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고도로 진화된 문명과 고도로 진화된 존재들에 대해 더 이야기해 주십시오. 그들이
어떤 이유로도 서로를 죽이지 않는다는 사실말고 다른 어떤 점이 그들을 우리와 구
별해줍니까?
그들은 공유한다.
우리도 공유해요!
아니다, 그들은 '모든 걸 모두와' 공유한다. 어떤 한 존재도 없이 지내지 않
는다. 그들은 자신들 세상과 환경의 천연자원 모두를 똑같이 나누어서 모두에
게 똑같이 분배한다.
어떤 국가, 어떤 집단, 어떤 문화도 자원이 발견된 그 자리를 어쩌다 보니 차
지하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자기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종들의 집단이 '고향'이라 부르는 행성(혹은 행성들)은 모두에게, 그 체계 속
의 모든 종들에게 속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사실 행성이나 행성 집단 자체가
하나의 '체계'로 이해된다. 그것은 그 체계 '자체에' 해를 입히지 않고서도,
그중 하나를 배제하거나 학살하거나 근절할 수 있는 작은 부분이나 요소들의
묶음으로서가 아니라, 유기 체계(a Whole system)로 간주된다.
우리 표현으로 하면 '생태계'군요.
음, 그보다 더 큰 것이다. 그것은 그 행성의 천연자원과 행성 거주자간의 관
계를 뜻하는 그냥 생태학이 아니다. 그것은 '거주자들이' 자신과, 자신들 상
호간과, 환경에 대해 갖는 관계이기도 하다.
그것은 '생명 있는 모든 종들의 상호관계'다.
'종체계(speciesystem)'요!
맞다!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든다. 잘 맞는 단어다!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생태계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그건 정말로 '종체계'다. 너희 버크민스
터 풀러가 '인지권(인간 활동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바꿀 수 있는 생활권 -
옮긴이)'이라 불렀던 것.
전 종체계 쪽이 더 마음에 듭니다. 더 이해하기 쉽거든요. 전 인지권이란 게 대관
절 뭘 말하는지 항상 아리송했거든요.
'벅키'도 네 말을 마음에 들어한다. 그는 집착하지 않는다. 그는 사태를 더
단순하고 쉽게 만드는 것이면 뭐든지 항상 마음에 들어했다.
당신은 지금 버크민스터 풀러와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이 대화를 교령회(交靈會)
모임으로 바꾸신 겁니까?
나로서는 자신을 버크민스터 풀러와 동일시했던 그 본체(essence)가 네 새 단
어에 기뻐한다는 걸 알려줄 이유가 있었다고만 해두자.
우와, 굉장하군요. 제 말은 정말 끝내준다는 겁니다. 그걸 그냥 알 수 있다니 말입
니다.
그렇다, 그건 '끝내준다'.
그러니까 고도로 진화된 문화들에서는 이 '종체계'가 중요한 거군요.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별 존재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정반대
다. 개별 존재들이 중요하다는 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종체계에 미치는 영
향을 맨 먼저 고려한다는 데서 이미 드러난다.
그 문화들은 모든 생명, '모든 존재'를 최상의 수준에서 부양해주는 게 '종체
계'임을 이해한다. 따라서 종체계를 해롭게 할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은 '개
별 존재들 하나하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지위나 영향력이나 돈 있는 개별 존재들만이 아니라, 권세나 수완을 가진 개
별 존재들, 혹은 더 큰 자기 인식을 가졌다고 추정되는 개별 존재들만이 아니
라, 그 체계 안의 '모든' 존재, 모든 종들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가능합니까? 우리 행성에서는 일부 종들이
필요와 요구에 다른 종들의 필요와 요구가 종속되지 '않을 수' 없는데 말입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가 아는 대로의 삶을 체험할 수 없었을 겁니다.
너희는 위태롭게도 "지금 너희가 아는 대로의 삶을" 체험하지 '못할' 때를 향
해가고 있다. 너희가 대다수 종들의 필요를 오직 한 종의 바램에 종속시키길
고집해왔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인간종요.
그렇다. 그것도 그 종의 구성원 모두가 아니라 오직 소수만의 바램에. 그것도
최대수가 (그랬더라면 그나마 조금은 사리에 맞는다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니라 극소수의 바램에.
최고 부자와 최고 권력자들 말이군요.
너희는 그들을 그렇게 불러왔다.
여기서 또 시작하시겠군요. 부자와 출세가들을 비난하는 또 한번의 장광설을요.
천만에. 너희 문명은 장광설을 들을 자격이 없다. 그건 어린애들을 방안 가득
모아놓고 장광설을 늘어놓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인간 존재들은 자신
들이 하는 일이 더 이상 자신들에게 가장 이롭지 않다는 걸 깨달을 때까지,
지금 하는 일을 --자신에게도, 서로에게도-- 계속해나갈 것이다. 아무리 많은
장광설로도 이런 상황을 바꿀 순 없다.
장광설로 상황을 바꿀 수 있었다면, 너희 종교는 이미 오래 전에 훨씬 더 유
능해졌을 것이다.
우와! 팡! 퍽! 오늘은 모두를 상대로 항복을 받아내시는군요.
