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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양주(家釀酒) 빚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묵향(지명진)
[그녀들은 왜 양조장을 덮쳤나?] 4화. 풍문으로 들었소, 서울의 술 '삼해소주'
주접 외 2명 2015.04.21
"그날은 해일인데
삼해주 안 빚으세요?"
지인들과 함께 술을 빚으려고 술 빚는 공방을 예약해 두었는데 확인 전화가 왔다.
삼해소주
정해진 날짜에 빚어야 하는 술, 삼해주
삼해주는 정월 첫 해일(亥日, 돼지날)을 시작으로 빚는 술이다. 올해 첫 번째 해일은 2월 28일(음력 1월 10일)이었고, 십이지를 따라 이후 12일마다 해일이 돌아온다. 해일에 세 번에 걸쳐 빚는다고 삼해주(三亥酒)라 이름 붙었다.
12일마다 길게는 36일마다 고두밥과 누룩을 섞어 덧술을 한다. 술 익는 기간이 백 일이 걸린다고 하여 백일주라고도 불렀다.
술은 그 빛이 맑고 밝은 것을 좋은 것으로 친다. 십이간지 중 마지막 동물인 돼지의 피는 맑고 그 색이 선명하다. 삼해주는 돼지의 피처럼 그 빛깔이 맑고 좋은 술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며 돼지의 날 빚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또한 삼해주는 유서주(柳絮酒)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도 불렸다. 한겨울에 담아 장기간 발효 숙성해 버들가지가 날릴 때쯤 마신 술이라 붙은 운치 있는 별명이다.
삼해주가 익어가는 항아리. 쌀로 죽을 쑤어 누룩과 섞어 밑술을 만든다. 첫 해일이 오면 숙성된 밑술에 고두밥과 누룩과 섞고 숙성한다. 이 과정을 해일마다 두 번 더 반복한다.
삼해소주. 세 번의 덧술을 마치고 술이 익으면 증류해 투명하고 맑은 소주를 얻는다.
삼해주는 조선초기에 간행된 태평한화골계전(1420~1488)에 등장하며 고려시대부터 마셨을 것이라 추측한다. 삼해주를 만드는 법은 음식디미방, 주방문, 산림경제, 임원십육지, 양주방, 동국세시기 등 조선시대의 20개가 넘는 문헌 속에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쌀을 옥같이 귀하게 여겼다. 삼해주는 쌀로 세 번 덧술을 하는 술인 만큼 지방보다 서울에서 더욱 애음되는 귀한 술이었다.
기온이 낮은 겨울에 술을 빚으면 발효와 숙성 기간이 길어져 향이 좋아지며 덧술을 하면서 술의 알코올 도수는 높아진다.
조선시대 금주령과 삼해주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영조 9년(1733년)에 금주령이 내려졌다. 도성의 쌀값이 뛰어 품귀 현상이 벌어졌는데 형조판서 김동필이 "곡식을 소비시키는 것으로 술보다 더 심한 것이 없으니 엄중히 금지해야 한다"고 청했다.
영조 40년에 금주령은 날로 엄해졌으나 범하는 자가 그치지 않았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병조판서 박상로는 종묘와 사직에 술을 쓰지 않는 것은 예절에 위배되고 금주제를 어긴 이를 위한 형벌과 옥사가 남용되고 있으니 금주령을 폐지하자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쌀로 술 빚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금주령을 어기는 사람도 많았고 금주령에 맞서 술의 쓰임을 인정하자는 의견이 팽팽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삼해막걸리, 삼해약주, 삼해소주 (왼쪽부터)
마포나루는 조선시대 전국의 물자가 들어오는 곳이었다. 물자가 쌓이고 돈이 몰리는 곳에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 술을 빚어 파는 곳이 많았다.
마포의 공덕 일대는 사대문과도 가깝고 찾는 사람이 많아 삼해주가 대량생산되었다. 삼해주는 정월 첫 해일에 빚어야 하는 까닭에 그 수요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겨울에는 옹기를 굽지 않은 가마를 이용해 술을 빚었으며 마포 공덕동 일대의 소주를 빚어 파는 곳이 100여 호가 넘었다고 한다.
조선말에 삼해주는 크게 유행했는데 집에서 쓸 술뿐 아니라 판매 목적으로 생산했다.
그 당시 삼해주를 빚는 데 들어가는 쌀이 연간 1,000섬(약 80,000kg)에 달했다고 한다.
그 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1909년 일제가 시행한 주세법은, 주막이나 식당에서 소주를 빚어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장부기장 의무를 들어 많은 양조장을 강제 통폐합했다. 민가에서도 허가 없이 소주를 내리지 못하게 됐다.
증류식 소주는 그나마 1950년대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1965년 양곡관리법 발효로 증류식 소주에 쌀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또 다시 큰 시련을 맞았다.
