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네치아 여행4 - 산마르코 대성당 보고 리도섬 베네치아아 영화제를 생각하다!
천년 세월 베네치아 공화국의 원수가 거주했던 두칼레 궁전 을 세세히 둘러보고는
다시 계단을 내려와 밖으로 나와서는
주랑을 지나 바닷가에 이르러 배들이 늘어선 선착장을 바라본다.
바포레또며 보트 그리고 유람선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다가
다시 광장으로 돌아와 산 마르코 대성당 으로
걸어가노라니 대성당 전면에 "4마리 말 조상" 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대성당은 입장료가 무려 16유로나 하는
두칼레 궁전과는 달리 공짜 인 탓인지 단체 패키지 관광객등 긴 줄이 늘어서 있어
여름철 성수기에는 반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오늘은 다행히 비수기라 10여분을 줄 선 다음에 입장하는 데,
산 마르코 대성당 Basilica di San Marco 은
11세기에 건축을 시작했으며 "성 마르코의 유골" 이 모셔져 있다.
대성당 서쪽 정면에는 네 마리의 “황금 청동말상” 이 있으니....
1,202년 제4차 십자군 당시 십자군의 집결이 늦어지고 숫자도 3분지1에 불과하니!
베네치아는 십자군이 "배 운임을 지불하지 못하는 것" 을 약점으로 잡아 우선 아드리아 해
헝가리 도시 자라 를 점령해주면 예루살렘 가는 "배 삯 지불을 연기" 해 주겠다고 유혹한다.
프랑스 십자군은 베네치아 원수 엔리코 단돌로를 따라 같은 기독교 국가인
헝가리 영향하에 들어간 달마티아의 자라 를 침략하여
도시를 함락하는 데, 이에 교황청이 파문을 내리며 진노하자 이왕 이렇게 됐으니......
예루살렘 탈환을 위한 이집트를 공격하기 전에...
쫃겨난 비잔틴 황태자를 복위 시키기 위해 비잔틴 제국 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을
공격하여 전리품을 나누자고 십자군 지휘부를 꼬드긴다.
배삯인 돈이 떨어진 몽펠라토 후작, 플랑드르 백작, 블루아 백작, 생폴 백작등 십자군의
지도부는 비잔틴 함락후 "그리스 정교를 로마 카톨릭으로 합친다" 는 유혹에 넘어간다.
로마 교황도 가톨릭 도시 자라공격을 이유로 십자군과 베네치아를 파문에 처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자신의 치세에 오랜 염원인 가톨릭으로 기독교 통합 에 눈이 멀었던 것이니!
결국에는 천년을 이어온 기독교 국가 동로마(비잔틴) 제국을 멸망 시키고
십자군들은 예루살렘 수복은 잊어버린채
그리스에 “라틴제국" 을 세워 나라를 차지하여 통치자가 되었으며....
베네치아 는 섬 등 일부 영토와 황금과 동방무역권 을 차지하면서
비잔틴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있던 저 "네마리 황금말" 들을 강탈하여 가져와서는
여기 산 마르코 대성당 전면에 세운 것이라!!!
저 네 마리 청동 말은 13~15세기 1만명의 프랑스 십자군에
수송선 외에도 50척의 갤리선에 6천명의 승무원을 제공한 베네치아의 전성시대 를
웅변으로 증언해 주고 있는 것이니.....
정녕 "왕과 나" 영화 대사처럼 “세계정의란 힘있는 나라의 국가이익” 을 말하는 것일까!
대성당에 입장할 때는 가방은 지참할 수 없고 복장 또한 노출이 심하면 안된다.
산 마르코 대성당의 외양은 동양적인 아치와 둥근지붕이 돋보이며 안으로 들어가면
대성당 벽에는 금색의 모자이크 로 장식하였다.
소정의 입장료를 받는 별도 구역으로 있는 보물관에 들어가면 비잔틴공예가 무척 아름답다.