나는 전혀 그런 식으로 하고 있지 않다. 이런 간단한 관찰들이 너희를 뜨끔하
게 하느냐? 그렇다면 왜 그런지 살펴봐라. 이 정도야 너희도 나도 다 알고 있
다. 진리는 불편한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진리를 가져오기 위해서
왔다. 내가 영감을 준 다른 책들과 영화들과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이 그러하듯이.
그렇다고 사람들더러 텔레비전을 보라고 부추기고 싶지는 않은데요.
좋든 나쁘든 이제 텔레비전은 너희 사회의 모닥불이다. 너희가 가고 싶지 않
다고 말하는 쪽으로 너희를 데려가는 건 '매체'가 아니다. 그렇게 하는 건 너
희가 거기에 실은 메시지다. 매체를 거부하지 마라. 언젠가 다른 메시지를 보
내기 위해 너 자신이 그것을 사용할 수도 있으니......
괜찮으시면 다시 돌아갔으면 하는데요...... 제가 여기서 했던 본래의 질문으로 되
돌아가도 될까요? 전 아직도 어떻게 해서 '종체계'가 그 체계 안의 모든 종의 필요
를 똑같이 다루면서도 잘 굴러갈 수 있는지 알고 싶거든요.
필요들은 완전히 똑같이 다뤄지지만, 그렇다고 필요 자체가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다. 그것은 비율의 문제고, 균형의 문제다.
우리가 여기서 '종체계'라 부르기로 했던 것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들
에게는, 그 체계를 창조하고 지탱하는 물질형상들로 살아남으려 할 때, 반드
시 충족되어야 하는 필요들이 있다. 고도로 진화된 존재들은 이 점을 깊이 이
해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그 체계 자체에 요구하는 이 필요들이 모두 똑같
지는 않다는 점도 이해한다.
너희 '종체계'를 예로 들어보자.
그러죠......
너희가 '나무'와 '사람'이라 부르는 두 생물종을 예로 들면......
듣고 있습니다.
나무가 사람과 똑같은 일상 '건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건 명백하다. 따
라서 그 둘의 필요도 같지 않다. 하지만 그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다시
말해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다. 너희는 나무의 필요에도 인간의 필요와
똑같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나무의 필요 자체는 인간의 그것만큼 크지
않다. 그렇다고 너희가 살아 있는 다른 종의 필요를 무시한다면, 그건 되려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앞서 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언급했던 책, [태고적 햇볕의 마지막 시간들]에
서는 다음과 같은 식으로 이런 상황을 분명하게 설명한다. 나무는 공기 중에
서 이산화탄소를 취해서, 이 대기가스의 탄소 부분을 '탄수화물을 만드는 데'
다시 말해 '자라는 데' 이용한다.
(뿌리와 줄기, 잎, 나아가 나무가 맺는 열매와 과일들까지 포함해서, 식물은
거의 대부분이 탄수화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사이에 나무는 이 가스의 산소 부분을 방출한다. 그것은 나무의 '분비물'
이다.
반면에 인간 존재가 살아기기 위해서는 산소가 필요하다. 너희 대기 속에 충
분히 있는 이산화탄소를 충분치 '못한' 산소로 바꾸는 나무가 없다면, 너희는
종으로서 생존할 수 없다.
그 대신 너희는 '나무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이산화탄소를 방출한다(호흡으
로 내놓는다).
너는 그 균형을 볼 수 있겠느냐?
물론이죠. 정말 정교하군요.
고맙다. 그렇다면 이제 그 균형을 무너뜨리는 짓을 그만둬라.
하지만 우리는 나무 한 그루를 자를 때마다 나무 두 그루씩을 새로 심었습니다.
그렇겠지, 그리고 그 나무들이 너희가 베어내는 그 고목들만큼 많은 산소를
배출할 정도의 강도와 덩치로 자라는 데는 겨우 300년밖에 안 걸릴 테고.
너희 행성의 대기를 균형 잡는 능력에서, 아마존 열대우림이라 부르는 산소
제조 공장을 재건하는 데는 기껏해야 2~3,000년이면 충분할 테고. 그러니 걱
정할 것 없다. 너희가 해마다 몇천 에이커씩을 개간하더라도 걱정할 것 없다.
왜죠? 우리는 왜 그렇게 하는 거죠?
땅을 개간해야 도살해서 먹을 양을 기를 수 있고, 양을 키우면 열대우림 국가
들의 토착민들에게 더 많은 수입을 보장해줄 수 있다는 게 너희 주장이다. 따
라서 너희는 이 모든 게 토지를 '생산적으로' 만들어준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고도로 진화된 문명들에서는 '종체계'를 침해하는 걸 '파괴적인' 것으
로 보지, '생산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래서 고진재들은 종체계의 전체 필
요들을 균형 잡을 방법을 발견했다. 그들이 그 체계 중 작은 일부분의 바램에
만 봉사하지 않고 이렇게 하는 쪽을 선택한 건, '그 자체 자체가 무너진다면
체계 안의 어떤 종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젠장, 그건 너무나 명백한 사실 같군요. 고통스러울 만큼 명백한 사실 말입니다.
앞으로 지구는 그 사실의 '명백함' 때문에 훨씬 더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 이
른바 지구의 지배종이 깨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말씀을 접수할게요. 대폭 접수할게요. 그래서 저도 그 점에서 뭔가 했으면 합니
다. 하지만 제 자신이 너무 무력한 것 같습니다. 저 자신이 무척 무력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변화시키기 위해서 제가 뭘 할 수 있습니까?
