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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여행3 - 바포레또를 타고 그랑카날레를 내려가 산마르코광장에 가다!
5월 22일 아침에 베네치아 리알토 다리 북쪽에 있는 복잡한 골목길 안 5656번지에
자리 잡고 있는 중국인 민박집에서 잠이 깬다.
주방에 뷔페식으로 음식이 차려져 있는데, 우리 한국식과 중국식 두가지로...
중국인들은 아침에 쌀죽 한 공기와 콩 한 접시에 채소 로 서양인 처럼 간단한게 인상적이네?
그 때 한국 여학생들의 전화를 받고는 아주머니가 황급히 뛰어 나간다!
민박집에 예약한 학생들이 베네치아 산타 루치아역 까지 와야 하거늘
그 전인 육지쪽의 베네치아 메스트레 역 에 내려버렸다고 하네?
저런 학생들은 아주머니가 항상 기차역까지 마중을 나가서 데려와야 한단다!
우린 늘 낮에 페라라를 거쳐 멀리 안코나 가는 기차를 타야 하기로
배낭을 여기 민박집에 맡겨야 할지...
아님 산타루치아 기차역 유인 라카에 맡기나 망설이다가!!!
아무래도 관광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무겁기는 하지만 그냥 배낭을 메고 다니기로 작정을 하고는 둘러메고
골목길을 걸어 리알토 다리 방향으로 걷는다.
여기 리알토 다리 에는 예전에 은행 들이 책상 하나를 놓고 영업을 했으니 상인들이 서로
거래를 한후 함께 은행 책상 앞에 앉으면 "장부상 계좌이체" 를 통해 결제를 해주었다.
복잡한 로마숫자 대신에 1~9에다가 0도 있는 아라비아숫자 를 사용하여 부기를 발명했는데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교도 가 사용하는 아라비아 숫자를 금지 했었다고 하네?
그러니까 아라비아 숫자 는 이슬람이 사용하는 악마의 숫자 이니
"기독교도는 사용을 금한다" 고 탄압했으니...
정교분리를 강행한 베네치아가 아니면 보급되지 못했을 것이라!
당시 유럽에서 은행이라면 곧 "환전상" 을 의미했으나 베네치아에서는 장부를 기장하다 보니
“방크 디 스크리타” 곧 “글씨를 쓰는 은행” 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당시 “리알토 다리 소식지” 라는 전날 각종 상품의 종가를 적은 신문 비슷한
것이 발행되었는데 1,499년 7월에는 포르투갈 선대 희망봉을 돌아 인도 도착 을 전한다!
인도 향신료 무역 을 독점하던 상인들은 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기겁하는 데,
포르투갈 이 홍해를 봉쇄 하는 횡포를 부려 베네치아는 타격을 받았던 것이다!
리알토 다리 선착장 에서 90분짜리 티켓을 10유로에
끊어서는 수상버스 바포레또 배를 타고는 대운하 그랑 카날레를 내려간다.
시간만 있다면 이 근처에 있는 15세기에 완성된 베네치아 최고 고딕양식 건물로
“황금 저택” 이라 불린다는 카도르 Cad'Oro 를 보고 싶다만....
카도르는 화려한 아치가 이어진 발코니가 눈길을 끌며 내부는 프란게티 미술관 입장료는
3유로라고 들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이 모자라니 아쉽지만 그냥 배에 오른 것이다!
대운하 주변에는 바로 보트나 곤돌라를 탈수 있도록 자그만 개인 선착장을 갖춘 큰 저택
들이며 호텔이 많은데 한결같이 집들은
운하를 향해 앉아 있는게 특색이다! 우리나라 집들은 한결같이 햇볕이 잘 드는 남향이지만...
여기에서는 모든 생활이 그랑 카날레 대운하를 통해야 하니 당연한 일일지라!
그런데 여기 리알토 다리 선착장에서는 예전에는
1번이 완행이고 82번이 급행이었는데 오늘은 2번 바포레또 가 더 자주있어 배에 오른다.
주의할 점은 여기서는 좌측통행이나 우측 통행이 있는게 아니라
바포레또가 대운하 그랑 카날레 양쪽 연안을 지그재그로
교대로 서면서 운행하니 배가 가는 목적지 방향 을 잘 보고 타야한다!
리알토 다리 Ponte di Rialto 는 13세기에 건설되었으며 대리석으로 재건했는 데.......