성당의 제단에는 금판에 보석을 아로새긴 성인 부조상 황금 후광인 파라도르 가 보이는 데
아마도 오스만 터키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금세공 장인들의 솜씨인가 보네?
내부 천정은 구약성서 의 내용을 그림 모자이크로 장식 되어 있고
또 아기자기한 조각상 이 무수히 늘어서고 금색 모자이크 또한 화려하기 그지 없네!
인간사회는 종교 사회라 할지라도, 무언가 눈에 보이는 믿음의 대상 이 필요한 모양이다.
아무리 우상숭배를 금할지라도 말이다!!!
아론의 황금 황소도 그렇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 과 예수님으로는 부족했으리라.....
하여 "마리아 상" 도 필요했던 것일테고!
그리스 로마시대의 신들은 이교의 우상숭배라 하여 배척했으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닥치게 되는 개인이나 가족에 관련된 시시콜콜한 것 까지
하느님과 예수님께 빌기는 좀 무엇하고.....
그래서 마음 편하게 빌수 있는 대상으로 이른바 "수호성인" 이 필요하게 된 것이리라!!!
나라나, 개인 모두에게 필요했을터이니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라 하지 않았던가?
하여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에서 수도원의 무덤을 파서는
천 수백년전에 죽은 성인 마르코의 유골(?) 을 상자속에 넣어 가져왔으니.....
828년에 베네치아 상인 트리부노와 루스티코가 알렉산드리아 수도원에서
성 마르코의 유골 을 운반을 할 때에 이집트 이슬람 교도의 눈을 속이기 위해.....
그들 이집트인들이 끔직이도 싫어하는 "돼지고기(칸칠)" 를 광주리 위에 덮은 다음에...
알렉산드리아를 출항해 베네치아 에 옮겨오니 원수등 시민들이 거국적으로 맞이해....
성유물인 마르코의 시신을 안치하기 위한
성당을 건립했으니.... 바로 우리 눈 앞에 보는 이 “산마르코 대성당” 인 것이다!
당시 피렌체가 일류로 치는 성요한을 모시고 또 로마는 성 베드로를 모신데 비해
베네치아는 성 테오도르 라고 3류 성자의 유골을 모시다가.....
마침내 일류인 복음서 저자의 유골을 모심으로서 일류 도시로 자부심 을 가지게 된 것이다!
도시의 수호신인 성 유물은 12제자와 세례요한 및 4복음서 저자 들의 유골을 1류 로 쳤다!
성마태오는 탄생을 나타내고 성루가는 희생을 나타내는 암소, 성요한은 승천을 의미하는
독수리요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마가)는 부활을 나타내는 사자" 형상인 것이다!
반면에 콘스탄티노플의 그리스 정교는 로마 가톨릭과는 달리 우상숭배를
배척 하면서 성인상과 마리아상이며 조각과 그림들을 교회에서 떼내어 불태운다!
그리하여 기독교는 야만인인 게르만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마리아상 등이 필요하던 로마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로 양분 되었던 것이다!
그리스정교 조차 세월이 흐르니 아쉬웠던 것일까? 후일 이콘화 가 등장하는 것이다!
유대교 같은 뿌리에서 출발하는 이슬람교 는 좀 더 극단적인 우상배척으로.....
사원인 모스크 안에는 아무 상징도 없는 것이니, 우상숭배를 극도로 배척하다 보니
이슬람 모스크에는 오직 메카를 가리키는 방향 표식 뿐이라!!!
르네상스를 포함 9~ 17세기에 베네치아의 조선술은 세계 최고 를 자랑했으니 너비와 길이가
3배인 범선과 8배인 노젓는 갤리선 및 대형 갤리선 갈레아차를 건조했으니.....
1,492년 콜럼부스가 탄 산타마리아호가 100톤 남짓이고 훗날 메이 플라워가 180톤인데 비해
당시 베네치아는 500톤급 로카 포르테급 배를 6척이나 소유한 나라였다!
항해 대국이다 보니 "바다 바람" 에 대해서도 북풍은 트라몬타나(산너머)요, 북동품은 그레코
동풍은 레반트(레바논), 남동은 시로코(시리아), 남서풍은 리베치오요....
