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옛날 작가들이 많이 썼던 복고풍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오글거림 사전 주의 드립니다.
오늘 구리시체육관으로 직관을 갔다.
막판까지 검토 요청이 들어와서 결국 칼퇴근을 하지 못했는데, 결국 한 차 늦게 탔더니 예상 소요 시간이 +15분이 되었다.
여의도에서 구리까지는 지하철만 1시간이 넘는데..
간신히 7시 10분 좀 넘어 구리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오늘 눈이 많이 내렸다.
이번에는 연이은 택시 승차 거부..
심지어 타서 앉았는데 내리라는 기사도 있었다. 확 신고해버릴까부다 인생은 실전이야
4대째만에 간신히 좋은 기사님을 만났다 (승차거부 기사분들 나보다 더 욕해주심). 여자농구도 잘 아시는 분이었고 애정도 있었다.
어찌어찌 도착했지만 이번에는. 구리시체육관은 길가에서 꽤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오늘 눈이 많이 내렸다.
미끄러워서 구둣발이 몇 번이고 넘어질 뻔했지만, 간신히 부상 없이(?) 체육관에 도착..하는 찰나
쿼터 종료를 알리는 버저가 울렸다. 전반전 끝났구나.
결국 내가 처음 본 플레이는 MVP 박혜진도, 올스타 MVP 구슬도 아닌, KDB 치어리더 공연...
구리시체육관에 대한 악평을 하도 들어서 (심지어 물이 샌다죠. 집샌물샌)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했는데,
정말 기념품이고 뭐고 아무런 상품 접근성이 없었다. 아 물론 조금 있긴 있었지만, 아파트 바자회만도 못한 정도로.
"잔뜩 진열해 봤자 안 팔려" vs. "사고 싶게 꾸며 놔야 살 마음이 생기지"의 조용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KDB 생명" 로고가 박힌 유니폼은 이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악성재고
이미 한참 전부터 응원하던 팬에게야 역사적인 의미라도 있겠지만, 이제부터 새로 살 사람이 있을까 싶다.
오늘도 산업은 기록을 연장당했다. 우리은행전 연패, 올 시즌 연패, 시즌 역대 최저승률..
TV 중계화면과 직관, 그것도 플로어 레벨에서 보는 플레이는 그 박진감을 비교할 수가 없다.
TV화면이 FPS 게임 화면이라면, 직관은 서바이벌 훈련 정도?
그야말로 지축을 울리는 군화 선수들의 달음질 덕에 내 자리도 쿵쿵 울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핸드체크며 스크린이며 패스 차단이며.. 직관에서 보니 모두 다 악바리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은행 선수들은 중계로 보던 것보다 움직임이 둔해 보였다. 휴식일 차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3쿼터부터 봐서 그런지 몰라도 모든 동작들에 있어서 산업이 우리보다 날쌨고, 특히 김정은은 한채진은 물론
김소담도 따라잡지 못해 가로 수비가 계속 뚫리며 결국 파울 누적으로 인해 오늘 유일한 퇴장자가 됐다.
물론 점수차가 좁혀지는 정도의 의의만 있었을 뿐, 우리는 또 이겼고 산업은 또 졌다.
우리는 오늘까지 세 번이나 산업과 핸디캡 매치(?)를 하고 있는데, 그 세 경기를 모두 이겼다.
어떻게 보면, 가장 전력이 약해진 순간에 최하위 팀을 만나 3승을 더한 것은 오히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도?
승리의 원동력과 패배의 원인은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고, 다 모르겠고 걍 우리가 훨씬 실력이 좋아서.. 라고 정리해도
사실은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체력만 가지고 얘기해 보자면, 하루밖에 못 쉬고 나이도 많은 우리의 몸이 더 무거웠지만,
우리는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경기 체력 소모를 최소화해서, 막상 경기력에 있어서 체력 차이의 영향은 생각보다는 크지 않았다.
예컨대, 산업이 좋은 위치 리바운드를 잡고 앞선이 달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일단 등을 돌리고 두 명 정도가 백코트부터 한다.
산업에는 현재 이경은이 없다. 우리를 상대로 수비를 달고도 드리블 속공을 칠 수 있는 선수가 사실 없다.
그리고 서덜랜드는 쏜튼이 아니고.. 노련한 한채진이 있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그나마 한채진이 패스하는 역할이어야
속공 시작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산업에도 발 빠른 재원은 분명 있을텐데, 속공 시 동선에 대해 손발을 맞춰보지 않으면
현재로서는 속공을 자주 시도하기 어려워 보였다.
이게 산업 발이 더 가벼운데도 막상 코트 공간은 서로 비슷하게 사용한 한 예다.
그리고 오늘 눈이 많이 내렸다.
원래 서정적인 분위기의 밤 눈이 내린 거 같은데, 완전히 뚝 떨어진 온도와 함께 산업의 시즌도 플레이오프로부터는 멀어졌다.
다만. KBSN에서 자료 화면으로 준비했듯이, 산업의 현재는 우리의 과거이다.
