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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화엄경보현행원(부사모) 원문보기 글쓴이: 普賢
[광덕큰스님]큰스님은 왜 새 불교 운동을 전개하셨는가?
"파죽지세의 보현행이 우리 사회 곳곳으로 펼쳐나가려면 새로운 불교운동이 시작되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 깃발을 들어야 하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으니 부득이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아서, 그래서 혜총 수좌가 거들어 주려나 내가 말해 본 거야."
이 말씀은 광덕큰스님께서 한국 불교의 새 운동, 행동 불교 운동인 불광 운동을 시작하시면서
큰스님께서 절 집안의 조카 되시는 혜총 스님(부산 감로사 회주)께 하신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큰스님의"아무도 나서지 않으니 부득이 내가 나선다" 는 말씀을 새겨 봅니다.
그것은 기존 불교와의 결별 을 선언하는 큰스님의 '비장한 서원' 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큰스님의 스승 되시는 소천 선사께서 지적하신 그 당시 한국 불교의 병폐.
입만 있고 행동이 없으며(口有行無), 극락 왕생이나 찾고 지금이 아니라 다음 생에나 부처 이루겠다(來世作佛)는 현실도피적, 이론적, 허무 불교가 난무하던 시절,
밝은 불교, 힘찬 불교, 행동 불교, 적극적 불교, 전법 불교 를 부르짖으시며 거대한 한국 불교의 병폐를 넘고자 단기필마로 몸부림치시던 큰스님.
낡은 생각을 버리고 약동하는 생명의 소식을 가르치신 부처님의 뜻과 달리,
낡은 사고에 젖은 채 옛 산중 불교로만 머무르던 당시의 선후배들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따르시면서도(隨順), 새 불교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시고 새 시대에 맞게 변화된 불교를 이루고자가
목이 아프도록 설득하고 기도하셨던 큰스님.
그러나 아무리 말씀드려도 꿈쩍도 안 하는, 견성 제일 주의, 그리고 도인 되는 불교의 현실.
그 거대한 절벽 앞에 드디어 그렇게 간절하던 설득을 포기하시고, 그리고 당시의 승속이 함께 가기를 바라시던 그 서원 역시 거두시며, 스스로 고난의 길을 가시기로 결심한 큰스님의 비원(悲願)이 저에게 오늘, 큰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큰스님께서는 아마 당신이 아니라 기존의 공부 잘한 스승들이 새 불교 운동에 앞장서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셨을 것입니다.
당신같이 병약하며 종단 일에, 그리고 포교에 기운 뺏겨 공부가 부족(?)한 분이 아니라,
산중에서 오로지 수행의 길만 걸은,장좌불와에 눈 밝은 기라성 같은 기존의 수행자, 선승(禪僧)들이 산에서 내려와 중생 공양에 이바지할 것을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뜻이 없고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기에 큰스님은 드디어 당신이 그 깃발을 들기로 결심하신 것입니다.
비록 부족하고 나설 입장이 되지 않지만 아무도 안 하기에 부족함을 무릅쓰고 병약한 몸으로
당신이라도 나아가시기를 결심한 것입니다.
큰스님의 불광 운동은 새 시대 새 불교를 외면하는 당시 불교계를 향한 결별 선언 입니다.
일러도 일러도 알아 듣지 못하는 선배들, 외쳐도 외쳐도 마이동풍인 당시의 불교계에
모든 기대와 희망을 포기하신 채, 모든 것을 거두시고 스스로 당신을 태워(燒身供養)
부처님 빛(佛光)을 온 천지에 공양 올리고자 한, 서럽고 비장한 큰스님의 비원에 다름 아닙니다.
오늘의 한국 불교계도 다소 차이는 있지만, 큰스님이 모든 대외 활동을 거두시고 불광 운동을 전개하시던 그 당시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실로 큰스님 가신 후, 깨달음 불교, 수행 불교를 떠나 얼마나 많은 분들이 '생활불교', '전법불교'를 외치시며 언제 어느 곳에서 '보현행원'이란 말이 나오고 있단 말입니까?
그리고 그러함을 말하지 않는다면, 어느 곳에서 큰스님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단 말입니까?
큰스님 가신 후 '아무도' 관심없는 보현행원과 그 운동. 온화한 미소 속에서도 결연 하셨다고 하는 큰스님의 이 말씀을,오늘 저녁 저는 제 가슴에, 다시 새겨봅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보현보살마하살
普賢合掌
*이 글은 제가 2006년 6월에 쓴 글입니다.