서풍은 포넨테(태양이 지는곳), 남풍은 후일 오스트레일리아의 어원이된 아우스트로요,
북서풍은 마에스트랄레(스승인 로마방향) 등 다양하고 재미있게 불렀던 것이다!
예전에 기술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던 아르테 Arte 가 지금은 예술로 쓰이는데
“ 태초에 장사가 있었나니....”
라고 말할법한 베네치아인들은 천상 이코노믹 애니멀 이었어라....
13세기 범선은 라틴 돛을 달다가 삼각돛을 장착해 역풍에도 항해 할수 있었다는데....
노잡이가 100여명이나 필요한 갤리선은 전투선 이자 귀중품 수송위주였다고 하네?
항해를 하다보면 풍랑을 만나거나 목적지에 전염병이 돌거나
전투가 벌어지는등 돌발 상황이 벌어져 항로를 변경해야할 상황에 처한다.
이 때 베네치아는 선장이 전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고 선장과 배 소유자에 화물을 실은
상인 대표 2명등 4명의 합의제로 결정 했다니 민주적인 공화국 백성이었던 것이라?
그러니까 제노바인 은 평소에는 상인이지만 예기치 않은 난관을 만나 손해를 보게 되면
해적으로 돌변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지만 베네치아인은 끝까지 상인 이었던 것이라!
베네치아는 이슬람 오스만 터키 와는 수없이 전쟁과 평화를 되풀이 하여
레판토 해전에서 승리 하기도 하고
패하여 에우보이아, 키프로스와 크레타섬을 뺏기기도 한다.
제노바와는 지중해 상권을 두고 4차례 전쟁 을 벌였는 데 1,204년 제4차 십자군은
비잔틴 제국을 멸하고 라틴제국을 세우면서 베네치아는 콘스탄티노플의 상권을 독점한다.
이후 이스라엘 북단 아코 에서 제노바인들이 베네치아 상관을 습격하니
1,257년에 베네치아는 성전 기사단과 연합해 프랑스의 후원을 받는 제노바를 쫓아낸다!
다음해인 1,258년에 제노바는 몽포르 후작의 후원을 받으며
50척의 갤리선과 4척의 범선 을 동원하니
베네치아는 대소 53척을 출항시켜 아코(아콘, 아크레)에서 승전하여...
아코의 중앙광장에 서 있던 양각 기둥 2개를 여기 산 마르코 광장에 옮겨 왔다던데.....
1,261년에 제노바의 후원으로 라틴제국을 멸하고 비잔틴이 복구되니 제노바가 승세를 탔다!
3년후 제노바는 동방으로 가는 베네치아 상선단을 나포했으며
1,298년에는 쿠르촐라 해전 에서 베네치아가 패하니
저 마르코폴로 도 포로가 되어 제노바 감옥에 갇혀 동방견문록 을 저술했던 것이다!
페스트가 창궐하는 가운데 비잔틴을 두고 3차 해전을 겪은후
1,378년에 베네치아가 다다 넬스 해협의 섬에 요새를 구축하니....
4차전이 일어나 안치오에서 베네치아 함대가 패한다.
다음해에 제노바는 파도바, 헝가리와 연합하여 이 도시 베네치아를 포위 하고
서쪽 육지 와의 경계점인 키오지아를 점령하니 절체절명의 위기라....
포위된 베네치아는 개펄을 장벽 으로 4개월의 농성 끝에 새로 건조된 함대로 수로에 돌을
실은 배를 가라앉혀 제노바와 파도바군을 역포위하여 8개월후에 항복을 받았던 것이다.
패배한 제노바 는 자중지란을 일으켜 네가문이 두패로 갈라져 싸우다가
정권을 차라리 외국인 밀라노 공 에게 맡기게 된다.
이리하여 4대 해운강국은 아말피와 피사가 탈락한데다가 제노바 마저 몰락하니
이제 베네치아 전성시대 가 열렸던 것이라!