우리는 쌓아둔 포텐을 폭발시키고 외부 인재를 영입(위감독)하면서 마침내 오랜 암흑기를 청산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고 또 연속으로 쌓을 기회를 노리고 있다. (주원혜진님 설명 감사합니다)
산업이 배워야 할 팀의 향후 기조는 우리가 먼저 보여주고 실천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오늘 내린 눈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빙판이 되어 버리지만, 누군가에게는 멋진 작품을 만들 재료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리는 이 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그 방향을 최대한 빨리, 정확하게 정해야
비로소 눈이 의미를 갖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데 쓰이게 된다는 점이다.
산업에게도 다행히 눈은 많이 쌓인 상태이다. 퓨처스 최강자라는 점을 봐도 재료는 충분하다.
부디 산업의 나아갈 방향이 하루빨리 제시 및 정립되고, 선수들이 구단 걱정 체육관 걱정 없이
농구에 집중할 수 있게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감독 닮아서 그런지, 엥간히 고난이 닥쳐 옴에도 불구하고, "엄살"이라는 오해를 받곤 한다.
우리의 큰 장점 중에 하나가 항상성이다. 항상성은 그저 가만히 있어서는 오히려 사라져버린다.
변하는 환경에 맞게 자신을 적절하게 바꾸어 나가야 비로소 항상성이 생긴다.
사람들이 우리만의 비결에 대해 자주 물어보는데, 말하자면 "비결을 계속 찾는 노력"이 바로 우리의 비결이다.
왜 박혜진을 못 뚫는지, 왜 임영희가 제대로 손에 걸리면 반드시 넣는지, 왜 우리는 선수가 계속 바뀌는데도
똑같은 선수들이 뛰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지, 설명할 수는 없는데 왠지 다 납득하고 온 하루였다.
덧.
여러분들의 조언과 저의 고민이 적절히 합체된 선물을 오늘 경기 끝나고 전달하고 왔습니다.
쑥쓰럽게 쭈뼛대는 제게 그 선수는 일부러 모자를 벗고 인사해 주었고
앞으로 우리 팀 많이 응원해 주세요, 라는 기본기 있는(?) 멘트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시린 손으로 그 선수에게 선물을 건내던 그 순간의 떨림과 감동이 다시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눈이 소복히 쌓인 풍경 속에서 갑자기 현실이 아닌 것 같이, 그렇게 몇 마디를 나누는 게 참 신기한 감정이었습니다.
원래 사인을 받아볼까, 사진을 같이 찍어볼까 생각하고 갔지만, 인사하고 줄 것 주고 얼른 들어가라고 해 주고 싶어졌습니다.
기다린다는 건 그런 거 같습니다. 기다린 나보다, 기다리게 만들 상대방이 더 신경 쓰이는 그런 거요.
나는 다행히 시력이 정상이고 기억력도 정상이고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몇 초 마주보고 왔습니다.
분명 나중에 사진만 남는 건데, 하고 후회할 순간이 있겠지요. 대신 상대가 알든 모르든 나는 배려해 주고 싶었다는 마음을
지키고 돌아온 것도 나름대로 사진 없는 추억으로 소중하게 간직해 보겠습니다.
정말 아무 이유를 모르겠는데, 아주 좋았고 해 보고 싶은 경험이었는데도, 혼자 다시 여의도로 돌아오며 기분이 먹먹해졌습니다.
내가 오늘 본 게 창창한 앞날이라기보다, 역사의 뒤안길인 것만 같은 그런 기분.
어쩌면 처음 본 오늘이 마지막이면 어떻게 할까, 하는 그런 안타까움.
그렇게 된다 해도. 분명 그런 오늘조차 만나러 가지 않고 기회가 지나가 버리는 것보다는 잘한 결정이겠죠.
첫댓글 감상평을 넘어서 일기장 글이 되어버렸네요. 아직 경험이 적어서 작은 것도 크게 여겨서 그렇다고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눈 오는데 고생하셨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네.. 진짜 구리역에서 고생 좀 했습니다 ㅠㅠㅋㅋ 감사합니다^^
추운 날 먼거리 오가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글도 잘 읽었고요.
자원만 놓고 보면 여느 팀에 뒤지지 않을 텐데 참 안타깝죠.
박신자컵과 퓨처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까닭이 있잖아요.
구단 지원과 지자체 성의, 코칭스태프 구성만 잘 이루어져도 상당히 오를 텐데요.
어제 경기를 보니 선수들 표정관리에 조금 더 신경쓰면 어떨까 합니다.
플레이하기도 어렵고 힘들겠지만 포커페이스가 아닌 한 잘되면 웃고 안 되면 파이팅도 내고 콜도 많이 하고요.
박영진 코치가 작탐 때 김시온 선수에게 1번이니까 콜 좀 하라고 하더군요.
이경은 · 한채진 · 조은주 선수가 나란히 앉아 있는데 짠했습니다.
이경은 · 조은주 선수는 수술했나요?
