막 시대에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 그리고 탐욕은 그 이름조차 입에 담지 않게 하시고 내 생각을 사로잡는 세상적인 마음은 오직 주의 보혈로 씻어 정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나의 옛 사람은 왕의 명령으로 받아들여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내 맘대로 사는 날이 아니라 거룩한 불구자로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날 되게 하소서.
내 영이 살아 숨쉬는 날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엡 5:1-14
제목 : 어두움에 속한 자가 빛의 자녀요 생명의 빛을 품다.
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히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7.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그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 나의 묵상
그리스도는 나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시고 향기로운 제물, 즉 화목제물과 속죄제물이 되셨다.
나는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었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데 그런 날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나를 죽음의 불구덩이에서 건져 올리시고 아버지께로 데리고 가신 것이다.
아버지를 뵈올 면목도 없고 죽기에만 합당한 나를 말이다.
이런 나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다시 맺어 주시기 위하여 참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화목제의 제물이 되시고, 또한 나의 죄를 씻는 속죄의 제물이 친히 되어 주셨다.
이처럼 나를 살리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도록 내어 주신 것이다.
(행 2: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이전에 나는 가치 없고 정말 쓸모없는 자였으나 이제는 나의 가치가 예수님짜리가 되었다.
나의 생명은 예수님짜리요 예수님의 것이다.
그렇기에 거듭난 생명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오직 나의 주인의 뜻대로 해야한다.
성도라는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성도요 하나님의 아들인 나는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욕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은혜를 받은 자로서 마땅한 바이다.
음행하는 자, 더러운 자, 탐심이 가득한 자 즉 우상 숭배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한다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주신다.
전에는 어두움에 속했던 내가 이제 주 안에서 빛이 된 것은 날 위하여 죽으신 아들의 화목제물과 속죄제물이 되어 주심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주님의 이런 구속사건 안에 함께 연합하여 십자가와 무덤에 장사되며 그 무덤 속에서 주님과 함께 말씀의 성전을 짓는다.
그리고 오늘도 빛의 자녀로 살아간다.
빛의 자녀는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빛의 자녀가 맺어야 할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다.
모든 착함이란, 세상적인 관점에서의 착한 행동이 아니다.
이를 넘어서는 것으로 날마다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속에서 누리는 영생의 삶을 말한다.
또한 의로움이란 주님의 공의를 말한다.
공의는 주의 심판을 통하여 세워지는데 ‘주의 심판은 옳습니다.’ 하고 받아들이는 자에게 주의 공의가 세워진다.
(사 26:8-9)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밤(무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공의)를 배움이니이다.
(사 32:17)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진실함이란 다름 아니라 참된 진리 그 자체이다.
진리는 곧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복음이며 그 복음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며 이 믿음은 곧 아들의 생명이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나는 빛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어둠에 속하여 어둠의 자식처럼 살아왔던 자이다.
성도들에게는 당신들이 빛의 자녀라는 사실을 가르쳤음에도 나는 빛의 자녀와는 거리가 먼 그런 삶을 살았다.
양을 잘 목양하여 영적으로 튼튼하게 해야 함에도 오히려 양을 이용하여 내 배를 불리고 내 살만 찌우는 삯군에 지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양의 숫자를 늘려서 내 이름을 자랑하고자 했으며, 양들을 잘 훈련시켜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교회가 유기적으로 잘 돌아가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다.
목자가 성도들에게 먹이는 꼴은 복음이 아니라 기계화된 시스템을 먹이고 전도하라고 윽박질러 사람을 데려오게 하는 삐끼로 만드는데 집중하였다.
그렇게 해서 사람을 데려오면 상품을 주거나 목사의 칭찬을 먹이면서 자기 의로 배부르게 만드는 그런 자였다.
그렇게 교회에 온 사람은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드는데 앞장 선 자가 바로 나란 사람이었다.
이런 나는 화가 임할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지나지 않았다.
(마 23:16)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말씀을 이용하여 성도들을 로봇처럼 움직이게 하고 그것이 충성된 종인 양 호도하기도 하였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자랑과 공명심을 위한 것이었다.
영적인 일을 하면서도 철저하게 땅의 것에 취하여 땅의 것을 구하는 땅에 속한 사람인 나는 기독교라는 종교인 또는 종교지도자에 지나지 않았다.
(요 3: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신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위 곧 하늘로부터 오셔서 만물 위에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아들의 생명을 얻어 날마다 영생을 누리도록 해야 할 사명을 가진 목사가 오히려 말씀을 이용하는 말씀도둑질을 하면서 철저하게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나를 어찌 목사라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기독교를 위장한 거짓 종교지도자요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것이 어둠에 속한 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땅의 것을 탐하는 우상숭배자요 존재이신 주님과 말씀보다 존재물을 더 사랑하는 나는 음행하는 자이다.