네가 해야 할(do)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네가 될(be) 수 있는 건 대단
히 많다.
더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인간 존재들은 오랫동안 '행위'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써왔지만, 그
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참된 변화는 언제나 '행위' 차원이 아니라 '존재' 차
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 물론 너희는 몇몇 발견들을 했고, 기술을 발달시켰으며, 그리하여 어떤
면에서는 너희 삶을 더 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너희가 삶을 더 '낫게' 만들
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게다가 더 큰 원리 문제들에서 너희의 진보는 무척
느리다. 너희가 현재 직면해 있는 원리 문제들 중 상당수가 너희 행성에서 과
거 몇 세기 동안 계속해서 직면해오던, 여전히 그 문제들이다. 지구는 지배종
의 착취 대상으로 존재한다는 너희의 관념이 좋은 예다.
너희가 지금 되어 있는 '상태'를 바꿀 때까지, 그것을 둘러싸고 너희가 취하
는 '행동'을 바꾸지 않으리란 건 명약관화하다.
너희가 조금이라도 다르게 행동하고자 한다면, 너희는 먼저 환경 안의 모든
것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누군지에 관한 관념부터 바꿔야 한다.
그러니 그것은 의식의 문제다. '그리고 너희가 의식을 바꿀 수 있으려면, 너
희는 먼저 의식을 끌어올려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이 모든 것에 대해 침묵하길 그만둬라. 큰 소리로 말하고, 소란을 피우고, 문
제를 제기하라. 그렇게 하면 너희의 집단의식까지도 일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니.
딱 한 가지 문제만 예를 들어보자. 왜 삼(대마)을 길러서 그걸 종이 만드는
데 쓰지 않느냐? 종이컵과 종이팩, 종이 타월은 말할 것도 없고, 일간신문을
너희 세상에 공급하는 데만도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필요한지 알고나 있느냐?
삼은 값싸게 키울 수 있고, 손쉽게 수확할 수 있으며, 종이 만드는 데만이 아
니라, 가장 질긴 밧줄과 가장 오래가는 옷감, 나아가서는 너희 행성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몇몇 치료약들을 만드는 데까지도 이용할 수 있다. 사
실 마리화나(대마)는 너무나 값싸게 키울 수 있고, 너무나 손쉽게 수확할 수
있으며, 너무나 많은 놀라운 용도들을 가지고 있어서, 거기에 반대하는 어마
어마한 로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세상이 거의 어디서나 자랄 수 있는 이 수수한 식물로 얼굴을 돌리게 놔뒀다
가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을 잃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사에서 탐욕이 어떻게 상식을 바꿔치기하는가를 보여주는 한 예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 책을 네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들이 이런 사실을 접수
할 뿐 아니라, 이 책이 말해야 했던 다른 모든 것들도 접수할 수 있도록. 그
러고도 여전히 더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냥 페이지를 넘겨라......
그래요. 하지만 전 우울해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2권을 읽고 난 뒤에 많은 사람
들이 그런 느낌을 가졌다고 하듯이요. 우리가 세상을 어떤 식으로 파괴하고 있는지,
아니 사실상 그걸 폭파하고 있는지 앞으로도 더 이야기하실 작정이십니까? 왜냐하
면 제가 이걸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
너는 고무되는 건 감당할 수 있느냐? 흥분되는 건 감당할 수 있느냐? 다른 문
명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배우고 탐구하는 게 너희를 얼마나 고무하고 흥분
시킬지 생각해봐라!
그 가능성들을 생각해봐라! 그 기회들을 생각해봐라! 모퉁이만 돌아서면 펼쳐
질 황금빛 내일을 생각해바라!
우리가 '깨어난다면요.'
너희는 '깨어날' 것이다! 너희는 깨어나고 '있다!' 패러다임이 변하고, 세상
이 바뀌고 있다. 그것은 바로 너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책이 그 일부'고, '너희' 또한 그 일부다. 잊지 마라, 너희는 방을 치유
하려고 그 방에 있는 것이고, 공간을 정화하려고 그 공간에 있는 것이다. 너
희가 여기 있을 다른 이유는 없다.
포기하지 마라! 절대 포기하지 마라! 가장 장대한 모험이 이제 막 시작되었으니!
좋습니다. 전 고도로 진화된 존재들의 사례와 지혜로 고무되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그 때문에 낙담하지 않고요.
잘했다. 바로 이런 게 현명한 선택이란 거다. 너희가 한 종으로서 가고 싶다
고 말하는 곳을 전제로 한다면 말이다. 너희는 그 존재들을 관찰함으로써 많
은 것을 기억해낼 수 있다.
고진재들은 서로간의 연결성을 깊이 느끼면서 조화롭게 살고 있다. 그들의 행
동을 좌우하는 건, 너희라면 '사회의 기본 지도원리'라고 불렀을, 그들의 받
침 생각이다. 너희의 행동 또한 너희의 받침 생각, 즉 '너희' 사회의 기본 지
도원리에 좌우된다.
고진재 사회의 기본 지도원리는 무엇입니까?
그들의 첫번째 지도원리는 '우리 모두는 하나'라는 것이다.
모든 결정과 모든 선택, 너희라면 '도덕'과 '윤리'라고 불렀을 모든 것이 이
원리에 근거하고 있다.
