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와혁신> 2020년 12월호
- 먼저 <참여와혁신> 독자들에게 『아, 전태일』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맹문재 : 이 책은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기념해서 안재성 소설가,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박광수 영화감독, 윤중목 시인 겸 영화평론가, 그리고 제가 동참해서 간행했습니다. 안재성 소설가는 전태일의 부산 생활, 대구 생활, 가족 사항, 평화시장 노동자로의 생활, 바보회 및 삼동회 운동, 분신하기까지의 생애를 약전(略傳)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이병훈 교수는 ‘전태일과 한국 사회’란 주제로 전태일이 등장한 시대적 배경, 전태일 분신 이후의 사회적 파장, 1980년대 이후 사회적인 영향 등을 조명했습니다. 또한 1995년에 상영되었던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연출했던 박광수 감독과 윤중목 영화평론가는 영화의 기획, 시나리오, 캐스팅, 촬영, 편집, 배급과 상영 등 전반적인 과정을 현장감 있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 시인님은 이번 도서에서 ‘전태일과 한국문학’ 꼭지를 다루셨습니다. 쓰시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또한 어떤 내용을 담고 싶었던 것인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맹문재 : 저는 이번 책에서 전태일이 한국문학에 끼친 영향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전태일 분신 이후의 노동소설과 노동시의 흐름,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전태일문학상과 노동자문학회 등의 활동을 살펴본 것이지요. 이 글에서는 전태일이 일기장에 쓴 소설의 초안들을 원본 그대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소설 작품들은 전태일이 노동자로 추구한 휴머니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데, 저는 전태일의 이 정신이야말로 새롭게 조명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전태일]은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출판되었습니다. 한국문학과 전태일 정신이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맹문재 : 한국문학과 전태일 정신의 관계는 사회학적 상상력의 개념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개인의 문제를 사회적 상황과 구조 등의 관계 속에서 살펴보는 인식입니다. 이와 같은 인식이 사회과학적인 차원으로까지 이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전태일 분신 이후의 한국문학에는 분명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에 많은 소설가와 시인이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연대한 것이지요.
- 노동문학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나요?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맹문재 : 노동문학은 노동 현실이나 문제를 제재로 삼고 그 극복을 추구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문학에서 노동문학이 나타난 것은 전태일 분신 이후라고 볼 수 있지요. 1980년대에 들어 학계와 문단에서 노동문학이 공식적인 개념으로 사용될 정도로 꽃을 피웠습니다. 산업화가 본격적이고 전면적으로 진행되어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룩했지만, 노동 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길었고 임금은 매우 낮았습니다. 임금도 직업의 종류, 학력, 성별 등에 따라 차이가 컸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나섰지요. 도시 공장의 노동자 수가 전체 노동자의 반을 넘어섰을 정도로 노동자들이 산업사회의 역할을 주도하기 시작했는데, 노동문학도 그 역할을 한 것입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작업장 이야기를 써서 노동조합의 소식지에 싣거나 노동자문학회를 결성해 활동함으로써 노동운동을 한 것이지요.
- 시인님은 어떻게 노동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습니까?
맹문재 : 저는 공고를 졸업한 뒤 제철소에 입사했습니다. 그때의 근무조건은 3조 3교대 근무로 한 달에 하루밖에 쉬지 못할 정도로 아주 힘들었지요. 제가 하는 일은 판(plate)을 이송하는 운전 및 평탄도가 불량인 판을 바로잡는 작업이었는데, 판이 구르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귀마개를 항상 착용해야 되었지요. 또한 작업장의 천장에는 크레인이 제품을 야적장에 옮겨다 쌓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위험했지요. 만약 크레인이 몇 톤이나 되는 판을 옮기다가 떨어뜨린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일어나겠어요. 그리하여 꿈속에서도 안전사고를 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지요. 저는 그곳에서 안전사고로 죽어간 동료들을 보았고, 그 죽음을 둘러싸고 통곡하는 유족들과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관리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노동자들의 힘듦과 억울함과 분노 등을 문학작품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전태일이 쓴 소설 중 시인님이 가장 생각나는 구절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그 구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맹문재 : 저는 “완전에 가까운 결단”이라는 구절을 가슴속에 담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1970년 8월 9일에 쓴 다음의 글에 들어 있습니다. 이 글은 조영래가 쓴 『전태일 평전』에만 수록되어 있고, 전태일의 일기장에는 없습니다. 전태일 분신 이후 모 신문기자가 전태일의 일기장을 빌려 가 사용하고는 이 부분을 떼어내고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지요. 해당 기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고, 만약 이 일기장을 가지고 있다면 되돌려주길 간청합니다. “완전에 가까운 결단”이 들어 있는 글을 소개해봅니다.
