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동정맥 제 3 구간(석개재~1136.3봉전 임도①)
1. 산행일자 : 2009년 11월 28(토)
2. 산행구간 : 석개재 ~ 1136.3봉 전 임도
3. 출발일시 및 장소 :
[1] 출발일시 : 2009년 11월 28일 05 : 00시
[2] 출발장소 : 경기대학교 후문 버스 정류장(동수원 톨게이트)
4. 준 비 물 :
[1] 전 체 - 차량, 안전장구, 구급약, 사진기
[2] 개 인 - 비상식, 등산화, 배낭, 예비옷(보온)과 양말, 윈드쟈켓 및 우의, 모자, 장갑, 후레쉬, 식수(2L 이상), 세면도구, 신분증 등 기타 개인용품
5. 날 씨 : 흐리고 비, 짙은 안개
6. 참가인원 : 박봉하, 박상호, 안상경, 윤희원(4명),
7. 산행 구간 개요 :
답운치에서 석개자까지는 도상거리 24Km로 강원도와 경산북도의 경계를 이룬다. 이 구간은 전형적인 심산유곡의 첩첩산중으로 달리 탈출할 곳이 없다. 또한 식수를 구할 곳이 없으므로 충분히 준비해야한다.
8. 산행지 정보 및 일정 계획
[1] 총 산행 거리 및 소요시간 : 약 11. 0km, (답운재 - 11:00 ~ 16:50-임도)시간
[2] 구간 거리 및 주요 산 높이
답운치(36번국도,685.7m)---[2.8km]---굴전고개---[1.3km]---진조산(908.4km)---[1.0km]---한나무재---[2.0km]---934.5봉---[3.9km]---임도(답사구간:11.0km)---[1.5km]---1,136봉---[3.0km]---1,098봉---[1.0km]---삿갓봉1119.1km)---[3.6km]---용인등봉 ---[1.2km]---묘봉북동봉 ---[2.7km]---석개재(910km, 미답사구간 : 13.0km)
[3] 산행 일정
(1) 산행지 이동 길
○ 수원(05:30) ∼ 태백(07:50) ∼ 황지연못 ∼ 석포 ~ 석포1리 반야/샘터 ~답운재(11:00)
(2) 산행 코스
답운치 → 헬기장 → 송전탑 → 임도 3거리 /좌측 숲 진입 → 봉우리 → 굴전고개 → 봉우리 → 봉우리 → 진조산 갈림길 → 헬기장 → 헬기장 → 한나무재(점심식사) → 폐 헬기장 → 헬기장 → 헬기장/삼각점→ 봉우리/좌 내리막 → 봉우리/좌 내리막 → 헬기장→ 넓은 공터 안부 → 임도
(3) 산행 후
○ 임도로 진행 ∼ 「소광, 석포, 전곡」갈라지는 삼거리∼ 임도 ~ 불심골? ~ 석포 1리 샘터 ~ 반야 ~ 석포 ~ 태백
9. 산 행 기
[1] 3구간 산행의 변
○ 지난 10월 24, 25 양일간 낙동정맥 1, 2구간(피재 ~ 석개재) 산행을 끝내고 귀가 길에 장부장이 집안 일이 있어 11월 정맥산행을 할 수 없다하여 논의를 한 결과 정맥 산행 참여 인원이 워낙 적어 한사람이 아쉽고 장부장의 열정도 대단하여 11월 정맥산행은 별도 계획을 세워 진행하고 12월에 3, 4구간(석개재 ~ 답운치 / 답운치 ~ 애미랑재)을 산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 산행 후 3구간(석개재 ~ 답운치)을 선답한 사람들의 산행기를 보니 낙동정맥 전 구간 중 가장 난코스라고 한다. 이유인 즉 도상거리 24km로 10시간 이상 산행을 해야 하는데 마땅히 탈출로가 없다고 한다. 무리해서 탈출을 한다 해도 임도를 따라 1시간 이상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답운치(또는 석개재)까지 산행을 한다고 한다.
○ 12월, 수원에서 5시 출발, 아침식사하고 석개재 도착하여 산행을 출발하는 시간이 빨라야 09 : 00시일 것이고 산행 시간이 12시간(휴식, 점심시간 포함)이면 밤 9시나 돼서 답운치에 도착할 수 있게 된다. 한 겨울, 깊은 산중, 초행길을 늦은 밤에 산행을 한다는 것에 자신이 서지를 않는다.
고심 끝에 11월 산행 날에 역으로 답운치에서 삿갓재까지(15.5km 400분) 산행을 하고 12월에 석개재에서 삿갓재까지(8.5km, 200분) 산행 후 임도로 탈출(60분)을 해 보자는 몇 사람(실버팀)의 의견을 모았다.
○ 11월 일반 산행(석문봉) 때 산악대장에게 뜻을 전하고 11월 28일에 낙동정맥 3구간을 산행하게 된 것이다.
[2] 산행 전
① 태백 가는 길
○ 산행 前日에 박사장이 문자를 보내왔다. 11월 28, 29일에 산행지(태백일원) 눈 ․ 비 예상. 겨울 산행 과 도시락을 준비해 오란다. 물 한 병 더 넣는 것도 부담인데 겨울 산행 준비를 하게 되니 이것도 부담이다. 점점 심신이 게을러지는 모양이다.
○ 묵혀 두었던 소품들을 꺼내 놓으니 가지 수도 많아 챙기고 뺄 것이 어떤 것인가 헷갈린다. 스펫치, 아이젠, 방한모, 장갑, 해드렌턴 등등 --- 한 시간여를 이것저것 넣고 빼며 배낭을 꾸리고 일찍 잠을 청했으나 눈이 더 말똥말똥해 진다. 결국 자정을 넘겨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 04 : 00시 기상.
○ 04 : 50분 승차하여 산행지로 출발을 했다. 늘 그렇듯 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부터 非夢似夢에 빠진다. 잠시 졸았다 싶은데 차가 두문동 터널을 빠져나가고 있다.
○ 07 : 50분경, 태백(황지) 도착, 아침 식사를 하기위해 시장 근처에 있는 「태성 25시 생고기(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42-34 1통 4반 ☎ 033)553-7752)」집에 들려 소머리 국밥으로 식사를 하고 점심 도시락도 준비를 했다.
② 黃池 연못
○ 약 30여 분간 아침식사를 한 후 『黃池』를 찾았다. 지난 산행 때 黃池를 숙소(메르디앙 호텔)지척에 두고서도 낙동강의 발원지인 연못을 자세히 살피지 못했고 사진으로 흔적을 남기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 연못 公園(태백시내 황지동)으로 들어섰다. 『黃池』표지석과 ‘洛東江 千三百里 에서부터 시작되다’라고 쓴 큰 立石이 세워져 있고 그 뒤로 잘 단장된 못이 있다.
「이곳의 물은 영남평야로 흘러 들어가며 韓國名水 100水 중 한곳이라고 한다. 연못의 둘레가 100m인 上池(집터), 50m인 中池(방앗간터), 30m인 下池(화장실터)로 구분되며 1일 5천톤의 물이 용출된다고 하며 노랭이 황부자의 집터가 연못이 되었다 하여 황지(黃地)라 부르는데 이전에는 「하늘 못」이란 뜻으로 「천황(天潢)」이라고도 불렀다.
못 주변에는「시주 하러온 노승에게 시주 대신 쇠똥을 퍼 주었는데 이것을 며느리가 보고 놀라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며 쇠똥을 털어 내고 쌀을 한바가지 시주하니 “이 집의 운이 다 하여 곧, 큰 재난이 있을 터이니 살려 거든 날 따르고 절대로 뒤를 돌아 봐서는 안된다“ 는 노승의 말을 듣고 뒤따라가는데 도계읍 구사리 산 등 쯤에 이르렀을 때 집 쪽에서 갑자기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나기에 놀라서 노승의 당부를 잊고 뒤를 돌아보다가 며느리는 돌이 되었고 황부자의 집은 땅 밑으로 꺼져 큰 연못이 되었다.」는 전설을 기록한 碑가 있고 厚德한 모습의 며느리 像도 세워 놓았다.
