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찾아서 - 10. 목청 좋은 그들과 페이버의 질투
민서우
- 10.
“꺄아아아악!”
젠의 소개에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한층 더 위로 올라갔고, 덕분에 남학생들은 다시금 귀로 손을 막았다. 여학생들 틈에 끼어 전혀 꿀리지 않을 만큼의 높은 음으로 소리를 질러대는 윌을 보는 일행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
하여간 목청들은 다들 너무 좋아요. 특히 윌 너.
또 다시 과자 하나를 집어서 윌의 입 안에 쏘옥 집어넣어버리는 페이버. 5분도 안 돼서 두 번째 과자를 먹은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학교에서 이런 것만 배웠나?
“야 인마, 윌! 너 때문에 더 시끄러.”
확, 그냥. 한 대 때릴 기세의 페이버다. 그런 페이버를 바라보던 크레아는 씩 웃으며, 다시 고양이 루비를 예쁜 듯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페이버, 어쩌면 내 맘이 바뀔 지도 몰라.”
파직. 크레아의 말은 페이버의 가슴에 불꽃을 피워 올리기 충분했다. 그 불꽃의 이름은 질투. 페이버는 탐탁지 않은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린다.
“이런 동물한테 뺏길 줄은 몰랐는데?”
옆으로 나란히 앉은 덕에 그 말을 모두 들은 크레아는 페이버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어! 지금 질투하는 거지, 페이버? 그건 날 좋아한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나?”
“…흥.”
얼굴을 살짝 붉히며 콧방귀를 끼는 페이버. 아까부터 쭈욱 두 사람을 보고 있던 윌과 하나 일행. 하나가 먼저 물었다.
“후훗. 오빠, 드디어 크레아 언니하고 사귀는 거야?”
“그런 거 아냐.”
사촌 동생의 말에 딱 잘라서 대답하는 페이버. 그의 태도에 크레아는 약간의 섭섭함을 느꼈다. 데이트는 선뜻 한다고 하면서 사귀는 게 아니라면 정확한 그의 속마음은 대체 뭘까. 크레아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꾹 쥐었다.
나중에 둘만 되면 꼭 물어봐야겠다.
젠의 용무가 끝나고 난 뒤의 오후. 보헤즈하이스쿨 남자기숙사 101호실.
“아아악! 아퍼, 좀 살살해!”
“누가 무리하래?”
꾹 닫힌 문 너머로 제법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에 그렇게 교성을 질러놓고도 어쩜 그리도 팔팔한지. 이 목청의 주인은 당연히 윌이다. 윌의 등 위에 올라타 있던 리유는 다시금 손에 힘을 주며 살짝 한숨을 내쉰다.
“어휴, 얼마나 뭉쳤으면.”
“아악! 아퍼, 아퍼!”
꾸욱, 꾸우욱. 날개 뼈를 제외한 어깨와 목 부근을 특히 힘주는 리유 덕에 윌의 목청은 도저히 쉬지를 못 하고 있다. 윌은 그 강한 통증에 밀려 리유의 매운 손맛은 아예 못 느끼고 있었다.
“아프다고, 정마아아알!”
“좀만 참아봐.”
“아아악!”
꾸욱. 꾸우욱. 그의 손길이 어깨와 등, 팔뚝을 지날 때마다 윌은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른다. 한참 후 적당히 했다 싶은 리유는 다리를 펴서 바닥에 내려서며, 자신의 어깨를 주먹으로 두드리고서 말했다.
“넌 적당이라는 걸 모르냐?”
“아, 아하하하하하! 테니스라는 거 처음 하다 보니 완전 재미 들려서 말이지. 근데 페이버 형도 정말 대단했어. 무술 외에 운동도 좀 하는 걸 보면 굉장해. 몸으로 하는 건 못 하는 게 없다더라.”
“나도 들었어.”
윌의 말에 리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한다.
커피 가게를 나온 게 9시 30분이고 그 때부터 장장 4시간을 쳤다. 중간 중간 쉴 틈 없이 했으니 어찌 보면 심각한 정도. 윌의 어깨가 탈골 직전까지 갔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5, 6시간을 쭉 쳤을 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의 침대 이불 위에 널브러진 상의를 하나 둘 입기 시작하는 윌을 보며 리유가 다시 물었다.
“병원 안 가도 되겠어?”
“아까 형이 다 치료해줬잖아! 그럼 된 거 아냐?”
“그 형은 의사가 아니잖아. 양호실이라도 다녀와.”
리유의 말투와 얼굴에 ‘강압’ 이 눌러앉아 있는 걸 본 윌은 입술을 삐죽인 뒤 방을 나섰다.
“다녀오면 될 거 아냐, 다녀오면.”
쳇. 난 괜찮은데 왜 저 난리인가 몰라. 어깨가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이는 것으로 봐서는 괜찮은 것 같기도 한데? 모르겠다. 예방 차원에서 가봐야겠어.
양호실에 갔더니 담당 의사는 의외의 말을 내뱉었다.
“안마를 누가 했는지는 몰라도 상당히 잘 받았네. 오른쪽 날개 뼈 부근이 조금 부어있어. 파스 하나 붙여줄 테니까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와. 잊지 말고. 이틀은 파스를 붙이고 있어야 할 테니. 뭐 했는데 오른 팔 근육이 잔뜩 뭉쳐 있어?”