두번째 지도원리는 '하나' 안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원리 하에서 한 종의 어떤 구성원도 단순히 뭔가를 '그가 먼저 가졌다'거
나, 그것이 그의 '것'이라거나, 그것이 '모자란다'고 해서, 남이 그것을 못
갖게 할 수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그 '종체계'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의 상호의존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 체계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유치체 종들의 상대적인 필요는 언제나 균형이 유지된다(kept in balance
). 그들이 그것을 언제나 '염두에' 두기(kept in mind) 때문이다.
이 두번째 지도원리는 개인 소유 따위는 없다는 뜻입니까?
너희가 이해하는 방식으로는 없다.
고진재는 자신이 보살피는 모든 좋은 것들에 대해 '개인 책임'을 진다는 의미
에서 '개인 소유'를 경험한다. 너희라면 '점유권의 존중'이라고 불렀을 것에
대해 고진재가 느끼는 감정을 너희 언어에서 가장 비슷하게 나타낼 수 있는
말은 '관리권'이다. 고진재는 '관리자'지, '소유자'가 아니다.
'소유한다'는 말과 그 말 뒤에 깔린 너희식 개념은 고진재 문화의 일부가 아
니다. 뭔가가 '개인에게 속한다'는 의미에서 '소유' 같은 건 없다. 고진재들
은 소유하지 않고 보살핀다. 다시 말해 그들은 만물을 유지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돌보지만', 그것들을 '소유하지는' 않는다.
인간들은 소유하지만, 고진재들은 보살핀다. 이것이 너희 언어로 그 차이를
묘사할 수 있는 방식이다.
너희 역사의 초기에, 인간들은 '자신이 손댄 것이면 무엇이든' 자기가 가질
권리가 있다고 느꼈다. 여기에는 아내와 자식들과 토지와 그 토지에서 나오는
부들도 들어갔다. '동산(動産)'과 그 동산이 그들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다른
모든 '동산' 역시 그들의 것이었다.
인간 사회는 이런 믿음의 상당 부분을 지금도 여전히 진리로 삼고 있다.
인간들은 이 '소유'라는 개념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멀리서 이를 지켜본 고진
재들은 이것을 너희의 '소유 강박관념'이라 불렀다.
이제 진화해감에 따라, 너희는 사실 어떤 것도 --너희 배우자와 자식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진짜로 소유할 수는 없음을 점점 더 많이 이해해가고 있다.
하지만 너희 중 다수는 지금도 여전히 자신이 땅을 소유할 수 있고, 땅 위와
땅 아래, 그리고 땅 위의 하늘까지 소유할 수 있다는 관념에 매달려 있다. (
그렇다, 너희는 '공중권'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반면에 우주의 고진재들은 자신들이 발 딛고 있는 물질 행성이란 건 어떤 단
일 존재에 의해 소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물론 그들
사회의 메커니즘에 따라 보살펴야 할 땅 조각들이 개별 고진재들에게 주어질
수는 있다. 그리고 그녀가 그 땅을 훌륭히 관리한다면, 사회는 그녀가 자기
자식들에게, 또 그들은 그 자식들에게 그 땅의 관리권을 넘겨주도록 허용한다
(부탁한다). 하지만 그나 그의 자식이 그 땅의 관리자로서 서투르다는 것이
드러날 때는 언제라도, 그 땅은 더 이상 그들의 보살핌을 받지 않는다.
우와! 이런 게 이 지구에서의 지도원리라면, 세상 산업의 절반이 자산(資産)을 포
기해야겠군요!
그리고 세상의 생태계는 하룻밤만에 극적으로 개선될 테고.
보다시피, 고도로 진화된 문화에서는, 너희가 말하는 식의 '기업'이 이윤을
창출한답시고 토지를 약탈하도록 놔두는 일 같은 건 절대 없다. 사실 그 기업
의 소유자나 그 기업의 노동자인 바로 그 사람들의 삶의 질이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피해를 입고 있음이 확실한데, 그런 속에서 무슨 이윤을 찾을 수 있겠
는가?
글쎄요, 그런 피해는 몇년이고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이윤은 지금 이 자리에서
실현되니까요. 그래서 그걸 단기 이윤/장기 손실이라고 하는 걸 겁니다. 하지만 장
기 손실을 체험할 때쯤엔 자기가 그 자리에 없을 거라면, 누가 장기 손실에 신경을
쓰겠습니까?
고도로 진화된 존재라면 신경을 쓴다. 게다가 그들은 훨씬 더 오래 산다.
얼마나 오래요?
몇배나 오래. 몇몇 고진재 사회의 존재들은 영원히, 다시 말해 그들의 육신
형상으로 남아 있기를 택하는 한 계속 산다. 따라서 고진재 사회에서는 개별
존재들이 자신들의 행위가 가져온 장기적인 결과들을 체험할 때까지도 살아
있는 것이 보통이다.
어떻게 해서 그들은 그렇게 오래 살아 남을 수 있습니까?
물론 너희가 그러하듯이, 그들 역시 살아 있지 않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나
는 네 말뜻을 안다. 너는 '몸을 가지고' 살아 있느냐는 뜻으로 물은 것이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몸을 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습니
까? 이게 어떻게 가능하죠?
첫째로, 그들은 공기와 물과 땅을 오염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
들은 흙 속에다 화학물질들을 집어넣지 않는다. 그런 화학물질들은 식물과 동
물들에게 흡수되고, 그 다음엔 그 식물과 동물들을 섭취하는 너희 몸 속으로
들어가기 마련이다.
