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농민들에게 고추농사는
그 해의 운명이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얼음도 채 녹지 않은 겨울이 끝나기도 전에
맹랑한 고추씨들은 이미 농민들 안방에
버젓이 자리잡고 누워 최고의 대접을 요구한다.
하긴 노인들에게 그 어려운 농약이름들을 영어로 배우게 하는
고마운 선생님이고보니 농가에서 대접받을만 하기도 하다.
고추 없이 못사는 나라에서 태어난 죄로 농민들은 일년 내내
밭에서 엎드려 고추를 상전 모시듯 하며 혹시라도 병이오면
온갖 농약으로 지극정성 간호해대고 혹시 풀이라도 올라와 놀랠까봐
제초제 듬뿍 뿌리고 영양실조 걸릴까봐 온갖 비료로 몸보신 시키다
그것도 모자라 남은 고추 벌개지라고 그 독한 착색제까지 아끼지 않고 바쳐 올리니
눈물겹기만 하다. 그래도 온갖 병을 이기지 못하거나 중국산 고추에 밀려
제 값을 받지 못하니 고생만 실컷하고 슬프디 슬픈 농사가 된다.
아직도 편히 쉬어야 될 한겨울임에도
그놈의 고추씨를 고르는 일에서부터 농민의 시름이 시작된다.
올해 유행되는 고추 품종은 암행어사인듯 하다.
우리마을 고추박사 형님도 암행어사로 결정했고
농약방에서도 암행어사 고추 샘플까지 만들어 놓고 제일 열심히 권한다.
언제나 실험정신이 투철한 농민들이고 보니 농약방에 수업료 내고
해마다 빚지면서도 악착같이 신품종에 대한 기대를 굽히지 않고
올해는 암행어사를 너도나도 모시게 되었다.
물론 개인마다 지역마다 메뉴도 다양한 여러 고추 품종들을
모시기 바쁜건 알지만 이제는 공공연히 뉴스에서 작년 고추씨 품종들을
껍데기 포장만 바꾸어 신품종으로 탈바꿈한다는 얘기는 왜 궁시렁 대는 걸까 ?
눈썹하나 까딱 안하는 뻔뻔한 이들의 간땡이만 키워줄 뿐이고 그나마 시름에 겨운
농민들의 한숨만 가엽게 부추기는 꼴이다.
일년 고추농사 한번 시작하고 잘 끝내려면 얼마나 많이 농약방을 들락거리며
농약방 주인과 열심히 공부를 하며 많은 의논을 해야하는지
그 긴밀하고 철저한 협조 관계에 경이를 표할 뿐이다.
그러면서 뒷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걱정은 왜 하는 것일까 ?
일일이 설명이 필요없이 조금만 농사에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밭에서 그 잘난 고추를 주렁주렁 매달기 위해
얼마나 과학적(?) 으로 많은 걸 요구하는지 잘 알것이다.
자 ! 농약방에서 가장 싫어하는 풀천지의 고추농사를 살펴보기로 하자
귀농해서 토종씨앗만으로 농사짓기 위해 무던히도 애썻지만
우리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보니 일년에 한 두번 농약방에 가는일이
고추씨앗 사러가는 일이다.
정부의 시책과 농업기술센타 기술력과 농약방주인의 엄청난 지식들을
전혀 믿고싶지 않는 우리로써는 몇년동안 고추씨를 자가체종도 실험해 보았고
한 해는 가장 싼 씨앗들로만 실험도 해보았고 또 한 해는 큰맘먹고
농약방 주인의 권유대로 가장 비싼것도 실험해 보았다.
결론은 남들이 내리지 않는 결론을 건방지게 나혼자 내려서는 안되겠지만
내리고 싶어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짐작은 할뿐이다...^^
어쨋든 공교롭게도 올해는 우연히 짬뽕하게된 결과가 되었다.
먼저 까페의 인연으로 고마우신 분께서 자가채종한 좋은 고추종자를 보내주셨다.
올해 따로 잘 실험해볼 작정이다.
고추씨앗을 사러 농약방으로 들어갔더니 얼른 커피를 대접한다.