“아. 테니스요. 한 4시간 했을 걸요?”
윌의 대답에 의사는 곧장 물었다.
“어깨 안 빠졌니?”
“빠지기 직전까지 갔다고 들었어요. 같이 테니스를 친 형이 무술과 운동에 일가견이 있거든요. 어깨를 치료해지기는 했는데 그걸 로는 성에 안 찼나 봐요. 같은 방의 리유가 안마를 잔뜩 해줬어요. 어찌나 아프던지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요. 근데 그 녀석, 안마해준 걸로는 부족한지 양호실까지 갔다 오래요. 아야! 아퍼요! 선생님까지 왜 그러세요~”
윌의 오른쪽 날개 뼈에 파스를 붙인 의사는 손바닥으로 찰싹, 한 대 때려줬다. 덕분에 말 잘 하던 윌은 끝에 가서 다시금 비명을 질러야 했다. 의사는 윌의 옷을 아래로 내려주며 빙긋 웃었다.
“잘 왔어. 부은 데는 냉찜질이나 파스가 최고야. 기숙사에서는 구할 수 없는 거지. 밤에 잘 때는 배를 바닥에 대고 자도록 해. 요 며칠 무리하지 말고. 체육도 팔 쓰는 건 하면 안 된다.”
“예. 주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음, 몸조심해라.”
연신 허리 90도로 숙여가며 인사한 윌은 얼른 양호실을 나와서 기숙사로 향했다.
한편.
음료수점에서 음료수 두 잔 놓고 마주보고 앉은 페이버와 크레아. 크레아는 깍지 낀 손으로 턱을 받히며 말했다.
“완전 몸으로 하는 건 다 잘 하잖아! 나 오늘 감탄했어. 다친 데는 없는 거죠?”
“난 괜찮은데 이름이 윌이었나? 그 녀석 어깨 나갈 뻔 했는걸 겨우 막았어. 괜찮은가 몰라.”
페이버가 대답 직후 음료수를 쪼르륵 마시자 크레아는 볼에 바람을 살짝 넣으며 다시 말했다.
“자기 몸 걱정은 안 하고 왜 다른 사람 몸 걱정을 해?”
“그 녀석이 나보다 어리니까 당연하지! 난 이제 다 컸으니까 괜찮지만 그 녀석은 아직 성장기 아닌가? 그러니까 더 걱정인 거야.”
쪼르륵. 크레아는 페이버 따라하는 듯 말 끝내고 음료를 마셨다. 그 모습에 페이버는 작게 웃었고 크레아 역시 싱긋 웃었다. 그녀의 미소를 본 그는 살짝 헛기침을 하고서 물었다.
“나 정말 동물보다 못 한 거야? 그건 아니지?”
이 쯤 되면 두 말 할 것 없이 질투다. 하지만 크레아는 망설이지 않고 혀를 살짝 내밀며 받아친다.
“글쎄!”
“나 토라진다?”
페이버가 볼 안에 바람을 넣자 크레아는 쿡쿡 웃었다. 그의 그런 모습이 새삼 귀엽게 느껴졌다.
“아, 참. 나 물어볼 거 있었는데.”
“뭔데?”
“페이버. 너, 나 좋아해서 데이트 해주는 거야? 그럼 왜 연애는 아니라고 말해? 애들이 듣는 앞에서 그런 말 쉽게 하는 너한테 나 서운한 감정 느꼈어. 제대로 말해줘.”
그녀의 질문에 페이버는 음료를 쪼르륵 마신 뒤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내가 너에 대해서, 네가 나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는 단계 아냐? 한 번 두 번 만나다보면 좋아할 수도 있고, 사랑할 수도 있고, 또 그러다가 마음 안 맞으면 헤어질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까. 아직 완전하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냐. 난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거든.”
크레아는 은근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만약 사랑하게 된다면 자신이 그에게 있어서 첫사랑이 되는 거니까.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에는 노트북을 올려서 프로그램 짜느라 바쁜 그. 그러다가 열중한 나머지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도 못 듣고 노트북을 못 내린다.
“젠.”
“응?”
옆자리의 친구가 살짝 부르자 젠은 그를 본 후 다시 앞을 보고 선생님을 향해 씨익 웃었다. 어느 정도 수업을 따라가는 그다. 막힐 게 없다. 교단에 서서 한참 동안 젠을 바라보던 선생님은 그가 씨익 웃자 오히려 당황했다.
“히~”
“어흠. 급장, 인사.”
선생님은 늘 인사를 하던 급장 자리를 바라봤다. 하지만 자리는 텅 비었다. 친척에게 일이 생겨 가족끼리 다 같이 간 터라 급장이 오늘 학교를 못 나왔다. 학생들의 시선은 젠에게로 향했다. 급장이 없으니 수업 전후의 인사는 전적으로 부급장의 몫이다.
그런데…….
인사도 잊고 프로그램 짜느라 바쁜 젠을 다시 바라보는 선생님이었다.
“어이, 젠 군? 프로그램 만드는 건 별 말 안 할 테니까 인사는 좀 하지?”
앗! 맞다! 인사는 해야지.
젠은 뒤늦게 벌떡 일어나 “차렷! 경례!” 를 외쳤고, 인사를 받으면서도 선생님은 입가에 맺히는 고소를 지울 수가 없었다. 엎드려 절 받는 격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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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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