조은주 선수는 시즌 초에 했구요. 이경은 선수는 26일에 일본에서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ㅠㅠ
@kylie 아, 그렇군요.
수술 후에 재활도 중요한데 다음 시즌에 건강하게 플레이하는 모습을 봤으면 합니다.
어제 여러 소스의 이야기와 현장 분위기와.. 등등을 종합하여 제가 혼자 내린 결론은, 선수들 표정 어두운 것에 30%는 올 시즌 성적 때문이고 70%는 구단의 미래가 어두워서 그런 거 같습니다. 내년에는 아마도 그냥 위너스. 그리고 그 뒤는 어떻게 될까요..
하위에 있던 팀이 상위로 치고 올라가 이름을 남기는 강팀이 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
동시다발적 포테션 폭발과
그 포테션들을 폭발시킬 재원들의 확보입니다. 이 과정이 가장 잘 되어 있는 팀은 kdb이지만 팀 내부 사정상 제대로 터질 수가 없는 상황이었지 싶습니다.
좋은 지도자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좋은 지도자도 선수단과 맞아야 효과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시기가 구슬도 확실히 성장했고 껍찔을 깨고 나오려는 시기인데 이 때 모기업은 손을 뗀다고 하는 거죠...
반드시 좋은 새 둥지를 만나 알을 깨고 나오길 바랍니다.
강팀이 이기는게 아니라
이긴팀이 강팀이다라는 생각도 드네요~~
필요한 좋은 지도자를 감독만이 아니라 구단주, 단장 이렇게 확장 시키면 될 거 같네요..
KDB 내에서 잘하는 선수는 최악의 경우 다른 팀에 가더라도 경쟁해볼 수 있겠지만,
아직 KDB에서 뭔가를 보여주기 전의 선수들은 더 암담할 거 같아요.
KDB-구리 조합을 떠나는 건 장기적으론 찬성입니다만, 이 구단이 결국엔 WKBL을 떠나버릴까봐 걱정입니다.
마지막이될거같다는것이 사실일수도있다는게 너무씁쓸하네요ㅠㅠ 케이비팬이지만 구리체육관이 젤가까운데~ 저는일요일에^^
KB는 우승후보인데, 원정이지만 경기장이 가까운 것 부럽..
근데 문득 궁금한 건데 지금 KB플레이메이커는 누구인가요? (커리??)
구리체육관이 좀 불편하긴 하죠. 주차도 그렇고... 체육관이 작아서 원정팀 응원석에선 선수단 벤치도 안보이고... 사이드라인 쪽에서의
볼 움직임도 안보이고... 관객이 그럴진대 선수들은 오죽하겠어요.
kdb는 선수 코칭스탭보다 구단문제가 가장 심하지 않나 싶어요. 전용체육관 하나 없어서 선수들 야간 훈련하고 싶어도 할 곳도 없고... 댓글들 보면 슛률이 어쩌고 자유투 연습부터 다시 하라는 둥.. 하지만 할 곳이 없다는...
구단이 구리시하고 잘 협상해서 전용구장 하나 만들어 내기 전에는 지금 성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봅니다.
아 진짜 훈련장소 없다는 것은 넘나 어이 없는 것... 김연아 선수가 어렸을 땐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에서 사람들
살살 피해 가면서 연습했다고 했죠. 김연아니까 되는 거지, KDB에게는 너무 가혹한 환경입니다...
저도 어제 고딩 딸이랑 경기 직관했습니다.
열렬히 응원했습니다.
제 딸이 농구를 잘 아는지라 이럴 땐 이렇게 해야지~하면서 열 받아하는데,
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은행 선수들이나 KDB 선수들이나 모두 농구 선수잖아요.
KDB선수들이 "너 농구선수지? 나도 프로농구선수야!!" 이런 자신감을 갖고 플레이 했으면 좋겠다는.
우리은행 아래 KDB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체육관을 나오는데, 사람들 얘기 소리가 들립니다.
한채진 선수 혼자 열심히 한다고...
1월 26일 금요일 삼성전에서 다시 일승을 기대하며
직관하여 힘찬 응원하려 합니다.
딸과 농구 관전이라니 대단히 멋있습니다 ^^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입니다. 둘이 같은 공 같은 골대를 쓰는데 못 이긴다는 법은 없죠.
어제 저도 경기 끝나고 꽤 오래 체육관 앞에 서 있었는데 못 알아보고 서로 지나친 모양이네요.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면 인사하면 좋겠습니다. 기왕이면 26일에는 승리의 요정 되시기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kdb는 참 안타깝죠. 선수나 코칭스탭이나 응원하는 팬이나 모두에게 잔인한 시절인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천천히 정독하다 깜놀했어요. ㅎㅎㅎ)
KDB구단 수뇌부가 어떤 분들이지 전혀 모릅니다만, "거봐 이래서 우리가 손 뗀다니까?" 이런 마인드만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이미 뭐 매각하기로 한 거긴 하지만요.
주원혜진님 덕에 우밍아웃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거 같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