황지 연못 <예순해>
먼 먼 옛날 옛적에 / 황부자 청기와 집 / 물속에 잠겨 샘이 되었다. //
수전노 황 영감님 / 헛기침 같은 물소리 / 맑은 하늘 불러들인다. //
선이 고운 모시 적삼 / 하얗게 삶아 빨아 / 하늘하늘 늘고 있는 / 황부자 며느리의 시집살이 / 물속에 잠긴 구름 속에 / 보인다. //
시주하러 온 스님인냥 / 전설이 추억인냥 아련아련 / 물고기들 입 벌리며 / 유토피아 꿈꾸고 있다. //
황부자 식솔들은 / 어디에도 없는데 / 애닮게 / 옛집터 돌아보며 상념에 잠겨 / 아기 업고 서 있는 / 애처로운 며느리, / 수전노의 나침반인가 / 오가는 나그네 발길 멈춘다.
황지 연못 2 <예순해>
천 삼 백리 행보길 / 이른 새벽 연다. / 백두대간 휘감아 돌던 바람 / 선잠 깨어 / 선진들이 흐른 길 함께 가자고 / 용트림 치며 일어선다. //
어서 나오라. / 가자. 가자. / 그대가 흐름으로 / 다시 쓰는 낙동강 역사 //
역사의 뒤안길 / 전설 속에 묻힌 황놀부 심보 / 구사리 산등성이 돌이 되어 / 바라보는 며늘아기와 손자를 위해 //
그저 그저 쉬지 않을 / 인심 / 주인도 객도 아닌 / 밝은 청옥 샘물로 / 다시 태어나 / 천 삼 백리 여정 / 뒤돌아 보아도 부끄럽지 않을 / 정 담아 흐른다. //
③ 구문소(求門沼)
走馬看山으로 황지연못을 살피고 『석포』로 향했다. 가다보니 도로 표지판과 함께 『구문소(求門沼)』안내 표지판이 자주 눈에 띈다.
求門沼(구문소 : 소재지 :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 산10-1번지, 천연기념물 제417호)
6억년전 한반도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곳 이며,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에서 용출된 물이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곳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강줄기가 산을 뚫고 소를 이뤄낸 경승지다.
求問沼(구문소)는 구멍 굴의 옛말인 '구무' 와 늪을 뜻하는 '소'가 합해진 것으로 '구무소' 라 부르며 '굴이 있는 늪'라는 뜻이다. 구무소 안쪽에 있는 마을 을 구무안이라 하고 한자로 '穴內村(혈내촌)'이라 쓰는데 이로 보아 「구멍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구문소는 강이 산을 뚫은 특이한 풍경만큼이나 전해오는 이야기도 많다. 옛날 경북 안동의 영호정(루?)을 지을 때, 그 대들보 감을 화전리에서 베어 황지의 냇물에 띄어 날랐는데, 홍수가 일어 대들보 감이 산의 벼랑에 부딪혀 큰 벼락소리가 나면서 벼랑이 뚫리고 큰 구멍이 생겨 물이 그 아래로 흐르게 되었다는 설도 전해져 내려오며,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정감록 비결에 밤 자시가 되면 이 석문이 열리고 축시가 되면 닫히는데 자시에 석문이 열릴 때 얼른 그 속으로 들어가면 전쟁과 굶주림이 없는 오복동이라는 이상향이 나온다고 한다. 석문이 자시에 열린다고 해서 「자개문」이라 부른다고 한다.
원래 태백은 연화부수형에 자리 잡은 신선들의 땅이었다 하는데 이 전설에서 기인한 듯 구문소 남쪽에는 자개문이라는 바위가 문처럼 뚫려있고 이 길을 통해 경북으로 다녔다고 한다. 주위의 소나무들과 어우러져 풍광이 좋으며 근처에는 자개루라는 누각과 더불어 마당소, 자개문, 용소, 삼형제 폭포, 여울목, 통소, 닭벼슬 바위, 용천 등으로 불리는 구문팔경이 있다.
좌측 석벽으로 관통하는 길은 인공적으로 뚫은 것이며, 우측 아래의 물길의 굴은 천연동굴이다. 오른쪽 소의 수심은 공식적인 것은 없으나 상당히 깊으며, 동굴은 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약 1억 5천만년에서 3억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단군이 칼로 뚫었다는 전설도 있고, 황룡과 백룡이 싸움을 벌이다가 뚫렸다는 전설도 있으나 이 일대가 석회암 지대인 것을 고려하면 이런 전설은 그저 전설일 뿐이며 황지천이 아주 오랫동안 석회암을 침식시켜 결국 큰 구멍이 뚫린 것으로 보고 있다.
「강원도 옛 삼척군 장성읍 洞店里(동점리)에 嚴宗漢(엄종한)이란 사람이 노부모를 모시고 살았는데, 그는 집이 가난하여 생활이 어려워 매일 구문소에서 낚시와 그물로 고기를 잡아 가족을 부양하였다.
어느 날 구문소에 고기를 잡으러간 그는 실족하여 물에 빠졌는데 그 곳이 바로 용궁이었다. 용궁의 닭인 물고기를 잡은 죄로 용궁군사들에게 끌려갔으나, 삼일동안 잘못을 비니 용왕이 노여움을 풀며 주연을 베풀어 주어 융숭한 대접을 받은 염씨는 집의 부모님과 자식 생각이 나서 떡 한 조각을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주연이 끝나고 용왕이 흰 강아지를 한 마리 주며 강아지 뒤를 따라가면 인간세상으로 갈 수 있다고 하였다. 강아지를 따라 물 밖으로 나오니 강아지는 죽어버렸고 죽었던 사람이 살아서 돌아오니 집안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임씨가 용궁에서 가져온 떡이 생각나 꺼내어 보니 떡은 단단한 차돌이 되어 있었고 그 돌을 무심코 빈 쌀독에 넣어 두었는데 다음날 아침 아내가 쌀독을 열어보니 쌀이 가득 차 있어 이상히 여겨 쌀을 몇 바가지 퍼내보았으나 그대로였다. 용궁석으로 인하여 쌀독은 아무리 쌀을 퍼내도 줄지 않는 화수분이 되어 엄씨는 큰 부자가 되어 부모님과 함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또 다른 전설이 전해 온다.
구문소 바위벼랑 위에는 「자개루」가 있는데 팔작지붕에 3칸 겹집 형태이며, 단기 4328년에 건립하였다한다. 자개루에 오르면 구문팔경이 한눈이 보이고 경상북도 땅도 바라보이는 태백에서 제일가는 누각이라고 한다.
<출처> 松林房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Id=4978&logId=3184836
아침 식사와 황지연못을 살펴보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구문소(求門沼)를 둘러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12월 산행 때 산악대장에게 각별히 부탁하여 구문소와 구문팔경을 둘러보도록 해야겠다.
④ 석포 1리, 반야와 샘터 마을
09 : 50분경, 석포 1리 반야초등학교 분교 들어가는 초입에 도착해 석포 개인택시를 불렀다. 분교 있는 곳에 차를 주차시키고『답운재』로 이동하기 위해서다.
잠시 후 택시 도착, 택시를 앞세우고 반야 분교로 향했다.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정도의 좁은 시멘트 포장길로 깊은 산중이라 노면이 얼어 신경을 곤두세우고 조심해서 운전을 하다 보니 시간이 더 지체가 된다. 거북이걸음으로 약 30여분을 진행하니 인가 한 채나 나온다. 넓은 밭에는 수확을 하지 않은 배추가 그대로 있는데 얼어 쓸모가 없다고 한다. 저 많은 배추를 고스란히 버리게 된 것이 너무 아깝다.
인가가 있는 배추밭을 지나 잠시 더 진행을 하니 폐교 된 반야 분교가 나온다. 분교를 지나 5분여를 더 들어가니 임도 차단기가 길을 가로막아 더 들어갈 수가 없다. 석포면에서 가장 奧地인 『샘터』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경북 봉화군 석포는 당초 소천면 행정구역의 일부에 속했다. 소천면의 면적이 고령군과 비슷할 정도로 넓어 행정편의상 분할하여 석포면으로 분리 독립시켰다고 한다. 석포는 면의 중심지에 위치하며 석계(石溪)라 호칭하기도 하는데 전 지역이 암석과 계천(溪川)으로 형성된 까닭으로 석계(石溪) 또는 석포(石浦)라 부른다고 한다.