다리 위에 피렌체 처럼
쇼핑 아케이드가 있고 다리 건너 왼쪽에 우체국이 있다.
여기 베네치아는 서기 452년에 훈족 아틸라의 침공 을 피해 평야지대 주민들이 바다속
소택지인 라구나(석호) 안에 있는 섬 으로 피신한데서 유래한다.
멀리 동방에서 한고조 유방을 포위하여 조공과 공주까지 받아냈던 그 흉노 도
한무제에 격파당하고 분열된후 서흉노가 중앙아시아 초원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이동 한다!
수백년후에 피가 흐르는 생고기(?) 를 먹는 인간이라기 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잔인한 족속이
이른바 훈족 이라는 이름으로 거센 파도처럼 여기 유럽 로마제국을 덥쳤던 것이다!
이후 오도아케르에 의해 서로마제국이 망한후 동고트와 565년의 랑고바르드족등 계속 되는
야만인들의 침략이 있을때 마다 인근 주민들의 피난물결 이 이어졌다.
개펄에 말뚝을 박고 흙을 채워
북으로는 토르첼로와 부라노, 서남쪽으로는 펠레스트라나 와 마라코모 까지
수상도시 베네치아 를 만들었던 것이다.
538년부터는 비잔틴 제국이 남쪽 라벤나를 수복한 가운데 세월이 흘러 698년에 이르러
도제 Doge (원수) 를 선출 하여서는......
콘스탄티노플의 동로마(비잔틴) 제국 으로 부터 사실상 독립하였다.
800년에 프랑크 왕국의 페펭 과 그 아들 샤를 마뉴가 북 이탈리아를 점령하고
파비아를 거쳐 베네치아를 침략하니 서쪽 키오지아가 함락되고 풍전등화의 위기 에 직면한다.
하지만 베네치아인들은 항복을 거부하고는
마라코모를 버리고 리알토로 철수하면서 수로에 박은 말뚝 을 뽑아버리니....
추격하던 프랑크 함대는 개펄에 좌초되어 화공을 당해 전멸 당하니,
이런 위기를 넘긴후 10세기경에 이르러 베네치아는 해운강국으로 성장한다!
이후 베네치아는 달마티아는 물론 크레타 섬을 정복하고
흑해에까지 진출하여 제노바와 동방무역의 주도권 을 두고 네차례 전쟁 을 치렀다.
베네치아 건너편 이스트리아 근처 바다의 전투에서 포로가 된
베네치아의 마르코폴로 가 제노바 감옥에서 "동방견문록" 을 구술했던 것도 이 때이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흉노족과 랑고바르드 족을 피해 개펄로 도망쳐서 살았어도
생산물은 "소금과 생선" 뿐이라....
처음에는 육지에 두고온 농장으로 나가 농사 를 지었던 모양이다.
점차 베네치아인들은 배를 만들어 해외로 나가 무역에 종사하면서
12세기 들어 무역이 위주가 되면서
상인들의 나라로 발전하니 대운하 주변에 창고겸 주택 을 지었던 것이다!
남자아이는 14살이 되면 무역선의 석궁수 가 되어 집을 떠나는데 프레스티토 마리티모라
해서 연리 20% 융자 를 받아 자기 화물을 구입해 배에 실을 권리 를 가졌다고 한다.
또 합자회사 형식으로 자본가가 3분지 2를 출자하고 경영자(선장)가 3분지 1을
출자해 이익을 반분하기도 하고 자본가가 전액을 출자하면 나중에 이익의 4분지3을 가졌다.
세익스피어 의 소설 “베니스의 상인”을 보면
안토니오가 샤일록에게 살 1파운드를 담보로 돈을 빌린후 무역선이 파선되어
망하는 위기를 겪는 장면이 나오나 사실이 아닌 것이...
보험제도 가 없던 시절에 베네치아 상인들은 설사 자기 소유 무역선이 출항해도
30% 정도만 자기배에 싣고 나머지는 다른 상인들의 짐 을 싣는다.
그리고 자기 상품중에 나머지 화물 70% 는 10% 씩 나누어 다른 사람의 배 에
나누어 실어 위험을 회피하는게 관습이라 배가 파선된다고 망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기사 그래서는 소설이 될수 없겠지만.....
또 다른 소설 “오셀로” 에서는 무어인 선장이 나오는데 베네치아 상선에 외국인
그것도 흑인이라니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이라!!!