사용이 금지된 쌀 대신 고구마를 원료로 소주를 만들기도 했지만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고 그 자리는 가격이 저렴한 희석식 소주가 차지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후 주류면허를 개방하고 전통문화 보전과 전수를 위해 민속주를 지정, 소주제조에 쌀 사용이 허용되었다.
서울송절주, 향온주, 삼해약주, 삼해소주는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술이다.
서울송절주는 신선한 소나무 가지의 마디 삶은 물을 이용해 빚는다. 봄에는 진달래꽃, 가을에는 국화를 넣고 겨울에는 유자껍질을 매달아 술에 향기를 더한다. 서울송절주는 소나무가 뜻하는 의미 덕에 선비들이 아끼던 술이다.
향온주는 녹두로 만든 독특한 누룩으로 빚는다. 대궐에서 쓸 술을 빚던 양온서에서 어의들의 처방을 내려 빚었다.
정월의 첫 해일을 시작으로 해일마다 세 번에 걸쳐 빚는 삼해약주, 그렇게 빚은 삼해주를 증류한 삼해소주는 서울을 대표하는 술이다.
삼청동로9길에 자리 잡은 삼해소주가
삼해소주 기능보유자 김택상 장인
이 술들은 무형문화재로 전수되고 있으나 상업화 되지 않아 직접 빚지 않는 한 마셔볼 기회를 갖기는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삼청동에 자리 잡은 삼해소주가는 특별하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8호 삼해주 소주장인 이동복 여사의 아들인 삼해소주 기능보유자 김택상 장인이 삼해주 빚는 법을 직접 가르치고 제조하는 곳이다.
삼해소주 익어가는 곳, 삼해소주가
서울삼해주는 김택상 장인의 집안에 내려오는 가양주다.
증조부인 김윤환 공(公)은 호조참판을 지냈으나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벼슬을 버리고 서울에서 충남 보령으로 낙향했다. 며느리에게서 며느리에게로 전해내려 온 삼해소주는 모친인 이동복 장인이 이어 빚었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유행한 삼해소주를 문화재로 지정해 그 가치를 보존하자는 움직임이 일어 1993년 삼해소주는 서울시무형문화재 제 8호로 지정됐다. 형제가 여섯이나 되지만 선뜻 나서는 며느리가 없자 손재주가 좋고 술에 가장 관심 많던 김택상 장인이 가업을 잇기 위해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에게 술 담그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삼해막걸리. 알코올 도수 약 12도. 식욕을 돋우는 산미가 느껴진다.
막 내린 삼해소주와 1년 이상 숙성한 삼해소주를 비교시음. 목을 타고 넘어가는 부드러움의 차이가 드러난다.
삼해소주가는 우리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열린 공간이다. 삼청동을 지나다 궁금해서 들렀다는 공릉동 사는 신은별 씨. 시음을 함께 했다.
2014년 가회동 북촌민예관에서 삼청동으로 자리를 옮겨 삼해소주가는 다시 문을 열었다. 그는 공방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전통을 이어가려면 사람들이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술에 관심갖게 하는 방법이 뭘까 고민한 결과 일반인 자신이 직접 술을 제조해보고 마셔보는 체험을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장인은 삼해소주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술빚기를 가르치고, 술을 나누고, 우리의 술과 전통문화를 외국인에게 소개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온고지신에서 법고창신
삼해소주도 수난의 시기가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집에서 술 빚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제사에 올릴 정도의 술만 몰래 빚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당시 광천에서 부모님이 운영하는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제조하고 있어 누룩을 구하기 용이했고 밀주 단속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삼해소주를 빚는 해일이면, 누군가 다녀가기 전의 첫 물을 뜨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준비하던 어머니가 떠오른다고.
당시 어머니가 술빚는 또 다른 풍경은 삼해소주를 내린 후 술독을 땅에 묻어 숙성하고 손님이 오셨을 때 꺼내 대접하던 모습이다. 숙성 기간을 거치면 술의 화근내는 사라지고 맛이 더욱 부드러워졌다.
김 장인은 어머니의 손맛을 재현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전해줄 또 다른 술을 빚고 있었다. 고로쇠수액을 이용한 술빚기와 이화주가 그것이다.
옛 것을 익혀야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넘어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은 김 장인의 요즘 화두다.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현재의 시점을 갖고 다음 세대와 소통하지 못한다면 그저 과거에 머물러 있다 이내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한 예로 떠먹는 술인 이화주를 외국인에게 선보였더니 한국에 이런 술이 있냐며 신기해 하더란다. 에피타이저와 디저트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장인. 우리가 찾은 날엔 마침 이화주가 다 떨어져 맛보여주지 못함을 못내 아쉬워했다.