물어보지도 않고 제일싼 고추품종인 태양품종을 달라고 하니
끝고추가 잘 달리지 않아 농민들이 기피하기 때문에 인기가 없어서
값이 싼거라며 절대 사지말라는 걸 부득불 우겨 7,000 원에 1,200립 한봉을샀다.
농약방 주인의 얼굴이 변하며 걱정어린 얼굴로 다시 암행어사를 권한다.
나는 다시 두말없이 영양 맛 고추 2봉을 14,000 원씩에 구입했다.
작년에 영양 맛 고추와 가장 좋다는 고은을 함께 해 보았는데
가장 좋다는 고은이 가장 형편없었다. 참 곱게 사그라드는 고은이 되었다.
내가 농사를 잘 못지어서 그러는 것이니 거기에 맞출수 밖에 없다.
땡초라 불리는 청양고추도 1,200 립 한봉에 13,000 원 주고 사고보니
올해 고추씨앗 구입 비용 48,000 원이 풀천지 한해 고추농사 총 비용이 되었다.
농약 한방울 안쓰고 비료 한톨 안쓰는 재미만으로 부족해 기계도 거의 안쓰고 버티다 보니
종종 주위 사람들의 홧병을 유발하는게 큰흠이지만 그 또한 즐거움으로 생각하며
당연히 돈 한푼들이지 않고 풀천지 에서 특별히 마련한 최상급 퇴비의 힘만으로
완벽하게 살아난 견강한 땅에서 해마다 고추는 병없이 마음껏 자라주었다.
참 고추줄을 쳐줘야 되니 어쩔수 없이 또 줄값을 감수해야 된다.
아깝지만 몇만원 더 쓰기로 한다...^^
해마다 이정도 규모인데 작년엔 잘안되어 350 근 정도 수확하여
우리먹을 것도 부족하게 너무 맛있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인기리에 몇십근 제하고
전량을 고춧가루로 팔고보니 550 만원정도 고추에서 수익을 올리게 되었다.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비닐하우스의 비용을 계산 안한다면 (하긴 100 평짜리 한동을
제작년에 정부지원 받고 지어놓았으니 구태여 계산할 필요없고 나머지는 그냥
노지에서 키웠으니 작년 고추농사 비용으로 구태여 계산 안해도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이중 넉넉 잡아도 20 만원이상 들어가진 않았으니 순수익 530만원이 된다.
주위의 고추농사 하시는 분하고 비교해보니 작년고추값이 3,700 원 대였으니
우리처럼 500 만원 남짓에 순수익을 남기려면 몇근을 생산해야 할까?
천 근이면 삼백 칠십 만원 이 천근이면 칠백 사십만원이 된다.
이 천근을 잡았을 때 계산하기 너무 어렵지만 생각나는 대로 말해보면
맨 먼저 거름사고 비료 뿌리고 아 참 토양 살충제 뿌리고
트랙터로 로터리 치고 (트랙터 비용이 기름값따라 동반 상승했다.)
사람 사서 골 치고 비니루 깔고 고추 심고... 참 고추모종 기를때 상토흙도 사다가 한다.
그리고 나선 농약방 주인과 긴밀한 상의 를 계속하며 비료뿌리고
열 몇번인가 비싼 농약을 아낌없이 뿌려댄다.
다시 말리기 위해 가을내 딴 고추들을 비싼 기름값 걱정하며 벌크라는 이름의
건조기에 말리게 된다... 참 벌겋게 만드는 그 독한 착색제 값이 빠졌다.
농약방 주인의 전자 계산기 만으로 가능한 이 복잡한 계산을 농민들은
해마다 쌓여가는 빚이라는 계산서를 돌려 받으며 어리둥절해 할뿐이다.
우리가 생각해 봐도 누굴위해 농사를 짓는 것인지 기가 막힐 뿐이다.
고추농사를 양을 늘리기 위해 (어떡해서든 돈을 만들기위해) 규모를 키우고
잘 지을려고만 노력하다 보면 농약과 비료로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고추들의
온갖 비위를 맞추어 주어야 되니 농민들의 허리와 주름은 펴질새가 없다.
