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독도방문기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달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동해수 구비감아 금수 내 조국. 동해바다 맑은물 어기여차 어여차.
포항에서 쾌속선을 타고 국민학교동창생 14명이 4월14일부터 16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출발했다.
믿음직한회장님 은자 알뜰총무 철수 대장질하는봉식이 진호 종만이와 살림꾼 순덕이 맏언니 옥자 귀요미 성순이 입담좋은 옥심이 이쁜 다순이 천사같은 상실이 요조숙녀 옥수 부잣집마님 점순이 그리고 사정상 같이하지 못한 성철이 원섭이 정옥이 점수와 마음으로 동행하는 여행길이다. 대한해협에서부터 우리나라 부산 경북 강원 함경남북도 동해안에 연해있는 바다는 울릉도와 독도를 중심으로 넓고 깊은 바다다. 애국가 첫머리에 나오고 많은 노랫말에도 나오는 혼이 서려있는 바다다.
1977년 여름에 가려고 출발했다 풍랑이 심해 돌아왔던 포항에서 다시 출발했다.
안전하고 빠르게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는 듯한 느낌으로 간다.
비가 온다고 했지만 아직은 흐릿한 하늘이고 잔잔한 바다다.
지난밤에 손자 민준이가 다른 방에서 자다가 내 옆에 누워 이유없이 흐느끼며 운다. 껴안아 주어도 소용없다.옆에 있는 동생 깰까 봐 꼭 껴안고 울지 말라 해도 그치지 않는다.
아빠가 와서 무슨 일 있냐고 묻는다.
내가 내일 여행 간다는 것을 알고 가면 안 올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어지기 싫어서 그렇게 실컷 울었다고 한다.
겨우 달래니 이제 종아리 주물러 달라고 한다.
팔 다리부터 안마해 주고 조용히 문 열고 옆방으로 나가도 일어나지 않는다. 살짝 챙겨 차 몰고 전주종합경기장 옆에서 4시에 일행들과 버스로 달려 동해바다 위를 미끄러져 가는 것이다.
신라장군 이사부가 생각나고 독도의용수비대가 생각나고 1904년 러일전쟁때 일본함대에 쫒기다 침몰한 보물선 돈수코이호가 생각난다.
도착한 섬은 사진으로만 보았던 모습 그대로다.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눈 비가 많은 해양성 기후다.
오징어 명태가 많았지만 이젠 지난 얘기다. 처음 만난 울릉도는 화산섬으로 이국적인 느낌이다. 아직은 도로나 편의시설은 부족하나 계속 들어오는 육지 손님들로 매일매일 시장속이며 차선도 없는 굽은 도로를 오르락내리락하며 곡예운전하는 버스들이 신기했다. 지금은 오징어도 금어기고 잡히지도 않아 예전의 모습은 없고 대신 산나물과 관광객 상대로 호황을 이루는데 물가가 너무 비싸다. 국민학교동창들과 부대끼며 보낸 덕에 부족하고 불편함을 모르고 즐겁게 보냈다고 생각된다. 독도새우도 맛 보았다. 그러나 숙박시설이나 식당 등이 부족하여 서비스 상태는 그리 기대하지 말고 그저 독도를 가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한번쯤 가고싶은 곳이다.
독도는 87km정도 떨어진 국토의 동쪽끝에 있다. 1시간반정도 달려 도착했다. 날씨에 따라 오늘도 접안 시도는 해보겠다는 선장님의 방송에 희비가 왔다갔다 했다. 결국 접안에 성공하여 4백여명은 박수와 탄성을 지르며 독도에 발을 내리는 순간 모두가 애국자 되고 감개무량하며 인증샷 남기며 하나라도 더 추억쌓으려 휘날리는 태극기 흔들어댄다.
지키고 있는 경찰과 많은 갈매기들이 환영해주는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다.1년에 80일 정도밖에 내리지 못한다는 말도 듣고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울릉도로 돌아와 일정대로 곳곳을 버스타고 둘러보았다.
바다위로 활주로를 조립식으로 만들고 있는 공항도 보인다. 몇년후면 많은 국민들이 찾아오겠다. 무엇보다 유사시 전투기의 배치로 독도를 탐내는 일본과 주변국들에게 든든한 안보시설 역할도 기대해 본다. 돌아오는 뱃길은 파고가 높아 뱃전을 때리는 소리에 긴장도 했지만 시속 40노트의 빠른속도는 아랑곳 하지않고 씽씽 날라가듯이 달려 포항에 도착했다. 저녁먹고 버스로 전주에 도착하여 헤어지고 다시 대전까지 내차를 타고 자정무렵에야 도착했다.
친구들 좋은 꿈 꾸며 편히 발뻗고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