사실 고진재라면 고기를 섭취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더군다나 땅과, 동물이
먹는 식물들을 화학물질로 채움으로써, 다시 그 동물 자체를 화학물질로 가득
채운 다음, 그것을 섭취하는 일 같은 건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고진재는 정
확하게 그런 행위를 자살행위로 평가한다.
따라서 고진재들은, 인간들이 하듯이 자신들의 환경과 대기와 자기 육신을 오
염시키지 않는다. 너희 육신은 너희가 지금 허용하는 것보다 무한히 더 오래
'버티게' 되어 있는 장대한 창조물이다.
그리고 고진재들이 보여주는 심리행동들도 삶을 연장해주는 데 기여한다.
예를 들면요?
고진재는 걱정하는 일이 없다. 그들은 '걱정'이나 '스트레스' 같은 인간의 개
념을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다. 또 고진재라면 '미워하거나' '분노하거나' '질
투하거나'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고진재들은 자기 몸을 갉아먹고
망치는 체내 생화학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고진재라면 이것을 '자기 갉아
먹기'라고 불렀을 것이고, 고진재라면 자신을 소모하자마자 다른 육신 존재를
섭취했을 것이다.
고진재들은 어떻게 이렇게 하죠? 인간들도 그런 식으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습니까?
첫째로 고진재들은 만사가 완벽함을 이해한다. 우주에는 저절로 굴러가는 과
정이 있어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라곤 거기에 개입하지 않는 것뿐임을. 그
과정을 이해하는 고진재로서는 절대 걱정하는 일이 없다.
그리고 네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답한다면, 그렇다, 인간들도 이런 조절력을
가질 수 있다. 비록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런 힘을 가졌다는 걸 믿지 않
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그 힘을 행사하지 않지만. 반면에 노력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훨씬 더 오래 산다. 화학물질들과 대기 오염이 그들을 죽이지 않아
왔고, 여타 방식으로 그들이 자진해서 자신을 독살하지 않아왔다고 가정하면.
잠시만요. 우리가 '자진해서 자신을 독살한다'고요?
너희 중 일부는 그렇다.
어떻게요?
앞에서 말했듯이 너희는 독을 먹는다. 또 너희 중 일부는 독을 마시고, 너희
중 일부는 독을 피우기까지 한다.
고도로 진화된 존재들에게는 그런 행동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비친다.
그들로서는 왜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너희 스스로도 아는 물질들을 일부러 자
기 몸 속에 집어넣는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음, 우리는 어떤 걸 먹거나 마시거나 피우면 '즐겁다는' 걸 알거든요.
'몸' 속의 '삶'이 즐겁다는 걸 아는 고진재로서는, 그런 삶을 한정짓거나 끝
내거나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음을 '미리 알면서' 그렇게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우리 중에는 시뻘건 고기를 양껏 먹거나, 술을 마시거나, 엽초를 피우는 게 우리 삶
을 한정짓거나 끝내거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거라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죠.
그렇다면 그들의 관찰기술이 무척 무딘 것이다. 그들은 예리해질 필요가 있다.
고진재라면 너희더러 그냥 주위를 둘러보라고 제안했을 것이다.
그래요, 그랬겠죠...... 우주의 고도로 진화된 사회들에서 사는 게 어떤 건지 말씀
해주실 또 다른 게 있습니까?
수치스러워하지 않는다.
수치스러워하지 않는다고요?
죄의식 같은 것도 없다.
땅의 서투른 '관리인'임이 밝혀진 존재라면 어떻습니까? 당신은 좀 전에 그들은 그
땅을 그에게서 빼앗는다고 말했어요! 이건 그를 심판해서 죄를 찾아낸다는 뜻 아닙
니까?
아니다. 그건 그를 관찰하여 할 수 없다는 걸 찾아냈다는 뜻이다.
고도로 진화된 문화들에서는 할 수 없다고 밝혀진 일을 하라고 요구받는 일이
없다.
그래도 그들이 그 일을 하고 싶어하면요?
그들은 그렇게 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왜요?
이미 드러난 자신의 무능력이 그들이 그런 것을 바라지 않도록 만들 것이다.
이것은, 특정한 어떤 일을 할 능력이 없을 때 다른 사람들이 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그들의 이해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결과다. 그들은 결코 이렇헤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남을 해롭게 하는 것은 자신을 해롭게 하는 것이고, 또 '
그들은 이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건 여전히 체험을 끌어가는 '자기 지속성(self preservation)'이 있다
는 얘기군요. 지구에서처럼요!
당연히! 단 하나 다른 것은 '자기'에 대한 그들의 규정이다. 인간은 자기를
너무 협소하게 규정한다. 너희는 나 자신과 내 가족과 내 공동체라고 말한다.
고진재는 자기를 전혀 다르게 규정한다. 그녀는 자신과 가족과 공동체라고 말
한다.
오직 하나뿐인 것처럼.
오직 하나뿐이다. 바로 그게 핵심이다.
이해가 갑니다.
따라서 고도로 진화된 문화에서는 예를 들면, 육아에서 '자신이 무능하다는
것을' 자기 눈으로도 몇번이나 직접 확인한 존재가 자식 기르기를 고집하는
일이 절대 없다.