석포1리는「나래기, 반야, 샘터」마을이 있었는데『반야』마을은 석포 면소재지에서 동쪽으로 7km 떨어진 곳에 편편한 넓은 들이 있는데 이 지역의 형상이 소반같이 생긴 넓은 들로 이루어진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해방 전에 화전민 이주 촌으로 김령김씨 등 각 성씨가 이주정착을 하여 산을 개간하고 옥수수, 콩, 팥, 감자 등을 재배하여 당시에는 이주민 60여 세대가 거주하였다. 현재는 15세대가 남아 이 지역 주작물인 고랭지채소 등을 대량으로 재배한다.
『샘터』는 면소재지 동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기슭 작은 웅덩이에서 차가운 물이 솟아나 물맛이 아주 좋아 주민들이 공동우물로 사용하여 샘터라는 지명이 붙여졌다. 그 샘물은 비가 오거나 가물어도 예나 지금이나 같은 수량을 유지하고 있으며,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고 한다.
1968년도 울진 삼척지구에 침투한 무장공비들 중의 일부가 이곳으로 침투하여 무차별적으로 주민을 학살하였으나 民 ․ 官 ․ 軍의 합동작전으로 모두 소탕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 후 정부에서는 주민들을 타지로 이주시켜 현재는 삼척김씨 5가구가 남아 주 작물인 고랭지채소와 재래종 "벌"을 길러 소득을 올리고 있다. 산은 높고 골이 깊으며 물이 차고 깨끗하여 산채(두릅, 더덕, 산나물 등)가 많이 자생하여 산채채취로 주민소득을 올리고 있다.
임도 차단기 앞에 주차를 시키고 택시를 이용해 『답운재』로 향했다. 『답운재』까지는 족히 한 시간(택시비 60,000원)은 걸린다고 한다.
[3] 답운재(踏雲峠 고개상)
11 : 00시경『답운재(해발 619.8m)』에 도착을 했다. 고개 마루에는 남부지방 산림청에서「푸른 숲 그 사랑의 / 시작은 산불예방입니다.」 산불예방 홍보탑과 울진국유림관리소에서 통고산 등산안내판을 셀치해 놓았다.
「통고산 등산 안내문 : 통고산을 찾은 산행 가족들게 알리는 글
이곳은 백두대간의 낙동정맥 구간으로서 지정된 등산로가 아닙니다. 통고산 정상을 등산하고자 하는 분들께서는 지정된 등산로인 통고산 자연휴양림으로 입장하시어 안내를 받으신 후 산행하시기 바랍니다.
☞ 연락처 : ☎ 054)783-3167(통고산 자연휴양림) 울진국유림관리소장」
『踏雲재(685.7m)』는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광회리에 있는 고개로 東쪽은 통고산자연휴양림과 인접해 있고, 서쪽은 옥방천을 두고 봉화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쪽은 광회2리와 북쪽은 진조산 일대로 광회1리와 접해 있다. 國道 36号線이 동서로 지나며 太白山脈의 分水嶺을 이룬다. 東海로 흘러드는 냇물은 불영사 계곡(佛影寺溪谷) 물의 上流가 되고, 西쪽으로 흐르는 냇물은 洛東江 上流가 된다.
이 고개에 늘 안개가 끼어서 고개를 넘을 때 마치 구름을 밟고 넘는 듯한 고개라 하여 답운재(踏雲峠)라 부른다고 한다.
<출처> 『울진군지』(울진군지편찬위원회, 2001)
[4] 굴전고개 가는 길
날씨가 잔득 흐려 비나 눈이 곧 내릴 것이라 아침부터 염려를 했는데 드디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雨中(눈) 산행이 은근히 걱정이 된다.
스펫치도 착용하고 배낭 덮개를 씌워 산행 출발 준비를 한 후 산불 예방 홍보탑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고개 마루 왼쪽 숲길로 진입(11 : 15분경)을 했다.
오르막길을 따라 잠시 올라가니 무덤 1기가 나오고 경사각이 점점 심해지며 숨소리도 거치러진다. 다리에 힘을 주고 오르기를 10여분, 콘크리트로 포장이 된 헬기장이 나타난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잠시 휴식을 가진 후 직진 내림 길로 들어섰다. 다소 완만한 능선 길로 이어지며 산죽 밭을 지난다. 지난 산행 때도 至賤으로 山竹을 대했는데 이번에도 산죽과 씨름을 해야 할 모양이다.
산죽 밭을 지나 오르내림을 두세 번 반복 송전탑(NO86번)이 있는 봉(11 : 45분경)에 오른다. 송전탑에서 옛 作業路를 따라 잠시 진행(약 50여 m)하다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 봉에 올라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간다. 특징 없는 오르내림 길을 반복하며 걷기를 약 40여 분, 한 봉에 올랐다 내려서니 임도(12 : 25분경)가 나타난다.
[5] 굴전고개
J3클럽에서「낙동정맥 하시는 분 힘내세요! 파이팅! 굴전고개」란 쓴 하얀 표지판을 나무에 매 달아 놓았고 그 옆으로 「굴전고개 / 준 ․ 희」표지판도 눈에 띈다.
『굴전고개』는 우측 쌍전리와 좌측 굴전마을을 잇는 고개길(비포장 임도)로 쌍전리에는『굴정골(掘穽谷)』이 있는데 옛날 사람들이 산짐승을 잡기 위해 굴정(掘穽)을 파놓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도를 펴고 쌍전리를 중심으로 近洞의 지명을 살펴보니 ‘전(田)’字가 들어가 있는 이름이 유독 많이 눈에 띈다. 굴전, 갈전, 달전, 임전동, 대봉전 등이 그것이다. 워낙 산간오지인 경북 북부지방이라 대부분 밭을 일구고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듯싶다.
『굴전고개』가 위치한 「쌍전2리(雙田二里)」는 태백산(太白山) 준령(峻嶺)으로 둘러쌓인 산간오지(山間奧地)이며 산꼭대기에 있는 마을로, 동쪽에는 진조산맥(眞鳥山脈)이 있고, 쌍전1리, 소광2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서쪽은 광회1리, 남쪽은 광회1, 2리, 북쪽은 소광2리와 접하고 있다.
※ 진조산 임도 :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와 전곡리 일대. 진조산(908.4)의 남사면과 북사면.
송전탑을 지나친지 약 45분여가 되었고 산행을 시작 한 후 처음 대하는 林道라 표지판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며 후미로 오는 박사장을 기다리며 휴식을 가졌다. 10여분을 기다려도 박사장이 나타나지 않아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출발(12 : 35분)을 한다.
[6] 진조산 갈림 길
임도 건너 절개지로 올라붙었다. 오늘 산행 길은 시종 급 오름길의 연속이다.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오르다보니 바위지대가 나타나고 두 아름은 될 법한 소나무에 큰 바위가 박혀 있다.
바위를 밀어내지 못하고 살 속으로 바위를 품은 소나무를 배경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잠시 가쁜 숨을 고르고 다시 힘겹게 봉 마루 갈림 길에 도착(13 : 05분경)을 했다. 이쯤이 『진조산』인가? 표지판이 붙어 있음직한데 좌측방향으로 정맥 표시기만 눈에 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봉 마루가 진조산 갈림길로 우측방향으로 50여 m정도만 올라가면 묘2기와 삼각점(416재설,건설부)이 있는 『진조산(908.4m)』정상인데 무심코 지나치고 말았다.
[7] 겨우살이 이야기
봉 마루 갈림 길(진조산 갈림 길)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사면을 따라 잠시 오르니 헬기장(13 : 15분경)이 나타난다. 헬기장을 뒤로하고 우측 능선을 따라 가다 보니 참나무 높은 곳에 까치집을 지어 놓은 것처럼 이 가지 저 가지에 「겨우살이」가 至賤으로 돋아 있다.
○ 겨우살이(겨울나이)란
단향과의 식물로 학명은 「Viscum album var. coloratum」이다. 다른 나무에 기생해서 자라며 스스로 광합성을 하기도 해서 반기생식물이라고 한다. 자신의 광합성으로는 부족해서 숙주에게서 물이나 양분의 일부를 빼앗아 이용하는 것이다. 팽나무, 배나무, 밤나무, 느릅나무에 붙어 살며 참나무속에 가장 많이 붙어산다고 한다.