큰스님의 비원을 사무치게 느낄 수 있는 예화에 저도 비장한 마음이 들어 썼습지요...
아래 글들을 보니 다시금 큰스님 생각이 나서 가져와 봅니다.
오늘 날 얼마나 많은 불자님들이 노후에 개종을 어쩔 수 없이 하시고,
막무가내의 선교에 물든 어린 자녀들의 불효에 가슴 아파하시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불자님들이 오시지 않는 부처님을 기다리시고,
얼마나 많은 불자님들이 한없는 절망 속에 떠나시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어릴 때부터 막연히 부처님이 좋아,
절에 가는 부모님 따라 손잡고, 법당에서 할 줄도 모르는 절을 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구체적 불법은 모르지만 그래고 초파일에 등을 다는 저 고마운 불자님들!
그리고 간혹 종교를 밝혀야 할 일이 있을 때, 수줍게 '불교'라고 쓰는 분들...
그리고 다시 인연되면, 중년이 넘어 부처님을 찾아 불교 대학도 다니고 신행 생활도 하고...
그러나 우리 불자님들은 그 분들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해 드렸는지...
그토록 절에 오래 다니고 그토록 불사에 없는 정성 있는 정성, 공양 올렸건만,
병들고 나이 들면 돌아보지 않는 이웃들!
그 틈을 타서 몰려오는 타 종교의 시봉, 봉헌, 공양...
그 속에 그렇게 부처님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애를 쓰다,
결국은 눈물 속에 개종하는 우리 불자님들...
그렇지만 오늘도 수행처는 곳곳에 건립되고 불자님들은 큰 마음으로 동참하며,
한 편에서는 기복적 기도 소리만 높습니다.
이웃이 병이 들어 생사를 눈앞에 두어도 밝은 말씀 한 번 못 전해 드리고,
이웃 종교는 하다 못해 노래라도 부르고 겉치레같은 기도지만 진지하게 드리는데,
병실을 찾아가도 아픈 이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오로지 나를 위해 공부하고 나를 위해 기도했던 불자님들!
누구를 탓하고 무엇을 한탄하겠습니까...
출가자를 탓할 필요, 전혀 없습니다.
그 분들은 당신의 도를 위해 가족까지 버리신 분들입니다.
깨달음이 지상 과제인 그 분들에게, 그래서 가족까지 버리신 분들에게,
우리 불자들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시면 아니 됩니다.
그 분들이 큰 계기 있어 깨달음의 미련을 거두고 기꺼이 우리 곁에 오시지 않는 한,
그 분들이 안 온다고 탓하고 원망할 필요,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 분들은 도 닦게 내버려 드리고,
우리가 그 분들 대신 부처님 법을 전하면 됩니다.
어찌 부처님 가르침을 출가자만 할 수 있고,
어찌 이웃의 눈물을 출가자들께서만 닦아 주실 수 있으랴!
그러니 우리가 밝아지고 우리가 법력을 길러,
그리고 의식을 익혀 저 서러운 이웃들을 섬기고 공양하러 가면 되는 것입니다!
어둠이 있는 곳에 밝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슬픔이 있는 곳에 환희를, 우리가 전해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밝아지고 내가 더 뜨거운 서원을 세우고 내가 그 곳에 간다면!
그래서 절망에 빠진 이웃들에게 햇빛보다 더 찬란한 부처님 밝은 말씀 알려 드리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손을 잡아준다면!
어찌 이웃들이 절망 속에 개종을 하고 눈물 속에 부처님을 떠나겠습니까!!!
우리가 가면 오히려 이웃들이 덜 낯설고 부담도 훨씬 덜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또한 그 분들과 똑같은 삶을 사는, 서럽고 외로운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코! 보답을 바라지는 않으니 그런 부담을 지레 놓으실 것!
오직 어려움에서 그 분들이 벗어나는 것만이 저희들 정성의 가장 큰 보답이신 것!
그것이 저희가 가장 기쁜 일!
우리는 동업중생으로, 둘이 아닌 이(不二)들인 것입니다!!!
깨어나시라 불자여!
남 탓하지 말지라 불자들이여!
나의 게으름, 나의 이기심을 부끄러워하고 참회할지라!
이웃을 섬기고 공양하는데 어찌 출가, 재가의 구분이 있겠는가!
우리의 게으름, 우리의 이기심을, 출가자들에게 전가하지 말지라!!!
그 분들도 바쁘신 분이실지니...