베네치아는 인구가 10만 정도라 육군을 운영할 수 없어 외국인 용병을 고용했지만,
베네치아의 해군 과 상선에는
달마치아인을 노 젓는 사람 으로 썼어도 선원은 모두 베네치아인 인 것이다!
15세기들어 베로나, 파도바등 북부이탈리아 까지 세력을 뻗고
후추와 향신료등을 무역 하여 재력을 쌓았으나
스페인의 신대륙 발견으로 쇠퇴하여 1797년 프랑스 나폴레옹에게 점령된다.
하지만 아직도 리넨과 고급레이스, 무도회 가면, 무라노 섬의 유리공업 아며
리도섬의 세계 3대 영화제 등
과거의 영광을 아직도 볼 수 있으나 이제는 침수가 문제니....
운하는 지반 침하와 바닷물의 수위상승이 문제로,
피사 항구도 얕은 강가에 건설된 것이 홍수로 인한 토사로 육지가 되었듯이
방파제를 건설하는 등 치수에 전력하고 있다고 하네?
한 20여분을 그랑 카날레 대운하를 따라 내려가서는 드디어
산 마르코 S.Marco 선착장에 내리는데,
2~3분을 걸어 베네치아에서 가장 큰 "산마르코 광장" Plazza San Marco 에 도착한다.
이 광장은 세 방향이 대리석 주랑으로 둘러 쌓였으며
100m의 종탑과 500년 된 시계탑이 있으며 일년에 몇차례 큰 밀물이 들면
광장이 몇십센티미터는 물에 잠기기도 한단다.
선착장에서 2~3분도 걷지를 않아서 바로 베네치아에서 가장 큰
산마르코광장 Plazza San Marco 에 도착한다.
이 광장은 세 방향이 대리석 주랑으로 둘러 쌓였는 데....
100m의 종탑과 500년 된 시계탑이 있으며 일년중 건기인 겨울에 밀물이 들면
광장이 몇십센티미터는 물에 잠기기도 한다.
여행자 괴테 는 1,787년 독일에서 마차를 타고 파비아에 이르러 배로 바꾸어 타고 여기
베네치아 에 도착하여 잉글랜드 여왕관이라는 호텔에 묵었다.
“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전부 고귀함 으로 가득차 있다!
이 도시는 인간의 노력의 결정 체 로 위대함과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다”
라고 괴테는 베네치아를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온통 비둘기가 뒤덮고 있는 광장을 걸어 들어가노라니....
사시사철 전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붐비는 관광지 답게 오늘도 인산인해를 이룬다.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인 산마르코 대성당 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그 옆에 바다쪽으로 붙어 있는 두칼레 궁전 Palazzo Ducale 부터 보기로 한다.
궁전옆 회랑에 있는 매표소에서 16유로짜리 티켓을 사서는 입장을 하는데
두칼레 궁전 은 베네치아 공화국 도제 Doge (원수) 의 관저 이다.
궁전의 내부는 무척 호화로우며 2층에는 틴토레토의 “천국” 벽화가 있고 운하 건너
감옥 을 잇는 "탄식의 다리" 가 유명하다고 한다.
궁전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마당이 나오는 데 건너편에 보이는 것은 산마르코 대성당 이라!
그리스 신화 에서 유래하는 화려한 인물 조각상이 늘어선 바로크식 건축물들을 일별하고는
오른쪽 건물로 들어서서는 계단을 오른다.
16세기 인구를 보면 스페인 800만, 포르투갈 100만, 프랑스 1,600만에 베네치아를 제외한
이탈리아 1,100만, 독일 1천만, 영국 300만에 터키는 이집트를 제외하고도 1,600만명 이었다.
베네치아 는 본토 섬 인구가 불과 "15만명" 미만이며 육지쪽에 확장을 한 파도바, 베로나 및
베르가모등이 130만 으로 육군은 오직 용병이 있을뿐 "해군으로 지중해를 제패" 했던 것이라!
두칼레 궁전 은 천장이며 벽이 온통 금으로 치장되어 세월이 흘렀건만 황금색은 여전하다!
그리고 벽에는 베네치아파 화가 들의 그림들이 많이 보인다.
틴토레토와 베로네제의 벽화며 파브리아노와 피사넬로며 젠틸레 벨리니의 그림이라!
베네치아 원수 피사넬로가 신성로마 황제와 로마 교황을 초빙해 서로 화해를 시킨 그림이
있다고 들었는 데, 아둔한 내 눈에는 들어오지를 않네?
