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공연이 마치고 일주일, 이제야 공연의 마무리가 되어 가는 때. 그 지난 토요일에 우리 공연팀과 극장식구들은 다같이 유미리 작, 극단 백수광부의 ‘그린타임’을 보았다. 공연때 빌린 의상들을 세탁소에 맡기고 의상을 빌려준 극단의 창고를 청소하다 공연 시간에 맞추어 마로니에 공원으로 나갔다. 대략 10명쯤 되는 우리 인원이 다모여 공연장에 입장했을땐 이미 공연 시작을 알리는 타종이 울리고 있었고 우리처럼 늦게 입장하는 관객들이 많아 공연 시간은 약 10분정도 늦게 시작되었다.
처음 맞이한 것은 간결하면서 이동공간이 넓고, 파스텔톤 멜랑콜리한 분위기의 무대.
그리고 공연은, 정말 너무나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호흡을 일순 집중시키며 극 속으로 끌여들였다. 살짝 바뀌는 조명과 저 먼곳에서 들려오는 듯, 무대의 안쪽 나무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듯한 자연음과 서정적인 음악이 공연장의 소란스러움과 산만함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잠재웠다. 기획의 인사가 군더더기라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무대에서 더운 여름이 내리쬐었다. 나지막한 예수정씨의 목소리, 엄마의 잘 알 수 없는 말들은 몰입을 더 한층 시켜주면서 테니스를 주고 받는 남녀의 역동적이고 눈을 땔 수 없는 동선과 맞물려 극 속의 세계가 순식간에 피어났다. 초반엔 이 가족의 분위기가 소개된다. 딸보다 더 소녀같은 엄마, 그 여리고 엉뚱함. 친절하고 건장하나 어딘가 모르게 약하고 우유부단한듯한 아들, 이 두 모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이질감을 보이며 강한 듯 약한 딸.
누나와 남동생은 테니스를 치는데 누나가 줄곧 리드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엄마의 근황, 그리고 아빠에 대해 얘길하는데 엄마가 앞에 있는데도 못듣는 상황은 무대에서 거리감의 약속을 보여준다. 시선이 앞인데도 등 뒤에서 하는 테니스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연기를 하는 엄마는 정말 릴렉스하면서도 풀어있지 않고 무엇엔가 끊임없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 연기가 정말 자연스럽고 좋았다. 타이밍도 서로 절묘하게 잘 맞아 떨어졌고.
말로 갈등의 극이 치닫는 모습이 좋았다. 첨예한 순간에서 살짝 비껴가는 양보, 혹은 숨김, 다 말하지 않음. 이런 것들이 극의 종반부로 가면서 (아, 하나 재밌는 것은 무대위에 구름이 떠다니는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극의 러닝타임동안 천천히 주욱 움직인다. 극의 시간적 경과를 알 수 있음) 하나씩 드러나는데 딸이 외지에 있으면서 터지지 않고 곯아가기만 했던 가족내의 갈등들이 하나씩 터진다. 부녀가 함께 잤다는 말을 엄마 입으로 듣는 딸의 심정이란.. 중반이 지나 후반쯤에 등장하는 엄마의 젊은 애인은 또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는데 조금 아쉬운건 그냥 그것을 화자의 입으로 술술 말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극의 긴박감을 조성하는데 일임하지만 그 순간 그는 다 빼주고 남는게 없는 인물이 되어버리는 느낌이었다. 내가 가장 이해가 안되던 때는 이 이후였는데 젊은 사내를 비웃는 모녀는 이해할 수 있었으나 그 뒤 엄마의 ‘이젠 놓치지 않겠어’의 대사나 모녀가 사내를 죽이기까지 가는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 무대는 네모난 틀이 다 깨어지면서 아들이 모녀를 신고하는 것으로 끝난다. 긴 공연이었지만 계속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쫒고 작가의 상징성이나 말하고 싶은 것을 추리해가며 공연을 보는게 너무 재밌었다. 우리 일행은 학교로 돌아오는 길 내내 의견이 분분했다..
첫댓글 지금 보니까... 형! "그린타임"을 보셨던 게로군요! ㅋㅋ 모에요~? ㅎㅎ
앗... 그때 매직타임하고 얼마 안됐을때라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