아무도 가지 않는 그 캄캄한 길을,
아무도 관심없고 알아 듣지 못하는 그 절망의 새벽을,
부처를 이루겠다는 당신의 수행마저 접으시고,
혼연히 일어나 우리 앞에 스스로 타 올라,
어둠 속에 우왕좌왕하는 우리에게 길을 밝히시고 당신은 한 줌 횃불로 사라지신,
정녕 크고 크신, 우리 '광'자 '덕'자 큰스님!!!
이웃을 탓하지 말고, 세상을 탓하지 말고,
정녕 오늘의 한국 불교 현실이 가슴 아프다면,
우리 모두 잠을 깹시다!
그리고 깨달음을 떠나, 나의 기복, 내 서러움을 넘어,
저 드넓은! 우리 큰스님 가신 길, 함께 가십시다...
普賢合掌
“아이고 부처님, 우리 절 무너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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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보고] 남양주 도법사 철거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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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글] 개종
언니가족과 친척들의 개종
큰 언니가 병원에 일년을 입원해 있었던 병동이 2인실 이었는데 옆에 환자 분이 개신교인 이여서 매일 구역 식구들이 찾아와 기도해주고 목사님도 다녀가는데 언니는 그것이 부러웠든 모양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년을 넘게 병원에 있다보니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고 무엇에나 의지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에... 자기를 위해서 기도 해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던가.. 언니는 절에 자주 가고 결혼도 절에서 했지만 불교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고 지방이다 보니 소속된 절이 없었다. 절이 멀리 있기도 하지만 절에 가면 법당에 절만 하고 오는 불자이다 보니 법문을 들을 기회도 없었고, 부처님 가르침의 책도 접할 수 없었고 가까운 곳에 절도 없었다. 내가 불교를 공부하면서 책을 주기 시작할 때는 이미 개신교로 개종이 가까울 때였다. 옆에 환자에게 개종을 권유받고 처음엔 망설였지만, 만나기 어려운 부처님보다는 예수님이 가까이 있었으니... 병원에서 오직 관세음보살 찾던 언니인데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개종하고 두 부부가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부처님 법은 멀고 예수님 말씀은 가까이 있었으니까. 이런 언니를 보는 내 마음은 뭐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 스님을 보려면 절에 가야볼 수 있고 병원에서도 스님 한번 만나지 못했다는 것 이었는데.... 목사님 신부님은 찾아와 준다는 것 이였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종교이지 어떤 때 필요한 종교냐? 하는데 할말이 없었다.
이렇게 한 형제가 종교가 다르니 어머니 돌아가시면 장례문제로 싸움이나 일어나지 않을지.. 어머니는 나에게 모든 걸 맡기셨지만 어머니 가까운 곳에 사는 언니의 주장에 맞서기가 어렵게 되어있다. 아무래도 가까운 곳에서 달려가기가 쉬울 것이다. 장례조차도 불교식으로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있다. 이 일을 그냥 인연법이다 고 해야 하는지... 한 집안에서의 종교적 갈등은, 그냥 쉽게 넘길 수 없는 가족구성원의 단절을 가져온다. 숙모님 가족도 모두 개종했다. 작은집 숙모님께서 병원에 입원해 계셔서 병문안 을 갔더니 타종교에서 하는 호스피스 병동 이였다. 중환자실에서 가족들이 간병하다가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것이 타종교의 간병을 받게 되었다. 불교 집안인데 병원에서 장기적으로 간병을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거기에는 불교 호스피스 병동은 없었으니까. 숙모님 큰아들인 사촌 동생도 불교를 좋아하는데 말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이였다고 한다. 사촌동생도 절을 좋아했고, 조상님들 산소 가까이 절이 있는 것을 좋아했었다 ..항상 목탁소리, 독경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숙모님은 의식은 있으신지. 나를 보시더니 움직이지 못하는 몸이지만 울기부터 하셨다 숙모님이 불교인임을 알기에 염불이라도 하시라고 한 손만 쓸 수 있는 손에다 염주를 드렸더니 옆에서 언니가 하는 말이 호스피스 봉사자들이 보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고 하니까. 잠깐 쥐고 있던 염주를 슬며시 나에게 주고 뭔가를 호소하는 눈물이 보였다. 불교 신자였든 숙모님께서는 전화로 안부를 물으면 염불을 하고 지내신다고 하셨다. 쓰러지고 나서 말을 할 수도 없고 표현을 할 수가 없을 정도이니 주는 대로 호스로 받아먹고 의식만 있을 뿐 이셨다. 그 이후... 6 개월을 넘게 호스피스 병동에 계시던 숙모님께서 운명하셨다. 그런데 이번에 부고 소식을 받고 가보니.. 숙모님 가족들이 모두 개신교 신자가 되어 있는 것 이였다. 혹시나 스님을 모시지 않았을까 하고..기대에 차서 갔는데.... 숙모님 간병하던 호스피스 한 분이 아예 상가 집에 자리를 잡고 찬송가 테프를 계속 바꿔 틀고 있었다. 마치 자기 집 초상인 것처럼 당당한 모습에 압도 되었다. 그래서 둘째 동생에게 물어 보았다. 너는 종교가 무엇이냐..? 대답이 기가 막히다. 간병하는 호스피스를 보고 ..이 세상에서 저런 분은 없을 거라고 한다.