1,479년 오스만 터키와 평화협정을 맺었을때 화가 벨리니 는 콘스탄티노플에 초청된다.
젠틸레 벨리니 는 오스만 터키의 궁전에서 초상화를 그려주어 술탄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그런데 술탄은 참수된 세례 요한의 목 을 보고는 저 그림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목을 치면 혈관이나 신경은 베인 반동으로 안쪽으로 움츠려 드는데,
"그림에서는 바깥으로 나와 있다" 는 것이다!
화가가 침묵하자.... 술탄은 바로 하인 노예를 데려와 "목을 쳐서 증명" 해 보였단다?
그 중에서도 역사가 취미인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은 거대한 크기의 이탈리아 지도 라....
바닥에는 엄청 큰 지구본 도 보이는 것이 암스테르담의 네델란드 왕궁이 떠오르네?
특히나 아드리아해 북안 베네치아 인근의 지도는 어찌나 상세하던지
항해로 먹고 살았던 사람들이라 그만큼 지도 에 관해 관심이 많았을 터이다?
상세 지도는 아드리아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지중해 너머 오리엔트와 터키 반도 및 멀리
흑해까지 걸쳐 있어서 국제 무역 을 주름잡았던 베네치아의 상권을 본다.
베네치아가 국가원수를 처음으로 선출한 것은 698년인데 원로원에서 간선하다가....
1,289년에 시민들이 집회를 열어 자코모 티에폴로를 직접 선출하는 돌변사태 가 일어난다.
이에 원로원에 의해 새로 선출된 피에트로 그라데니고는 다른 나라의 위협에 대처하고자
개혁을 단행해 1천여명이 넘는 귀족들의 국회 를 만들어 정치를 안정시킨다.
이 국회가 원수 및 200여명의 원로원 의원을 선출하고 여기서 추첨과 선출을 통해 1년 임기의
원수 보좌관 6명과 10인 위원회 및 40인 위원회 위원을 뽑아 국정을 맡겼던 것이다.
정치가 안정되니 베네치아는 1,100년 역사를 통해 반란이 단 2차례 일어났을 뿐인데
그마저 신속히 진압했으며....
합의제 로 영웅을 허용하지 않으니 단 한건의 암살 도 없었던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프랑수아 왕을 포로로 잡은 신성로마 황제 카를 5세가
베네치아 그리티 원수에게 이제는 중립 대신에 황제편에 서라고 강요를 했을 때....
“두분 군주는 모두 나와 친구사이라 상념이 복잡한 것은 어쩔수 없으니
승리한 왕과는 기쁨을 나누고 불행에 빠진 군주와는 함께 울겠습니다” 외교사령으로 걸작?
또 베네치아는 천년 역사를 통해 “바다와 결혼식” 이라는 축제를 계속했으니 화려한 의복
으로 치장한 원수가 원로원 의원을 거느리고 그리스도 승천일에 바다로 행차를 하니...
수많은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여기 선착장에서 부친토르호 에 올라 리도로 나아가서는...
“너와 결혼한다, 바다여! 영원히 내것이어라” 외치고 금반지를 바다에 떨어뜨리는 것이라!
이렇게하여 바다와 결혼한 베네치아는 목재와 유리를 수출하고 흑해에서 밀과 노예 무역 을
중계하며 오리엔트에서 금은 보석과 향신료 와 다마스카스 직물을 무역했던 것이라!
로마 교황의 "이교도와 무역금지" 에 대해서는 정교분리 로 대응하며 아드리아해를 내려가
그리스 코르푸와 크레타 섬과 키프로스등지에 수많은 무역기지를 건설했던 무역대국이라...
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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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길잡이★유럽 배낭여행
(http://cafe.daum.net/bpguide)
첫댓글 좋은 사진과 글 잘봤습니다. 책으로 출판하셔도 되겠네요.^^
아이구 무슨...... 그냥 짜집기 수준이지요?
산마르코 광장에서
그옛날 십자군 전쟁에출정하던
병사들을 생각하며
가슴이 짠했답니다
보기만해도 그리운 베네치아!!!
그렇지요? 제4차 십자군......
하지만 일탈하여 팔레스티나로 가지 않고
같은 기독교 국가인 자라와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해 함락하고는
그 영토를 빼앗아 자신들의 왕국을 세웠지요?
그래보았자 몇십년 가지 못하고 반격을 망해 망했지만.....
멋져요
베네치아는 3번을 갔는데도......
질리지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