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의 마지막 단계
행복한 인간이란
자기 인생의 끝을 처음과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괴테)
눈썹을 그려 놓고 안경을 써 본다.
그리고 그려 넣은 눈썹의 좌우 균형이 맞았는지 평가해 본다.
거울 가까이에 얼굴을 바싹대고 진회색 눈썹연필을 골라 똑같이 힘주어
그렸음에도 한 쪽은 꼬리가 약간 올라간 듯,
고르지 못하게 진한 부분과 연한 부분이 꼭 생긴다.
워낙 눈썹이 고르지도 못하고 진하게 선이 있어주지도 않기에
한 10여 년 전 미용실에 얼굴을 맡겨 눈썹문신을 박았다.
그 이후로는 눈썹을 그리는 일에는 아주 쉬워졌다.
그런데 입술라인역시 남들보다 선명하지가 않아서 화장을 하는 과정 중에
입술을 그리는데 가장 긴장을 하고 신경을 쓰는 편이다.
또한 입술은 옷 색깔에 따라 또는 날씨에 따라 립스틱 색깔을 바꾸어
칠할려다 보니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화장을 잘 해내도 미인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기에
자연스럽게 화장을 최소화하는 대신 작은 피부 트러블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고 늘 맑은 얼굴을 유지하려 애쓰는 편이다.
내가 화장을 시작한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요즘 아이들이야 초등학생들도 나름대로 화장술을 터득하여
고등학생쯤 되면 자기만의 개성 있는 화장으로 뽐내기도 하지만 아마도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으니 20여년은 되었으리라.
그렇게 따져도 이제는 내 얼굴에 화장하는 것만큼은 도사가 되어 있어야
마땅한데 늘 서툴기는 마찬가지다.
입술을 그릴 때는 언제나 윗입술부터 라인을 그린다.
화장의 마무리 단계에서 입술을 그리다 보니 혹여 잘못 그려지기라도 하면
지우기는 엄두도 못 내고 미완성의 화장처럼 만족하지 않지만
그대로 끝낼 수밖에 없을뿐더러 그렇게 완벽한 입술화장을 못한 체
외출을 하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까지 잘못된 입술라인에 신경이 쓰인다.
좀더 어렸을 때는 사계절을 거의 커피색을 칠했었는데
점점 나이가 들면서 핑크에 가까운 색깔을 골라 칠하는가 하면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는 빨간 립스틱이라도 바르고 나면
얼굴에 화색이 돈다.
이렇게 입술에 유독 강조해가는 내 화장법에 내 가까운 친구는
“입술만 둥둥 떠 있다”라고 놀린다.
그래도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라면
화장하고는 무관하게 얼굴 분위기가 맑다.
작년 이맘 때 남편의 건강이 좋지 않은데다 딸아이의 건강과
어수선한 집안일로 신경을 쓰다보니 미쳐 화장을 할만한 여유도 없었거니와
정성들여 화장을 하고 나서 한 두 시간만 지나면 얼굴 따로 화장품 따로
그야말로 둥둥 떠다니는 내 얼굴을 보면서 마음이 평화로울 때
아름다움을 유지하기에 가능함을 느꼈다.
고운 모습으로 살고 싶고 멋진 모습으로 살고 싶은 건 인간의
기본 욕망이다.
주름살이 가득한 모습으로 부슨 멋을 부리느냐 하는 것은
아직 본능의 욕망이 숨어 있다는 것을 엿보게 한다.
가끔은 주위를 의식해 욕망을 애써 감추려는 마음은 있지만
예쁘게 꾸미고 아름답고 싶은 마음이야 다 같은 우리네 마음들이 아니던가.
가끔 게으름 때문에, 또는 일상이 복잡하다거나, 집안일이 편치 않을 때
얼굴에 바르고 그리는 화장하는 일이 정말 안 될 때가 있다.
그러나 살다보면 그것만이 꾸미는 방법의 최상이 아님을 알게 될 때
“아 이래서 평생을 화장을 해도 늘지도 않으며 내 얼굴하나 꾸미는데
도사가 되지 못하는가 보다“라는 생각이 든다.
내 자신을 가꾸는 일만큼 마음이 곱지 않아서 아쉽긴 하지만
예쁘기도 하면서 마음마저 곱다면 그야말로 최상의 삶일 것이다.
그렇다
이제는 아무리 뛰어난 화장법으로 내 얼굴하나 잘 그려내도
그다지 표가나지 않은, 이제는 이미 늙어가는 얼굴이니
차라리 그냥 지나칠 뻔한 들꽃 한 송이에도
감동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고 겉모습 보다는 따스한 정이 흐르는
마음 밭을 가꾸는데 애쓸 일이다.
그리고 가족들의 의복을 세탁할 때 마지막 피존 한 방울의 향기처럼
내 화장의 마지막 단계에 멋스러운 향수 한 방울 찍어 내는 일 또한
잊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