이 때문에 고도로 진화된 문화들에서는 아이가 아이를 기르지 않는다. 그들은
노인들에게 자식을 길러달라고 맡긴다. 이것은 새로 태어난 아이를 생명 준
사람들에게서 떼어내고, 그들의 품안에서 뺏아서, 생판 낯선 사람에게 길러달
라고 념겨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문화들에서는 노인들이 젊은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살아간다. 노
인들은 혼자 힘으로 살아가도록 버려지거나, 무시되거나, 마지막 운명을 다하
게끔 방치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랑과 보살핌과 활기로 가득한 공동체의 일부
로서 존경받고, 존중되고, 가까이 모셔진다.
갓난쟁이가 세상에 도착할 때, 노인들은 바로 그 자리에, 그 공동체와 그 가
족의 심장부 깊은 곳에 함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아이를 기르는 건, 너희 사
회가 이런 일은 부모더러 하게 하는 게 합당하다고 느끼는 것만큼이나 유기체
로서 타당한 일이다.
차이는, 그들 역시 자기 '부모들' --그들의 언어에서 가장 근접하는 용어는 '
생명 주는 이'일 것이다-- 이 누군지는 언제나 알고 있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그 자신도 '아직 삶의 근본에 대해서 배우고 있는' 존재들로부터 삶의 근본에
대해 배우도록 요구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고진재 사회에서는 노인들이 주생활과 식생활, 아이들 보살피기만이 아니라,
배움의 과정도 조직하고 감독한다. 아이들은 지혜와 사랑, 크나큰 인내와 깊
은 이해로 충만한 환경 속에서 길러진다.
그들에게 생명을 준 젊은 사람들은 대개 어딘가 다른 곳으로 나가서 도전 과
제들을 만나고, 젊은 삶이 주는 그들 나름의 기쁨들을 체험한다. 혹은 그들이
선택하는 만큼 많은 시간을 자기 자식들과 함께 보내거나, 때로는 연장자 거
주지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 수도 있다. '가정'환경 속에서 아이들 바로 옆에
있으면서, 아이들에게 자신들을 그 환경의 일부로 체험케 하는 식으로.
그 모두가 대단히 통일되고 일관된 체험이다. 하지만 양육을 하고 그 책임을
지는 것은 노인들이다. 그리고 종 전체의 미래에 대한 책임이 노인들에게 지
워지는 만큼, 그것은 일종의 명예다. 고진재 사회들은 이 일이 젊은 사람들에
게 요구할 수 있는 수준 이상임을 인정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다. 너희 행성에서 자식들을 기르는
방법과 그것을 바꿀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할 때.
맞아요. 그리고 이번에는 그것이 어떤 식으로 운영될 수 있는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되돌아가서요, 고진재는 무슨 짓을 해도 죄의식이나 수
치심을 느끼지 않는 겁니까?
그렇다. 죄의식이나 수치심 따위는 본래 자기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
이다. 그런 후에 내면화될 수 있다는 건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어쨌든 그것
은 처음에는 외부에서 주어진다. 예외 없이 '항상'. 어떤 신성한 존재도(그리
고 모든 존재가 신성하다), 자기 외부의 누군가가 자기나 자기가 하는 어떤
일을 '수치스럽거나' '죄 많은' 것으로 낙인찍기 전까지는, 절대 그걸 그런
식으로 여기지 않는다.
너희 문화라고 아기가 자신의 '배변 습관'을 부끄러워하는가? 당연히 아니다.
너희가 아기더러 그래야 한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아이가 자신의 성기를 가지
고 즐긴다고 해서 '죄의식'을 느끼는가? 당연히 아니다. 너희가 아이더러 죄
의식을 느끼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한 문화의 진화 정도는 그것이 어떤 존재나 어떤 행동에 '수치스럽다'거나 '
죄 많다'는 딱지를 얼마나 많이 붙이는가로 알 수 있다."
어떤 행동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다고요? 무슨 짓을 하든 아무 죄의식도 없고요?
내가 이미 말했듯이 옳고 그른 건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걸 이해하려면 이 대화를 전체 '한 덩어리'로 읽어야 한다. 어
떤 진술이든 문맥에서 따로 떼놓은 상태에서는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나는 1
권과 2권에서 위에서 말한 지혜를 자세히 설명했다. 네가 여기서 나더러 설명
해달라고 부탁한 건 우주의 고도로 진화된 문화들이다. 이미 이 지혜를 이해
하고 있는 문화들 말이다.
알겠습니다. 이 문화들이 우리 문화와 다른 점이 이런 것들 말고도 또 있습니까?
많은 점에서 다르다. 그들은 경쟁하지 않는다.
그들은 한 사람이 지는 건 모두가 지는 것임을 안다. 따라서 그들은 한쪽은 '
지고' 다른 쪽은 '이기는' 걸 '여흥'이라고 보는 터무니없는 사고방식을 아이
들에게(그리고 어른으로까지 이어지면서) 가르치는 게임이나 스포츠 같은 걸
만들어내지 않는다.
게다가 앞에서 말했듯이 그들은 모든 것을 공유한다. 남이 필요로 할 때, 단
지 그것이 귀하다고 해서, 자신이 지닌 것을 내놓지 않거나 쌓아둔다는 것 역
시 그들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오히려 그들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
에 공유한다.'