<출처> 위키백과
○ 겨우살이의 이해
겨우살이는 옛 선조들이 초자연적인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 온 식물이다. 서양을 막론하고 옛 사람들은 겨우살이를 귀신을 쫓고, 온갖 병을 고치며, 아이를 낳게 하고, 벼락과 화재를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생불사의 능력이 있는 신성한 식물로 여겨왔다.
옛 사람들이 겨우살이가 신통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믿은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겨우살이는 모든 나무가 잎을 떨군 겨울에도 홀로 공중에서 푸르름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일생 흙과 접촉하지 않아도 꽃을 피우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 특히 유럽 사람들은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를 불사신의 상징으로 믿었고 하늘이 내린 영초(靈草)라고 신성시하여 절대적인 경외의 대상으로 여겼다.
겨우살이는 나무 줄기 위에 사는 착생식물로 참나무, 팽나무, 뽕나무, 떡갈나무, 자작나무, 버드나무, 오리나무, 밤나무 등의 여러 나무 줄기에 뿌리를 박아 물을 흡수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엽록소를 갖고 있어 자체에서 탄소 동화작용을 하여 영양분을 만들 수 있으므로 숙주식물한테서는 물만을 빼앗을 뿐이다. 그러므로 대개 겨우살이는 숙주식물에 거의 혹은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다.
겨우살이는 새들을 통해서 번식한다. 여름철에는 다른 식물의 그늘에 가려서 햇볕을 받지 못하므로 자라지 않고 있다가 가을이 되어 나뭇잎이 떨어지면 꽃을 피우고 겨울 동안에 구슬처럼 생긴 연한 노란빛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다.
이 열매는 겨울철새들이 먹이를 구하기 어려울 때 새들의 좋은 먹이가 된다. 이 열매에는 끈적끈적한 점액이 많이 들어 있는데 새들은 이 점액과 씨앗을 먹고 나서 부리에 붙은 점액을 다른 나무의 껍질에 비벼서 닦는다. 이때 끈끈한 점액에 묻어 있던 씨앗이 나무껍질에 달라붙어 있다가 싹을 틔우게 되는 것이다.
겨우살이는 옛 선조들이 믿었던 대로 놀랄 만큼 약효가 뛰어난 식물이다.
○ 겨우살이의 약효
• 항암작용 겨우살이는 가장 강력한 항암식물의 하나이다.
• 유럽에서는 암 치료에 가장 탁월한 효과가 있는 식물로 겨우살이와 털머위를 꼽고 있다.
• 우리나라에서도 민간에서 겨우살이를 달여 먹고 위암, 신장암, 폐암 치유한 사례가 있다.
• 혈압 낮춤 겨우살이는 견줄 만한 데가 없을 만큼 훌륭한 고혈압 치료제이다.
• 고혈압으로 인한 두통, 현기증 등에도 효과가 있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도 탁월하다.
• 하루 30∼40그램을 물로 달여 차 대신 마신다.
• 신경통, 관절염에 효과가 있다 겨우살이 전체를 독한 술에 담가 두었다가 1년 뒤에 조금씩 마시면 관절염, 신경통에 큰 효과를 본다.
• 겨우살이는 지혈작용도 뛰어나므로 여성의 월경과 다증이나 출혈이 있는 증상에 효과가 있다.
• 이뇨작용 및 안신작용 몸이 붓고 소변이 잘 안 나오는 증세에 치료 효과가 크다.
• 간경화나 암으로 인한 복수에 효과가 있으며 결핵성 당뇨병에도 좋다.
• 임산부가 겨우살이를 먹으면 태아가 건강해지고 편안해진다.
• 그리고 겨우살이는 몸을 따뜻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
• 독성이 없으므로 누구든지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만능약이 바로 겨우살이다.
<출처> http://www.k-fishing.co.kr/zeroboard/view.php?id=mushroom&no=24
○ 믿거나 말거나(겨우살이 이야기)
귀신과 질병을 동시에 쫓는 황금나무
옛날 태양신을 숭배한 켈트족은 두루이드교의 제사장은 황금으로 만든 낫으로 겨우살이를 베어 제단에 바치고 제사를 지낸 뒤에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어 집의 추녀 밑이나 마구간의 천장에 매달아 두게 했다.
이렇게 하면 사람이나 짐승들이 병에 걸리지 않을뿐더러 못된 귀신이 얼씬하지 못한다고 믿었다. 이 풍습은 지금도 오스트리아, 스위스, 스위덴 같은데서 민간에 이어져 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를 못낳는 여인이 겨우살이를 몸에 지니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믿었고 전쟁터에 나갈 때 부적처럼 지니면 다치지 않는다고 믿었다.
드루이드 교도들은 겨우살이를 담갔던 물을 만병통치약으로 믿어 이 물을 옴니아 사난스 곧 모든 병을 고치는 물이라고 하였다.
간질병의 묘약으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고 독을 푸는 약이라고도 했으며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고 신도 죽일 수 있는 약이라고 여겼다.
<출처> http://blog.naver.com/csy3788/140095538773
항암작용, 고혈압, 신경통에 특효가 있다는 겨우살이를 보니 욕심이 생긴다. 그러나 나무 상층부에서만 자라니 그림에 떡이나 마찬가지다. 산행길이 바쁘고 도구도 없을뿐더러 명색이 산이 좋아 산을 찾는다며 자연을 훼손하는 것 또한 죄가 되는 듯하여 見物生心을 접고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8] 金剛松 群落
겨우살이가 군락을 이룬 능선을 지나 약 4분여 간격으로 두 개의 헬기장을 뒤로하고 내림 길로 들어섰다. 몇 백 년을 살다 생명을 다하고 殘骸만 남은 아름드리 나무에 이끼가 무성히 자란 모습이 마치 세월의 상징 같다. 인적과는 인연이 먼 태고적 자연의 모습이란 생각이 든다.
진행하다보니 여기저기 검은 숯덩이로 변한 아름드리나무의 밑동이 자주 눈에 띄는데 6.25때 불에 탄 흔적이라고 한다. 6.25의 傷痕이 60여년이 지난 지금 이곳에는 세대교체를 이룬 金剛松이 군락을 이루고 걱정 없이 자라고 있다.
[9] 한나무재
진조산 갈림 길을 뒤로한지 17, 8분, 미끈하게 자란 금강송을 보며 쉬엄쉬엄 내려가니(13 : 30분경) 굴전고개와 같은 임도가 나타난다.
「J3클럽(불영사 환종주 한나무재 58.5km)」과 「산그림자. 백성, 허전(낙동정맥 한나무재, 837m)」이 『한나무재』표지판을 나무에 매달아 놓았다.
『한나무재(새넓재, 적은넓재)』는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雙田里에 있는 고개로 작은 늪과 재(고개상 : 峠)가 있다하여 「적은넓재」라고도 하고 「전나무진」이라고도 부른다.
남쪽에는 진조산(908.4m)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십이령 중의 하나인 넓재(廣峠)가 있고 동쪽으로는 넓은 밭이 있는 평전마을이 있다. 북쪽에는 군내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병산(1,130m)이 강원도 삼척과 경계를 하고 있다.
1995년 산림청에서 개설한 울진~봉화 간의 국도 36호선이 지나는 광천교 서쪽으로 소광2리 대광천을 거쳐 백병산 허리를 돌아 봉화군 석포면과 연결하였다고 한다.
13 : 30분, 점심 식사를 해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오늘 산악대장 역할을 하는 박사장이 시종 후미로 따라온다. 일단 『한나무재』표지판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박사장을 기다렸다. 10여분 후 박사장 도착, 임도 직전 숲 평지에 자리를 잡고 아침 식사 때 준비해 온 도시락과 박사장이 별도로 준비해 온 국을 덥혀 식사(차량 한 대가 지나감)를 한다. 싸늘하고 음산한 날씨에 뜨거운 국물로 식사를 하니 珍羞盛饌이 따로 없다.
소박한 찬(김치)에 뜨거운 국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 안교장, 윤사장 일찌감치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고 날씨가 차 오래 쉴 수 없었던 모양이다.