그런 마음으로 나를 두르며 포장한 나는 이미 음란과 음행하는 자였던 것이다.
이런 나는 하나님의 심판만이 합당하다.
하나님의 심판은 천만 번을 행하여도 항상 옳으시다.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요 죽어야만 하는 자이다.
주님은 심판으로 나를 찾아오셨다.
날 책망하시는 심령의 회초리를 들고 내 앞에 서셨다.
그 회초리는 나의 욕망의 비늘을 벗겨내었다.
그 징계의 채찍은 나의 음행의 허물을 찢고 벌거벗기셨다.
벌거벗은 나는 부끄러워 견딜 수 없으나 주의 품안에서는 가장 순전한 자이다.
심판과 책망을 통하여 어둠에 속한 것들이 드러나 나를 벌거벗기지만 그것은 더 이상 나를 죽이는 것들이 아니요 나를 살리는 빛에 속한 것들이다.
나는 벌거벗었으나 주님의 품 안에서 가장 자유로운 이제 생명의 빛에 거한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이다.
착함은 선한 행위를 말하기 전에 온전히 주님 품안에 거하는 순전함이다.
(창 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여기에 나오는 ‘벌거벗다’는 말은 히브리어 ‘아룸’의 복수형으로 순전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품에 안겨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는 순전함 그 자체이며, 그 어떤 것으로도 포장하거나 자신을 두를 필요가 없다.
그것이 바로 모든 착함이다.
또한 빛의 열매는 의로움이다.
의는 관계적인 용어로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주의 심판은 옳습니다’라고 인정할 때 그 의를 세우신다.
그 의가 세워진 곳에 진정한 자유와 평화 그리고 쉼이 있다.
그곳은 우리가 누릴 하나님 나라요 영생이다.
이 세상은 의심의 안개와 근심의 구름으로 가득하나 거기만 기쁨과 참된 평화가 있다.
지금 내가 딛고 서 있는 이 땅은 여전히 의심의 안개와 근심의 구름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빛의 열매인 의로움으로 맺는 평화와 기쁨을 맛본다.
그 맛이 더 이상 세상의 썩어질 것을 탐하지 않고 오직 그 나라를 사모하게 한다.
그 나라는 빛의 열매인 진실함, 즉 진리이다.
존재이신 하나님과 아들이 계신 그 곳.
진리 자체이신 그리스도.
복음으로 계시된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
나는 오늘도 복음으로 계시된 그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이것이 진짜 진실함 곧 참된 진리이다.
빛은 또 다른 빛을 발한다.
나는 오늘도 그 빛, 즉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살아간다.
빛은 어떻게 비출까 하고 고민하지 않는다.
단지 빛인 자신을 비추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의 빛은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얼굴에 비치고 그 빛은 또한 나의 심령 속에 투영된다.
(고후 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나 또한 빛이다.
오늘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이 아니라 단지 빛 되신 그리스도를 비추는 빛으로 살아간다.
왜냐하면 나는 오늘 이 시간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셨던 그 영광을 보기 때문이다.
주님의 영광을 보는 자, 누가 능히 당하겠는가?
오늘도 나는 주 안에서 참된 기쁨을 누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를 용납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나도 나를 용납하지 못하고 분노에 싸일 때, 주님은 그런 나를 감싸 안으시고 품으시며 용납하셨나이다.
어둠에 속하여 음란과 더러운 것 그리고 탐욕으로 일관하던 내게 주님은 거친 손으로 다가오셨습니다.
나를 만지는 손은 거칠고 아프지만, 그 손길은 한없이 자애로운 인자와 자비입니다.
그로 인하여 참 자유와 평강이 내게 임하나이다.
주님의 거친 손길은 나를 빛으로 인도하셨고 빛이 되었습니다.
나는 어둠에서 해방되어 빛으로 나아가나이다.
오늘도 그 빛의 열매를 맺나이다.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말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심을...
주님 감사합니다.
당신의 생명을 주셔서 만들어진(made of God) 육의 사람에서 태어난 생명(Born of God)으로 삼아 주심을...
주님 감사합니다.
썩어질 씨가 아닌 썩지 아니할 씨인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위로부터 태어나게 하신 거듭난 생명 주심을...
연말연시에 육신이 연약한 자들은 더 많이 힘들고 지치며 외로워하나이다.
그들을 온전히 주님의 품어 주시고 그들 자신도 자신의 눈으로 보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눈을 통하여 볼 수 있는 순전함을 주옵소서.
모든 땅의 고통을 넉넉히 삼킬 수 있는 하늘의 기쁨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