너희 사회에서는 귀한 것을 조금이라도 나누려 하면, 귀하다는 이유로 그것의
값이 올라간다. 이런 식으로 해서 너희는 '소유한' 것을 나누는 것이 어쨌든
너희를 '부유하게 만들어주도록' 보장한다.
고도로 진화된 존재들 또한 귀한 것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부유해진다. 고진
재와 인간의 유일한 차이점은 고진재들이 '부유함'을 규정하는 방식이다. 고
진재는 '이윤을 올릴' 필요 없이 모든 것을 공짜로 나눠주는 것에서 '부유하
다'고 느낀다. 사실 이런 느낌 자체가 이윤이다.
너희 문화에도 너희 행동거지를 규정하는 여러 지도원리들이 있는데, 내가 이
전에 말했듯이 그중 가장 기본되는 하나가 '적자생존'이다.
이것을 너희의 '두번째 지도원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너희 사회
가 창조해낸 모든 것, 경제와 정치, 종교, 교육, 그리고 사회 구조의 기초가
된다.
하지만 고도로 진화된 존재에게는 그 원리 자체가 모순어법이다. 그것은 자가
당착에 빠져 있다. '우리 모두가 하나'임을 첫번째 지도원리로 삼는 고진재로
서는 '모두'가 '적응할' 때까지는 '하나'도 '적응할' 수 없다. 따라서 모두가
적응할 때까지는 '적자'도 '적응할' 수 '없으니,' '적자' 생존은 불가능하거
나 '유일하게' 가능한 일이다(따라서 모순이다).
내 말을 따라오고 있느냐?
그럼요. 우린 그걸 공산주의라 부르죠.
너희 행성에서는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희생시키면서 진보하는 것을 용납하
지 않는 모든 체제를 손쓸 수 없는 망나니 체제라고 몰아부치면서 그것을 거
부해왔다.
어떤 통치체제나 경제체제가 '모두'에게 속하는 자원을 가지고, '모두'가 창
출한 이익을 '모두'에게 균등하게 분배할 것을 요구할 때, 너희는 그런 식의
통치체제가 자연질서에 어긋난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고도로 진화된 문화에서
는 균등한 공유가 '자연질서다.'
그 사람이나 집단이 그것을 받을 만한 일을 전혀 하지 않았더라도요? 공동선(共同善
)에 전혀 기여하지 않았더라도요?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라도요?
'삶 자체'가 공동선이다. 너희는 살아 있는 것 자체로 공동선에 기여하고 있
다. 영혼이 물질형상으로 있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런 형상을 받아들이기로
동의하는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위대한 희생이다. 설사 전체가 자신을 체험
으로 알고, 지금껏 '자신'에 대해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숭고한 해
석으로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하고, 나
아가 즐겁기까지 하다 해도.
우리가 왜 여기에 왔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요?
그 '집합체'를 구성하는 영혼들.
제가 졌습니다.
내가 이미 설명했듯이 오직 '한 영혼', '한 존재', '한 본체'만이 있다. 사람
들은 이것을 '신'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단일 본체는 우주 속의 만물, 달리
말하면 존재 전체로 자신을 '개별화한다'. 여기에는 지각 있는 모든 존재들,
즉 너희가 영혼이라 부르기로 한 것도 들어간다.
그러니까 '신'은 '존재하는' 모든 영혼입니까?
지금 존재하고 있고, 이제껏 존재했으며, 앞으로 존재할 모든 영혼.
그렇다면 신은 '집합체'입니까?
나는 그 용어를 선택했다. 그것이 너희 언어로 그 상황을 가장 가깝게 묘사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경외스런 단일 존재가 아니라 집합체라고요?
꼭 이것 아니면 저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칸 밖에서' 생각하라!
'양쪽 다'가 신인가요? 개별 부분들의 집합체인 경외스런 단일 존재요?
훌륭하다! 아주 훌륭하다!
그럼 그 집합체는 왜 지구로 왔습니까?
1권에서 이미 자세히 설명했듯이, 자신을 물질성으로 체험하고, 자신의 체험
으로 자신을 알고, 신이 되기 위해서.
당신은 당신이 되게 하려고 우리를 창조하셨습니까?
사실 우리는 그랬다. 너희는 바로 그 때문에 창조되었다.
어떤 집합체가 인간을 창조했다고요?
번역이 바뀌기 전에 너희 성경은 "우리,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와 닮은꼴'
로 인간을 창조하자"로 되어 있었다.
삶이란 신이 자신을 창조하고, 그런 다음 그 창조물을 체험하는 과정이다. 이
창조과정은 영원히 계속된다. 그것은 항'시' 일어나고 있다. 상대성과 물질성
은 신이 일하는 도구들이다. '신'이란 건 순수 에너지(너희가 영(spirit)이라
부르는 것)다. 이 본체가 사실 '성령'이다.
에너지가 물질이 되는 과정이 영을 물질성으로 육화(肉化)시킨다. 그 에너지
는 말 그대로 자신의 속도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자신의 파동 --너희라면 진
동이라고 불렀을-- 을 바꾸는 것으로, 이렇게 한다.
전부인 것은 일부분씩 나누어 이렇게 한다. 다시 말해 전체의 부분부분이 이
렇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개별화된 영이 너희가 혼(soul)이라 부르는 것이다.
사실 존재하는 건 자신을 다시 모양짓고 다시 만드는 오직 '한 영혼'뿐이다.