[10] 934.5봉
임도를 지나 절개지로 올라서니 가파른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점심 식사 후 바로 출발한 때문인지 숨을 쉬는 속도가 빨라지고 거칠어지며 금방 땀방울이 이마에 맺히기 시작한다. 속도를 조절하고 숨을 고르며 오르막 정점에 올라 완만한 능선으로 진행을 했다. 산죽이 없는 대신 철쭉과 싸리나무 등 잡목이 가는 길을 어렵게 만든다.
능선을 따르다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잠시 내려섰다 다시 올라서니 헬기장(13 : 50)이 나온다. 헬기장을 뒤로한 후에도 몇 차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낙엽송 숲을 지나 제법 가파른 봉을 오르니 억새와 잡목으로 뒤엉킨 헬기장(13 : 56분경)이 또 나온다. 헬기장을 지나 잠시 내려서니 다시 급 오르막이다. 먼저 출발한 안교장이 쉬엄쉬엄 오르는 모습이 잡목 사이로 언뜻언뜻 보인다. 한바탕 다리에 힘을 주고 봉에 올랐다.(14 : 07) 삼각점과 「낙동정맥 / ▲ 934.5m / 준 ․ 희」라 쓴 표지판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 별 특징이 없는 봉으로 산 아래로 짙은 안개까지 끼여 眺望조차 不可하다. 휴식.
답운재에서 이곳까지의 거리가 7.1km니 오늘 산행의 목적지 『삿갓재』까지는 지나온 거리만큼을 더 가야한다. 17 : 00나를 넘겨서야 목적지에 도착을 할 것 같다.
934.5봉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갖고 직진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완만한 능선, 오르막, 봉 마루, 우측 방향, 내리막, 이렇게 마루금이 이어진다.
[11] 늪지대의 「속새(木賊)」
15 : 40분, 능선 분기점을 지나 폐 헬기장 두 개(964.3봉)를 지나 16 : 15분, 좌측으로 임도가 살짝 보이는 안부에 내려섰다. 「속새」가 군락을 이룬 안부 늪지대다. 지금까지 많은 산을 다녔지만 「속새」의 군락을 대하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속새」는 4억년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했으며 고생대 데본기에 전 지구를 뒤덮었던 식물로서 성질이 강인하여 숲이 존재하는 한 볼 수 있는 흔한 식물 다년생초본으로 30~60㎝까지 자라며 根莖은 짧고 흑색인데 地下莖은 곧으며 밀집해서 나온다. 잎은 退化되어 바늘같이 보이며 마디부분을 완전히 둘러싸임으로서 葉草가 되는데 끝은 톱니 모양이고 검정색이나 갈색기가 돈다. 줄기 속은 비어있고 가지를 치지 않으며 많은 마디와 세로 방향으로 패인 8~30개의 가느다란 홈을 가지고 있으며 줄기의 굵기는 5~6㎜ 정도이다.
속새의 원줄기에는 규산염이 있어 딱딱하기 때문에 목재의 연마에 사용해서 “목적(木賊)”이라고 하며, 주석으로 된 그릇을 닦는 데에 쓰여서 “주석초” 라고도 부르고 또 수많은 곁가지가 상자처럼 서로 겹쳐서 속새의 줄기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상자풀” 이라고도 한다.
생약명으로 목적(木賊) 이라고 하는 속새는 여름에서 가을사이에 지상 부분을 베어서 짧게 절단하여 그늘에서 말리거나 햇볕에 말려서 그대로 잘게 썰어서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이뇨작용이 현저하여 신장성 질환에 이용되고 장출혈, 이질, 탈항 등으로 출혈이 될 때에도 사용하였으며 눈에 백태가 끼는 것을 치료하기도 하고 간 기능을 활성화 시키는데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後 略 ---
<출처> 박철종 / 의령군 농업기술센터 시험개발 주무관 (2009-08-05)
경남연합일보 http://www.gnynews.co.kr/news/view.asp?cate=006003&ART_ID=46173
[12] 1136.3봉 직전의 임도「소광, 석포, 전곡」삼거리
휴식을 취하며 후미로 오는 박사장을 기다렸다. 10여분 후 박사장 도착했다. 잡목도 많고 날이 어두어지니 여기서 산행을 접고 임도를 따라 하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게속 진행을 하면 1136.3m봉을 거치지 않고 『삿갓봉』으로 갈 수가 있다고 한다. 1136.3봉을 우회하는 임도가 되는 샘이다.
[13] 「소광, 석포, 전곡」삼거리
임도를 따라 진행하기를 약 40여 분, 차단기가 있는 임도 삼거리에 도착을 했다. 이정표에 「소광, 석포, 전곡」갈라지는 삼거리다. 안개도 짙게 끼고 부슬비가 내리며 날도 어두워져 지척을 분간하기 어렵다. 휴식을 취하며 안교장이 준비해온 빵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랜턴도 꺼내 불을 밝힌 후 『석포』방향 임도를 따라 진행을 한다. 이 길을 따라 가면 차를 세워둔 『샘터 / 반야』마을로 갈 수 있는지를 의심하면서 ---- 약 1 시간여를 임도를 따라 내려 왔는데도 어둠만 주위를 감싸고 있을 뿐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첩첩산골이다.
[14] 산행 후
17 : 00시, 임도 차단기가 있고 아침에 세워 둔 차도 눈에 띈다. 길을 제대로 찾아 왔다. 무사히 도착을 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아니면 긴장이 풀어진 탓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온 몸의 기운이 쭉 빠지는 것 같다. 다른 대원들과 12월에 함께 산행할 것을 공연히 사서 고생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오늘 산행의 목적지 삿갓재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낙동정맥을 빠짐 없이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위안을 삼는다. 박사장 고생 많았고 산행에 함께 동참해 준 안교장, 윤사장 고맙다.
17 : 20분경, 태백으로 이동, 지나 번 산행 뒤풀이를 했던 「경성실비식당」에 들려 이스리로 잔을 부딪치며 오늘 산행을 되돌아 보는 것으로 낙동정맥 3구간(석개재 ~ 답운재) 일부 구간 산행을 마무리 했다.
2009. 12. 7
<참고자료 1> 경북 울진 소광리 금강송림
흔히 우리 소나무의 아름다움을 얘기할 때 늘 첫자리에 올리는 것이 경북 울진의 금강송이다. 굽지 않고 잘 뻗은 훤칠한 소나무 모습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목재의 단단함과 질이 좋아 누대로 명성을 이어왔다. 울진 서면 소광리의 금강송림은 이제 이런 우리 토종소나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숲이다.
소광리는 한여름에도 시원하다. 계곡이 수려해서 생태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솔 숲을 지나온 바람이 등줄기의 땀을 식혀주는 들머리. 계곡에 들어서면 암반을 때리며 쏟아지는 계곡수와 쭉쭉 뻗은 잘 생긴 소나무에 눈을 뺏기게 된다.
소광리 숲은 진조산(908m)과 세덕산(741m) 기슭에 앉아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다. ‘낙락장송’이란 이런 소나무를 두고 얘기하는 것이라는 실감이 난다. 굵은 소나무는 기암괴석보다 더 아름답다. 수백년 세월을 버텨온 소나무는 보는 이의 눈을 매료시키는 미목(美木)이자 가슴을 열어주는 영목(靈木)이다.
금강송은 임금의 관을 짜는 황장목으로 사용됐다. 황장목이란 나무 속이 노란 빛을 띠는 소나무. 소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되면 심이 굳어지면서 빛깔이 노랗게 변하는데 이 노란 나무 심재(心材)를 창자에 비유해 황장목(黃腸木)이라고 했다. 세종실록(1440년)에는 ‘천자의 곽은 황장으로 하는데 황장은 소나무의 속이다. 흰 재목은 습한 것을 견디지 못하여 속히 썩는다’라고 적혀있다. 황장목이 결이 곱고 단단하며 뒤틀리거나 표면이 트지 않고 잘 썩지도 않는 최고의 목재였음을 알 수 있다.
소나무는 예부터 잡귀를 물리치고 액을 막는다는 행운목으로 집에 걸어놓거나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 했다. 때로는 약재로도 썼다. 항암, 해소, 천식에 효과가 있어 민간에서는 솔잎차 등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송홧가루를 약재로 쓰기도 했다.