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해주시는 분이다..존경스럽다. 한달에 20 만원의 봉사비를 받고, 더러운 오물도 더럽다 하지 않고 만지고, 같이 먹고. 안아 주고. 엄마처럼 환자를 돌봐 줬다고, 저런 분이 믿는 종교를 가지고 싶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종교를 심어주고 싶다는 말과 함께.. 동생네 형제가 오 남매이다 부부까지 10명 ! 거기에 아이들이 10명. 20명이 기독교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이들이 어리니 부모가 하라는 대로 따른다.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드릴 것인가. 거기다 동생은 주변에 아는 사람이 많다. 주변까지 합치면 얼마 마한 숫자인가 한 사람 개종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내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이였고..아...이일을.... 목사님과 신도들이 장지까지 모두 와서 기도하는 뒤꽁무니에서 나무아미타불 찾는 내 모습이 얼마나 .서글프던지.... 같이 기도하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서럽게 우는 여동생의 슬픔을 달래주고, 그들이 가고 난 다음 옷을 태울 때 광명의 나라, 빛으로 돌아오소서... 한 소절 불러 줄 뿐 이였다. 가방 속에 목탁은 써보지도 못한 채..... 고종 사촌 동생은 더 기가 막힌 소리를 하는데. 자기가 사는 동네는 교회가 곳곳에 생겨서 모두 교회를 다닌다고 한다 아이들도 가까이 있는 종단이 다른 포교당이라도 보내면 교회가 좋다고 가버린다고.. 아이들뿐이 아니고 노인들도 모두 교회로 다니며 목사님이 일요일마다 데리러 다닌다고 한다. 오면서 깊이 생각해본다....... 이 시대의 불교 포교방법은 무엇일까..! 여러분 곁에서도 거의 타종교의 가족이 늘어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을 겁니다. 이제는 불교도 생활 속 의 불교가 되어야 이런 가족 간의 단절이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친구, 친척, 모두가 타종교라면 나 혼자 외톨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며, 대화가 첫째 안 되고 일부 개신교는 자기들 주장이 너무 강합니다. 어느 종교이건 착하게 살아라 남을 위해 살아라 서로 사랑하라 가르치지만 개신교와 불교는 다릅니다. 불교는 모든 걸 표용하고 수용하지만 일부 개신교는 불교를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 믿으면 지옥 가고 다른 종교는 모두 이단으로 보며. 우상숭배라고 몰아세우고 법당에 불 지르고. 부처님 상 훼불하는 사건들이 일어남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에서 종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염려해 봅니다. 지역이 다르다고 지역감정이 지금까지 남아있는데 우상 숭배한다고 부처님상 훼손하는 일이 허다한 요즘의 상황을 볼 때. 싸움이 없을 수가 있겠는지요. 과격분자가 나오면 종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얼마 전에 가입한 타종교인 18세 인데 험한 욕을 하고 가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한국스님들은 나쁜 스님들이었군요. 공부도 안하고 등쳐먹기만 하는 집단들! 재밋다. 친구들한테 보여줘야지) 젊은 사람들은 어른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릅니다. 무서운 아이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를 비방하는 타종교인 지도자들에게 바라노니 우상숭배라고 불교를 몰아세우지 말았으면 합니다. 돌아가신 부모님 그리워 하며 사진 걸어 두듯이 우리도 부처님 보며 신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 상을 만들고 그림을 그려 예불 본다는 사실을 인정 해 줘야 합니다. 내 것만을 주장하지 않아야 종교의 화합이 이뤄질 것입니다. 종교의 화합이 이뤄져야 나라도 조용하고 가족끼리의 단절이 없을 것입니다. 세계적인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 모두들 알고 있겠지요? 사랑을 가르치는 종교가 남의 것 소중한 것도 알았으면 합니다. 서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종교 전쟁은 불가피 할 것입니다. 종교전쟁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우상숭배라고 몰아세우는 일부 개신교에서 과격분자가 나오면 전쟁은 불가피 일 것입니다. 개신교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릇된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일부 종교인 들은 신도들에게 그렇게 주입시키고 있습니다. 타 종교에서도 불교를 인정해야합니다. 우상숭배라고 몰아세우면 과격분자가 나오게 되어 있음을 명심 하십시오. 현실에도 불교 비방하고, 불 지르고 부처님 상 훼불 하는 등의 행위는 없어져야 합니다. 종교 간의 화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한민족. 한 형제끼리의 단절임을 일부 종교인들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내 몸에 상처 내는 거와 같다는 생각을 해줬으면 합니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합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종교를 찾는데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는 종교가 되었으면 합니다. 