이것을 재형성(Reformation)이라 부를 수도 있다. 너희 모두는 형성 중인 신(
Gods in Formation)이다. (신의 정보(God's Information!)
바로 이것이 너희의 기여다. 그 자체로 충분한 기여다.
이것을 단순하게 표현하면, 물질형상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너희는 이미 할
바를 다 했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너희는 공동선에 기여했다. 너희는 공통된 그것이, 그 '한 공동 요소'
가 좋은 것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었다. 너희도, 신이 하늘과 땅과 땅 위를
걸어다니는 짐승들과 공중의 새들과 바다의 물고기들을 창조하시니, '그것이
대단히 좋았노라'고 적지 않았느냐?
'좋음' 역시 그 대립물 없이는 체험으로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 없기에, 너
희는 좋음의 역운동, 즉 반대방향인 나쁨도 창조해냈다. 또 너희는 삶의 대립
물로서 소위 죽음이라 부르는 것도 창조해냈다.
하지만 죽음은 궁극의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희가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이용하는 단순한 조작물, 발명품, 가상 체험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쁨(evil)'의 철자를 거꾸로 적으면 '산다(live)'가 되는
것이다! 언어면에서 너희는 참으로 현명하여,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감춰진
지혜들을 그 속에 접어넣었다.
이 우주철학 전체를 이해할 때, 너희는 위대한 진리를 이해하게 되리니, 그러
고 나면 너희는 더 이상 물질생활의 자원과 필요물을 함께 나누는 대가로 다
른 존재에게 뭔가를 달라고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 자체로는 아름다운 거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걸 공산주의라고 부를 사람들이 있
을 겁니다.
그들이 정히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게 하라. 하지만 너희에게 말하노
니, 너희 '존재들의 공동체(Community of beings)'가 '함께 있음(being in co-
mmunity'에 대해 알 때까지, 너희는 절대 성스런 교류를 체험할 수 없고, '내'
가 누군지 알지 못할 것이다.
우주의 고도로 진화된 문화들은 내가 여기서 설명한 것들 전부를 깊이 이해한
다. 그런 문화들에서 공유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또한 어떤 필수품이 귀해
질수록 점점 더 터무니없는 '값'을 '매기겠다는' 발상 역시 가능하지 않을 것
이다. 오직 지극히 원시적인 사회들만이 이렇게 할 수 있고, 오직 대단히 원
시적인 존재들만이 공동 필요물의 부족을 더 많은 이윤을 올릴 기회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고진재 체계는 '수요와 공급'에 끌려가지 않는다.
이것이 너희가 삶의 질과 공동선에 기여한다고 주장하는 체계의 일부다. 하지
만 고도로 진화된 존재의 시각에서 본다면, 좋은 것을 '공동으로' 체험하지
못하게 하는 너희 체계야말로 공동선을 '훼손시키고' 있다.
고도로 진화된 문화의 또 하나 두드러지고 매력적인 특색은 그 문화들 안에는
'네 것'과 '내 것'을 뜻하는 어떤 말이나 소리도 없고, 그런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언어에는 개인 소유격이 존재하
지 않는다. 그래서 지구 언어로 말해야 할 경우라면, 그들은 약정 조항들을
이용해서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 약정을 적용하면, '내 차'는 '내가 지금 데
리고 있는 차'가 되고, '내 배우자'나 '내 아이들'은 그 '배우자'나 '내가 지
금 데리고 있는 아이들'이 된다.
너희라면 '소유권'이나 '재산'으로 불렀을 것을 묘사하는 데 있어, 너희 언어
에서 가장 가까운 언어가 '지금 데리고 있는(now with)'이나 '마주하고 있는(
in the presence of)'이란 표현들이다.
너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선물이 된다. 이런 게 삶의 진짜 '선물(present)'
이다.
따라서 고도로 진화된 문화들의 언어로는 '내 삶'이란 의미도 말할 수 없다.
오직 '내가 마주하고 있는 삶'이라는 의미로만 전달할 수 있다.
이것은 너희가 '신을 마주하고 있'음을 이야기할 때와 어느 정도 비슷하다.
너희가 신을 마주할 때(너희가 서로를 마주할 때, 너희는 신을 마주하고 있다),
너희는 신의 것, 말하자면 존재하는 것의 일부를 신이 갖지 못하게 막겠다는
생각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신의 것을 신의 모든 부분과 당
연히 함께 나눌 것이고, 똑같이 나눌 것이다.
이것이 모든 고도로 진화된 문화들의 사회, 정치, 경제, 종교 구조 전체를 뒷
받침해주는 영적 이해다. 이것은 삶 전체의 우주철학이다. 지구에서의 너희
체험이 일으키는 모든 불협화음은 오로지 이 우주철학을 관찰하고, 그것을 이
해하고, 그 속에서 살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 음악 - 첫날처럼(Comme Au Premier Jour) - 앙드레 가뇽 (Andre Gagn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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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예^^
너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선물이 된다. 이런 게 삶의 진짜 '선물(present)'이다. 감사합니다. 소유가 없는 모든 것이 모든 이들의 공동소유이고 단지 관리권만 있는 사회 정말 멋지군요. 미움도 다툼도 없고, 걱정도 없고 스트레스도 없는 정말 기대되는 천국이군요. 고맙습니다.
evil --> live...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