임금의 관을 만들 때 최고급 황장목을 썼던 것은 그만큼 상례(喪禮)가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 현종·숙종대에는 상복을 얼마나 입을 것인가를 두고 남인·서인이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을 정도. 예(禮)로 나라를 다스렸던 조선이 국왕과 왕실의 상례를 위해 따로 당연히 소나무 숲을 마련했을 것이다.
소광리 2교를 지나면 조선시대에 세웠던 ‘황장봉계표석’(黃腸封界表石)이 보인다. 자연석 표석에는 ‘황장목(黃腸木)의 봉계(封界)지역을 생달현(生達峴), 안일왕산(安一王山), 대리(大里), 당성(堂城)의 네 지역 주위로 하고 이를 명길(命吉)이라는 산지기로 관리하게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표지석에 관리인 이름까지 적혀 있을 정도로 관리가 철저했다. 금강송림이 왕실의 주요 재산이자 국가에서 관리하는 곳이라는 내용은 김정호의 ‘대동지지’나 ‘동여도’에도 나와있다.
일반인들의 출입과 벌목을 아예 금한 봉산(封山) 제도는 숙종때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인구가 증가하고 화전이 늘어나면서 솔숲을 지켜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봉산은 인제·영월 등 여러 곳에서 실시했지만 뚜렷하게 표석이 남은 곳은 남한에서는 원주 치악산, 울진 소광리 계곡 등 모두 다섯 곳이다. 영조 때에는 황장보호림이 경상도에 7곳, 전라도에 3곳, 강원도에 22곳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현재 숲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곳은 소광리뿐이다. 소광리 금강송림은 해방 후 육종림과 천연보호림으로 지정돼 훼손을 막을 수 있었다. 학자들은 소광리숲을 ‘조선 숲의 원형’이라고 말한다.
울진에 금강송림이 보존된 것은 지리적으로는 변방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손이 덜 탄 탓에 울진의 원시림은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었다. 지형적인 영향도 컸다. 이 일대는 물이 잘 빠지며 바위가 많은 사토질. 웬만한 나무는 깊은 뿌리를 내리기 힘든 척박한 땅이었지만 소나무만 굳건하게 자랐다.
여의도 면적의 5배 정도인 소광리 계곡 송림은 30년생부터 500년생까지 다양하다. 전체 4백83만평에 10만그루의 소나무가 울울창창하다. 숲이 울창해서 동물들도 많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산양과 수달, 하늘다람쥐가 서식한다. 담비와 살쾡이도 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맑은 계곡수에는 버들치와 얼음치 등이 헤엄친다.
수백년 세월동안 풍파와 전쟁을 이겨낸 아름다운 솔숲. 소광리에서는 숲의 아름다움과 영험함을 함께 엿볼 수 있다.
〈최병준기자 bj@kyunghyang.com〉
◇여행길잡이
영동고속도로~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풍기IC나 영주IC에서 내려 봉화 가는 국도 36호선을 탄다. 통고산 자연휴양림을 지나면 왼쪽으로 917번 지방도 갈림길이 나온다. 소광리 가는 길이다. 울진국유림관리소(054)783-1009
-강송·곰솔·반송·백송…- ◇알수록 새로운 소나무들
우리 땅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는 누가 뭐래도 소나무이다. 소나무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도 많고, 소나무를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소나무는 크게 강송과 곰솔, 반송, 백송, 리기다소나무로 나눈다. 강송은 단단한 목재용 소나무. 굽지 않고 거침없이 뻗은 나무다. 강송은 금강송, 춘양목이라고도 한다. 금강송이란 금강석처럼 속이 단단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보통 소나무는 단단한 속부분인 심재(心材)가 50% 안팎인 데 비해 금강송은 70~80% 정도 된다. 목재용으로 많이 썼다.
금강송이 많이 자라는 지역은 봉화와 울진, 삼척 등지였다. 55년 개통된 영암선 춘양역을 통해 이 일대에서 벌채한 나무들이 서울로 올라왔다. 다른 지역에 비해 목재의 재질이 좋아 여기서 나온 나무를 춘양목이라고 따로 불렀다. 춘양목은 후에 좋은 소나무를 일컫는 고유명사가 됐다. 강송을 흔히 적송이나 홍송이라고도 부르는 데 나무 빛깔이 붉은 특성에서 나온 말이다.
곰솔은 바닷가에 많이 있는 해송이다. 소나무 중에서도 염분과 바람에 강해 방풍림으로 많이 심었다. 곰솔이란 검은 소나무란 뜻. 다른 소나무에 비해 껍질이 검은 편이다. 일본에서는 흑송이라고 부른다.
백송은 껍질이 마치 비늘처럼 흰빛을 띠고 있다. 가회동 헌법재판소 마당에 수령 600년의 백송이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5그루의 백송 가운데 가장 수령이 오래됐다. 백송이 보통 때보다 더 희게 보이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속설도 있다.
반송은 조경수로 많이 쓰이는 소나무이다. 허리가 굽어 있고 가지침이 자유로워 모양새가 아름답다. 막걸리를 먹고 자란다는 청도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가 대표적인 반송이다. 리기다소나무는 일본산 소나무. 성장이 빨라 목재용으로 많이 쓰는데 소나무 특유의 멋스러움은 없다.
<출처> 계림문화 연구원
<참고자료 2> 쌍전2리(雙田二里)
1. 마을의 자연환경
이 마을은 태백산(太白山) 준령(峻嶺)으로 둘러쌓인 산간오지(山間奧地)이며 산 꼭대기에 있는 마을로, 동쪽에는 진조산맥(眞鳥山脈)이 있고, 쌍전1리, 소광2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서쪽은 광회1리, 남쪽은 광회1, 2리, 북쪽은 소광2리와 접하고 있다.
2. 마을의 역사
1) 갈전(葛田)
1580년경에 가선대부(嘉善大夫) 권태중(權泰重)선비가 칡넝물을 걷어내고 개척한 곳이라 하여 갈전(葛田)이라 부르고 있다. 이 마을은 지대가 높은 고산(高山)분지로서 아침, 저녁으로 안개가 많이 끼고, 고랭지 채소(高冷地 菜蔬)의 재배적지(栽培適地)이므로 채소(菜蔬)와 약초(藥草)의 주산단지(主産團地)다.
2) 승부터(承富基)
옛날에 승불터(承佛터)라 부르다가 승부터(承富터)로 개칭하였다. 조선조말엽에는 의병 (義兵)들이 이 곳에 대장간을 두고 창(槍)과 칼을 만들었다 한다.
1960년대에는 중석광(重石鑛)이 발견되어 아세아중석광업소(亞細亞重石鑛業所)에서 매월 5~6톤의 중석(重石)을 생산하였으며, 광업(鑛業)에 종사하는 인구(人口)가 늘어나면서 수십호의 광산판자촌(鑛山板子村)이 형성되었다. 한때는 광업진흥공사(鑛業振興公社)에서 수십억원의 자금(資金)을 지원받아 대형(大型) 제련장(製鍊場)을 설치하고, 직원사택을 건축하는 등 활기가 있었으나 점차 매장량(埋葬量)이 고갈(枯渴)됨에 광산대표가 몇번 바뀌었으나 모두 실패하고 지금은 시설이 녹슬고있으며 아무도 없는 무인지경(無人之境)으로 변하고 말았다.
3) 넓재(廣峠)
울진시장에 온 상인(商人)들이 내륙지방(봉화군 춘양시장)으로 통하는 12령(嶺) 중의 하나인 재(峠)로, 이 고개에 인가(人家)가 있어 쉬어가기도 하였다.
4) 굴정골(掘穽谷)
옛날 사람들이 산짐승을 잡기 위해 굴정(掘穽)을 파놓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밭은 많이 있으나 땅이 척박하여 모두 떠나고 몇 집만 남아있다.