그러고는 배낭을 메고 산 마르코 S.Marco 선착장으로 가서는 잠시 고민을 하는 것이....
내가 베네치아를 3번째 왔으면서도 못 간 곳이 있으니 바로 리도섬 이다.
여기 산마르코 선착장에서 바포레또 1번이나 2번을 타고 15분을 가면
나타나는 리도 는 리조트 섬 인 데,
여름에는 해수욕장이 되며 9월초에는 칸, 베를린과 더불어 세계 3대 영화제 가 열린다!
69회 베네치아 영화제에서는 괴짜 김기덕 감독이 조민수를 주연으로 하는
영화 피에타 Pieta 를 만들어
황금사자상 을 수상함으로써 리도는 우리에게 더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김기덕의 영화는 삶의 원초적 폭력성에 대한 탐구와
그것을 관통 해야 하는 인간의 비애를
"여자를 통한 구원" 에 이르는 과정이 날것으로 표현한 것이라!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를 시작으로 이창동 박찬욱 과 더불어 2세대인 이단아 김기덕 은
중학교도 다니지 못한 학력으로 청계천 주변 공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로 건너가 미술가의 길을 걸으면서
“퐁네프의 연인들” 과 ‘양들의 참묵“ 을 보고 영화인의 길에 들어서서는....
”구원“을 화두로 꾸미지 않는 영상미를 추구한 것인가?
"피에타 Pieta" 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 를 안고 있는 모습 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말한다.
내가 피에타를 처음 본 것은 로마 바티칸 성당에서 였는데,
미켈란젤로의 걸작 피에타 상 의 살포시 내리감은 마리아의 눈은
자식 잃은 보통 부모의 아픔과 다를바 없어 보였다.
미켈란젤로는 그리스도의 몸을 작게 표현하면서 옷을 이용하여 마리아의
무릎을 크게 보이게 함으로써 부자연스러움을 조형적으로 없애려고 하였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푸른색이었을 마리아의 옷을 대리석에 의한 형태로만 표현하려 하였으니
구겨진 옷자락의 주름 을 만들어
그리스도를 지키는 하느님의 옷 으로 표현하였다고 하네?
우리가 여행한 것은 5월이고 영화제는 9월이라!
리도섬을 보자고 에스테가의 고도 페라라 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
2번 바포레또를 타고 운하 건너편에 있는 살루테 Salute 선착장에 도착한다.
여기 선착장 옆에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교회 Basilica di Santa Maria della Salute 는
거대한 둥근 지붕을 가진 바로크 건축의 걸작이다.
살루테 교회는 17세기에 페스트가 물러간 것을 기념하여 건축했다고 한다.
틴토레토 와 티치아노의 그림이 장식되어 볼만하다지만 우린 시간이 없으니 외관만 구경한다.
바포레또는 1정거장 산타마리아 델 질리오 에 도착하니
1,536년 코르네르가의 저택으로 건축한 궁전 카 그란데 Ca Grande 가 웅장하다!
아카데미아로 선착장 앞에 아카데미아 미술관 Galleria dell Accademia 도 볼만하다고 했지?
바포레또 배에 탄지 20여분을 좀 지나 드디어 페로비아 Ferrrovia
선착장에 내려서는 베네치아 Venezia Santa Lucia 역으로 들어가 페라라 가는 기차에 오른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
★배낭길잡이★유럽 배낭여행
(http://cafe.daum.net/bpguide)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공부할수 있었습니다~~ㅎ
무슨 .... 그저 줏어들은....... 토막글이네요?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몇번이나 다시 가도 베네치아는 볼거리가 부족하지 않네요?
베네치아를 로마 피렌체 밀라노 나폴리와 묶어서 가면 더 재미있죠 이탈리아여행갈때 꼭 갈것입니다
그렇지요? 대개 처음 이탈리아로 여행갈때는....
대개는 저 다섯 도시 정도를 보게 되지요!
그 지역의 역사에 대해 잘 설명해주셔서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