제조방식에서도 그는 법고창신의 정신을 적용한다. 소주를 빚는 데 반드시 직접 딛은 누룩을 사용하거나 소주고리로만 증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어떤 재료를 쓰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설명할 수 있고 더욱 좋은 술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면 굳이 전통방식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김 장인의 주량과 열정은 여느 젊은이 못지않지만 어느덧 환갑을 넘긴 나이다. 이제 삼해소주의 다음 세대를 준비할 때다. 우리술에 대한 열정과 전통에 대한 애정으로 술을 빚고는 있지만 사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무형문화재를 전수 보전하기 위한 인력 지원 정책은 존재하지만 그 금액은 교통비와 식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 작업 환경을 만들고 보존하는 일은 장인의 몫이라고 해도 판매와 홍보는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장인은 큰 전시나 이벤트 때에만 관심을 갖고 정책 방향과 담당자가 자주 바뀌는 등 전문적 관리가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을 아쉬워했다. 우리 문화를 지키려는 장인들의 살림살이는 어려워지는데 책임감만으로 전통문화의 맥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술의 도수를 측정하는 주정계의 이치를 설명하고 있는 김택상 명인. 알코올은 78도에서 끓는다. 물질마다 다른 끓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 증류의 원리다. 이렇게 증류한 소주를 한 번 더 증류한 것을 환소주라고 부른다. 두 번 증류하면 더욱 높은 도수의 소주를 얻을 수 있다. 증류한 술을 메스실린더에 채워 비중계로 수치를 읽는다. 이날 잰 삼해소주의 도수는 무려 70.2도.
삼해주가 익어가는 술항아리. 한참 발효 중인 술 항아리에서 술 익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세 번째 덧술을 마치고 익은 술을 세 번 걸러 소주를 내린다.
한지로 인형을 접고 있는 장인의 섬세한 손길.
삼해소주를 만들 항아리에 세 번째 술덧을 하고 술이 익으면 세 번을 걸러 소주를 내릴 술을 준비한다.
처음에는 굵은 망, 두 번째는 중간 굵기의 망, 세 번째는 고운 망을 거친다. 맑은 청주를 써서 소주를 내리면 맛은 좋아지지만 받을 수 있는 소주의 양이 줄어든다. 세 번 술을 거르는 작업은 마시는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작업이다.
당을 분해해 술을 만드는 것은 효모가 하는 일이고 사람의 일은 효모가 제 일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번거로운 작업을 귀찮아하지 않는 장인의 손, 술 한 잔에 깃든 정성을 읽는다.
모두가 한껏 취기가 올라 목소리가 한 톤씩 높아질 무렵 김택상 명인은 조용히 선반에서 한지를 꺼내 결을 따라 자르고 접어 꼬기를 반복했다.
10분쯤 지났을까, 손가락 두 마디보다 작은 한지 인형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소주를 마시던 잔에 쏙 들어가는 이 아이를 삼해소주 요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함께 산책하다 마주친 꽃을 반지로 꼬아 손가락에 껴주는 손길만큼이나 감동적이다.
자신의 술을 맛있게 마시는 애주가를 위해 한 뼘 길이의 한지 조각으로 인형을 접는 낭만풍류 장인의 손으로 빚은 술.
"어떤가,
마셔보고 싶지
아니한가?"
* * *
술 쫌! 말아본 술짠이 제안하는 삼해소주 칵테일 레시피
봄날의 연애편지 봄도녀
아름다운 술자리는 주량에 상관없이 모두가 즐거워야 하는 법. 장인이 증류한 삼해소주의 향기를 음미해 보고 싶지만 알콜도수 40도가 부담스러운 연인과 친구에게는 칵테일을 만들어주자.
가정에서 손쉽게 만들 수 있어 부담 없고, 무더운 날에는 얼음을 가득 넣어 안주 없이 가볍게 즐기기도 좋다. 은은한 봄빛과 화사한 붉은 컬러가 사랑스럽다.
용량을 재는 지거가 없는 경우 소주잔을 이용한다. 60% 정도를 채우면 약 1온스(30ml)가 된다.
봄날의 연애편지
재료 : 삼해소주, 매실주스, 스위트앤샤워믹스, 토닉워터, 오렌지 1조각, 얼음
1. 얼음을 반쯤 채운 잔에 삼해소주 1.5온스를 붓는다.
2. 매실주스 2온스, 스위트앤샤워믹스 1온스를 붓는다.
3. 토닉워터로 8부 가량 채우고 오렌지 장식을 한다.
칵테일 재료 및 과정사진
'봄날의 연애편지' 칵테일 완성!
봄도녀 (봄의 술꾼도시처녀들)
재료 : 삼해소주, 석류주스, 코엥뜨로, 토닉워터, 슬라이스 레몬 1조각, 얼음
1. 얼음을 반쯤 채운 잔에 삼해소주 1.5온스를 붓는다.
2. 석류주스 2온스, 코엥뜨로 0.5온스를 붓는다.
3. 토닉워터를 8부 가량 채우고 슬라이스 레몬 장식을 한다.
칵테일 재료 및 과정사진
'봄도녀 (봄의 술꾼도시처녀들)' 칵테일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