<참고자료 3> 속새(목적, 木賊)
▶식물명=속새
▶다른이름=주석초,상자풀
▶학명=Equisetum arvense
▶분류=양치식물 관다발식물 속새목 속새과의여러해살이풀
▶속새
식물의 높이는 30~60cm이며. 늘푸른 여러해살이풀로 줄기는 가늘고 긴 기둥 모양으로 가지를 치지 않으며. 줄기 속은 비어 있고 많은 마디와 세로 방향으로 패인 가느다란 능선을 가지고 있음 잎은 퇴화되어 각 마디를 둘러싸고 있는 짧고 검은 막질의 잎집이 되여있고. 잎집에 갈색의 톱니처럼 생긴 것이 10~18개씩 달린다,꽃은 원줄기 끝에 원뿔 모양의 포자낭 이삭이 달리는데 녹갈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하며.뿌리는 땅속줄기가 옆으로 뻗으며 마디에서 잔뿌리가 나온다,같은 속새과에 속하는 쇠뜨기와는 달리 영양줄기와 생식줄기의 구별이 없다. 속새의 잎은 정의상으로는 작은 가지가 납작하게 겹쳐져 잎맥이 많은 대엽이지만, 실제로는 극히 축소되어 줄기 마디에 비늘잎의 형태로 남아 있다. 줄기 속은 비어 있으며 가지를 전혀 치지 않는다.홀씨가 싹터 자라 배우체가 되어 수정이 이루어진 뒤에는 암컷 배우체의 장란기 안에서 어린 배가 발달한다. 배는 상당기간 배우체로부터 양분을 받다가 싹이 트고 광합성을 하면서 영양적으로 독립하게 된다.속새가 습진 곳을 좋아하는 사실로 미루어 속새가 자라는 곳에 수맥이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알고, 우물을 팔 곳으로 속새가 자라는 곳을 선택하기도 하였다. 줄기 전체를 약재로 쓰는데 탈항증과 악성종기의 치료에 사용하며 부종에도 효과가 있다.속새의 줄기에는 규산염이 축적되어 딱딱하므로 나무의 면을 갉아내는 데 쓴다. 속이 비어서 풀물이 들지 않아 예전에는 거친 물건을 닦을 때 이용하였는데 속새가 없으면 지푸라기를 이용하였다. 속새는 석영의 성분이 있어 그릇을 문지르면 부드러워지고 윤이 난다. 말린 속새 줄기로 공예품을 문질러서 부드럽게 광택을 냈기 때문에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들은 속새를 중요하게 여겼다
주석초란= 이름은 속새에 규산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주석으로 된 그릇을 닦거나 광을 내는 데 사용되었기 때문이었다.
상자풀이란= 이름은 속새의 줄기가 수많은 곁가지가 상자처럼 서로 겹쳐서 이루어진 데서 유래한다. 속새는 민간요법에서는 전통이 아주 오래된 약초 중의 하나이다. 중세에는 속새가 인간들의 기관지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기침과 폐의 질환에 효과가 뛰어나다고 믿기도 하였다.
▶효능
'맛은 달고 쓰며 성질은 평하다 간질환.신장결석.눈의 백태.설암.간암.이뇨작용 탁월한 항암약초로 전초에 규산17%, 카페산, 페놀라산, 수지, 정유, 점액, 니코틴 등, 아미노산 12%(간기능항진에 좋은 메티오닌, 아스파라긴산, 글루타민산), 탄닌, 소량의 사포닌이 있다.폐, 간, 담경에 들어가며 소풍산열하고 해기퇴옹하는 효능이 있다. 목생운옹, 영풍유루, 장풍하혈, 적리, 탈항, 학질, 인후통, 부스럼을 치료한다. 눈병을 치료하고 간과 담을 보익하며 시력을 아주 좋게 한다.집짐승이 속새나 속새과 식물을 먹으면 비타민B 결핍중독증상을 나타냅니다.이것은 비타민 B1을 파괴시키는 성분이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전초추출액은 수렴작용, 지혈작용, 리담작용, 간의 해독작용, 이뇨작용, 열물내기 작용이 있다. 동물실험에서 위, 간, 혀 암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황달과 만성간염에 쓸 수 있습니다. 이뇨약, 지혈제로 방광염, 혈뇨, 뇨실금, 만성요도염, 에 씁니다. 월경과다, 치질, 장출혈 등에 마디를 잘라버리고 달임약을 만들어 하루 20g 정도를 쓸 수 있습니다.치질이나 결막염엔 전초를 달여서 씻는다.치질, 붕루 등에 해열, 소염, 지혈약으로도 처방한다, 아무 때나 뜯어서 그늘에 말려 사용한다
간의 독풀이․속새는 간장에서 만들어진 담즙(소화액)을 잘 나오게 하는 작용이 있으며 또한 간에 축적된 독기운을 풀어헤치는 기능을 돕는 작용을 가지고 있다. 이 작용은 알코올 추출액(술에 담근 것)보다 물 추출액(달임약)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따라서 만성 간염과 간경화에 속새 달임약이 좋다.
눈앓이 치료․그리고 지혈작용이 있어서 장출혈, 치질출혈, 월경과다, 혈뇨, 기타의 출혈에 쓰인다. 특히 속새를 달여서 눈을 자주 씻으면 눈병에 좋다는 평이 나와 있다. 안막이 눈자위를 가리는 눈병(예막), 공연히 눈물이 자꾸 나오는 증세, 여러 눈앓이 치료에 좋으며 눈을 밝게 한다고 한다. 속새80-100g에 4-5배 양의 물을 붓고 약한 불에 달여 얻은 달임약으로 눈을 자주 씻는다. 눈의 염증을 잘 낫게 한다
그 이외에 만성요도염, 방광염, 두통, 젖앓이, 폐결핵, 목구멍앓이, 가슴앓이, 이뇨장애, 요실금(오줌이 마렵지도 않은데 무의식적으로 소변이 나오는 증세) 등에 약용한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황달 치료약으로 쓰인다고 한다. 많은 양을 쓰면 중독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하며, 하루에 4~12g 정도 약용한다. 탈황에는 속새 온포기 태운 재를 참기름에 개어 6회 엷은 헝겊에 싸서 빠져 나오지 않게 항문에 밀어 넣어둔다....
속새의 성분 중의 하나인 규산은 옛 문헌에 의하면 염증이 자연적으로 치료되는 과정을 촉진한다. 그러므로 박테리아성 또는 염증성 질환의 치료에 속새를 이용할 수 있고 또한 신장결석의 치료에도 좋다. 염증의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서 속새를 외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장출혈·이질·탈항 등으로 출혈이 될 때에도 쓰인다. 눈에 백태가 끼는 것에 사용하면 좋다. 간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데도 좋으며 그리고 최근 속새류는 설암이나 위암 간암에도 좋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있다. 미국의 캐스케이드산지의 인디언은 달인 즙으로 머리를 감아 이를 없애고, 땅속줄기의 즙은 눈병의 치료에 이용한다
혀가 굳으면서 피나는 증상의 치료에는 "속새를 달인물로 양치질 한다."월경이 멎지 않는 증세의 치료에는 "볶은 속새 12그램을 물 한 컵에 넣어 7할이 될 때까지 달여서 하루에 1회씩 따뜻할때 복용한다
눈이 어둡고 눈물이 많이 나는데의 치료에 관해서 중국의 <태평성혜방>에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마디를 제거한 속새 40그램, 쌀을 씻은 물에 담근 창출 40그램을 함께 가루내어 1회에 8그램씩 찻물로 복용한다. 또는 꿀로 환제를 만들어 복용해도 좋다."
멎지 않는 혈리의 치료에 대해서는 "속새 20그램을 달여서 하루에 1회씩 따뜻할때 복용한다
황달과 만성 간염에 쓴다. 또한 이뇨약, 지혈약으로 물고임.방광질병, 피가 섞인 오줌, 요실금, 만성 요도염, 방광염에도 쓴다
동의치료에서는 월경과다, 치질, 장출혈에 마디를 잘라 버리고 달임약을 만들어 쓴다. 하루 10-25g씩 먹는다.
민간에서는 전초를 물에 달여 치질과 눈앓이에 세척약으로 쓰며 류머티스성 관절염에 진통약, 땀내기약으로 쓴다. 그리고 폐결핵과 목구멍앓이 가슴앓이에도 쓴다. 헤르니아와 두통에 진정약, 진통약으로도 쓴다. 속새 우림약은 황달에 쓰며 그밖에 입맛적기, 궤양, 종양 젖앓이에도 쓰는데 많은 나라에서는 주로 황달 치료약으로 쓴다. 달임약, 속새고, 속새단물약, 속새환을 만들어 쓴다.