간절히...간절히....... 불제자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백천만겁 난조우 !! 불교가 이렇게 가다보면, 어렵게 만난 불법을 버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불교 호스피스 (보살행) 정착해야 합니다. 스님들께서도 불자들과 함께 임종병원이라도 다녀야 합니다. 비구 비구니스님께서도 호스피스에 참여 하셔야 합니다. 수녀님들처럼. 병자와 어려운 이 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법을 지키는 일이 부처님 공부를 많이 하고 법문을 잘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지금 현실에서는 생활불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소외된 곳에서 포교를 해야 합니다. 기독교가 성공한 이유는 신도들과 함께 하고, 가장 소외된 곳을 돌보아 주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 법 없는 나라에 태여 나는 것이 가장 불행하다고 했습니다. 후세들에게 부처님 가르침 없는 나라를 만들지 마세요. 어려서 부터 불교를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어린이, 청소년 불교도 관심 가져야 합니다. 불교를 쉽게 접하고 청소년 눈높이에 맞춰서 불교를 쉽게 접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 어렸을 때 과자 먹는 재미로 교회에 가서 배운 주기도문을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 어려우면 하느님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어릴 때의 습관입니다. 동네가운데에 포교당 많이 생겨야 합니다. 산 속에 큰절 짓지 말고 동네가운데에 지어서 불자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전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동네 가운데 교회 짓고 기도원은 산 속에 짓습니다. 주민들과 동거동락 하면서 기도 할 때는 조용한 곳에 가서 합니다 이런 점은 배워야 합니다. 이조 오 백년 억불정책 때 모두 산 속으로 들어가서 지금 까지 내려오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동안거 한번하고 하안거 는 호스피스 교육이라도 받으면 안될까요? 기업에서도 신입생들 연수 코스가 양로원에 가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오니...실천 행으로 보여 주십시오.. 종교란 가장 어려울 때 찾아 주는 것이 종교입니다. 생사해탈이란 다음에 일 일지도 모릅니다. 타종교에 자리를 내 주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다 종교 사회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싸움이 일어납니다. 교회는 동네 가운데에 지어서 신도들과 함께 합니다. 현재 남쪽지방에는 청소년들 거의 기독교화 되고 있음을 모두 느끼실 것입니다. 우리 불교는 산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서서히 타종교에 잠식당하고 맙니다. 가족 간의 단절이 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일부 개신교에서 불교를 이단으로 보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은 민족끼리의 분열입니다.3.8 선보다 더 무서운 선이 그어집니다. 보이는 눈앞에서..... 불제자들이 할일이 많습니다. 이 땅에 1,700년의 불교 역사가 100년의 기독교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현실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나요, 제 생각으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은 경전을 외우고 진리를 터득했다 하더라도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땅속에 보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불제자이면 응당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야 합니다. 부처님처럼 중생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중생과 함께 해야 불제자입니다. 우리 모두 정신차려야합니다 스님들께만 미루지 말고 승과 속이 같이 법을 지켜야 합니다.
내 주변에는 거의 타종교인 이 되어버린 형제 친구들이 많지만 내게는 종교에 대해서 한마디도 못합니다. 친척 사랑하기를 예전보다 더 잘해주는데 뭐라고 할 말이 있겠습니까.. 항상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 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겠지요. 서로 종교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합니다. 믿음을 굳건히 가지고 항상 모범적인 생활로 불교인의 참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부처님 법 만남을 생에 있어 가장 큰 보람으로, 행운으로, 소중한 인연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04/11/20 글쓴이 일행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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