.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 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전태일 이후의 노동문학을 노동소설과 노동시로 나누어 설명하셨습니다. 노동소설과 노동시 중 시인님이 좋아하시는 작품을 하나씩 독자에게 소개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맹문재 : 많은 노동소설과 노동시 중에서 한 편을 소개하라는 질문은 매우 어렵네요. 전태일 분신 이후의 소설로는 황석영, 조세희, 박태순, 이문구, 윤흥길, 조해일, 이동하 등으로 이어졌고, 1980년대에 들어서는 정화진, 방현석, 안재성, 이인휘, 김한수, 정해주, 김종성, 윤정모, 김남일, 정도상, 윤동수, 원명희 등으로 확대되었지요. 이 중에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소개하고 싶네요. 이 소설집은 1978년에 간행되어 오늘날까지 300쇄를 넘긴 스테디셀러이지요. 산업사회의 그늘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실체를 ‘난장이’(표준어는 난쟁이) 가족의 소외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난쟁이 가족의 저항은 전태일의 투쟁과 같다고 볼 수 있지요. 아울러 소설의 문체, 시점, 구성, 상상력 등이 낡지 않고 현대성을 띠고 있는 점에 주목합니다.
전태일 분신 이후의 노동시로는 신경림, 김지하, 정희성, 김준태, 양성우, 임홍재 등의 지식인 시인들의 작품을 들 수 있는데, 1980년대에 들어 박노해, 백무산, 박영근, 김남주, 김기홍, 이소리, 김해화, 정명자, 최명자 등 노동자들이 직접 창작 주체로 나섰지요. 이 중에서 박노해는 『노동의 새벽』을 통해 지식인 시인들에 의해 쓰이던 노동시를 노동자가 주도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지요. 저는 불평등한 소득 분배로 희생당하는 노동자를 ‘우리’라는 연대의식으로 껴안은 점을 주목합니다.
-한국의 고용형태는 다변화되고 있고, 이에 따라 앞으로의 노동문학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한국의 노동문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맹문재 : 1990년대 이후의 노동문학은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에 따른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확대로 인해 변화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본격화되면서 노동 영역 자체가 육체노동에 비해 정신노동으로 확대되어 어떻게 보면 노동문학이 거대한 자본주의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노동문학의 성격이 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요. 노동문학은 자본주의가 가져온 물질주의나 인간 소외 등을 극복하고 인간 가치를 회복시키기 위해 필요합니다. 우리가 노동을 통해 삶을 영위하고 있는 한 노동 문제는 발생할 수밖에 없기에 노동문학은 이 세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운동이 되어야겠지요.
마지막으로, 향후 출판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떤 내용일지 궁금합니다.
맹문재 : 저는 전태일문학상 수상자로서 전태일의 정신을 따르고자 합니다. 그동안 전태일과 관계된 출판 활동을 소개하면, 2001년 전국노동자문학회가 전태일 열사 30주기를 기념해서 엮은 시집 『너는 나의 나다』에 함께했고, 2008년 전태일문학상 수상자들의 무크지인 『삶과 문학』 및 2009년 백무산, 조정환과 함께 전태일 열사 탄생 60년을 기념한 시집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엮어 간행했습니다. 또한 시 전문지 『푸른사상』 2020년 봄호에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기념해 전태일의 친동생인 전태삼과 대담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기념하는 시집 『전태일은 살아 있다』를 백무산과 함께 엮어 간행합니다. 또한 전국노동자문학회의 기관지인 『삶글』을 노동자들과 함께 간행했고, 사북민주항쟁동지회가 사북항쟁 40년을 기념해서 엮어 간행한 『광부들은 힘이 세다』를 기획했습니다.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가 한광호 열사 추모 문화제와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 촉구 문화제에 참여하면서 엮어 간행한 『철탑에 집을 지은 새』도 기획했습니다. 지난주에는 광산촌과 광부들의 삶을 담은 개인 시집 『사북 골목에서』도 간행했습니다.
이외에 2013년 전태삼과 함께 대구에 있는 전태일의 집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했고, 부산에 내려가서도 전태일의 집을 찾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전태일의 서울 생활도 답사할 생각입니다. 아울러 전태일의 일기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평전을 쓰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저는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는 시대와 사회를 정확하게 간파하는 눈을 가지고 실천했는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들을 무한하게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전태일의 그 사랑을 품고 따르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