▶부작용 및 주의사항
속새를 이용한 치료는 기본적으로 이뇨작용에 의한 것이므로 다량의 수분섭취가 필수적이다.다만 심장이나 신장의 이상으로 인한 부종에는 사용을 하지 말아야 한다
주의사항으로 <중약대사전>에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기혈이 허한 환자는 복용에 주의해야 한다. 안질이 노기 및 서열상혈로 인해 갑자기 빨갛게 붓고 아픈 환자는 사용하면 안 된다. 대량으로 복용하면 간을 손상하기 때문에 장기간 복용하면 안된다. 대량으로 복용하면 눈에 종기가 발생한다. 만성옹 및 혈허한 환자는 복용하지 못한다,약리작용은 혈압강하 작용, 소염 작용, 수렴 작용, 이뇨 작용, 심장 기능 강화 작용, 관상 동맥 혈류 촉진 작용이 입증되었다. 임상보고에서 우피선, 규폐증에 효력이 있고, 유행성 감기, 황달형 간염, 결막염, 신우신염, 요로결석, 소변 출혈 등에도 효과가 입증되었다
<출처> 인류의 열매
http://blog.daum.net/limyh2002/15972536
※※※ 속새 ※※※
○ 양치식물 속샛과의 상록 여러해살이풀. 줄기는 높이가 30~60cm이고, 가운데가 비었으며 가지는 없으나 마디가 뚜렷하다. 마디마다 퇴화한 잎이 있으며 홀씨주머니 이삭이 줄기 끝에 맺힌다. 줄기는 규산염이 들어 있어 뿔, 목재로 만든 기구를 닦는 데에 쓴다. 그늘진 습지에서 자라는데 한국, 일본, 캄차카, 만주, 시베리아, 히말라야, 유럽, 북아메리카 등지에 분포한다.
○ 별명 : 목적(木賊) = 속새과에 딸린 늘푸른 여러해살이풀
속새는 습한 그늘에서 자란다. 높이 30∼60cm이고 짙은 녹색이며, 땅속줄기가 옆으로 뻗으면서 모여 난다. 뚜렷한 마디와 능선이 있고 잎은 퇴화하여 잎집 같다. 잎집에 톱니처럼 생긴 것이 잎이며 10∼18개씩이다. 잎집의 밑 부분과 톱니는 갈색 또는 검은빛을 띄운다. 포자낭 이삭은 원줄기 끝에 달리고 원뿔 모양이며 녹갈색에서 황색으로 변한다.
속새 줄기 전체는 약재로 쓰이며 목적(木賊)이라 부른다. 줄기에 다량의 규산염을 함유하고 있고 그 외에 에퀴세틴 성분이 들어 있다.
해열, 이뇨, 발한, 소염 등의 효능이 있어서 대장염, 장출혈, 인후염, 안질 등의 증세를 치료하는데 쓰이고 그 외 탈항증, 악성종기, 월경과다, 지사제로 쓰인다.
탈항에는 속새 온포기 태운 재를 참기름에 개어 엷은 헝겊에 싸서 빠져나오지 않게 항문에 밀어 넣어둔다.
내복할 때는 말린 줄기를 1회에 2 ~ 4g씩 달여서 복용하든지 가루로 복용한다. 다량 복용하면 설사를 하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외상의 치료에는 약재를 가루로 만들어 환부에 바른다. 치아를 뺀 자리에 출혈이 심하면 속새를 진하게 달여 오랫동안 입 속에 머금고 있으면 좋고, 혈뇨 증세에는 끓는 물에 속새를 넣어 우러나온 물을 복용한다.
속새목 속새과의 상록성 양치식물.
높이 약30cm~60cm. 줄기는 원통형이고 분지하지 않으며 진한녹색이다.
포자낭이삭이 줄기 끝에 달린다. 줄기에는 다량의 이산화규소가 함유되어 있어 단단하며 목재나 금속 연마에 이용된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약용되어 왔으며, 특히 이뇨작용이 현저하여 신장성 질환에 이용되고 장출혈·이질·탈항 등으로 출혈이 될 때에도 쓰인다.
눈에 백태가 끼는 것을 치료하기도 하며, 간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 속새류는 설암이나 간암에도 효과가 있다는 보고가 있다.
미국의 캐스케이드산지의 인디언은 달인 즙으로 머리를 감아 이를 없애고, 땅속줄기의 즙은 눈병의 치료에 이용한다. 원예용으로 정원에 심는 경우도 많다.
산속 계곡의 물가에서 많이 볼 수 있고 습지에서 자란다. 한국·일본·중국·시베리아·유럽·북아메리카 등지의 북반구 습지대에 널리 분포한다.
♠ 탈황에는 속새 온포기 태운 재를 참기름에 개어 6회 엷은 헝겊에 싸서 빠져아노지 않게 항문에 밀어 넣어둔다.
▶속새
식물명--속새
학명--Equisetum hyemale
과명--속새과
생약명--목적(목적)
이명--절골초(절골초), 목적초(목적초)
분포--전국에 분포
생지--산, 들의 음지
키--30~60cm
분류--여러해살이 상록초본, 양치류
번식--분근 번식
약효--온포기
채취기간--여름~가을
취급요령--그늘에서 건조
성미--평온하며, 달고 쓰다.
독성여부--없음
1회사용량--온포기 4~6g
사용범위--치유되는 대로 중단한다.
잎--흑갈색 또는 녹갈색이고 줄기의 각 마디에 돌려나는데 퇴화한 비늘 같은 잎이
서로 붙어 마디 부분을 완전히 둘러싸 잎집으로 되고 끝이 톱니 모양이다.
포자--포자낭이삭은 타원형이며 줄기의 끝 부분에 1개씩 달리는데 처음에는 녹갈색이다가 황색으로 변한다.
특징 및 사용방법--땅속줄기는 옆으로 뻗으며 지면 가까운 곳에서 여러 개로 갈라져 나오기 때문에 여러 줄기가 모여나는 것처럼 보인다. 땅위줄기는 속이 빈 원통형이다. 줄기는 규산염을 많이 함유하여 딱딱하기 때문에 뼈/뿔/목재로 만든 기구를 문질러 닦는 데 쓰인다.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거나 환제, 산제로 하여 사용한다. 주로 안과, 순환계 등의 질환을 다스린다.
▶증상별 적용 및 복용법
◈거담(祛痰): 온포기 4~6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이거나 산제로 하여 1일 2~3회씩 3~4일 복용한다.
◈명목(明目): 온포기 4~6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1주일 정도 복용한다.
◈부인붕루(婦人崩漏): 온포기 5~6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1주일 정도 복용한다.
◈안검연염(眼檢緣炎): 온포기를 달여서 그 물을 1일 3~5회씩 3~4일 환부에 발라준다.
◈간암(癌): 온포기 5~6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10일 이상 복용한다..
◈옹종(癰腫): 온포기 태운 재를 참기름에 개어서 1일 2~3회씩 환부에 바른다.
◈이뇨(利尿): 온포기 4~6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이거나 환제 또는 산제로 하여 1일 2~3회씩 1주일 정도 복용한다.
◈인후통증(咽喉痛症): 온포기 5~6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3~4일 복용한다.
◈자궁출혈(子宮出血): 온포기 4~6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이거나 환제 또는 산제로 하여 1일 2~3회씩 4~7일 복용한다.
◈장염(腸炎): 온포기 5~6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3~4회 복용한다.
◈치질(痔疾): 온포기 4~6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1일 2~3회씩 2~3일 복용하면서
줄기를 태운 재를 참기름에 개어서 1일 3~4회씩 3~5일 환부에 갈아 붙인다.
◈탈항(脫肛): 온포기 태운 재를 참기름에 개어 5~6회 엷은 헝겊에 싸서 빠져 나오지 않도록 항문에 밀어 넣어 둔다.
◈해열(解熱): 온포기 5~6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이거나 환제 또는 산제로 하여 4~5회 복용한다
<출처>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편안한 쉼터
|
첫댓글 고생하셨습니다. 겨울이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