양이 적어도 땅을 잘 살려 놓으면 우리가 필요한 만큼의 건강한 고추를
충분히 얻을수 있으니 좋은 고추를 만들어 귀한 대접을 받기로 하자.
요즘 머리좋은 이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효율적인 방법과 편리성을 추구하다보니
햇볕에 말리고 비오는 날이면 온돌방에서 많은나무를 사용하여 이리저리 손이 많이가는
태양초 보다 벌크라는 이름의 건조기를 더 합리화 시키기도 한다.
어쩌면 그 방법이 여러모로 더 좋을수 있겠지만 한사코 기계와 석유에 의존하다 보면
환경공해도 문제지만 우리의 건강한 삶은 점점 멀어져만 갈 것이다.
글을 적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과연 고추농사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수없는 일이 되었다.
소비자 입장에서 고추농사 전과정을 살펴보면 과연 1 년동안 온갖 먹거리에 시뻘겋게 쳐대며
마음놓고 즐길 수 있겠는가 ? 농민 입장에서 보면 온갖 농약 마시고 적시며 뼈빠지게
고생하여 농약방에 갖다 바치고 한숨만 쉬게 되니 하는 말이다.
또 농약방 입장에서 보면 몇푼의 돈을 벌지 모르지만 평생을 온 땅에다 독하디 독한
독약들을 뿌려대도록 불쌍한 농민손에 쥐어주는 댓가로 목줄을 메고 있으니 그 인생 또한
참으로 안되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부자보다 가난이 더 좋은 것 같다.
농사를 짓더라도 1년에 한두번 농약방에 가는걸로 농사를 전환할 수 있다면
그걸 가능하게 하려면 아무래도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하여
끝없는 돈을 요구하는 농약방 주인과 깊이 사귀는 일이 없어야 될것이다.
요즈음 농촌에서 생존이 가능한가 ? 하는 질문들로 귀농의 발걸음이
온갖 방법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이기만 한다.
이렇게 고추농사 한가지만 보아도 모든 방법을 하지 않는 것만이
고추농사에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듯이
어렵게만 생각하는 귀농도 모든걸 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내가 가진것이 없게 되고
그리하여 아무런 두려움 없이
온갖 어려움을 이기며
다시 어느것도 부럽지 않은 진정한 부자가 될 수 있다.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를 들을수 있으며
대지의 숨결을 쓰다듬을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며
천국의 열쇠를 가지는 농부가 될수있다...
첫댓글 풀천지님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모두들 농약많이써서 좋은 품질 만들어 소득을 올리기에 급급하고 우리 농촌의 현실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풀천지님의 모든 욕심을 버리고 순수한 자연 그대로를 받아 들이고 계시는군요. 존경스럽습니다. 올해도 고추농사 잘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를 드리며 언젠가 만나 뵙는 날 즐거이 얘기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풀천지의 사랑과 땀으로 얻어지는 고추가 먹는이들에게 건강을 찾아 주리라 믿습니다...아직 눈도 덜 녹은것 같은데 고추농사가 시작되었군요.금년에도 풀천지의 사랑이 온누리에 퍼지길 기대 합니다.
저희는 고추 씨앗을 하우스에 직파 하는데 오늘 하려다 내일 모레 강추위가 온다 하여 미뤄두었습니다. 늦긴 하여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서 입니다.
변치마소서 농약방과타협하지도마시고 봉화마을에풀천지가있다는것만생각해도 지구가지켜지는듯한 믿음을주셨으니 이믿음을 못버리게해주실거지요
풀천지 + 풀천지 구경 = 풀천지 세상 ~~ ^^ 명심 명심 또 명심 하겠습니다...^^
형님의 고추농사는 한 길 그 자체입니다. 저도 풀천지 농사법을 따라하려 했는데 많이 부족한 모양입니다. 나름대로 우리만의 농사법을 세워나갑니다. 가능한 자연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해 봅니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해 가면서.... 올해도 같이 호미춤을 추어 보지요. ^ ^
올해 두메네의 멋들어진 호미춤을 기대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